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48)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48화
복수(2)
티그리스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듣곤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런 일이 과거에도 있었는가?’
티그리스는 제국 대학을 다닐 당시에 검에 미쳐 있어서, 제국 대학 내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많이 알지 못했다.
라칸이 서열전을 치르던 도중 성좌의 시련에 갇혀 3주 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사건이나, 바스티얀 학교장이 피습을 당하는 사건처럼 큰 사건이 아닌 이상 기억하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로이는 죽지 않았다.’
만약 아이린이 로이와 결투를 했었다면, 아이린이나 로이 둘 중 하나가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로이는 버젓이 살아서 빈스모크 백작 가문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기사로 활약했다.
로이의 검술 실력은 별로 뛰어나진 않았지만, 병사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도발하여 아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에 티그리스도 로이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아이린을 봤다.
아이린은 마치 혼나는 강아지처럼 어깨가 축 늘어진 채 티그리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결투가 있다고 했나?”
“……네. 맞습니다.”
“테라스로 나와라.”
티그리스는 아이린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질책할 생각이 없었다.
위로하지 않는 이유는 티그리스가 위로할 줄 모르기 때문이고, 질책하지 않는 이유는 아이린이 잘못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티그리스는 오히려 아이린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티그리스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스승의 정당한 권리를 이용하여 로이를 베어 죽였을 것이다.
티그리스도 가문에 대한 모욕만큼은 참을 수 없었으니까.
티그리스는 평소에 쓰던 샐러맨더의 검이 아닌 폭이 더 넓고 긴 바스타드 소드를 뽑았다.
“아이린, 대검을 뽑아라.”
아이린은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흑룡아를 뽑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샤를로트는 초조한 눈빛으로 둘을 살폈다.
“아이린. 넌 빈스모크 가문에 대해 얼마나 알지?”
“……네?”
“네 적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는 것이다.”
적이란 말에 아이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티그리스는 서슴없이 빈스모크 가문이 적이라고 표현했다.
이게 외부에 알려지면 빈스모크 가문과 노르베르드 가문 사이가 크게 틀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티그리스는 적이라고 표현한 것일까?
아이린과 샤를로트의 뇌리에 같은 의문이 스쳐 지나갈 무렵 티그리스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빈스모크 가문이 주로 사용하는 검술의 이름은 뭐지?”
“……붉은 사냥개 검술로 알고 있습니다.”
“붉은 사냥개 검술을 본 적이 있나?”
아이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이린은 벨프 가문과 빈스모크 가문 간 전쟁이 터졌을 때, 피란민과 함께 도망치던 중이라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빈스모크 가문의 혈족들이 쓰는 붉은 사냥개 검술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없나? 그러면 빈스모크 가문이 벨프 가문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검술이 하나가 있다. 그 이름은 뭐지?”
“……빈스모크 가문이 벨프 가문을 상대하기 위해 검술을 개발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빈스모크 가문은 벨프 가문을 집어삼키기 위해 10년을 넘게 준비했다. 벨프 가문의 기사들이 사용하는 대검술을 파훼하기 위한 검술을 개발 안 했으리라 생각하나?”
이건 아이린은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네가 네 가문의 검술을 되찾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네 적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다. 승리는 나를 알고 적을 모두 알아야 차지할 수 있다. 비록 적이지만 넌 빈스모크 가문에게서 그걸 배워야 한다.”
티그리스는 자세를 낮추고 검을 위로 올려세웠다.
아이린은 티그리스의 자세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에 숨이 턱 막혔다.
말을 하지 않아도 저것이 벨프 가문의 대검술 ‘용 가르기’를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검술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들어와라. 아니면 내가 가겠다.”
아이린은 검을 부서져라 잡았다.
아이린은 솔직히 말하자면 인정할 수 없었다. 아이린은 황국 내 존재하는 모든 대검술 중에 용 가르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대검술이 절대 이길 수 없는 검술이 있다는 게 인정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아이린은 지면을 박찼다.
퉁-!
아이린의 대검이 공기를 묵직하게 가르며 수직으로 베어 들어갔다.
벨프 가문의 대검술은 단단한 용족의 비늘을 부수고 두꺼운 살점을 토막 내기 위해 만들어진 검술이었다.
그렇기에 힘을 온전히 실을 수 있는 수직 베기 하나만큼은 황국 전역에 퍼져 있는 대검술 중 가장 파괴력이 높았다.
