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41)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41화
수련의 숲(2)
가장 참혹한 전쟁을 보고 싶으면 고블린의 전쟁을 보면 된다.
이 말을 남긴 사람은 저명한 몬스터 행동학자이자 현자였던 토비에르였다.
승리한 고블린 집단은 패배한 집단에게 불쏘시개로 노예의 인장을 남기고 평생 죽을 때까지 노예로 부린다.
노예가 아이를 낳으면 산 채로 불태워 죽이고, 배가 고프면 노예를 죽여 살점을 뜯어 먹기도 했다.
고블린은 노예를 같은 종족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닌 가축 그 이하로 취급하는 것이다.
고블린 집단 내에서 주술사가 나오면 더 큰 문제다.
고블린 주술사는 집단의 왕으로 군림하며 패배한 집단을 노예가 아닌 주술의 제물로 사용했다.
제물은 고블린뿐만이 아니라 놀이나 망키, 흰털 원숭이 등 모든 종족을 아우르는 것이라 고블린 주술사의 세력은 순식간에 불어나 인간의 마을을 덮친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고블린 주술사에 의해 한 귀족의 영지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니, 고블린 주술사가 인근 마을에 나타나면 반드시 기사나 용병을 불러 죽여야만 했다.
자칫 잘못하면 마을 전체가 고블린 주술사의 제물이 되니까.
-캬아아아아아!
고블린 주술사 집단의 고블린들이 눈을 뒤집어 깐 채 다른 집단의 고블린들을 살육했다.
놈들은 고통과 공포가 거세된 채 날붙이나 몽둥이가 날아와도 떨지 않고 오로지 살육에 살육만 반복했다.
저 고블린들은 ‘광증’이란 주술이 걸린 것이다.
광증에 걸린 고블린들은 생존 본능이 완전히 거세된 채 오로지 적을 죽이기 위해 미친개처럼 달려든다.
근력과 순발력이 올라감은 물론이고 심지어 다른 녀석 살점을 먹으면 자연적으로 치유되기까지 하니, 고대의 마녀들이 부렸다던 좀비 떼를 보는 것 같았다.
티그리스는 이미 싸우고 있는 고블린들을 무시하고 뒤로 돌아갔다. 그곳엔 20여 마리의 고블린들이 보였다.
고블린들은 모두 이성을 잃은 듯 눈을 뒤집어 깐 채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뼈를 깎아 만든 지팡이를 든 늙은 고블린 하나가 보였다.
저놈이 고블린 주술사였다.
“고블린 주술사를 죽이는 방법은 다소 까다롭다. 놈은 영악하기 때문에 주변에 무슨 함정을 설치했는지 모르기 때문이지. 주술적으로 발동하는 함정일 수도 있고 발목을 자르는 덫이 깔려 있을 수도 있지.”
“그럼 어떻게 사냥해요?”
“가장 쉽고 안전한 방법은 강력한 마법으로 놈을 한 번에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린 마법사가 없지. 지금부턴 기사들끼리 있을 때 주술사 고블린을 잡는 법을 알려주마.”
물론 티그리스가 나서면 3초도 되지 않아 모두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래선 이 둘을 데려온 의미가 없다.
“지금부턴 팀플레이가 중요하다. 한 명은 고블린과 주술사의 시선을 빼앗는 유도꾼이 되어야 하고 한 명은 타격꾼이 되어 고블린 주술사의 목을 치면 된다. 주술사만 죽으면 고블린들에게 걸린 주술이 완전히 해제되니 나머지는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다.”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서로 말없이 눈을 마주쳤다.
샤를로트가 손을 들었다.
“제가 유도꾼을 하겠습니다.”
“좋다. 그러면 아이린이 타격꾼이 되어 주술사의 목을 쳐라. 위험해지면 내가 개입할 테니 자신 있게 행동해라.”
티그리스는 샤를로트를 보며 말했다.
“뒤따라오는 고블린을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주술사의 입을 조심해야 한다. 주술사가 네게 직접 주술을 걸면 넌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놈은 저급한 주술사라 반드시 형체가 있는 ‘탄’ 형태의 주술을 쓸 수밖에 없으니 쳐낼 생각을 하지 말고 피하는 데만 주력해라.”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샤를로트였다.
“야 이 대머리 땅딸보들아!”
