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46)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46화
나달
코드네임 히드라.
나달은 고문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이 내지르는 고통의 비명이 끔찍해서도 아니고, 고문하는 일이 생각보다 정신적으로 피곤한 일이라서도 아니었다.
고문실이 더럽고 위생적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달이 인퀴지터의 수장이 되자마자 거금을 들여 바꾼 것이 바로 고문실이었다.
깨끗한 하얀색 타일로 마감을 하고 낡고 오래된 고문 도구들도 싹 다 불태워 버렸다.
펜치로 힘을 줘서 손톱과 이를 뽑는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고문 방식도 갈아엎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처럼, 깨끗한 고문실에는 새로 들어온 고문 도구가 필요했다.
나달이 선택한 것은 주사기였다.
나달은 새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케일 자작은 몸을 덜덜 떨었다.
케일 자작은 염동 마법에 몸이 공중에 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엔 은색 커다란 양동이가 있었는데, 그 양동이엔 케일 자작이 고문을 받으며 배출된 온갖 액체들이 뒤섞여 있었다.
나달은 케일 자작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 그만해. 그만…….”
케일 자작은 저 주사기에 들어 있는 투명한 물약의 이름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저 주사기에 들어 있는 물약이 케일 자작의 손가락에 주사되는 순간 천천히 검게 썩어가며 떨어져 나갔다.
그 썩어 들어간 손가락은 케일 자작의 다리 밑에 놓인 양동이에 퐁당 하고 빠졌다.
“지…… 질문을 해라. 제발 질문을…….”
나달은 말없이 왼손의 하나 남은 새끼손가락에 주사기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물약을 밀어 넣었다.
“끄아아아아악!”
손가락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케일 자작은 비명을 질렀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침을 질질 흘렸으며 항문에서 누런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 액체들은 케일 자작 바로 밑에 있는 양동이에 손가락과 함께 뒤섞였다.
나달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케일 자작이 내지르는 희망 없는 절규를 느꼈다.
나달은 케일 자작의 고통과 절망에 공감하고자 애썼다. 과거 나달이 경험해 본 고통이었기에 동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단지 고통만 느껴질 뿐 그가 느끼는 절망을 도저히 느낄 수 없었다.
비명이 잦아들자 나달은 눈을 떴다.
나달은 실망했다.
케일 자작은 눈물 콧물을 쏟으며 애원했다.
“도대체 내게 원하는 게 뭐야. 도대체……! 말해 제발……! 다 말해줄 테니까……!”
나달은 파우치에서 새 주사기를 꺼냈다.
장장 2시간 동안 꿈쩍도 하지 않던 나달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역시 질문 없이 그 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무슨……! 무슨 소리야!”
“넌 내가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넌 그걸 답하길 간절히 원하고 있지.”
나달의 의안은 아티팩트다.
사람의 표정과 심박 수 등 신체 리듬과 오러의 파동을 자동으로 읽어내 상대방이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공포, 좌절, 답답함, 자살 욕구]이 의안 덕분에 표정으로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나달도 상대방의 감정을 글자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넌 내가 그 질문을 하길 원하겠지. 그리고 죽고 싶을 거다. 앞으로 얼마나 더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난 멍청하지 않다. 2번이나 실패를 겪었는데 3번이나 실수를 할 이유는 없지.”
“실패……? 그게 무슨 소리냐?!”
“이미 넌 알고 있는 듯한데?”
케일 자작을 심문하기 전 케일 자작의 두 아들을 먼저 심문했다.
황도 외에 키메라 실험실이 또 어디에 있는가?
키메라 실험실을 짓는 자금은 어떻게 모았는가?
어떻게 인퀴지터의 시선을 피해 환관을 포함한 황국의 주요 핵심 인사들에게 뇌물을 먹였는가?
키메라 실험을 통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런 평범한 질문들은 두 아들이 손가락과 발가락을 잃어가며 대답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질문에 둘은 모두 죽고 말았다.
