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56)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56화
서열전(3)
라칸과 아이린의 조합은 정말 말도 안 되게 좋았다.
라칸은 탐지견 수준으로 몬스터들을 잘 찾아냈고, 아이린은 혼자서 고블린 부락 하나를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그 때문에 버클이 붉게 물들 무렵 몬스터 귀를 담아두는 가방이 거의 다 찼다.
“캠프에 한번 다녀와야겠는데? 귀가 가득 쌓였어.”
몬스터 귀를 캠프로 가져가서 교관님께 제출해야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구조라서 가방에 귀가 쌓이면 제출해야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아이린은 잠시 생각했다.
지금 이만한 양을 제출하면 보나 마나 오늘 1등 팀은 아이린과 라칸의 차지가 될 확률이 높았다.
문제는 다음 날까지 1등이 된다면 라칸과 아이린은 규칙에 따라 3일 차에 떨어져야만 했다.
그렇다고 귀를 계속 모으고 다니자니, 밤이 되면 코가 좋은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끌 수 있었다.
아이린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약한 몬스터들이 몰려올 테지만, 대신 밤잠을 설칠 수 있었다.
서열전이 5일이나 이뤄지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은 굉장히 중요했다.
‘……놓치기 싫은데.’
라칸은 이번 서열전의 킹 메이커임이 분명했다.
만약 라칸이 샤를로트나 아니면 적당히 실력 좋은 사람과 팀을 이루게 되면 점수가 뒤집힐 수 있었다.
“아이린 무슨 걱정 있어?”
“음?”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이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라칸을 놓치기 싫은데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하자니 조금 부끄러운 것이다.
라칸은 아이린의 노예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까지 넙죽 엎드렸고, 아이린은 못 이기는 척 라칸을 팀으로 받아주었다.
그런데 이제 아이린이 더 아쉬워진 입장이 되었다.
라칸에게 팀을 떠나지 말라고 붙잡기엔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아이린은 라칸을 쳐다봤다.
라칸은 정말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아이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린의 마음을 계속 속이기엔 너무 양심에 찔렸다.
아이린은 자존심을 굽히고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이대로 가면 너랑 내가 다음 날까지 1등을 할 것 같아서.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 둘 갈라져야 하잖아.”
아이린은 라칸의 표정을 흘금 봤다.
라칸은 별생각이 없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난 또 뭐라고. 그거라면 쉬운 해결 방법이 있지.”
“해결 방법이 있다고?”
“캠프에서 필요한 물품을 포인트로 왕창 사버리면 되잖아.”
포인트는 단순한 서열전의 등수를 가리는 기준뿐만이 아니라 화폐로도 사용되었다.
물, 식량, 고급 텐트, 몬스터 퇴치용 향수, 벌레 퇴치 향수, 경량 가방, 옷 등 다양한 물건을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었다.
“어차피 앞으로도 포인트는 많이 얻을 테니까 이번 서열전을 부유하게 진행하면 되지. 그리고 네 컨디션 조절도 해야 하니까.”
“내 컨디션?”
“나야 그냥 짐 들고 몬스터 추적하는 것밖에 더 했어? 힘쓰는 일은 네가 다 했지. 앞으로 참가자들과 결투할 때도 네가 거의 다 싸워야 할 텐데, 네 몸 상태가 나빠지면 나도 곤란해져. 그러니 네 몸 관리 차원에서라도 포인트를 사용하는 게 맞아.”
라칸은 귀가 든 가방의 입구를 조여서 짐 가방에 고정하곤 말했다.
“그럼 캠프로 돌아가자. 그나저나 교관님들 눈이 휘둥그레지겠는데? 아마 지금 이 정도 양을 모아 온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을 거야.”
“……어. 그러겠네.”
“그럼 가자.”
아이린은 앞서 걸어가는 라칸을 잠깐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정말로 순수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능구렁이가 머릿속에 찬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은 내가 더 아쉬운 게 맞으니까.’
아이린은 라칸의 뒤를 쫓았다.
라칸은 뒤따라오는 아이린을 흘금 바라보고 씨익 웃었다.
‘한 4일 뒤에 은근슬쩍 웃통을 벗으면 되겠군.’
