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51)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51화
루카스(2)
루카스 드 빈스모크가 머무는 호텔에 한 사내가 들어왔다.
루카스는 그 사내의 얼굴을 보자 주변 사용인들에게 말했다.
“모두 나가라.”
사용인들은 고개를 숙이고 한 명도 빠짐없이 방에서 나갔다. 오직 카터만이 루카스의 옆에 남아 있었다.
루카스는 하얗고 메마른 사내의 얼굴을 노려봤다.
“찰나의 순간의 부작용은 자네도 고칠 수 없는 게 아니었나? 레비스?”
그는 로타의 입 레비스였다.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네. 찰나의 순간은 신체에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다고 말했지.”
레비스는 중절모를 벗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건방지게 다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 모습에 순간 열이 뻗쳤지만 참았다. 레비스는 일부러 루카스의 성질을 긁는 것이었다.
“찰나의 순간의 부작용을 치료할 방법이 있었다면 내게 말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게 왜 당연한 거지 루카스?”
루카스는 분노를 토해냈다.
“네놈들의 빌어먹을 키메라 실험실을 위해 기사들을 계속 가져다 바쳤으니까!”
“부작용을 버티지 못한 기사들을 키메라 실험실에 넘기기로 계약한 걸 잊었나? 부작용을 치료할 방법을 알려줬다면 과연 자네가 키메라 실험실에 기사를 가져다 바쳤을까?”
놈의 말이 맞았다.
루카스는 약물에 의해 폐인이 되어버린 기사들을 키메라 실험실에 가져다 바쳤다.
대신 찰나의 순간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주겠다고 약속받았다.
“자네는 지금 분노의 방향이 잘못되었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자네가 로이를 잘못 관리한 탓이 아닌가?”
“부작용의 치료 방법이 있었다면, 로이를 티그리스에게 그냥 넘기는 일은 없었겠지.”
레비스는 박수를 짝 치며 말했다.
“자,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하지. 누가 먼저 잘못했는가를 따져나가면 끝도 없단 걸 알고 있지 않나? 우린 미래를 봐야지.”
“……처음부터 네놈들의 제안을 받는 게 아니었다.”
루카스는 벨프 가문을 무너뜨리기 위해 벨프 가문을 공부했다.
벨프 가문의 검술, 지리적 이점, 인근 귀족들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을 조사했을 때, 한 가지 결론을 세울 수 있었다.
벨프 가문을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놈들의 창천 기사단이 사용하는 ‘용 가르기’의 파훼 검술을 만들었지만, 워낙 고난이도라 아무나 익힐 수 없었고, 벨프 가문의 성벽은 튼튼한 데다가 성안에 경작지까지 있어서 장기간 버틸 수도 있었다.
그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벨프 가문이 사용하는 ‘용살(龍殺)’이라는 검술이었다.
용 가르기는 용의 단단한 비늘을 부수는 검술이라면, 용살은 용의 비늘과 뼈를 잘라내는 검술이었다.
제아무리 흑철로 도배한 갑주를 입어도 용살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저들과 계약을 했다.
몇 년 전부터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든 붉은 혈귀를 불러서 벨프 가문의 가주를 죽여줄 테니, 자금 지원을 해달라고.
실제로 그들은 붉은 혈귀를 불러 성벽을 무너뜨리고 벨프 가문의 가주를 죽였다.
그때는 좋았으나, 최근 들어 루카스는 저들의 덫에 걸려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레비스는 피식 웃었다.
“인제 와서 후회하는 건가? 자네가 벨프 가문을 무너뜨린 시점에서 모두 끝난 걸세.”
“네놈들이 도대체 노리는 게 뭐냐?”
“그런 게 왜 갑자기 궁금한 거지?”
“내 눈을 속일 생각 마라. 너희는 처음부터 벨프 가문을 노리고 있었다. 내가 아니었더라도 너희들은 붉은 혈귀를 이용해 벨프 가문을 무너뜨릴 생각이었겠지. 설마 오슬로를 내 양자로 삼게 만든 것도 나를 무너뜨리고…….”