이 키메라 실험실을 지으라고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가?
이 질문을 한순간 두 형제는 몸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몸이 터져 죽고 말았다.
“분명 마법적인 금제가 걸려 있지 않다는 걸 확인했지만, 자네 아들들이 갑자기 죽어버렸지. 그런 경우는 내가 알기론 하나밖에 없다. 바로 주술이지.”
“이 개자식이이이이!”
케일 자작은 이빨로 나달을 물어 죽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염동 마법에 몸이 속박되어 있었기에 허공에 이만 딱딱 부딪힐 뿐이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난 지독한 마법 신봉자다. 주술도 마법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하지만 자네 두 아들의 죽음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주술과 마법은 아예 다른 힘일지도 모른다고.”
“으아아아아아!”
나달은 회중시계를 봤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겠나? 자네의 몸에 걸린 금제를 곧 풀어줄 술사를 초빙할 테니. 아.”
나달은 손에 들린 주사기를 하나 남은 케일 자작의 오른손 검지에 찔러넣었다.
“끄아아아아아악!”
“그러고 보니 혹시 자네 티그리스 경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나? 티그리스 경이 아끼던 사람을 받아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데.”
나달은 케일 자작의 얼굴을 봤다. 끔찍한 고통에 온몸을 비틀기만 할 뿐이었다.
[고통, 좌절, 공포, 괴로움]“음. 모르는 모양이군. 어쩔 수 없지. 역시 선물은 상대방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낫겠지.”
나달은 빈 주사기를 파우치에 집어넣었다.
“그럼 몸 관리 잘하고 있게. 준비가 끝나면 질문을 하러 올 테니.”
* * *
티그리스는 레비올라 찻집으로 향했다.
레비올라 찻집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모두 티그리스를 주목했다.
-티그리스다.
-와 나 실물은 처음 봐.
-말 걸면 싫어하려나?
티그리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31번 자리로 향했다.
그곳엔 하얀색 중절모를 쓴 사내가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꽃병을 돌렸다.
그러자 사내는 중절모를 벗었다.
고디바 사막의 히르페인처럼 짙은 구리색의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변하고 구릿빛이 도는 피부가 눈처럼 희게 변했다.
붉은 눈의 백사(白蛇) 같은 인상의 사내, 나달이었다.
나달은 일어나 장갑을 벗고 티그리스에게 악수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티그리스 경. 나달 드 아센시오라고 합니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입니다.”
티그리스는 나달의 손등 피부를 만져 보고 살짝 놀랐다.
피부를 종잇장이라 표현해도 될 정도로 굉장히 얇았다.
티그리스의 손톱에 닿기만 해도 찢어질 것 같았다.
나달은 표정을 읽곤 작게 웃었다.
“선천적으로 피부가 굉장히 약합니다. 그래서 항상 긴 옷과 장갑을 끼고 다니죠.”
“……그렇군요.”
“차는 필요 없습니까?”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나달은 장갑을 끼며 말했다.
“제게 바라시는 대가가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무슨 대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라칸을 인퀴지터에게 양보해 주신 대가 말입니다.”
티그리스는 회귀 전까지 포함해 나달을 총 두 번 봤다.
나달이 로타의 뿔 슈비츠와 나태를 깎아내는 자 오슬로에게 죽었을 때와 지금.
살아 있는 나달과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었기에 나달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 알 수 있는 점은…….
사람을 도구로 취급하는 냉혈한이라는 것이었다.
“라칸은 정말 뛰어난 인재입니다. 눈썰미가 굉장해서 현장에서 써먹기 좋은 인재지요. 교육을 조금 받아야 하긴 하겠습니다만 금방 적응할 것 같더군요.”
티그리스는 말없이 나달을 쳐다봤다.
나달은 라칸을 사용하기 좋은 체스 말 그 이상도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사람을 도구 취급하는 사람 중에서 좋은 사람은 본 적이 없었지만, 회귀 전 나달의 행적으로 보아 황국에 도움이 되는 인재다.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로타의 뿔 슈비츠와 나태를 깎아내는 자 오슬로와 맞서 싸웠고 황녀 전하를 구해냈다.