라칸이 바보도 아니고, 아이린이 자신을 아까워한다는 건 진작 눈치챘다.
아쉬워하는 마음을 계속 부채질하다 보면 웃통을 벗었을 때, 아이린이 그냥 넘어가 줄지도 몰랐다.
물론 그냥 벗으면 망키처럼 조각날 수 있으니까, 구덩이에 빠지든가 아니면 옷 갈아입는다는 핑계로 웃통을 벗으면 될 것이다.
라칸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 * *
띠-띠-띠-
라칸의 머리맡에 놓인 알람이 울렸다.
새벽 6시로 맞춰놓은 알람이 울린 것이었다.
라칸은 재빠르게 일어나 알람을 끄고 마석으로 켜지는 소형 랜턴을 켰다.
그러자 굉장히 안락한 실내가 드러났다.
군용 침대 두 개, 폭신한 침낭 두 개, 마석으로 열을 내뿜는 소형 난로 하나, 심지어 아로마 향초에 습기 제거기까지 있었다.
죄다 포인트로 구매한 것이었다.
라칸은 반사적으로 소형 난로 위에 올려져 있는 따뜻한 물을 머그잔에 담아 아이린에게 건넸다.
“아이린 잘 잤어?”
“……어. 그런데 진짜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
“아냐. 컨디션 조절해야지. 오늘은 뭐 먹을래? 육포도 있고 3형 전투 식량도 있고 빵도 있는데.”
“……3형으로 먹을게.”
“잠시만 기다려 데워 올게.”
라칸은 첫날 아이린에게 말한 대로 서포터 역할을 충실히 했다.
아이린의 짐을 대신 들어주는 것은 기본이고 요리, 탐색, 숙소 정리 등 전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다 했다.
게다가 2인 팀으로서 굉장히 궁합이 잘 맞는 기사와 마법사 조합이라서 전투 시에도 꽤 많은 도움을 줬다.
놀들을 추격할 때, 윈드 마법으로 체취를 감추게 만든다거나.
적 팀에 궁수나 마법사가 있을 때, 마나 배리어 마법을 걸어줘서 접근하기 편하게 해준다거나.
플래시 마법으로 적들의 시야를 순간 잃게 만드는 등 갖가지 도움을 주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케어해 줄 것이라곤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아이린은 라칸에게 굉장히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린은 라칸과 아이린의 물통 그리고 대검을 들고 일어났다.
“나 물 좀 떠 올게.”
“어. 조심히 다녀와.”
아이린은 임시 숙소, 정확히 말하자면 놀들이 사용하던 동굴 밖을 나왔다.
어느새 아침이 밝았는지 산새가 울고 있었다.
동굴 밖에 세워둔 몬스터 퇴치 향초 세 개와 벌레 퇴치 향초 다섯 개가 거의 다 타들어 가고 있었다.
아이린은 서열전을 처음 겪어보는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호화스럽게 서열전을 치르는 경우는 자신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린은 하얀 재를 휘날리는 향초를 치우고 근처에 있는 작은 시냇가로 향했다.
아이린의 기감에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린은 수통에 물을 담고 세수를 했다.
차가운 물이 얼굴을 때리자 정신이 바짝 드는 기분이었다.
‘이제 돌아가야지.’
아이린은 다 채워진 수통과 대검을 들고 일어났다. 그때, 뭔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말은 못 하겠지만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평소에 봐오던 숲인데 굉장히 이질적인 기분이랄까?
고블린이라도 숨어 있나 싶어 감지계 오러 운용술 ‘마력 탐지’를 더 넓게 사용해 봤지만 걸리는 게 없었다.
‘……정신이 날카로워진 모양이야.’
하긴 이제 어느덧 3일 차다.
서열전 중반부를 넘어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자신도 모르게 날이 선 것일 수 있었다.
아이린은 동굴로 돌아왔다.
어느새 라칸은 식사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어서 와 앉아. 식겠다.”
“……그래. 고마워.”
라칸은 아이린이 전투식량을 오물오물 먹는 걸 지켜봤다.
그 모습만 봐도 뭔가 마음속이 충만해지는 기분이었다.
