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53)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53화
오만한 자의 회귀록
티그리스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린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티그리스는 라칸에게 제일 먼저 10년 회귀했음을 알렸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라칸에게 회귀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알려준 것은 아니었다.
키메라 실험실 위치를 알아낼 때처럼 정말 필요한 순간을 제외하면 거의 미래를 알려준 적이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라칸은 자신의 몸을 지킬 수단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로타와 아르펨의 권속들은 소드 마스터 베르강도 죽이고 7서클의 대마법사 바스티얀과 나달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그들이 라칸을 만약 고위험인물로 설정하고, 라칸을 사로잡아 고문한다면 라칸은 모든 정보를 어쩔 수 없이 다 털어놓을 수 있었다.
물론 그에 대한 대비로 리니아나 제자들에게 주었던 연인 자리 성물을 주었으나, 아직까지도 티그리스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굉장히 염려되었다.
그렇기에 회귀 전에 일어난 모든 일을 낱낱이 밝히는 것은 처음이었다.
티그리스는 차가 식을 때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회귀의 역사를 전달했다.
주로 전달한 내용은 황도 지하 키메라 실험실 사건과 빈스모크 백작 반란 사건이었다.
그 외의 내용은 전달하지 않았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밀림의 황폐화나 길리온 왕국과의 전쟁 등을 설명하려면 엄청난 양의 배경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오늘 종일 얘기해도 부족했다.
오늘 티그리스가 자신이 회귀했다고 밝힌 이유는 레인로버와 베르강에게 대륙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함이지 회귀 전의 일대기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의 설명을 모두 들은 레인로버와 베르강은 잠시 침묵했다.
저들도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레인로버였다.
“……그러니까 티그리스는 앞으로의 미래를 겪고 오셨다는 거네요?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물론 워낙 큰 사건 두 개를 사전에 막았기 때문에 제가 알고 있는 미래와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매우 다를 것입니다.”
“키메라 실험실 사건은 이렇게 커질 일이 아니었고, 빈스모크 백작 가문의 일은 이렇게 축소될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예. 맞습니다.”
베르강은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지금 와서 얘기하는 것이지만 만약 1개월 전… 아니, 2주 전에 이 이야기를 꺼냈다면 난 티그리스 경 자네가 드래곤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조작한 말이라고 생각했을걸세. 고대 문헌에 따르면 드래곤이 가끔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인간들과 함께 섞여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까지 드래곤은 나타난 적이 없었습니다. 오직 드라코레퀴엠 산에 봉인되어 있는 골드 드래곤 ‘아우로므’을 제외하면 말이죠.”
레인로버와 베르강은 매우 놀랐다.
골드 드래곤이 드라코레퀴엠 산에 봉인되어 있다는 정보는 0등급 보안 열람권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알고 있었나? 잠시만 설마 그러면…….”
“예. 맞습니다. 아르펨이 봉인된 골드 드래곤을 깨워 키메라화시켜 조종했습니다. 그 때문에 황궁 보고가 박살이 나서 그 안에 들어 있던 성물들과 아티팩트들이 모조리 소멸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을 모두 설명하자면 기니…….”
티그리스는 서류 가방에서 붉은 색 노트 10권과 푸른색 노트 15권을 꺼냈다.
붉은색 노트엔 ‘회귀록’이라고 적혀 있었고 푸른색 노트엔 ‘인명록’이라고 적혀 있었다.
“제가 작성한 회귀록을 읽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티그리스는 회귀한 시점부터 차근히 기억을 되짚어가며 ‘회귀록’을 작성했다.
크고 작은 사건에 상관없이 일단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일을 적었다.
당시 제국 대학의 검술 교관이었던 모리타와 결투를 한 일, 티그리스가 20살이란 어린 나이에 3성 기사가 된 일, 라칸이 서열전에서 연인 자리 성물을 발견해 성좌의 시련에 갇힌 일 등 다소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빈스모크 백작의 반란, 길리온 왕국의 선전포고, 밀림의 황폐화, 바스티얀 학교장 사망, 베르강 사망, 포그 우드 점령 등 굵직한 일까지 남김없이 적었다.
티그리스는 이 회귀록에 누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식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내용을 적지 않았다.
그저 최대한 담백하게 있는 사실 그대로만을 적었다.
대신 티그리스는 다른 노트에 인물 평가를 적었다.
이것은 티그리스를 포함한 주요 인물들의 행적을 바탕으로 티그리스가 개인적으로 평가한 내용이었다.
대륙 내 최고의 적 우노와 로타 그리고 아르펨을 포함해 레인로버, 베르강 등 황국 내 도움이 될 만한 인물들의 평가를 하나하나 낱낱이 적었다.
