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36)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36화
로건
깊고 음침하며 갖가지 악취가 진동하는 지하실.
갖가지 오물이 찐득하게 달라붙어 전등이 누런색을 토해냈다. 누런 전등 아래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비명이 울려 퍼졌다.
“키아아아악!”
마치 수두처럼 온몸에 작은 물집 같은 단단한 뿔들이 돋아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한 실험체의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물집처럼 작은 뿔들이 커지기 시작하더니 속박하고 있던 가죽끈을 끊어냈다.
“끄아아아아!”
그러자 주변을 돌아다니던 연구원들이 차트를 들고 달려왔다. 연구원들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좀만 더! 좀만 더!!!”
뿔은 온갖 곳에서 자라났다. 마치 벌레의 몸을 지배한 동충하초처럼 뿔들이 피어올랐다.
광기에 가득 찬 연구원들은 악상이 떠오른 작곡가처럼 사내의 비명에 맞춰 펜을 열심히 놀렸다.
“크아아아아아!”
온몸에 뿔이 생긴 사내는 그런 연구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연구원들은 사내가 적을 구분하고 살의를 품은 것에 기뻐했다.
아직 이성이 티끌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사내는 온몸에 돋아난 뿔 때문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이윽고 온몸에 자라나기 시작한 뿔이 얽히며 사내의 움직임을 속박했다.
따닥! 딱! 딱!
사내는 끔찍한 고통에 이를 덜덜 떨며 경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퍽!
뿔이 밖이 아닌 안쪽으로 자라면서 사내의 머리를 부숴 버리고 말았다.
광기에 휩싸인 연구원들의 눈이 실망감으로 가득 찼다.
“B-48호도 똑같이 머리가 터져 죽었군.”
“뿔이 많이 자라는 것은 좋은데 안쪽으로 자라는군.”
“그래도 변이 과정 자체는 나쁘지 않아. 팔과 다리 쪽으로 집중되었으니까.”
사람이 끔찍하게 죽었음에도 연구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연구를 위한 논의를 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갖고 있을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키메라들 먹이로 주고 다른 실험체를 침대 위로 올려.”
“실장님. 실험체들이 모두 바닥났습니다.”
“뭐? 왜?”
연구원은 피 묻은 펜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실험체 공수가 어렵습니다. 최근 황금 기사단이 나서서 이 주변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황금 기사단이? 설마 연구소 위치가 발각되기라도 한 건가?”
“아뇨. 그런 건 아닌 모양입니다. 키메라들이 주로 납치한 곳을 중심으로 수색만 하고 있고 하수구로 침입한 흔적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연구원도 입을 열었다.
“뇌물을 준 관리들에게도 물어봤는데 하수구의 ‘하’ 자도 꺼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냥 키메라들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납치해 온 탓에 그런 것 같습니다.”
실험실장은 짜증이 났는지 펜을 내던졌다.
“젠장 그러니까 천천히 실험체들을 끌고 오라고 했지?!”
“며칠 전에 실장님이 일단 되는대로 납치해 오라고 하셨…… 컥!”
실장은 자신의 말에 토를 달던 연구원의 목에 주사기를 박았다.
“아…… 안 돼! 안…… 으으읍!”
실장은 염동 마법으로 사내의 입을 막아버리고 조금 전에 죽은 사내가 누워 있던 침상에 눕혔다.
연구원들은 눈치 좋게 끊긴 가죽끈을 마법으로 봉합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같은 동료였던 이를 단단히 속박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네놈들이 실험체가 되는 수밖에.”
연구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녀석 꼴 되기 싫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실험체들을 구해 와. ‘뿔의 기사’가 거의 완성된 시점에서 실험체가 모자라면 안 되니까.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실장은 허둥지둥 달려가는 연구원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슈비츠 님이 오시기 전에 ‘뿔의 기사’를 보여 드려야 하는데…….”
슈비츠는 황도 아래 거대한 키메라 실험실을 구축하도록 도와준 후원가이자 최고의 연금술사였다.
만약 그에게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전대 실험실장처럼 알 수 없는 괴생명체가 될지도 몰랐다.
실장은 초조하게 만년필 끝을 물어뜯었다.
* * *
레인로버 황녀의 예상이 맞았다.
프리하르덴 백작은 티그리스의 집에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큼! 집이 꽤 나쁘진 않군.”
