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58)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58화
가드 포인트
교관들과 용병들을 풀어 확인한 결과 수련의 숲 내부엔 더 이상 숲지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서열전을 끝내고 모두 짐을 싸서 복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서열전을 치를 분위기도 아니었고, 숲지기가 왜 수련의 숲 내부로 들어왔는지 면밀한 조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린과 라칸도 개인 짐과 포인트로 구매한 물품들을 분리하고 있을 무렵, 한 교관이 찾아왔다.
포인트 계산을 담당하던 교관이었다.
“아이린, 라칸.”
“예. 교관님.”
“몬스터 귀나 라이프 코인이 있으면 바로 제출해라.”
“아.”
라칸은 바로 허리춤에서 코인 주머니를 풀어 건넸다.
“……이게 전부 라이프 코인인가?”
“네. 맞습니다. 교관님.”
라칸이 건넨 코인 주머니는 굉장히 묵직했다.
이걸 허리춤에 메고 달리다가 덜렁거리는 코인 주머니에 맞아 허벅지와 등이 퍼렇게 멍이 들 정도였다.
“교관님. 혹시 이번 서열전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서열전 순위를 말하는 거냐?”
“네.”
“오늘까지 얻은 포인트를 바탕으로 순위가 매겨질 거다.”
과거에도 서열전이 중단되는 일은 몇 번 있었다.
지금처럼 위험한 몬스터가 난입한 일도 있었고, 버클에 인챈트된 이중 배리어 마법이 작동되지 않아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렇다고 또 날을 잡아 서열전을 치르기엔 금전적인 문제도 있고 교육 커리큘럼도 꼬이다 보니 재개되지 않았다.
그래서 서열전이 절반 이상 진행되면 포인트를 계산하여 끝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물론 서열전 참가자들 간 밸런스 문제도 있었다.
이번 서열전은 아이린과 샤를로트의 1위 쟁탈전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참가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서열전을 치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샤를로트와 아이린에게서 살아남기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교관들에게 하소연했다.
그래서 이번 서열전에 아이린을 1등으로 만들어 버리고, 새로운 서열전 규칙에 따라 샤를로트와 아이린이 다음 해 서열전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린은 교관님에게 물었다.
“혹시 샤를로트 선배님은 라이프 코인을 찾으셨다고 하셨나요?”
“아니, 못 찾았다. 교관들과 용병들이 지금 수련의 숲을 뒤지고 있는데, 샤를로트의 코인 주머니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더군. 아마 숲지기가 땅을 뒤엎으면서 땅 깊숙이 들어간 모양이다.”
“……그런가요.”
“왜 그러지?”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교관은 주머니에 라칸과 아이린의 이름을 펜으로 쓴 뒤 말했다.
“그럼 정리하고 마차에 오르도록 해라. 일찍 정리할수록 빨리 집에 돌아가 쉴 수 있을 테니까.”
“네. 교관님.”
라칸은 아이린의 표정을 흘금 봤다.
아이린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이린 왜 그래?”
“샤를로트 선배가 코인 주머니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내가 졌을 것 같아서. 뭔가 제대로 이긴 기분이 아니야.”
아이린은 승리도 중요하지만 승리하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찝찝하게 이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라칸은 아이린의 등을 툭 쳤다.
“뭐, 어때 이겼으면 이긴 거지. 그리고 5일 차까지 가면 아마 우리가 이겼을 거야. 우리 콤비가 장난 아니잖아?”
라칸의 해맑은 미소에 아이린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그런데.”
아이린은 라칸의 웃통을 쳐다봤다.
“도대체 옷은 언제 입을 거야?”
“……아.”
* * *
학생들이 탄 마차가 빅토리에로 향했지만, 티그리스는 수련의 숲에 남기로 했다.
이번 사태가 자연재해인지 아니면 인재인지 두 눈으로 확인해야 속이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는 숲지기가 만들어놓은 짙은 녹색 길을 따라 북쪽으로 쭉 올라갔다.
‘수련의 숲 북쪽에 뭐가 있지? 빅토리에? 아니, 빅토리에는 북서쪽에 있다. 이 경로를 따라 이동하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거의 세 시간 정도 달리자 숲지기의 흔적이 끊겼다.
갑자기 끊겼다기보단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흔적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 같았다.
티그리스는 가만히 멈춰 서서 주변을 훑었다.
인근에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정말 그냥 단순히 운이 없었던 건가?’
계엄령 때문에 서열전이 늦게 시작됐고.
하필 숲지기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늦봄 시기와 맞아떨어졌으며.
전날 밤 부슬비가 내려 숲지기가 이동한 것일 수 있다.
‘너무 예민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군.’