해당 인물의 행적과 말투, 성격, 약점과 단점 그리고 장점까지 꼼꼼하게 작성했다.
레인로버와 베르강은 두 권의 노트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 정확히 말하자면 티그리스가 겪고 온 과거이자 자신들의 미래가 모두 이 티그리스의 회고록에 적혀 있었다.
이 회고록의 가치는 세상 그 어떤 문서보다 높았다.
보통 회고록이라고 하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어내는 것이지만, 이 회고록은 미래가 적힌 예언서나 다름이 없으니까.
“저희 둘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이 안에 적혀 있나요?”
“최후의 전쟁에서 아르펨과 검을 맞대느라 레인로버 황녀님의 죽음은 제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베르강 님의 죽음은 적혀 있습니다.”
티그리스는 회고록 4권을 뽑아 베르강에게 건넸다.
“원래대로라면 3년 후, 한창 길리온 왕국과의 전쟁과 빈스모크 백작의 반란을 진압하던 중에 베르강 경은 나태를 깎아내는 자 오슬로와 로타의 뿔 슈비츠, 로타의 입 레비스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셨습니다.”
베르강은 자신의 죽음이 적힌 회고록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천천히 읽어나갔다.
베르강의 표정은 읽기 굉장히 힘들었다. 울 것 같기도 하고 분노한 것 같기도 했고 덤덤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말을 걸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한 분위기가 흘렀기에 티그리스와 레인로버는 입을 열지 않았다.
5분 후, 베르강은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렇군. 역시 내 아내와 딸도 죽었군.”
베르강 사망 사건은 로타의 입 레비스와 로타의 뿔 슈비츠가 베르강의 아내와 딸을 납치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베르강의 딸과 아내를 지키던 고든과 황금 기사들은 레비스에게 살해당했다.
베르강은 함정인 줄 알면서도 아내와 딸이 있는 빈스모크 백작령 구석에 있는 한 오두막으로 홀로 향했다.
그리고 오슬로와 싸우다가 죽었다.
황국을 지키는 검이자 황금 기사단장이라면 하면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는 황국의 기사가 아닌 아내이자 한 딸아이의 아버지로 죽기를 선택한 것이다.
베르강의 잔잔한 분노에 테이블이 떨렸다.
결국 찻잔이 엎어지자 베르강은 감정을 추슬렀다.
“……죄송합니다. 황녀 전하.”
“아녜요. 괜찮아요. 베르강.”
회고록과 인명록이 젖지 않도록 레인로버는 마법을 이용해 찻물을 땅에 버렸다.
베르강은 회고록이 구겨지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히 덮은 뒤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티그리스 경.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을 왜 저희에게 먼저 알려주신 것인지 알 수 없군요. 이 회고록은 황제 폐하께 먼저 보여 드려야 하는 게 맞지 않나요?”
“레인로버 황녀님께선 이미 제 성향을 파악하셨겠지만, 전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말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말하는 재주가 없습니다.”
그건 레인로버도 알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좋게 말하면 꾸밈이 없는 사람이고, 나쁘게 말한다면 굉장히 직설적인 사람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이 회고록을 읽으시면 분명 제게 한 가지 질문을 하실 겁니다. 해리 황태자는 이 환란을 극복할 수 있는 황제였는가?”
레인로버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잠시만, 그 말은 설마 황제 폐하께서…….”
“빈스모크 백작의 반란이 일어나고 2개월 후, 레비스의 저주가 든 포도주를 드시고 승하하십니다.”
당시 토드 황제는 나이가 55세로 아직 정정했다.
그러나 레비스가 준 ‘노화의 저주’가 든 포도주를 마시자 1개월도 채 되지 않아, 늙어 죽고 말았다.
“그럼 오라버니…… 아니, 해리 황태자께서 바로 황좌에 오르신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난세를 헤쳐 나가시기엔 많이 부족하셨습니다.”
티그리스는 자신의 말이 무례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솔직하게 답했다.
어차피 인명록에 해리 황자에 대한 티그리스의 생각을 모두 집어넣었기 때문이었다.
해리 황태자는 난세를 헤쳐 나갈 카리스마 있는 군주의 재목이 아니었다.
토드 황제가 갑작스레 죽고 황제로 등극했을 때, 해리 황태자는 어려워진 황국의 실정에 마치 거북이가 머리를 숨긴 것처럼 숨을 죽였다.
길리온 왕국이 공격하고 빈스모크 백작이 반격을 감행해도 줄 것은 준다는 생각으로 끝없이 양보했다.