샤를로트가 티그리스의 집에서 지내겠다고 말한 때가 일요일이고, 백작이 금요일에 당도했으니 소식을 듣자마자 백작령에서 곧바로 열차를 타고 달려온 것이었다.
로건 드 프리하르덴 백작.
현 6성 기사.
황국 최고의 기사 전문 잡지 글로리 나이트(Glory Knight)에서 선정한 황국 내 영향력 있는 기사 5위황국의 3대 보물 중 하나인 ‘프리하르덴의 여름’을 보유하고 있는 기사이자 훗날 로타와 아르펨과의 전면전에서 ‘전장의 악귀’란 별칭을 얻는 무시무시한 사내는…….
마치 딸아이의 신혼집을 구경 온 장인의 표정으로 티그리스의 집을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 딸아이는 침대가 푹신해야 하는데…….”
“황국 최고의 침대 회사 오르끌랑의 퀸 사이즈 침대로 구비해 두었습니다.”
“큼……! 오르끌랑이 좋긴 하지. 물도 깨끗한 것만 마시는데…….”
“식수는 에드비안 생수만 사서 마십니다.”
“큼……! 그나저나 테라스가 나쁘지 않군. 거친 훈련은 못 하겠지만 검을 휘두르는 데는 문제가 없겠어.”
“바닥에 충격 감쇄 마법이 걸려 있기 때문에 10t의 충격이 가해져도 문제가 없게 설계되었습니다.”
“큼……!”
로건 백작은 테라스 위 잔디를 한번 밟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인테리어가 좀 칙칙한 것만 빼면 나쁘지 않군.”
솔직히 말하자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굳이 티를 잡자면 그것 하나뿐이었다.
티그리스와 로건은 테라스에서 카렌이 내어준 차를 마셨다.
로건은 잠시 뭔가 생각할 것이 있는 듯 말없이 차를 좀 마시다 입을 열었다.
“샤를로트에게 대충 듣긴 했네만, 설마 샤를로트가 자네의 제자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네.”
로건은 슈베어트의 그날을 회상했다.
샤를로트의 얼굴에 뜯긴 잔디와 흙이 묻어 있었고 등에는 티그리스의 신발 자국이 찍혀 있었다.
-아빠……. 나 저 새끼 반드시 이길 거야……. 이겨서… 똑같이 복수해 줄 거야…….
그때, 로건은 진심으로 티그리스를 찢어발기고 싶었다.
티그리스가 절친한 친우인 베오울프의 아들이고, 슈베어트의 전통에 어긋나지 않는 정당한 결투만 아니었다면 당장에 티그리스의 목을 쳤을 것이었다.
그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날 티그리스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샤를로트에게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고 하더니, 눈떠보니 샤를로트는 티그리스의 제자가 되었다.
게다가 앞으로 티그리스의 집에서 지내겠다고 했다.
그 전보를 받은 로건은 황도에 안 올 수가 없었다.
“나는 사람이 쉽게 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네. 더구나 자네처럼 천재적인 검사가 오만함을 버리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네.”
로건의 말은 틀린 점이 하나도 없었다.
티그리스는 결국 최후의 전쟁에 이를 때까지도 오만함을 버리지 못했다. 모두가 다 죽고 난 후에야 오만함을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틀린 모양이군. 자네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변했어.”
티그리스의 기세나 표정 그리고 자세엔 겸손함이 묻어 있었다. 슈베어트 때와는 180도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슈베어트 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로건은 말없이 차를 한 모금을 마시고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올 때, 사실 자네가 샤를로트를 가르칠 자격이 있냐고 따져 물을 생각이었네. 실력을 떠나서 샤를로트를 그렇게 아프게 해놓고 무슨 염치로 스승이 될 거냐고 말일세.”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 보니 이건 로건이 나설 일이 아니었다. 그날 가장 많이 아팠던 것은 샤를로트고, 결국 용서해야 할 사람도 샤를로트였다.
당사자들끼리 이미 사과하고 용서한 마당에 로건이 중간에 껴서 용서할 수 있는지 아닌지 결정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물을 것은 하나네. 자네가 샤를로트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아비 된 자로서 올바른 스승 밑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자격은 있다고 보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로건은 진지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 딸아이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저를 제외한 또래 중에 이길 자는 없고, 베테랑을 제외하면 3성 기사도 이길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샤를로트는 대처 능력이 뛰어납니다. 상대방의 검술의 종류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압니다.”
“또?”
“이기는 법을 압니다. 단순히 대처만 할 줄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검술을 이용해 어떻게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을지 그 과정까지 설계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건?”