뭔가 길고양이와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처음엔 라칸을 굉장히 경계했지만, 밥도 주고 물도 주며 정성을 다해 친해지려고 노력하다 보니 바로 옆에 와도 도망치지 않았던 길고양이를 봤을 때 느낀 그 기분이었다.
‘오늘이 각인가?’
이제 은근슬쩍 웃통을 벗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들 무렵, 아이린이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포인트를 바짝 모아야 할 것 같아.”
“응? 아, 그렇네. 오늘 3일 차니까.”
샤를로트는 작년에 서열전 1등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아이린과 라칸처럼 포인트를 숨겼다.
아마 마지막 5일 차까지 숨겼다가 몬스터들의 귀와 참가자들에게서 뺏은 라이프 코인을 한 번에 제출할 생각인 듯했다.
“그래도 샤를로트 선배가 우리만큼 많이 모았을까?”
어제까지 모은 참가자들과 결투를 해서 얻은 라이프 코인은 무려 46개.
개당 20점이었으니 포인트로 따지면 920포인트였다.
그리고 등록한 포인트는 432포인트였다.
그럼 총합은 1,352포인트.
작년 샤를로트가 서열전에서 1등을 했을 때 모은 포인트가 1,531점이었으니 겨우 200점 차밖에 나지 않았다.
그런데 포인트를 숨기기를 라칸과 아이린만 하는 게 아닌 듯, 전체적으로 포인트 양이 적었다.
현재 등록된 포인트는 432점인데 1등인 샤를로트 팀과 35점 차이밖에 나지 않아 현재 2등이었다.
야밤에 몬스터 귀를 들고 다닐 수 없다는 점 때문에 포인트가 어쩔 수 없이 모였다.
그렇다고 계속 포인트를 쓰자니 1등을 놓칠 것 같았기에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서로 1등과 2등을 엎치락뒤치락하며 경쟁하고 있었다.
“선배는 이번까지 포함하면 서열전을 3번을 치러봤고 나랑 같은 고리를 3개 갖고 있어. 이번 서열전에서 무조건 1,500점 이상 모을 거야. 아마 2,000점… 아니, 3,000점 이상 모으겠지. 우리도 그 이상 모을 생각을 해야 해.”
“……3,000점이나? 우리가 3,000점을 모으려면 앞으로 82명 정도 더 잡아야 한다는 건데 가능할까?”
“해야지. 안 그러면 1등을 놓칠 수도 있어.”
아이린은 빠르게 숟가락을 놀렸다.
“빨리 먹고 출발하자. 오늘부터 몬스터든 뭐든 가리지 않고 일단 보이는 대로 사냥하자.”
“오케이.”
* * *
티그리스는 이번 서열전의 보안 담당관으로서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수련의 숲 순찰을 매일 아침 돌았다.
지금까지 특이 사항은 없었지만, 로타와 아르펨의 권속들이 티그리스를 위협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 주의를 기울여서 나쁠 건 없었다.
“이야~ 어젯밤에 부슬비가 내려서 그런지 무지개가 떴네요.”
티그리스의 뒤를 따라오던 결계 마법 교관 테리마는 티그리스와 어떻게든 말을 섞어보고 싶어 없는 무지개까지 만들어 말을 걸었다.
“그렇소?”
“네. 저기 좀 보십시오. 예쁘지 않습니까?”
“그것보다 결계 마법이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결계는 전혀 이상이 없습니다! 저번 주에 제가 직접 확인해 봤는데 문제없었습니다.”
티그리스와 테리마는 현재 수련의 숲 외곽을 돌고 있었다.
수련의 숲의 외곽은 2.5m 높이 철책으로 만들어졌고, 혹시나 외부 몬스터들이 철책을 부수고 들어올 것을 대비해 5m 높이 마력 결계 마법이 걸려 있었다.
“결계 마법 강도는 오크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것 맞소?”
“예. 맞습니다. 물론 트롤이나 오우거 같은 놈들이 들어오려고 난리를 치면 뚫리긴 할 테지만…….”
테리마는 손목에 채워져 있는 팔찌 아티팩트를 가리켰다.