만약 로타와 아르펨이 노린 것이라면 서열전에 숲지기만 보냈을 리 없다.
키메라들이나 트롤, 오우거들을 부대 단위로 보냈을 것이다.
어느새 황혼이 숲을 비추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수사를 그만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두구- 두구-
그때, 티그리스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숲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공적인 소리였다.
티그리스는 소리의 근원지를 쫓아갔다.
열차였다.
열차는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철도를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
‘이 인근에 철도가 있었군.’
티그리스는 멀어져 가는 열차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숲지기는 오직 숲을 통해서만 이동한다.
그리고 나무나 풀을 해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한다.
열차는 정해진 철도를 따라 움직여 나무와 풀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숲지기의 공격 대상은 아니다.
트롤이나 오크같이 다소 포악한 몬스터들도 열차를 공격하지 않았다.
수십 톤짜리 강철 덩어리가 시속 70~80㎞로 질주하는데 덤빌 녀석은 없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철도 위에 트롤이나 오크 같은 중대형 몬스터들이 누워 있거나 지나간다면, 열차 전복 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30~40㎞ 지점마다 트레인 가드들을 배치해 철도와 열차를 지키는 일을 시켰다.
‘이 인근에 가드 포인트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티그리스는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 가드 포인트를 확인했다.
이 철도를 따라 동쪽으로 2㎞ 정도만 더 가면 트레인 가드들이 머무는 기지, 일명 ‘가드 포인트’가 나왔다.
트레인 가드들은 정기적으로 상급 기관인 철도 관리국과 인근 영주에게 안전 점검 결과 보고를 할 의무가 있다.
자신이 관리하는 40㎞ 일대 철도 주변에 어떤 몬스터들이 출몰했으며 어떻게 조치했는지 보고하는 것이다.
혹시 저들의 안전 점검 결과 보고서에 숲지기와 관련된 정보가 있지 않을까?
티그리스는 해가 슬슬 지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가드 포인트로 향하기로 했다.
그러나 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티그리스는 발을 멈췄다.
‘피 냄새.’
머리에 경종이 울렸다.
바람을 타고 진한 피 냄새가 났다.
분명 일반적인 몬스터들의 피 냄새가 아닌 인간의 피 냄새였다.
티그리스는 일단 사태 파악부터 하기로 했다.
어차피 수정구가 닿는 통신 거리는 10㎞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통신구로 상황 보고를 해봤자 통달 거리가 나오지 않아 용병들이나 다른 교관들이 들을 수 없을 것이다.
티그리스는 검을 뽑고 가드 포인트를 향해 달렸다.
가드 포인트 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티그리스는 일단 숲에 몸을 숨기고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젠장……. 몇 명이나 죽었어?
-31명 전원 사망했습니다.
-지독하군……. 어떤 몬스터가 이 지랄을 해놓은 거지?
-우에에에엑!
-X발! 저 새끼 누가 좀 밖으로 내보내!
일반 병사와 기사 그리고 마법사들이 가드 포인트를 둘러싸고 조사를 하고 있었다.
병사와 기사들이 입고 있는 갑주와 마법사들의 망토에 하얀 독수리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하얀 독수리 문양은 빅토리에의 동쪽을 지키는 하이덴 백작 가문의 상징이었다.
‘적어도 트레인 가드들을 죽인 녀석들로 보이진 않는군.’
티그리스는 검을 집어넣고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냐!”
외부를 경계하던 병사 하나가 티그리스를 향해 창을 겨눴다.
그리고 티그리스의 얼굴을 보더니 얼어붙었다.
설마 여기서 티그리스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모양이었다.
“어…… 혹시…… 티그리스 경이십니까?”
티그리스는 항상 착용하고 있는 회중시계를 꺼냈다.
그러자 회중시계는 인퀴지터의 상징인 은사(銀蛇)로 변했다.
“그렇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다.”
병사는 곧바로 창을 세우고 경례를 했다.
“티…… 티그리스 경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나저나 여긴 무슨 일로…… 설마 벌써 황국에서 움직인 겁니까?”
“아니다. 수사관의 자격으로 온 것이 아닌 제국 대학의 서열전 보안 담당관으로서 온 거다. 잠시 물어볼 게 있는데 책임자가 있나?”
“아, 예. 바로 그란츠 경을 부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병사는 가드 포인트 안으로 들어갔다.
옆에서 같이 경계를 보던 병사는 티그리스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게 처음인지 자신이 경계를 서는 것도 잊은 채 티그리스를 계속 흘금흘금 쳐다봤다.
티그리스는 일단 주변을 훑었다.
‘인근 현장이 많이 훼손됐군.’