샤를로트의 목소리에 고블린들과 고블린 주술사가 즉각 반응했다.
-키에에에에!
주술사가 손짓하자 광증에 걸린 고블린들이 샤를로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도 주술사가 생각이 있는지 절반만 보내고 절반은 가만히 두었다.
그러나 그건 샤를로트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샤를로트는 근처에 굴러다니는 돌을 주워 정확하게 주술사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근처에 있던 고블린 세 마리가 즉각 반응해 돌을 향해 몸을 던졌다.
퍼석!
돌이 고블린 한 마리의 머리를 깨부수고 뒤에 있던 고블린의 내장을 헤집었다.
샤를로트는 놈을 향해 주먹 감자를 먹였다.
“그걸로 될 것 같냐 새끼야!”
-캬아아아아아!
주술사는 샤를로트가 원거리 공격도 가능하다는 것을 눈치채자 곧바로 고블린들을 더 파견했다.
이제 주술사에게 남은 건 네 마리뿐이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체면이 살지!”
샤를로트는 유도꾼의 역할을 착실히 했다. 아슬아슬하게 거리를 주지 않으며 포위되지도 않았고, 좀 전에 티그리스와 함께 눈으로 직접 확인했던 안전한 길로만 다녔다.
이제 남은 건 아이린의 차례였다.
아이린은 숨을 깊게 들이켜 오러를 예열했다.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며 돌진을 준비했다.
아이린은 좀 전에 고블린들이 샤를로트를 쫓기 위해 지나쳐 온 길목을 눈에 담아두었다.
그 길목엔 덫이 없을 터였다.
아이린의 신형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50m란 거리를 단숨에 좁혀 들어간 아이린은 대검을 내질렀다.
-캬아아악!
뒤에서 갑자기 덮쳐온 아이린에 깜짝 놀란 주술사는 바로 주술을 사용했다.
근처에 있던 고블린 네 마리가 흐물흐물 녹아 사라지더니 주술사의 하얀 지팡이로 모여들었다.
주술사는 아이린의 검을 막기 위해 두 손을 높이 들었다.
쩌엉-!
아이린의 대검과 주술사의 뼈 지팡이가 부딪쳤다. 날카로운 굉음이 숲을 가로질렀다.
아이린은 살짝 놀랐다.
겨우 고블린 주제에 자신의 대검을 완벽하게 막아냈기 때문이다.
괜히 범치와 같은 서열에 있는 5등급 몬스터가 아니었다.
아이린은 더 힘을 주었다.
그러자 고블린 주술사의 팔이 덜덜 떨려오며 붉게 물들었던 지팡이도 색을 잃어갔다.
뿌득-!
결국 고블린 주술사의 양팔이 완전히 부러지며 지팡이를 놓쳤다.
고블린을 죽일 절호의 기회였다.
아이린의 대검은 무자비하게 고블린의 몸통을 사선으로 토막을 내버렸다.
-케에에엑!
그때, 고블린 주술사의 몸에서 검붉은 연기가 나오더니 아이린의 몸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아이린은 반사적으로 쳐내려 했다.
“쳐내면 안 된다.”
어느새 다가온 티그리스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거센 검풍이 붉은 연기를 하늘로 날려 버렸다.
“자신을 제물로 빚어 만든 주술은 성공률도 높고 그만큼 치명적이다.”
보통 주술은 주술사의 목숨이 끝나면 자동으로 사라지지만, 자신의 영혼과 육체로 빚어 만든 주술은 영구적으로 피해자를 괴롭혔다.
“주술사를 죽이고 나선 자리를 반드시 뜨도록 해라. 방금처럼 죽기 직전에 자신의 몸에 주술을 걸고 죽을 수 있으니.”
“……예. 알겠습니다.”
샤를로트는 검에 묻은 피를 휘둘러 털어내며 다가왔다. 자신을 쫓던 고블린들이 모두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지자 샤를로트는 남김없이 다 죽였다.
“주술사도 죽었나요?”
“그래. 둘 다 잘해주었다.”
빈말이 아니었다.
둘 다 자신에게 내려진 작전을 정확히 따랐고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둘은 훌륭한 검사뿐만이 아니라, 훌륭한 군인이 될 자질이 있었다.
회귀 전의 티그리스와 다르게.