그러자 지방 영주들은 소극적인 태도의 황제를 믿지 못해 따로 연합하여 길리온 왕국과 빈스모크 가문의 공격에 방어하거나 합류하기도 했다.
게다가 진심으로 황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신하들이 황제의 곁에 있었다면 괜찮았겠지만, 케일 자작 같은 로타와 아르펨에게 포섭된 가신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황국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물론 해리 황태자가 겨우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최고 존엄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레인로버 황녀는 해리 황태자보다 훨씬 젊었음에도, 전장을 직접 누비며 황국을 하나로 규합하고 카리스마 있게 군대를 지휘했다.
난세의 영웅이란 말이 황녀를 보고 말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황녀는 뛰어난 군주이자 장군으로 활약했다.
“전 만일 토드 황제 폐하께서 승하하신다면, 차기 황제의 자리를 해리 황태자님이 아닌 레인로버 황녀님이 앉으셔야 하는 게 맞다고 말씀드릴 겁니다.”
“그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이 회고록과 인명록은 회귀 전의 티그리스가 기억한 내용을 바탕으로 적은 것이다.
티그리스는 회귀 전의 자신이 얼마나 오만하고 타인의 흠을 잡고 폄훼하길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물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인명록 1권은 통째로 저 스스로 저를 평가한 내용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얼마나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편협한 인물인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만하고 편협한 제가 남을 기억할 때, 장점을 더 많이 기억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단점을 더 많이 기억할 것 같습니까?”
베르강은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티그리스 경 정도의 천재라면 남을 더 다양한 시각으로 보지 않겠나? 그러니 우리의 평가보단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은데?”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검술 실력이 뛰어난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됨됨이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전 남을 기억할 때 단점을 더욱 부풀려서 기억하고 남의 장점은 축소해 기억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기록의 대부분은 그 사람의 장점보단 단점이 더 많이 적혀 있습니다.”
티그리스는 레인로버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이것을 레인로버 황녀님께 제일 먼저 가져온 것입니다.”
인명록엔 베르강을 포함해서 해리 황태자, 에이미로 황자, 레인로버 황녀, 현자 바스티얀, 프리하르덴 백작 등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인물들의 행적과 개인적인 평가가 낱낱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앞서 설명했다시피 장점보단 단점이 더 많이 적혀 있었다.
그 말은 굉장히 유능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황제 폐하께 필요 없는 인물로 정보가 왜곡되어 전달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레인로버는 티그리스와 성향이 거의 정반대다.
상대방의 단점을 오히려 역이용하거나 장점을 발굴해 내거나 극대화할 줄 알았다.
“레인로버 황녀님께선 이 두 종류의 기록을 보시고, 제가 적은 인명록에 아니다 싶으신 것은 삭제해 주시고 추가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추가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첨삭을 해달라는 말입니까? 그런 걸 제가 어떻게…….”
“황녀님은 제가 봐온 사람 중에 제일 사람을 잘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비록 기록물뿐이지만, 황녀님이라면 제가 보지 못한 훌륭한 인재들을 발굴해 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레인로버는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며 땅을 내려다봤다.
과연 자신이 이런 막중한 일을 다 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하는 것이었다.
레인로버는 생각을 마쳤는지 입을 열었다.
“티그리스 경,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하문하십시오. 전하.”
“티그리스 경은 회귀 전의 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티그리스 경의 입으로 직접 들어보고 싶습니다.”
“제일 앞에 황녀님을 묘사한 문장이 있습니다. 황도 빅토리에와도 맞바꿀 수 없는 유능한 대장군.”
황녀의 능력은 소환 마법사로서의 재능도 탁월했지만, 인적자원 관리도 탁월했다.
사람이 워낙 많이 죽어 나간 탓에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대장군이란 직책을 받긴 했지만, 그녀의 진가는 인사관리에 있었다.
장군의 재목을 뽑아 장군으로 등용시키고, 티그리스같이 무력이 뛰어난 인재를 별도로 편제를 짜서 개인 임무를 맡기는 등 적절한 인적자원 관리 및 배치로 제법 많은 승리를 거뒀다.
“……그 정도로 저를 신뢰하시는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레인로버의 눈빛이 바뀌었다.
뭔가 다짐을 한 표정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를 잘 믿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과연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레인로버는 티그리스의 눈을 바라봤다. 티그리스의 눈은 올곧고 선했다.
“그러나 제가 믿는 티그리스 경이 저를 높이 평가하시니 저도 저를 한번 믿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황녀 전하.”
레인로버는 총 25권의 노트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이 많은 양을 첨삭하려면 동아리는커녕 제국 대학에 갈 수도 없겠네요. 이번 연도는 유급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과중한 업무를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일의 경중을 아는 것뿐입니다. 뭐…… 그렇게 미안하시면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하나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황녀 전하의 생일 때 특별한 선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레인로버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요? 저 기대해도 되나요?”