“이 아티팩트에 바로 반응이 옵니다. 어디 철책이 뚫렸으니 바로 가보라고 말입니다.”
“……흠.”
“정말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어젯밤까지 잠잠했으니까요. 그것보다 두 제자분을 굉장히 잘 키우신 것 같습니다.”
테리마는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저희가 가상으로 포인트 집계를 해봤는데, 아이린은 약 1,500점 정도 모았고 샤를로트는 1,600점 정도 모았던데요? 샤를로트는 이미 제국 대학 역사상 최고 점수를 모은 겁니다. 이야~ 대단하지 않습니까?”
테리마는 티그리스의 대꾸가 없어도 알아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했다.
티그리스는 테리마가 입을 막는다고 해도 막아질 사람이 아닐 것 같았기에 그냥 가만히 듣기로 했다.
“그런데 서로 라이프 코인이나 몬스터 귀를 제출하지 않아서, 1등 팀이 독식하지 못하게 만들어진 7번 규칙이 쓸모가 없어지게 됐습니다. 원래는 이 정도 꼼수는 학생들의 레벨이 어느 정도 맞아서 넘어가 주는 편이었는데, 샤를로트와 아이린처럼 엄청난 괴물들이 나올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티그리스도 그 이야기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네이션 학과장은 작년 서열전 1등을 한 사람은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몬스터 귀와 라이프 코인을 36시간 내로 제출하지 않으면 탈락을 시키는 규칙을 새로 도입할 예정이었다.
“아, 물론 티그리스 경과 제자들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잠깐 말을 멈추시오.”
“……네?”
티그리스는 뭔가 기묘한 느낌에 발을 멈춰 섰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결계나 철책엔 문제가 없는데?”
티그리스는 주변을 훑었다.
숲과 나무 그리고 풀들만이 가득했다.
티그리스는 울창한 나무 틈 사이로 햇빛을 받는 풀 하나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똑같은 종의 풀을 확인했다.
미묘하게 두 풀의 색감이 달랐다.
햇빛을 받는 쪽의 색깔이 더 진했다.
혹시 착각인가 싶어 풀을 기울여 그림자 안으로 집어넣어 봤지만 역시나 햇빛을 받는 쪽의 풀이 확연하게 색이 진했다.
티그리스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나무를 확인했다. 왼쪽 나무와 오른쪽 나무 똑같은 상수리나무였지만 왼쪽 나무의 나뭇잎이 색이 진했다.
그리고 왼쪽 나무의 키가 다른 나무들보다 유독 컸다.
티그리스의 머리에 경종이 울렸다.
“혹시 땅 밑으로도 결계나 철책이 박혀 있습니까?”
“네? 어……. 철책은 1m 정도 파고들어 있긴 한데 결계는 없습니다.”
“그럼 땅 밑으로 두더지나 자이언트 웜 같은 것이 지나가도 모른다는 겁니까?”
“자이언트 웜은 땅을 아예 헤집고 다니니까 철책이 비틀립니다. 그러면 바로 알람이 울리죠.”
“숲지기의 덩굴은요?”
“숲지기는…… 어?”
테리마는 티그리스가 본 게 무엇인지 눈치챘다.
티그리스는 숲지기가 지나간 길을 본 것이었다.
숲지기는 4등급 식물형 몬스터다.
숲지기는 굉장히 특이한 방법으로 이동을 하는데, 두 다리로 걷는 것이 아니라 나무와 풀의 뿌리와 줄기를 타고 움직인다.
그리고 숲지기라는 이름처럼 자신의 본체가 이동한 나무와 풀을 급속도로 성장시켜 주는데, 그 과정에서 이파리의 색이 더 진해지거나 나무가 더 커졌다.
평소엔 인간을 마주쳐도 그냥 야생동물이나 몬스터들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지만, 인간이 나무를 부수거나 풀을 뽑아 없애는 걸 보면 미쳐 발광하기 시작한다.
주변 나무들과 풀잎을 급속도로 성장시켜 으깨 죽이거나, 손에서 뻗어 나온 덩굴을 입과 눈, 코에 박아넣은 뒤 내부를 헤집어 죽인다.