“그럼 이제 사체를 처리하는 법을 알려주지.”
“엥? 사체도 처리해요?”
“모든 것은 끝마무리가 제일 중요한 법이다. 특히 주술사의 시체는 육체에 주술의 흔적이 남겨져 있어서 가만히 놔두면 이 땅에 저주가 걸리거나 기묘한 주술적 현상이 발생하곤 한다.”
샤를로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주술이 뭐길래 그렇게 끈질겨요?”
“사체를 처리한 뒤에 이야기해 주겠다. 일단 고블린 시체들을 모두 끌고 이쪽으로 가져와라. 나는 불을 피울 테니.”
시체는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시체의 절반 이상이 수분이기 때문에 완전히 전소시키려면 꽤 많은 장작을 패 와야 했다.
다행히 건조한 봄철이고 최근 한 달간 비가 내리지 않았기에 장작으로 쓸 만한 마른 나무들이 근처에 많았다.
타닥-! 타닥-!
15분 만에 죽은 고블린 시체를 모두 올리고 불까지 붙인 티그리스는 주술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주술은 정말 간단히 말하자면 인과를 비트는 힘이다. 술사의 몸을 매개로 하여 세상의 인과를 비틀어 술사가 염원하는 현상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이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말보단 보여주겠다.”
티그리스는 간단하게 주술을 부리기로 했다.
티그리스는 주술 도구 없이 주술을 부릴 수 없었지만, 마침 고블린이 남기고 간 주술 도구가 있었다.
티그리스는 뼈 지팡이를 땅에 반쯤 묻고 불타는 장작 몇 개를 가져와 둥글게 주변을 감쌌다.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그저 어린아이의 불장난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굉장히 정성스럽게 일련의 과정을 모두 마쳤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술 중 혼령술밖에 없다. 사실 혼령술을 할 줄 안다기보단 영혼을 죽이는 법을 아는 것이라서 혼령술사라고도 할 수 없다.”
진짜 혼령술사는 주술 도구 필요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주술을 일으킬 수 있다.
티그리스는 검을 빼 들었다.
“그래도 이런 주술적 도구가 있을 땐 정말 간단한 혼령술은 할 수 있다.”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침을 꿀꺽 삼키며 티그리스의 행동을 살폈다.
티그리스는 다른 여타 주술사처럼 주문을 외우지 않았다. 검기를 검에 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타오르는 불을 느릿하게 갈랐다.
그것도 정성스럽게.
“역시 한 번에는 안 되는군.”
샤를로트는 맥이 탁 빠졌다.
“……지금 한 거예요?”
“주술의 절반 이상은 운이다. 그리고 주술 도구도 좋은 편이 아니다.”
“에이…… 그냥 못 한다면 못 하신다고…….”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다시 한번 티그리스의 검이 불을 가르자 지팡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음. 되었군.”
“지…… 지금 뭐예요?”
지팡이는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이린도 기이한 현상에 사색이 되었다.
“이 지팡이에 속박된 혼령들을 풀어준 것이다.”
“그게 말이 돼요? 지팡이에 혼령이 담긴다는 게?”
“그게 왜 말이 안 된다는 거지? 제인도 레니의 무쇠 팬에 몸을 담고 있지 않나?”
“아……. 그런가? 아니, 잠시만 그것보다 어떻게 주술을 사용할 줄 아는 건데요?”
“배웠다.”
“누구한테요.”
“악령 사냥꾼에게.”
“언제 어떻게 왜요?”
“비밀이다.”
“마지막이 제일 중요한 건데?!”
샤를로트는 더 캐묻지 않았다.
티그리스가 비밀이라고 한다면 비밀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주술은 전혀 인과관계가 없는 두 현상을 하나로 이어주는 기술을 의미한다. 마치 내가 불을 베었는데 지팡이에 속박된 고블린의 혼령들을 풀어준 것처럼 말이다.”
“그럼 이 불의 배치도 의미가 있는 건가요?”
“아니, 전혀 의미가 없다. 주술이란 본래 쓸모없는 일을 정성스럽게 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고대인들이 기우제를 지내거나 바닷사람들이 인신 공양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이 비를 내려달라고 하늘에 비는 것과 비가 내리는 것은 전혀 인과관계가 없지만, 그 정성과 염원이 제사라는 주술적인 방식에 담기면 비가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운이 작용하는 부분이 많아서 내릴 때도 있고 안 내릴 때도 있다.