그러나 아이린의 대검과 티그리스의 바스타드 소드가 만나자 귀를 찢는 소음이 아니라 속이 텅 빈 가마솥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텅-!
아이린은 믿을 수 없었다.
아이린의 대검이 티그리스의 검과 부딪히자 하늘 높이 솟구쳤다.
심지어 아이린의 몸이 땅에서 떨어질 정도로 반탄력이 장난 아니었다.
티그리스는 반격했다.
아이린은 입술을 깨물며 강제로 티그리스의 검을 쳐내기 위해 검을 사선으로 베어냈다.
하지만 또다시 아이린의 대검이 이상한 방향으로 튀며 아이린은 몸의 중심을 잃고 말았다.
티그리스의 폼멜이 아이린의 명치에 닿았다.
아이린은 명치에 닿아 있는 폼멜에 식은땀을 흘렸다.
“이게……. 도대체 뭐죠?”
“용 가르기와 같은 대검술을 대항하기 위해 고안된 검술 ‘반동 검술’이다.”
티그리스는 검을 치웠다.
“지금 네가 만약 로이와 상대했다면 로이는 이 반동 검술로 너를 상대했을 것이다. 그러면 넌 아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겠지.”
아이린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시 아이린은 이런 검술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야 왜 벨프 가문의 기사들이 빈스모크 가문의 기사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검술을 알고 계신 겁니까?”
티그리스는 샤를로트를 봤다.
샤를로트는 티그리스 대신 설명했다.
“그 검술은 빈스모크 가문이 3년 전 슈베어트에서 선보인 검술이야.”
빈스모크 가문은 벨프 가문이 무너지고 난 후에 벨프 가문을 모욕하기 위해 슈베어트에서 반동 검술을 선보였다.
그 추태에 많은 기사들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빈스모크 백작이 벨프 가문을 완전히 집어삼켰으며 흑토 지대의 패권자가 되었음을 홍보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그 검술은 딱 한 번만 보여준 건데 어떻게……. 아, 맞다.”
티그리스는 검술을 한 번 보기만 해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었다.
아이린은 손이 떨려왔다.
한번 겪어보니 알 수 있었다.
만약 로이가 반동 검술을 사용한다면 아이린은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로이에게 패배한다고 생각하니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패배자의 표정을 짓지 마라.”
“……하지만 어떻게 로이를 이길 수 있죠?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요.”
“내가 길을 알려주겠다.”
“네?”
티그리스는 떨려오는 아이린의 눈을 보며 말했다.
“반동 검술을 이기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반동 검술은 용 가르기에 대항하기 위해 급조된 검술인 만큼 구멍이 많다.”
아이린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설마…… 반동 검술의 약점을 알고 계신 겁니까?”
“난 반동 검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 검술을 만든 빈스모크 백작보다 훨씬 더.”
티그리스는 바스타드 소드를 놓고 테라스에 따로 배치된 대검을 들었다.
“지금부터 반동 검술에 대항하기 위한 12가지 방법을 모두 알려주겠다.”
티그리스는 대검을 중단세로 취했다.
“시간이 5일 정도밖에 없으니 속성으로 가르쳐 주겠다. 대검을 들어라.”
아이린의 눈빛이 타올랐다.
* * *
빅토리에역으로 근 한 달 만에 열차가 들어왔다.
계엄령 때문에 열차가 들어오고 나가는 게 불가능했지만, 오늘은 특별했다.
이 열차엔 영주들과 그 대리인들이 탑승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모든 철도 차량들은 1등석 아니면 2등석 침대 차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플랫폼으로 귀족들이 내리기 시작하자 근처에 대기 중이던 기자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부를 과시했다.
가문 반지, 넥타이핀, 와이셔츠 카라 핀, 지팡이 등을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하거나, 아는 사람만 아는 유명 브랜드로 도배를 한 사람도 있었다.
그때, 한 사내가 1등석에서 내렸다.
“세상에 빈스모크 백작이다.”
“대리인이 아니라 저 사람이 직접 올 줄이야.”
이리처럼 날카로운 인상의 루카스 드 빈스모크는 기자들을 흘금 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교양 없긴.”
기자들을 향하는 말이 아니었다. 기자들을 플랫폼부터 배치한 황국을 향해 비난하는 것이었다.