티그리스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대가를 말하기 전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편히 말씀하십시오.”
“왜 당신은 황국에 충성하는 겁니까?”
“흠…….”
나달은 티그리스의 표정을 관찰했다.
무슨 의도로 티그리스가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알 수 없음.]그러나 나달의 의안으로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좀 전까지 표정을 읽을 수 있었으나 읽지 못한다는 것은 티그리스가 자신의 생체리듬을 조절하고 있다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나달은 갑자기 티그리스가 굉장히 궁금해졌다.
호기심은 나달에게 몇 남지 않은 감정 중 하나였다.
“그 질문에 앞서 티그리스 경에게 황국이란 무엇입니까? 황제 폐하입니까? 아니면 백성입니까? 아니면 영토입니까? 아니면 전통입니까?”
티그리스는 즉답했다.
“사람입니다.”
“이런 대답은 신선하군요. 그럼 또 질문을 드리지요. 황제 폐하와 시민 1만 명 중에 하나를 구해야 한다면 누구를 구하실 겁니까?”
티그리스는 무엄하다거나 귀족이 내뱉을 말이 아니라고 역정을 내지 않았다.
티그리스가 판단하기로 나달은 점잖게 표현하면 정신 상태가 이상한 사람이었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미친놈이었다.
경험상 이런 종류의 사람하고 말싸움을 하는 것은 굉장히 비생산적인 일이었다.
“그런 딜레마를 맞닥뜨린 시점부터 그 전쟁은 패배한 것입니다.”
“하지만 덜 피해를 보는 쪽을 선택해야겠지요. 누구를 구하실 겁니까?”
“방금 답이 나왔군요.”
나달은 짙은 웃음을 지었다.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웃을 타이밍이라 웃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제 그런 말 놀음은 그만하시고 제 질문에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티그리스 경이 생각하는 황국이 사람이라고 한다면, 제 대답은 하나입니다. 전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만들어졌다는 게 무슨 소리입니까?”
“전 사람이 아닙니다.”
티그리스는 멈칫했다.
“사람이 아니라는 게 무슨 말입니까?”
“전 호문쿨루스입니다.”
호문쿨루스란 말에 티그리스는 굉장히 놀랐다.
“이제야 표정 변화를 느낄 수 있군요. 놀라셨습니까?”
호문쿨루스.
인간이 창조한 인간에 제일 근접한 인간.
호문쿨루스 연구는 금지되었는데, 신앙적인 문제도 있었고 도덕적인 문제도 있지만 호문쿨루스를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인체 실험이 자행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인체 실험은 키메라 실험처럼 황국에서 엄금한 실험이었기 때문에 호문쿨루스 실험을 하는 순간 즉각 사형을 당했다.
그리고 티그리스가 놀란 이유는 아르펨의 권속 중에 나태를 깎아내는 자 오슬로가 호문쿨루스였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슬로도 몸이 굉장히 하얬지.’
물론 몸의 형태나 이미지는 완전히 달랐다. 오슬로는 나달처럼 대마법사가 아니라 소드 마스터였으니까.
피부도 이렇게 얇지 않았고 눈동자도 붉지 않았다. 그러나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했다.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전 저를 제일 먼저 발견한 전대 인퀴지터의 수장 마고 드 아센시오에게 황국을 지키라고 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키는 것입니다.”
티그리스는 그제야 나달이 황녀를 구하기 위해 죽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달은 황녀를 구하고 싶어서 구한 게 아니었다.
마치 기계처럼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리 작동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티그리스 경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군요. 제가 혐오스럽지 않습니까?”
“무엇이 말입니까?”
“전 호문쿨루스입니다. 사람을 잡아먹고 태어난 악독한 연금술사의 배설물이죠. 절 싫어하는 기색이 없어 보이는군요.”