“만약 그런 거라면 어쩔 텐가?”
레비스는 몸을 일으켜 루카스의 앞에 다가갔다.
“처음부터 벨프 가문을 무너뜨리기 위해 붉은 혈귀를 만들었고, 마침 자네가 벨프 가문을 무너뜨리고 싶어 하길래 접근했다. 그리고 오슬로를 양자 삼게 만든 것도 나중에 빈스모크 가문이 잘못되면 집어삼키기 위해 그런 것이라면 자네가 어쩔 거냐는 말일세.”
“네 이놈!”
촹-!
루카스의 지팡이에서 검이 뽑혀 나왔다. 하지만 레비스는 가만히 있었다.
저 검에 살기가 담겨 있었지만, 레비스의 목을 칠 수 없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카스는 레비스가 없으면 흑토 지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단순히 찰나의 순간 공급만 끊어도 루카스가 쌓아 올린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게 될 테니까.
“자네는 우리와 손을 잡은 시점부터 이미 멈출 수 없는 열차에 올라탄 것일세. 자네가 흑토의 왕이 되지 않으면 빈스모크 가문은 멸문하고 말겠지.”
“……도대체 내게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 이제 와서 내게 이빨을 드러내는 이유가 뭐냐는 말이다.”
“내 취미일세.”
“뭐?”
“어쩔 수 없는 악수(惡手)를 둬야 하는 사람을 골려주는 게 너무나도 즐겁거든. 자네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적은 것을 포기해 왔지만, 이젠 앞으로 적은 것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게 내 눈에 보이네.”
“네 이놈이!”
레비스는 검날을 잡아 부드럽게 밀었다.
루카스는 힘을 줘봤지만 레비스가 밀어내는 힘을 버틸 수 없었다.
“과연 자네가 꿈꾸는 전쟁 없는 흑토 지대의 왕이 될 수 있을까? 과연 왕이라는 자리가 자네가 희생한 것 이상의 가치가 있는 자리일까?”
뚝-!
레비스는 두 손가락으로 루카스의 검을 부러뜨렸다.
“아, 물론 내일 티그리스를 이겨야 이런 질문이 의미가 있는 거겠지만.”
“내가 그 애송이에게 질 거로 생각하는 건가?”
“굉장히 방심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동안 오고 간 정이 있으니 한 가지 말해주지. 처음부터 진심을 다하게. 그래도 이길까 말까일 테니.”
레비스는 슈비츠의 분신의 능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당시 슈비츠의 분신은 6성 기사의 육체에 버금가는 신체, 5서클 흑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마력량을 갖고 있었다.
그런 슈비츠의 분신을 이기는 것을 넘어 영혼을 걸레짝으로 만든 티그리스를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 애송이한테 지기라도 한다는 소린가?”
“자네는 흑토 지대를 통일하면서 굉장히 오만해진 것 같군. 내가 자네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검술 실력 따위가 아니라 자네의 혓바닥 때문이네. 반면, 내가 티그리스를 경계하는 이유는 그의 검술 실력 때문이지.”
“또 나를 도발하려는 것인가?”
레비스는 진중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 이건 도발이 아니라 진심으로 충고하는 걸세. 녀석의 짧은 경력과 나이에 현혹되지 말게.”
“나도 알고 있다. 녀석이 내게 결투를 신청한 만큼 뭔가 준비한 게 있겠지. 그러니 나도 사자가 가젤을 사냥하는 마음처럼 진심을 다할 것이다.”
“아니, 자네는 사자의 마음이 아니라 가젤의 마음이 되어야 할 걸세.”
레비스는 부러진 칼 조각을 책상 위에 올려놓곤 말했다.
“자네도 바쁘겠지만 나 역시 생각보다 바쁜 몸일세. 내가 굳이 여기까지 와서 자네에게 경고하는 이유를 잘 생각해 보길 바라네.”