수십 명의 사내들이 이 인근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을 테니 당연히 범인의 발자국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라칸을 데려올 걸 그랬나?’
라칸이라면 이 주변에서 무언갈 발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 라칸은 서열전에 참가한 학생 신분이다. 학생에게 수련의 숲 인근 조사를 시키는 것은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리고 3일간 서열전을 치르느라 많이 지쳤을 것이다.
며칠 쉬고 난 후에 데려온다면 모를까 지금은 라칸을 쉬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때, 가드 포인트에서 갈색 수염을 멋지게 기른 기사 하나가 나왔다.
“티그리스 경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얀 독수리 기사단의 단장 그란츠 디 하이덴이라고 합니다.”
“제국 대학의 교관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입니다.”
“황도의 영웅을 이런 자리에서 만나다니. 정말 아쉽습니다. 하이로드에서 만났다면 제대로 대접을 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요.”
“저도 이런 일로 만나게 되어 아쉽습니다.”
의례적인 말이 한 번 오가자, 그란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제국 대학 서열전의 보안 담당관으로 오셨다는 이야기는 방금 레논에게 들었습니다. 혹시 수련의 숲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숲지기 3마리가 수련의 숲에 난입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다행히도 사상자는 없었지만, 숲지기가 어떻게 수련의 숲까지 왔는지 조사차 돌아다니던 중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도 다행입니다. 사상자가 없다니. 여긴…….”
그란츠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큼 끔찍한 일이 가드 포인트 안에서 일어난 모양이었다.
“제가 21년간 기사로 살아오면서 많은 것들을 봐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만큼 끔찍한 일은 처음 겪어보는 것 같습니다.”
“트레인 가드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겁니까?”
그란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B-13 가드 포인트에서 근무하던 트레인 가드들이 전원 사망했습니다. 그것도 굉장히 끔찍한 고문을 당한 채로 말이죠.”
“고문을 말입니까?”
“예. 분명 살아 있는 채로 고문을 당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왜 누가 이런 짓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 한번 내부를 보시겠습니까?”
“제가 현장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현장 훼손만 되지 않으면 되니 들어오십시오. 하지만…… 좀 끔찍할 겁니다.”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번 보겠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죠.”
티그리스는 가드 포인트 내부로 들어갔다.
가드 포인트 내부는 지하 벙커 같았다.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익스플로전 마법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다.
찰박-
벙커 내부 바닥은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 깊이의 핏물이 채워져 있었다.
그란츠 경의 부츠에 피가 묻어 있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피 냄새와 악취가 지독하게 코를 찔렀다.
마력등도 깨져 있어 마법사들이 임시로 띄워둔 푸른색 마력 구체가 곳곳에 띄워져 있었다.
티그리스는 좁은 복도를 지나 한 방에 도착했다.
광원이 푸른색임에도 불구하고 방 안은 온통 핏빛이었다.
“……비위가 좋으시군요. 저도 이걸 처음 봤을 땐 헛구역질을 했는데.”
죽은 시체들은 모두 낡은 의자에 앉아 반원을 그리고 있었다.
죽은 시체들이 티그리스를 반겨주는 것만 같았다.
그들의 몸은 모두 튼튼한 밧줄로 고정되어 있었으며, 눈은 모조리 파여 있었다.
그리고 피를 모두 쏟아내도록 동맥을 모조리 다 끊어내 헤집었다.
몇몇 시체들은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다른 방들도 지금 이런 상태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트레인 가드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고리가 1개짜리인 용병 20명과 고리가 2개인 기사 10명 그리고 고리가 3개인 기사 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중 3성 기사인 보리스는 트레인 가드 경력만 15년 차 베테랑이었습니다.”
티그리스는 잠시 시신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팔다리 힘줄이 모두 끊겨 있었고, 어떤 사내들은 뼈도 부러져 있었다.
반항하다가 더 크게 다친 모양이었다.
어떻게 이 낡은 의자에 사내들이 묶여 있을 수 있나 했더니만, 일단 강제로 앉혀놓고 힘줄을 끊은 채 고문을 한 모양이었다.
“이들이 중요한 군사 기밀을 알고 있습니까?”
“철도를 관리할 때 사용하는 전문 통신망 알고리즘을 제외하면 없습니다. 그거 하나 알아내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고문해 죽일 것 같진 않습니다.”
“흠……. 그럼 이건 주술의 흔적이겠군요.”
“네? 주술이요?”
주술은 인신 공양이나 사람의 피를 뽑는 등 야만적이고 반인륜적인 과정을 거칠수록 효과가 증폭되고 성공 확률도 올라간다.
미치광이 살인마 수십 명이 갑자기 B-13 가드 포인트에 몰려들어 트레인 가드들을 고문하는 확률보단, 정체 모를 주술사가 이런 짓을 저질렀을 확률이 더 높았다.