“주술의 무서운 점은 이것이다.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술사가 원하는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자신의 손가락을 꺾는 것만으로 상대방의 팔이 부러질 수 있고, 휘파람을 불었을 뿐인데 검이 녹슬어 바스러지며, 사람을 구했을 뿐인데 위에 검은 젤이 가득 차서 굶어 죽을 수도 있다.”
방금 말한 모든 내용은 죽는 그 순간까지 티그리스를 괴롭혔던 로타의 입 레비스가 한 짓들이었다.
“그러니 너희들은 만약 자신을 주술사라고 말하는 사람을 적으로 만난다면 가차 없이 베어 죽이고, 만약 주술사라 밝히지 않았음에도 이상한 옷을 입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자를 만나면 도망쳐라.”
원래라면 그냥 무시했을 말이었지만, 실제로 주술을 보여준 데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티그리스가 하는 말이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움직이지. 고블린 주술사까지 있었으니 더 이상한 놈들이 흘러들어 왔을지도 모르겠군.”
* * *
어느덧 조사는 4일 차를 맞았다.
그동안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티그리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티그리스는 몬스터를 추적하는 법, 고블린이 만든 덫을 확인하는 법, 몬스터들의 습성 등 학교에서 배우기 힘든 실전적인 것들을 많이 알려주었다.
아이린은 작대기 하나를 들어 수풀 위로 던졌다.
그러자 나무줄기로 된 올무 하나가 위로 올라왔다.
“이거 고블린 덫 맞죠?”
“맞다.”
특히 아이린이 샤를로트보다 배우는 게 빨랐다. 눈썰미가 좋다랄까? 만약 기사가 아니라 모험가나 사냥꾼을 했어도 대성을 했을 것이다.
“이제 더 뒤질 곳이 있나요? 여기 바람 새는 절벽만 좀 살펴보면 끝이죠?”
“맞다.”
티그리스가 맡은 임무는 사실 쉬운 편에 속했다.
수련의 숲에 사는 몬스터들 중엔 노르베르드의 오크들이나 오우거들처럼 위협적인 놈들은 거의 없었고, 몬스터들이 서식할 수 있는 장소는 한정적이었기에 다소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진짜 어려운 것은 식생 파악이나 수련의 숲 인근에 있는 몬스터 사냥, 수련의 숲을 둘러싼 보안 마법 정비 등이었다.
그런 것들은 전문적인 모험가들이나 마법사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티그리스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티그리스는 바람 새는 절벽 안으로 들어갔다. 바람 새는 절벽은 이름처럼 시원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말은 몬스터들이 살기 딱 좋은 곳이라는 말과 같았다.
“놀들이 살고 있네요.”
“개체 수는…… 어?”
놀들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놀들의 숫자는 10마리였는데, 하나같이 모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이상한 병이라도 걸린 걸까요? 이 대낮에 왜 사냥을 안 나가고 저렇게 누워 있는 거지?”
“둘은 여기서 대기해라. 내가 다가가 볼 테니.”
티그리스는 천천히 놀들을 향해 다가갔다. 화톳불은 오래전에 꺼진 듯 검은 재가 휘날리고 있었고, 먹다 남은 고기들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티그리스는 놀들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숨을 쉬고 있긴 했지만 오랜 시간 굶은 듯 앙상했다.
티그리스는 이들이 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놀 두 마리의 손에 똑같이 생긴 루비 목걸이가 쥐어져 있었다.
‘찾았군.’
티그리스가 수련의 숲 정비를 자원한 이유이자, 바람 새는 절벽을 마지막에 찾은 이유.
바로 연인자리의 성물(星物) ‘페르셴’과 ‘아드네’를 얻기 위함이었다.
“샤를로트, 아이린. 이쪽으로 와라.”
“아, 네.”
둘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얘네들 뭐 때문에 기절해 있는 거죠?”
“저 목걸이들 때문이다. 저 목걸이의 이름은 페르셴과 아드네로 연인자리의 성물이다.”
“성물이요?! 잠시만, 그러면 얘네들이 다 쓰러져 있는 이유가…….”