레비스의 입에서 진득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아, 물론 자네가 지면 지는 대로 나는 얻어가는 것이 있으니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레비스의 검은 연기는 부러진 칼 조각에 스며들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네. 내일 결투는 내가 꼭 지켜보도록 하지.”
* * *
티그리스는 테라스 한가운데에 섰다.
티그리스가 4성 기사가 된 지 5개월 정도가 흘렀다.
그동안 티그리스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육체를 단련했다.
그것도 티그리스의 육체를 가장 빠르고 안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오러 연공법인 ‘세포 성장술’을 이용했다.
티그리스는 근육 세포 하나하나에 오러를 주입해 탄력성 있게 만들었고, 오러 친화적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티그리스의 마력 회로는 별빛을 머금은 얼음 정수로 인해 깨끗해지고 굉장히 넓어졌다.
다섯 번째 고리를 만들 준비가 다 되었다.
티그리스는 황제 폐하께 받았던 붉은 마나초를 꺼냈다.
마나초는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식물이다.
마력이 풍부한 지역에서 자라면 자랄수록 잎사귀가 붉게 변하는데, 이 마나초의 잎사귀는 당장에라도 피를 흘릴 듯이 붉었다.
이런 마나초를 섭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생식이다.
저번의 얼음 정수를 먹었을 때처럼 냉기를 내뿜기 위해 월녀의 검무를 출 필요도 없었고, 그냥 마나초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그대로 흡수해 고리를 만들면 되었다.
“후우…….”
티그리스는 숨을 한 번 내쉰 뒤, 붉은 마나초를 한 번에 집어넣었다.
흙내와 함께 아릿한 쓴맛이 입에 가득 퍼져나갔다.
우물우물.
티그리스는 붉은 마나초를 최대한 꼼꼼하게 씹은 뒤 꿀꺽 삼켰다.
티그리스는 중단세를 잡은 뒤 네 오러 고리를 가열 차게 돌렸다.
저번처럼 티그리스의 몸에서 폭죽이 터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미 얼음 정수를 먹었을 때 세맥까지 모조리 뚫렸기 때문이었다.
대신 티그리스의 몸이 급격하게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붉은 마나초는 얼음 정수와 다르게 뜨거운 기운의 마나를 갖고 있었다.
이런 뜨거운 마나를 가진 영약을 흡수할 땐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아이린처럼 신체에 불균형이 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러자 뜨거운 열기가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티그리스는 땀과 숨으로 열기를 모두 배출하고 있었다.
미리 수분 보충도 많이 해둔 터라 도중에 탈진할 우려도 없었다.
티그리스는 오러 고리를 돌다가 도중에 탈출하는 오러들을 한 줄기의 원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원래부터 다섯 개의 고리가 있었던 것처럼 돌았다.
이미 티그리스는 붉은 마나초를 먹기 전부터 5개 고리를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해 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티그리스는 눈을 떴다.
주변엔 샤를로트와 아이린 그리고 리니아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티그리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리를 하나 더 만드신 건가요?”
“그래.”
“우와아아아아아!”
샤를로트는 아이린과 리니아를 콱 껴안고 날뛰었다.
아이린과 리니아도 자신도 모르게 덩달아 뛰었다.
“고리 다섯 개를 만든 건 스승님인데 왜 선배님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냥 기분 좋잖아. 안 그래?”
“……그야 뭐.”
“그럼 솔직하게 좋아하는 게 맞지.”
티그리스는 레니가 건넨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그럼 세 사람은 고리를 만들 준비를 해라.”
리니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희도 지금 만들어요?”
“좋은 영약을 얻었는데, 지금 하는 게 낫겠지. 영약을 이용해 고리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마.”
티그리스는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그럼 최대한 가벼운 옷을 입고 와라. 그리고 수분 섭취도 충분히 하고.”
“예!”
세 사람은 재빨리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3개 고리를 완성했고 리니아는 2개 고리를 완성했다.
* * *
결투 당일.
티그리스와 루카스의 경기는 티그리스가 작년에 토너먼트를 치렀던 검투 경기장에서 치러지기로 했다.