“그러기엔 제가 혐오하는 족속들이 너무 많습니다.”
로타와 아르펨 그리고 그들의 권속과 인류를 배신한 배반자들, 마지막으로 우노까지.
티그리스의 증오와 혐오는 오직 그들에게 몰려 있기에 누구를 더 미워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달 당신은 황국의 편이니 미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달은 가슴을 간질이는 알 수 없는 감정의 꿈틀거림에 안면 근육이 움직였다.
아주 짧은 순간 지나갔지만, 티그리스는 나달이 무슨 감정을 표현했는지 알 수 있었다.
기쁨이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맙군요. 티그리스 경.”
“…….”
“혹시나 하는 말인데 제가 호문쿨루스라는 건 1급 비밀입니다. 극소수만 알고 있는 비밀이니 다른 곳에서 누출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 작전 보안을 잘 지키시는 분이시니 걱정되진 않습니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려 드리는 겁니다.”
“왜 제게 그런 비밀을 알려주신 겁니까?”
“저와 티그리스 경은 많은 일을 같이하게 될 겁니다. 그때, 만약 제가 죽을 위기에 처한다면 헌신짝 버리듯이 버려주십시오. 전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니까요.”
자기 자신을 버려달라는 말을 서슴없이 말하는 나달의 말에 티그리스는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표현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조차도 체스판의 기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드러내봤자 의미가 없다.
다만 라칸이 나달의 밑에서 성장하다가 죽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현재 라칸은 굉장히 약하니까. 물론 회귀 전 라칸은 이런 나달 아래서 훌륭하게 성장했다.
하지만 티그리스가 회귀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회귀 전과 달라져 라칸이 위험에 처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대가를 치르길 원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네. 이제 말씀하실 생각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라칸을 지키면서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 있었다.
“라칸을 당신의 직속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나달이 라칸의 스승이 되면 되는 일이었다.
* * *
나달은 티그리스가 떠난 자리를 잠시 쳐다보며 생각에 빠졌다.
‘제자라…….’
본래 직속 제자와 스승과의 관계는 기사들의 전유물이다. 그런데 티그리스는 나달에게 그런 관계를 요구한 것이었다.
대가는 대가였기에 받아들이긴 했다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달에게 있어서 스승과 제자와 같은 깊은 관계를 맺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진심으로 웃는 것만큼.
레비올라 찻집으로 한 사내가 들어왔다.
라칸이었다.
라칸은 나달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 꽃병을 돌렸다.
“저를 부르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나달은 라칸의 표정을 확인했다.
[긴장, 호기심, 궁금증, 기대]라칸은 표정을 읽기가 굉장히 쉬웠다. 인퀴지터에 처음 들어온 혈기 왕성한 젊은 요원들과 비슷했다.
자신에게 어떤 임무를 맡길 것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달은 라칸에게 임무를 아직 줄 생각이 없었다.
나달은 입을 열었다.
“라칸.”
“예. 나달 님.”
“혹시 마법에 관심 있습니까?”
라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신규 퀘스트!]나달에게 마법을 배워 1서클 공통 마법을 모두 섭렵하자!
보상: 5,000포인트.
라칸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네.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나달은 가장 자신 있는 마법을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 * *
아이린의 하굣길.
아이린의 뒤로 많은 사람이 쫄래쫄래 따라왔다.
“티그리스 교관님은 뭘 좋아하시는지 알아?”
“몰라.”
아이린은 이런 종류의 질문을 오늘만 23번이나 받았다.
티그리스가 굉장히 유명해지면서 티그리스와 어떻게든 연줄을 대어보기 위해, 평소에 말도 걸지 않았던 아이린에게조차 다가와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혹시 케이크 좋아해? 내가 최근에 굉장히 맛있는 카페를 발견했는데…….”
“훈련해야 해.”
“그럼 같이 훈련할까? 최근에 나도 대검을…….”
“집에서 할 거야.”