뒤에 따라오던 첫째 아들 카터가 지팡이에 달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기묘한 마력 파장이 퍼지더니 기자들의 카메라들이 먹통이 되었다.
“어?! 어?”
“이거 왜 안 눌려?!”
기자들의 카메라들은 모두 아티팩트다.
렌즈에 투과된 빛을 수집하는 ‘장면 포착’ 마법과 그것을 저장하는 ‘기록’ 마법이 걸려 있다.
카터는 ‘장면 포착’ 마법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마법을 발현시켜 카메라를 멈추게 만든 것이었다.
“바로 마차로 이동하시죠. 안내하겠습니다.”
루카스는 휘황찬란한 붉은색 마차에 올랐다.
“카터, 로이가 어디에서 결투한다고?”
“오늘 오후 4시에 제국 대학 내에서 한다고 합니다.”
루카스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러면 내가 지시한 생사결은 어떻게 된 거지?”
“죄송합니다. 입회자인 레인로버 황녀가 제국 대학의 연무장을 결투장으로 잡은 탓에…….”
“쓸모없는 것.”
지팡이를 잡은 루카스의 손에 핏대가 올라왔다.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되는 일이 없었다.
“제국 대학으로 가지. 지금 가면 바로 도착하겠군.”
“예. 알겠습니다.”
* * *
마차는 제국 대학 앞에서 멈춰 섰다. 제국 대학 입구엔 구름 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모두 기자들이거나 젊은 기사들이었다. 경비들은 그들을 막아섰다.
“허가된 사람을 제외하곤 들어갈 수 없습니다!”
벨프 가문의 유일한 혈육이자 티그리스의 제자인 아이린과 빈스모크 가문의 삼남 로이가 결투를 펼친다는 소문이 퍼지자, 제국 대학에 어떻게든 들어가서 결투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었다.
벨프 가문의 복수가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벨프 가문은 또 빈스모크 가문에게 지고 말 것인가를 두고 내기를 벌이는 사람도 있었다.
-자! 자! 아이린에게 거실 분은 이름을 말씀하시고 제게 돈을 거시면 됩니다!
-아이린과 로이 둘 다 2성 기사라고 하더군!
-누가 이길까?
-자! 자! 배당은 4대 6입니다! 거실 사람은 거세요!
루카스는 분노가 가득 차 얼굴이 붉어졌다.
루카스가 벨프 가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지난 3년간 금화 수천 개를 쏟아부었다.
흑토 지대 지역 신문 기자들에게 로비하고, 빈스모크 가문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벨프 가문의 휘하에 있던 귀족 가문들에게 뇌물을 먹이고, 말을 안 들으면 암살자를 고용해 죽이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이 단 한 번의 결투로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다. 아이린이 이기든 로이가 이기든 벨프 가문의 이름이 또다시 황국 전역에 퍼지게 될 것이다.
지금 루카스가 저들 앞에 나타나면, 한창 불난리가 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것이었다.
“짜증이 나는군…….”
카터는 루카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돌아간다. 기자들에게 먹이를 던져줄 필요는 없으니까.”
똑- 똑-
그때 누군가가 마차의 문을 두들겼다.
카터는 마차 창문을 흘금 열어 누가 문을 두들겼는지 확인했다.
제국 대학 경비였다.
“무슨 일이지?”
“빈스모크 백작님이 타고 계십니까?”
카터는 루카스를 흘금 봤다.
루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만.”
“티그리스 교관님께서 특별히 빈스모크 가주님을 초청하셨습니다. 만약 들어오고 싶으시면 서문에 마차가 들어올 수 있는 문이 있으니 그쪽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럼…….”
“잠깐, 우리가 빈스모크 가문인 것은 어떻게 안 거지? 마차에 가문 문장이 없었는데?”
경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황제의 눈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경비, 아니, 인퀴지터 요원은 그 말을 뒤로 떠났다.
루카스의 입이 비틀렸다.
역시 황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황도 지하에 있었던 키메라 실험실에 빈스모크 가문의 자금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이렇게 도발하는데 안 가줄 순 없지.”
루카스는 카터에게 말했다.
“그걸 준비해라.”
카터는 움찔했다.
“……설마 그걸 로이에게 사용하실 생각이십니까?”
“정치는 작은 것을 크게 큰 것을 작게 만드는 여론몰이부터 시작한다. 이번엔 반드시 로이가 이겨야 해.”
루카스의 목에 핏대가 섰다.