“예. 기대하셔도 됩니다.”
“이거 기대하라니까 엄청 두근거리네요. 저도 열심히 해볼게요.”
베르강은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멀리서 바라봤을 때 둘은 굉장히 잘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신과 레이첼처럼.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의문점이 베르강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나저나 황녀 전하만 보여 드려도 될 텐데 왜 내게도 보여준 건가?”
“베르강 경이 특별히 조심해야 할 인물과 황금 기사로 등용해야 할 인물들의 목록과 특징이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후자 내용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하지만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인물은 누구지?”
“나태를 깎아내는 자 오슬로란 호문쿨루스입니다.”
“……나를 죽였다던 놈을 말하는 건가?”
“예. 맞습니다.”
나태를 깎아내는 자 오슬로.
그는 티그리스가 개인적으로 로타의 입 레비스만큼이나 경계하는 인물이었다.
모든 로타와 아르펨의 권속들은 세상의 규칙과 어긋나는 권능을 하나씩 받게 된다.
슈비츠의 경우에는 자신의 몸과 분신의 몸에 연금술과 흑마법으로 만들어낸 뿔을 자유자재로 뽑아낼 수 있는 뿔의 권능을, 레비스에겐 복잡한 저주의 절차를 간소화시킬 수 있는 ‘일방적인 약속’이라는 권능을 줬다.
이처럼 나태를 깎아내는 자 오슬로에겐 ‘죽음의 학습’이라는 권능이 있다.
오슬로가 상대방에게 죽기 전 한 가지 이상을 배우고 죽으면 부활할 수 있는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오슬로는 베르강과 보름간 싸워 베르강의 모든 것을 배웠고, 심지어 베르강의 ‘자연’의 심상 또한 그대로 배워갔다.
“만약 오슬로를 만나게 된다면 죽이지 마시고 제압하셔야 합니다.”
“제압한다는 게 무슨 소리지?”
“예를 들어 녀석의 사지를 자른 뒤 단면을 불로 지져 과다출혈로 죽지 않게 만들면 됩니다.”
너무나도 잔혹한 예시에 베르강은 물론이고 황녀도 살짝 움찔했다.
“……그래야 죽음의 학습이란 권능을 발현시킬 수 없다는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 후에 신비의 땅에 던져서 버리든지 봉인을 해야 합니다. 제 경우에는 오슬로가 제 검술을 배우기 전에 기습하여 연속으로 두 번 죽였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운이 많이 따랐습니다.”
만약 오슬로가 티그리스의 심상마저도 배웠다면, 티그리스는 죽었을 것이었다.
베르강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명심하지.”
정원에 벌써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혹시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부르십시오. 언제든지 오겠습니다.”
“티그리스 경 잠시만요.”
레인로버는 일어나 티그리스에게 다가왔다.
레인로버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보여 티그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폭-
레인로버는 티그리스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레인로버의 손이 티그리스의 허리 위에 살짝 얹혔다.
“……그동안 정말 외로우셨죠?”
레인로버는 티그리스가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티그리스가 회귀함으로써 원래 살아야 할 목숨이 죽기도 하고, 다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다치기도 했다.
그리고 구할 수 있는 목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할 수 없다는 죄책감에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그것을 홀로 7개월이 넘게 참고 견디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전 죗값을 받는 겁니다.”
오만함을 버린 티그리스는 회귀 전처럼 뻔뻔하지 못했다.
모리타의 양팔을 베어냈을 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내심 생각했지만, 아직도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고민했다.
키메라 실험실에서 죽어 나가는 실험체들 대신 시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기다렸다가 가장 확실하게 키메라 실험실을 처리할 수 있는 날을 잡아 처리했다.
구한 목숨은 많지만 그렇다고 잃은 목숨도 적다고 할 수 없었다.
오직 티그리스의 결정에 사람들이 죽고 살았다.
그 짐이 무거워 하루는 검을 휘두르지 않고 가만히 명상에 잠기곤 했었다.
그러니 티그리스는 이 무거운 중압감을 회귀 전 자신이 저지른 오만함의 벌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젠 외롭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가 도와드릴 테니까요. 언제나 힘들면 저나 베르강을 찾아와 말씀해 주세요.”
티그리스는 기사 서임을 받았을 때, 리니아가 던졌던 질문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그럼…… 오라버니는 정말 힘드실 때 누구에게 기대십니까?
그때, 전우일 것이라고 모호하게 답을 했지만, 이제야 제대로 된 답을 찾은 것만 같았다.
전우가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