“아…… 그렇구나.”
귀족들은 아이린이 제국 대학을 벗어날 때까지 계속 쫓아와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샤를로트에겐 달라붙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샤를로트에게 전혀 일면식도 없던 귀족들이 달라붙으려고 하면, 주변에 있던 샤를로트의 친구들이 으르렁대며 쫓아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샤를로트는 수틀리면 결투를 신청해서 흠씬 두들겨 패버리기 때문에 맞는 게 무서워서라도 달라붙지 못했다.
라칸도 티그리스 교관과 친하다는 소문이 났지만, 옷 벗고 연병장을 뛰고 고백하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미친놈이라서 귀족들은 물론이고 부르주아들조차도 말을 걸지 못했다.
그래서 저들이 선택한 사람이 아이린이었다.
몰락 귀족 출신인 것이 조금 꺼림칙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예 접근할 수 없는 샤를로트와 미친놈 라칸보단 나았으니까.
하지만 아이린도 만만치 않았다.
수업만 딱 듣고 나면 바로 티그리스의 집으로 돌아가 버리는 탓에 아이린과 마주치는 것도 힘들었다.
게다가 말수도 굉장히 없고 표정 변화도 없는 편이라 말을 걸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놈들은 제국 대학을 벗어나는 아이린의 뒷모습을 보며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진짜 X나 비싸게 구네.
-젠장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이번 주까지 아빠가 티그리스 교관님이 좋아하시는 거 반드시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키는 콩알만 해가지고 아주 그냥……!
아이린은 저들의 뒷담화가 어이가 없었다.
자기들이 아쉬워서 접근하는 주제에 욕은 아이린에게 하고 있었다.
처음엔 살짝 화가 났지만, 하루나 이틀이면 몰라도 한 달이 넘게 이런 패턴이 반복되니 이젠 그러려니 넘기기로 했다.
그때, 한 사내가 아이린을 가로막았다.
“네가 아이린이냐?”
초면에 반말도 어이가 없었지만, 시비를 걸려고 작정을 한 듯 아이린이 가려는 길목을 딱 막은 것이 짜증이 났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아이린은 사내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검녹빛 머리칼에 인상이 동네 건달처럼 생긴 사내였다.
“아이린 벨프 맞냐고 묻잖아.”
귀족의 풀네임을 부를 때 중간에 디(di,) 데(de), 폰(von)과 같은 전치사를 집어넣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자 예의다.
그러나 이 사내는 그 기본적인 예법을 지키지 않았다.
특히 아이린은 몰락한 귀족의 가문의 유일한 혈육이다. 아이린의 성씨를 다른 평민들의 성씨와 똑같이 부르는 것은 그냥 싸우자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이린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너…… 뭐야.”
아이린의 살기에 사내는 휘파람을 불며 웃었다. 아이린의 진득한 살기를 흘리는 걸 보면 꽤 수준 있는 기사임이 분명했다.
“내가 누군지 못 알아보면 쓰나. 하긴 그래서 벨프 가문이 멸문한 거겠지.”
훙-!
아이린은 옆에 매고 있던 대검을 검집째로 들고 내질렀다. 날카롭진 않지만 무게가 상당했기에 맞으면 갈비뼈가 가루가 될 것이었다.
사내는 뒤로 물러나 아이린의 대검을 피했다.
기습적인 공격이었음에도 차분하게 피하는 것으로 봐서 꽤 하는 놈이 분명했다.
“아이고 무서워라.”
“너 누구냐니까!”
“이 검녹색 머리칼을 보고도 모르겠어?”
아이린의 눈이 살벌해졌다.
“설마 빈스모크……?”
“그래. 병신아. 난 로이 드 빈스모크. 빈스모크 백작의 아들이다.”
빈스모크 백작 가문.
과거 벨프 백작 가문과 함께 거대한 흑토 지대를 양분하여 관리하던 가문이자, 4년 전 벨프 가문에게 선전포고했던 가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