물론 혼자서 이 많은 사람들을 제압했을 리 없으니, 실력 있는 기사나 마법사들과 함께 습격한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무슨 주술을 사용했길래…….”
“그건 저도 모릅니다. 주술사가 아니니까요.”
“……그렇겠군요.”
일단 주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놈은 로타의 입 레비스였다.
그러나 세상에 주술사가 레비스만 있는 게 아니다.
포그우드에 있는 혼령술사도 주술사고, 흑토지대에 기우제를 지내주는 제사장들도 주술사며, 고디바 사막의 순례자들도 주술사다.
사람의 목숨을 제물로 삼아 주술을 부리는 악독한 주술사가 하나쯤은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레비스는 이렇게 복잡한 방법으로 주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특정 개인과 ‘일방적인 약속’을 통해 저주를 심는 방식을 좋아하지, 손에 피를 묻히는 방식은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이건 분명히 다른 주술사의 짓이다.
티그리스는 생각에 잠겼다.
회귀 전에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었나?
티그리스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티그리스는 자신의 기억력을 100% 신뢰하지 않았다.
회귀 전 이맘때의 티그리스에겐 검술의 발전이 제일 중요했다.
우연히 이와 관련된 뉴스를 스쳐 들었을지 몰라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관점을 다양하게 바꿔보자.
이런 일을 저지를 만한 악독한 주술사는 누굴까?
왜 하필 B-13 가드 포인트에 있는 트레인 가드들을 노렸을까?
왜 하필 서열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이런 사건이 터진 걸까?
숲지기의 난입은 트레인 가드들을 살해한 범인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만약 31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쳐서 주술을 성공했다면, 어떤 주술이 작동 중일까?
‘작동?’
만약 주술이 성공했다면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무려 성인 남성 31명을 제물로 바친 주술이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주술이 발동했다면 굉장히 끔찍한 종류의 주술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한 것일까?
주술에 실패했을 것이란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분명 주술은 발동된 상태일 것이다.
그 말은 이미 끔찍한 주술이 발동 중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종류이거나, 특정한 조건이 갖춰져야 주술이 발동한다는 것이다.
‘알아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무슨 주술이 발동되었느냐. 누가 주술을 발동시켰느냐. 마지막으로 주술의 대상은 무엇이냐.’
“현장을 더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셔도 됩니다.”
티그리스는 다른 방들도 둘러봤다. 기사들은 똑같이 끔찍한 형태로 고문을 받고 죽어 있었다.
그러나 별달리 특별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을 의자에 고정하기 위해 밧줄을 묶은 방식이 제각기인 것으로 보아, 다수가 트레인 가드들을 습격한 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피가 너무 많다.’
성인 남성의 체내 혈액량은 보통 5~8ℓ 정도다.
31명 전원의 피를 모두 뽑아냈다고 하더라도 바닥을 모두 피로 적실 정도는 되지 않는다.
가드 포인트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으니까.
이 주술과 피와 큰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도 핵심적인 증거는 되지 못했다.
티그리스는 통신실로 들어갔다.
통신실엔 전문 프린터기와 전문을 송신시킬 수 있는 타자기가 있었다.
티그리스는 프린터기에 뽑힌 전문들을 확인했다.
모두 정기 보고 내용이었다.
이틀 전 마지막으로 보낸 전문 내용에는 별 내용이 없었다.
숲지기와 관련된 내용은 일주일 치를 전부 봐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음?’
한 전문에 피가 살짝 묻어 있었다.
사건을 조사 중인 기사들이나 마법사들이 피 묻은 손으로 만졌을 리 없었다.
‘100% 범인들 중 하나가 실수로 만진 거다.’
티그리스는 전문 내용을 확인했다.
3일 전, 철도 관리국에서 동부 지역에 위치한 모든 가드 포인트에 보낸 일반 전문이었다.
[……7월 1일 수인족 자치구의 대장로 ‘테호’, 길리온 왕국의 제2왕자 ‘모르고트’ 황국 방문…… 6월 15일 노선 대점검 예정]‘이거다.’
만약 이 일이 로타와 아르펨의 권속 중 하나가 꾸민 일이라면, 테호와 모르고트를 안 노릴 이유가 없었다.
만약 테호가 황국 땅에서 죽는다면 황국과 수인족 자치구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게 될 것이고, 모르고트가 죽는다면 길리온 왕국에게 전쟁 명분을 쥐여주는 꼴이 될 테니까.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두 사람 중 하나만 죽거나 크게 다치면 황국에게 큰 손해였다.
‘이 일을 레인로버 황녀님께 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