“그래. 이 녀석들은 성좌의 시련에 빠진 것이다.”
성좌의 시련.
성좌가 자신의 성물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는 시련이다.
보통 성좌의 시련은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가 갑자기 나타난 성물의 경우에서 많이 발생한다.
대부분 학자들은 왜 성좌의 시련이 무슨 조건으로 발동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티그리스는 알고 있었다.
성좌의 시련이 발동하는 조건은 딱 하나다.
성물이 완전히 부서져 현세에서 사라지고, 성좌가 새롭게 성물을 만들어 이 땅에 다시 내려보낼 때 생긴다.
연인자리의 성물인 페르셴과 아드네도 과거에 부서졌다가, 연인자리가 이 수련의 숲에 새롭게 내려준 것이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요? 황국에 보고해야 하나?”
“성물은 제일 먼저 발견하고 입수한 자의 것이다. 황국에 보고를 하겠지만 굳이 황국에 줄 필요는 없지.”
“그러면 성좌의 시련을 받으시게요?”
“그래.”
티그리스는 샤를로트와 아이린을 보며 말했다.
“그래. 내가 만약 반나절 동안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사람을 불러라.”
“성좌의 시련은 굉장히 위험하다던데…….”
“연인자리 성좌의 시련은 어떻게 극복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실제로 연인자리 성좌의 시련은 굉장히 유명했다. 웬만한 모험가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문제는 난이도였다.
연인자리 성좌의 시련은 시련 중에서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했다.
그 때문에 라칸은 성좌의 시련을 받고 거의 3주 넘게 이 놀들처럼 혼수상태에 빠졌었다.
그러나 이 시련은 티그리스에 한해 너무나 쉬운 종류의 시험이었다.
“금방 다녀오마.”
둘은 살짝 불안한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티그리스라면 돌아올 것이란 막연한 믿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티그리스는 페르셴을 집어 들었다.
티그리스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화악-!
감각이 점차 돌아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돌아온 것은 후각이었다.
익숙한 냄새였다.
메마른 먼지와 햇빛에 증발된 피가 코끝을 간질이는 냄새.
바로 전장의 냄새였다.
다음에 돌아온 것은 청각이었다.
챙-! 챙-!
-으아아아악!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병사들의 목소리와 날카로운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했다.
다음은 시각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창 하나가 티그리스를 향해 날아왔다. 티그리스는 반사적으로 창대를 잡고 당겼다.
“으아아악!”
티그리스는 상대의 목을 잡았다.
우득-!
그리고 목을 비틀어 목뼈를 부쉈다.
죄책감이나 망설임 따윈 없었다.
이곳은 전장이다.
전장에서 망설임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사방팔방에서 창칼이 날아왔다.
전쟁의 최종 국면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사람들이 가장 많이 허무하게 죽는 난전 상황이었다.
“티그리스!”
한 사내가 티그리스의 어깨를 잡았다. 난전 상황 중임에도 살기가 없었기에 티그리스는 반응하지 않았다.
티그리스는 그 사내의 얼굴을 확인했다. 금발에 벽안, 그리고 은빛 플레이트 갑옷을 갖춰 입은 기사였다.
“티그리스! 부탁이 있네! 난 이곳을 벗어나 아드네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네!”
사내는 티그리스와 일면식도 없었지만, 티그리스를 잘 아는 것처럼 말했다.
티그리스는 이게 성좌의 시련에 들어가면 일어나는 ‘등장인물화’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티그리스는 사내의 목에 걸린 붉은 루비 목걸이를 봤다.
이 사내가 이 성좌의 시련의 주인공 중 하나인 페르셴이었다.
“이 전쟁통 속에서 염치가 없는 건 알겠네만 난 아드네를 이렇게 잃을 수…….”
“가지.”
티그리스는 담백한 말과 함께 샐러맨더의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검을 횡으로 그었다.
그러자 유려한 은빛의 곡선이 전방으로 날아가며 정면이 있던 적 병사들의 허리를 모조리 양단 냈다.
그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운 검술에 페르셴은 당황했는지 말을 잃었다.
이 성좌의 시련을 깨는 법은 간단했다.
페르셴을 적진 한복판에 떨어진 아드네에게 안전하게 데려가는 것.
티그리스에게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적을 다 죽이며 나아가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