“그리고 황제가 벨프 가문을 다시 되살리고 싶어 하는 모양인데 그 싹을 아예 잘라 버려야 하지 않겠나? 어쩔 수 없는 사고로 말이야.”
* * *
아이린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관중들의 환호성은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정신을 날카롭게 벼리고 벼려 온몸의 세포를 일깨웠다.
“컨디션은 괜찮아?”
아이린은 눈을 떴다. 샤를로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네. 선배.”
샤를로트는 아이린을 꽉 껴안아주었다.
“잘하고 와. 넌 이길 수 있어.”
“네.”
아이린은 대검에서 검집을 뽑았다. 샤를로트는 아이린의 검집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 옆에 티그리스가 섰다.
“가지.”
“……네.”
티그리스는 아이린과 함께 연무장 한가운데로 향했다.
로이와 루카스도 맞은편에서 걸어왔다. 아이린은 대검을 부서져라 잡았다.
벨프 가문의 원수가 저 앞에 있었다.
당장에 저 이리 같은 사내의 목을 쳐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은 놈의 목을 치기엔 이르다.
루카스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빼앗은 뒤 흑토 지대에 벨프 가문의 깃발을 꽂을 것이다.
그러기 위한 첫 단추였다.
아이린은 이번 결투에서 반드시 이길 것이었다.
티그리스와 아이린 그리고 루카스와 로이가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네 사람은 레인로버 황녀에게 한쪽 손에 가슴을 대고 고개를 숙여 간소하게 기사의 예를 표했다.
“위대하신 황금의 일족을 뵙습니다.”
“예를 거두세요.”
레인로버 황녀의 말에 네 사람은 예를 풀었다.
“결투 전 네 가지의 질문을 하기에 앞서 네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레인로버 황녀는 루카스를 보며 말했다.
“그 무슨 일이 있어도 결투 간 목숨을 빼앗는 일은 안 돼요. 제국 대학은 신성한 교육의 장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루카스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전하. 염려치 마시옵소서.”
레인로버 황녀는 루카스의 저 비릿한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두 사람은 가세요.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루카스와 티그리스는 잠시 눈을 마주쳤다.
루카스의 강인한 눈빛에도 티그리스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실력이 대단하다는 건 헛소문은 아닌 모양이군.’
루카스는 6성 기사다.
루카스가 읽기 힘들 정도로 잘 갈무리된 기세로 보아 확실히 비범한 놈이긴 한 모양이었다.
둘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돌아서 갔다.
레인로버는 로이와 아이린의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로이는 살짝 불안한지 몸이 덜덜 떨고 있었다.
“로이, 결투를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네. 네. 가능합니다. 반드시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로이 경.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하……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해야 합니다.”
“…….”
말투에서 이상함을 느꼈지만 물릴 수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은 관심이 이곳에 집중되었다.
뭐가 되었든지 간에 결투가 시작되어야만 했다.
레인로버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결투 전 네 가지 문답을 진행하겠다. 두 사람은 문답에 응하라. 첫째, 무기는 각자 가지고 있는 검만 사용한다. 동의하나?”
“동의한다.”
“도…… 동의한다.”
“둘은 원만한 대화로 해결할 생각이 있는가?”
“없다.”
“어…… 없다.”
“결투는 생사결이 아닌 생결로 진행한다. 검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상해를 입은 경우 상해를 입은 자는 패배로 간주하겠다. 동의하나?”
“동의한다.”
“도…… 동의한다.”
아이린은 제국 대학의 학생이었지만 로이는 제국 대학을 이미 졸업한 졸업생 신분이었기에 결투 간 상대의 몸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단, 목숨을 빼앗는 건 불가능했다.
“마지막으로 결투의 종결 후 각자 패자에게 원하는 바를 말하라.”
먼저 결투를 신청한 아이린이 입을 열었다.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벨프 가문과 나를 모욕했던 모든 언사에 대해 정중히 사과를 표해라. 이마와 양 손바닥 그리고 무릎이 땅에 닿는 최고의 예법으로.”
로이는 덜덜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오…… 오른손을 내가 가져갈 것이다.”
레인로버는 완드를 머리 위로 들었다.
“둘은 서로 30보 이상 떨어져라.”
둘은 서로 뒤로 돌아 멀찍이 떨어졌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노려봤다.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에 수백 명이 모인 연무장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레인로버는 완드를 내렸다.
“그럼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