검투 경기장 관중석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본래 이렇게 사람들을 모아놓고 결투를 진행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루카스가 관중들을 모아놓고 결투를 치르자 제안을 했고 티그리스가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일이 이렇게 커진 것이었다.
루카스는 만민이 보는 앞에서 티그리스를 꺾음으로써 실추된 빈스모크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겠다는 생각으로 제안한 것이겠지만, 티그리스는 왜 루카스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인지 알려진 바가 없었다.
레인로버 황녀는 티그리스가 있는 VIP실에 들어갔다.
“티그리스 경.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
레인로버는 티그리스가 걱정돼 죽을 것 같았다.
티그리스가 뛰어난 실력자이고 어제 5성 기사가 되었단 걸 알았지만 그래도 상대가 루카스였다.
루카스는 흑토 지대를 통일한 명장이자 뛰어난 기사다.
루카스는 1성 기사가 되었을 때부터 전장에 나가 6성 기사가 되었을 때까지 전쟁을 밥 먹듯이 해온 실력자였다.
많은 사람이 티그리스를 응원하긴 했지만, 루카스가 이길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레인로버 황녀는 이렇게 티그리스를 잃을 수 없었다.
“제가 루카스를 꺾는 것은 정말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일 겁니다. 이제 막 고리를 5개 단 기사가 30년이 넘게 전장을 굴러온 노장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요? 그러니…….”
“그러나 저는 그 불가능을 꺾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많은 명장에게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똑같이 병사들의 사기라고 답한다.
아무리 이길 수 있는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병사들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면 지게 되어 있고, 병사들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질 전쟁도 이긴다.
그 병사들의 사기를 빠르게 드높일 방법은 하나였다.
전장의 영웅을 만드는 것이었다.
전장의 영웅이 자신의 옆에서 함께 나란히 뛰어가면 그 병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적을 향해 몸을 날렸다.
티그리스는 오늘 루카스를 꺾음으로써, 불가능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저들의 심장에 새겨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선 로타와 아르펨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결투는 그 믿음을 새기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레인로버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인 티그리스의 눈을 보며 말했다.
“티그리스 경.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뭔가를 많이 숨기고 있군요.”
“예전에 바스티얀 학교장님이 왜 저를 교관으로 삼았냐고 묻지 않았습니까?”
“……분명 그때 비밀이라고 하셨죠.”
“그 비밀을 오늘 결투가 끝나면 다 털어놓겠습니다.”
티그리스는 이제 레인로버 황녀에게 모든 것을 알려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티그리스는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스태프를 흘금 보고 말했다.
“베르강 경에게 제 검술을 주의 깊게 봐달라고 해주십시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티그리스는 황녀를 지나쳐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에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귀가 먹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자 루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루카스는 평소에 들고 다니는 지팡이가 아니라, 살짝 검신이 위로 부드럽게 휜 곡도를 들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저 곡도가 무슨 검인지 알고 있었다.
거인의 시대, 흑토를 평정한 네오 왕이 사용했다던 옥토(沃土)의 곡도였다.
티그리스와 루카스는 무기를 뽑지 않고 서로를 쳐다봤다.
루카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역사서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결투가 무엇인지 아는가?”
티그리스는 막힘없이 답했다.
“흑토 지대의 네오 왕과 탈미아 왕의 결투로 알고 있네.”
“잘 아는군. 네오 왕과 탈미아 왕은 병사들과 기사들의 목숨을 아끼기 위해 결투를 나눴지. 이기는 쪽이 모든 영토와 백성들을 다 가지는 것을 조건으로 말이야. 결국 결투는 네오 왕이 이겼네. 네오 왕은 그날의 결투로 탈미아 왕이 갖고 있던 모든 영토를 얻었고 결국 흑토를 통일할 수 있었지. 그렇다면 질문 하나 하지. 왜 네오 왕과 탈미아 왕은 그런 도박에 가까운 결투를 했을까?”