“발이 빠릅니다. 정면에서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사각이나 막기 어려운 곳으로 빠르게 이동한 뒤 검을 찔러 넣습니다.”
“……그 외에 또 있나?”
“하나하나 나열하면 총 24가지의 장점이 있습니다. 그 외에 제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장점들도 더 있을 겁니다. 아직 샤를로트를 제대로 가르친 지 5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로건은 티그리스가 샤를로트에게 진심이란 것을 느꼈다.
로건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장점을 자세하게 늘어놓는다는 것은 그만큼 샤를로트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샤를로트는 무엇을 보완해야 하나?”
“우선 경험입니다. 사람과 많은 결투를 해서 사람을 대하는 법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하지만 몬스터는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음……. 확실히. 샤를로트는 아직 몬스터를 제대로 사냥해 본 적은 없으니까…….”
“그리고 아직 심리전이 약합니다. 자신보다 빠르고 힘이 강한 상대를 할 때, 이기는 방법은 심리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 점은 덜 다듬어진 것 같습니다.”
티그리스는 샤를로트의 단점을 줄줄이 읊었고 어떻게 보완할 것이며 교육 커리큘럼은 어떻게 짰는지 세세히 설명했다.
로건은 티그리스의 설명을 들으며 속으로 감탄했다.
로건은 샤를로트를 정말 사랑한다. 그 때문에 샤를로트를 굉장히 좋은 방향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로건은 그렇게 타협해 가며 샤를로트를 가르쳤지만, 티그리스는 그런 게 없었다.
잘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고 못한 것은 못한 것이다. 샤를로트를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오직 샤를로트의 검술 향상을 위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만을 생각한다.
그건 로건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왼손 검지를 사용하는 법을 모릅니다. 왼손 검지에 힘을 싣는 법이나 빼는 법을 조만간 가르칠 예정입니다.”
이건 너무하지 않나 싶은 비판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샤를로트를 관심 있게 봐주는 것 같아 부모 된 자로서 티그리스에게 고마움까지 느껴졌다.
“……샤를로트는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보다 단점을 보완하는 쪽으로 교육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조만간 고리를 하나 더 추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니, 좋은 소식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음. 그렇군.”
“그럼 제가 샤를로트의 스승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보십니까?”
로건은 잠시 생각했다.
이미 마음속에 답은 나와 있었지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로건의 편견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편견은 이성이 아닌 감정의 영역이기에 쉽게 바꾸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바꿔야만 했다.
티그리스가 샤를로트를 객관적으로 봤듯이, 로건도 샤를로트의 성장을 위해 감정을 도려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
“자네만 한 스승은 찾기 어렵겠지.”
그러니 티그리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샤를로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성적인 사람이기에, 아비로서 늘 궁금해 왔던 점을 묻고 싶었다.
“한 가지 물어봐도 괜찮겠나?”
“예. 말씀하십시오.”
“우리 딸아이가 여자로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에 티그리스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의 객관적인 눈을 빌리고 싶네. 우리 딸아이가 여자로서 매력이 있는 것 같나?”
티그리스는 자신을 시험하려는 것인가 의심했지만, 로건의 눈을 보니 진심이었다.
로건은 딸아이의 검술 실력 성장도 중요했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만날 수 있을 것인지도 중요했다.
“……그건 제 분야가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자네의 생각을 말해보게. 자네는 샤를로트를 볼 때 심장이 두근거리나?”
티그리스는 이렇게 곤란한 질문을 받을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티그리스는 아직 연애나 사랑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로타와 아르펨을 죽이고 우노로부터 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지만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어서 대답해 보게. 자네는 샤를로트를 어떻게…….”
흠칫!
로건의 어깨가 움찔했다. 뒤통수에 날아와 꽂히는 날카로운 시선에 목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빠.”
로건은 뒤를 돌아봤다.
샤를로트가 있었다.
샤를로트는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아빠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샤…… 샤를로트.”
로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티그리스는 회귀 전을 통틀어 로건이 이렇게 겁에 질린 표정은 처음 봤다.
샤를로트의 분노가 속사포처럼 터져 나왔다.
“내가 이럴까 봐 말 안 하려고 했어. 내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기숙사에 들어오더니! 진짜 여기에 올 줄은……!”
“샤를로트 흥분을 가라앉혀라. 네가 화를 내면 네 어미보다 더 무섭……!”