게다가 피부의 강도는 4성급 기사의 검기가 아니면 베어내기 힘들 정도로 단단하기 때문에, 오크나 범치보다 위 단계인 4등급 몬스터로 등재되어 있었다.
“숲지기는 원래 비가 내려야 움직이는……. 아, 세상에.”
“당장 서열전을 중지하고 학생들을 대피시키십시오. 전 숲지기들을 사냥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알리겠습니다.”
테리마는 곧바로 통신 수정구를 들어 통신을 시작했고, 티그리스는 곧바로 숲지기가 지나간 길을 쫓았다.
숲지기는 남부 지역 영주들에게 공포나 다름이 없는 몬스터였다.
숲지기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면 최소 반경 100m 일대의 나무들이 숲지기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최소 두 자릿수 사상자가 났기 때문이었다.
‘최소 3마리…….’
3마리가 동시에 난동을 부리면 세 자릿수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었다.
티그리스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왜 하필 이 시기에 숲지기가 나타났는가?
이전 생을 떠올려 봤을 때, 이번 서열전에서 기억나는 건 라칸이 연인 자리 성물을 만지고 혼수상태에 빠진 일밖에 없다.
그런데 연인 자리 성물은 티그리스가 가져왔으니 그런 일은 일어날 리가 없었다.
‘단순한 우연인가?’
계엄령 때문에 서열전이 다소 늦게 시작한 감이 있었다.
보통 5월 첫째 주나 4월 말에 서열전을 하지만 이번 서열전은 5월 셋째 주에 시작되었다.
그래서 숲지기들이 많이 활동하는 늦봄부터 초가을의 시기와 살짝 맞물렸다.
티그리스는 복잡한 머리를 정리했다.
원인 분석은 나중에 하고 일단 이 사태부터 정리하는 게 옳았다.
일단, 숲지기들을 무작정 쫓아가는 것은 무리다.
흔적으로 보아 최소 3마리가 움직였는데, 반면 티그리스의 몸은 하나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숲지기를 티그리스 쪽으로 유도한다.
티그리스는 검을 뽑아 옆에 있는 나무를 베었다.
쿵! 쿵! 쿵! 쿵!
깔끔하게 잘려 나간 아름드리나무가 바로 옆에 있는 나무를 치면서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우어어어어어어!
그러자 낮고 긴 울음소리가 정면에서 울려 퍼졌다. 마치 심해 속 고래가 우는 것 같았다.
저 멀리 땅이 들썩이는 게 보였다.
우득!
3m 높이에 온몸이 검갈색의 단단한 나무껍질로 뒤덮인 트롤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저것이 멸지의 마왕이 드루이드와 트롤을 키메라 합성하여 만들어낸 숲의 공포, 숲지기였다.
-우어어어어어!
숲지기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나무가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하더니 티그리스를 덮쳤다.
티그리스는 그 나무들을 단번에 베어내며 전진했다.
숲지기는 땅에 손을 박아 넣었다. 그러자 숲지기의 손에서 뻗어 나온 덩굴이 마치 뱀처럼 티그리스를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티그리스의 검기 앞에선 저 단단한 넝쿨도 무용지물이었다.
이윽고 숲지기의 앞에 티그리스가 당도했다.
은빛 호선이 숲지기의 가슴께를 갈랐다.
숲지기는 트롤의 키메라형이기 때문에 목을 자르면 몇 분간 의식이 없는 채로 주변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니 트롤의 약점이자 생명의 원천인 심장을 갈라 죽이는 게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우어어어…….
숲지기는 녹색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녹색 피가 닿은 곳엔 이끼들과 버섯, 작은 풀들이 자라 주변을 뒤덮었다.
티그리스는 주변을 훑었다.
티그리스가 최대한 간결하게 죽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반경 50m 주변이 완전 난장판이 되었다.
티그리스는 연인 자리의 목걸이를 확인했다.
아직 빛이 나지 않았다.
그 말은 샤를로트나 아이린 그리고 라칸이 아직 위험하지 않다는 소리였다.
위험한 사람은 셋뿐만이 아니다.
다른 학생들도 위험했다.
‘빨리 찾아야겠군.’
티그리스는 발에 힘을 더욱더 주며 다른 숲지기들의 흔적을 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