“네오 왕이 탈미아 왕의 성을 제외한 모든 영토를 다 집어삼켰기 때문이지. 탈미아 왕이 네오 왕에게 결투를 신청한 것은 명예로운 죽음과 함께 자신의 후손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었다.”
루카스는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역사를 잘 아는군. 왠지 나는 그날의 결투가 떠오르네.”
루카스는 사방을 둘러봤다. 사방이 적이었다.
황제부터 시작해서 모든 관중이 루카스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루카스는 왠지 그 역사 속 탈미아 왕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일 탈미아 왕이 네오 왕을 죽였다면 탈미아 왕은 네오 왕의 모든 영토를 가질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겠지. 영토는 검으로 통치하는 게 아니라 그 왕의 카리스마와 지혜로 통치하는 것이니까.”
루카스는 옥토의 곡도를 뽑아 들었다.
동시에 티그리스도 샐러맨더의 검을 뽑아 들었다.
“자네가 나를 꺾는다면 지금의 평화로운 흑토를 영영 만들 수 없을 걸세. 흑토의 귀족들은 욕심 많은 이리와 같아서 황제가 검과 회초리를 들고 달려들면 죽일 듯이 싸울 테니까. 그 과정에서 수많은 백성의 피가 다시 흑토에 흩뿌려질 걸세. 자네는 그 죄악을 견딜 수 있나?”
“오히려 자네의 욕심에 백성들이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걸세.”
티그리스는 회귀 전 황국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을 화살받이로 내세운 루카스의 잔인함을 떠올렸다.
상처 입고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로타의 신체’에 넘겨 키메라로 만들어 버린 루카스의 잔혹함을 떠올렸다.
“자네는 그들과 손을 잡아선 안 됐어.”
루카스는 경악했다.
“어떻게……!”
그때, 토드 황제가 입을 열었다.
“결투 전 세 가지 문답을 시행하겠다. 두 사람은 문답에 응하라. 첫째, 무기는 각자 가지고 있는 무기만 사용한다. 동의하나?”
“동의한다.”
“……동의한다.”
“둘은 원만한 대화로 해결할 생각이 있는가?”
““없다.””
“결투는 생사결로 진행한다. 동의하나?”
““동의한다.””
루카스는 티그리스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네놈을 죽이기 전, 네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다 불게 해주마.”
토드 황제가 결투의 시작을 알렸다.
“그럼 시작하라.”
퉁-!
티그리스와 루카스는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루카스는 옥토의 검에 담긴 능력, 정복자의 땅울림을 사용했다.
그러자 경기장이 크게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티그리스의 돌진을 방해했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그 불규칙한 땅울림에서도 규칙을 찾아내 땅을 박찼다.
티그리스의 검이 횡으로 그어졌다.
노르베르드류 제1식 폭포 가르기였다.
티그리스의 검기는 마치 소드 마스터의 검강처럼 단단하고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잘라낼 수 있는 ‘절단’의 심상이 담긴 검기였기 때문이었다.
루카스의 곡도가 종으로 그어졌다.
루카스는 붉은 사냥개 검술 제1식 붉은 이빨이었다.
루카스의 붉은 검기를 머금은 곡도가 티그리스의 검과 부딪혔다.
서걱-!
그러나 강철의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가 잘려 나가는 소리 루카스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고통은 뒤늦게 찾아왔다.
“끄아아악!”
루카스의 옥토의 곡도와 함께 양손이 잘려 나가 있었다.
옥토의 곡도는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티그리스는 루카스의 목에 검을 댔다.
결투의 승패는 너무나 허무하게 지어졌다.
“잠…….”
서걱!
티그리스의 검은 무자비했다.
루카스의 목이 날아가며 땅을 붉은 피로 적셨다.
관중들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방심하지 않았다.
루카스의 잘려 나간 머리가 꿈틀거렸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루카스의 몸뚱이로 날아갔다.
루카스의 머리가 목에 달라붙었다.
-지…… 지금 이게…….
루카스는 혼란스러워 보이는 듯했다.
‘역시…….’
루카스는 레비스에게 불사의 저주를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