“내가 중간에 말 끊는 거 제일 싫어한다고 했지?!”
좀 전의 위엄 있는 로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딸에게 잡혀 사는 불쌍한 아버지가 있었다.
“도대체 왜 여긴 연락도 없이 온 거야?!”
“말하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할 테니…….”
“나 이런 거 정말 싫어하는 거 알잖아!”
“샤를로트 그래도 남들 보는 앞인데 아비 체면을 좀…….”
“딸 집에 갑자기 쳐들어오는 건 체면이 세워질 일인가?”
샤를로트는 티그리스를 흘금 보면서 말했다.
“혹시 우리 아빠가 뭐라고 했어요……?”
티그리스는 로건을 봤다. 로건은 티그리스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내 기준에선 별일이 없었다.”
“……별일이 있었구나. 내가 진짜 못살아.”
샤를로트는 로건의 손목을 잡았다.
“됐고 나랑 따로 얘기 좀 해.”
“샤…… 샤를로트.”
“어서 따라와!”
샤를로트는 로건을 끌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마다 사일런스 마법이 걸려 있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들을 수 없었지만 대충 예상이 갔다.
아이린은 말없이 샤를로트의 방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서 짙은 슬픔이 느껴졌다.
아이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예상이 갔다.
“아이린. 수련이나 하자꾸나.”
“……예.”
슬픔을 털어내는 데는 수련만 한 것이 없었다.
* * *
아이린은 잔디밭에 놓여 있는 방석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평소라면 대검을 휘둘렀겠지만, 티그리스는 당분간 대검을 잡는 것을 금지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린의 몸 상태가 생각보다 매우 나빴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느라 인대가 늘어났고 관절이 삐걱거렸으며 오른쪽 팔이 왼팔보다 손가락 반 마디가량 더 길었다.
전체적으로 몸의 균형이 전혀 맞지 않았다. 이는 검사에게 있어서 굉장히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티그리스는 아이린에게 당분간 몸을 회복시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아이린도 자신의 몸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던 터라 티그리스의 말을 들었다.
아이린은 티그리스가 알려준 ‘세포 성장술’을 사용했다. 손상된 근육에 오러를 부드럽게 집어넣어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근육 자체를 오러 친화적으로 변질시키는 작업이었다.
티그리스는 아이린의 등 뒤에 앉아 손을 올렸다. 아이린은 오러 운용에 재능이 있었지만, 아직 섬세하지 못했다.
세포 성장술의 핵심은 세포 하나하나에 오러를 집어넣는 미세한 오러 컨트롤이기 때문에, 아이린이 세포 성장술에 완전히 적응할 때까지 티그리스가 도와줘야만 했다.
티그리스는 아이린의 오러를 잡아 부드럽게 인도했다. 검사에게 중요한 부위인 양어깨 관절과 인대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역시.’
아이린이 어떻게 2년 만에 고리 2개를 완성시킬 수 있었는지가 항상 의문이었다.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2년 만에 고리 2개를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영약을 먹은 것이군.’
아이린의 몸의 구석구석엔 영약이 침투한 구석이 보였다.
티그리스가 먹은 영약이 마나 회로를 정순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면, 아이린이 섭취한 영약은 오러 양을 대폭 늘려주는 종류였다.
하지만 그 반발로 인해 신체의 성장이 막혔다. 오러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성장판이 과부하에 걸리면서 완전히 닫혀 버린 것이었다.
그 말은 아이린은 더더욱 대검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말이었다. 대검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몸이 더욱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성장 기대치가 한참 낮아지게 된다.
‘어서 용혈검을 찾아야겠군.’
벨프 가문의 성물인 용혈검은 부러져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성물은 별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성물은 성좌의 기억으로 탄생하기 때문에 설령 사라지더라도, 반드시 세상에 다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티그리스는 용혈검이 언제 어디에서 다시 나타나는지 알고 있었다.
벨프 가문의 성물, 용혈검이 아이린의 손에 들어오는 날.
아이린은 저 대검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티그리스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이린의 육체를 성장시키고 오러 고리를 만들며 바스타드 소드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티그리스는 아이린의 등에서 손을 뗐다. 아이린은 무아지경에 들어갔다.
‘놀랍도록 배우는 속도가 빠르군.’
아이린은 불과 5일 만에 세포 성장술을 완벽하게 익혔다.
이 아름다운 재능이 꺾이지 않게 하는 것.
티그리스가 해야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