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59)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59화
탈출
“혹시 뭐 좀 알아내신 게 있습니까?”
그란츠의 질문에 티그리스는 담담히 말했다.
“네. 있습니다.”
“네? 정말입니까? 혹시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네?”
“제가 알아낸 정보가 100% 확실한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사실이든 아니든 해당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었을 때 제국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티그리스가 길게 설명했지만, 그란츠는 그 안에 담겨 있는 말의 뜻을 곧바로 이해했다.
보안을 유지해라.
그란츠는 하얀 독수리 기사단에 들어오기 전, 황금 기사단에서 근무해 본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정보 보안의 중요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란츠 경.”
그란츠와 티그리스는 가드 포인트를 나왔다.
어느새 밝은 달이 하늘에 떠 있었다.
수련의 숲에 복귀하기로 한 시간은 따로 정해두지 않았지만, 아마 네이션 학과장을 비롯해 많은 교관이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빨리 발길을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하지만 이상하게도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티그리스는 이 감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확신했다.
이건 수많은 전장을 거치며 축적된 경험과 실패에서 발로한 본능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가 그저 단순한 숲지기의 습격이라 생각하고 발품을 팔아 조사하지 않았다면, ‘테호’와 ‘모르고트’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와 같은 맥락으로 이들에게서 떨어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주술사는 트레인 가드를 제물로 바치고 죽인 것을 숨기지 않았을까?
근처에 서열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왜 하필 이때 주술을 진행한 것일까?
아직 풀리지 않은 질문들과 미지의 위험들이 산재해 있는 가운데, 현재 그란츠의 부대가 처한 상황도 그리 좋지 않았다.
월광이 약한 밤, 시신 썩는 내가 진동했고, 숲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시야가 트이지 않았으며,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군부대는 최소 10㎞ 밖에 있다.
만약 몬스터들에게 대대적인 습격을 당하거나, 트레인 가드들을 죽인 자들이 습격해 온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었다.
티그리스의 시선이 그란츠와 병사들에게 향했다.
티그리스는 그란츠의 수준을 처음 보자마자 알고 있었다.
그란츠의 수준은 5성 기사였다.
노르베르드 가문의 검은 늑대 기사단장인 호른과 맞먹는 수준이며, 제국 대학의 네이션 학과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실제 전장에서 5성 기사 하나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무력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다른 기사들도 제법 잘 훈련이 된 듯 경계를 서고 있는 자세가 나쁘지 않았으며, 특히 긴장한 채 주변을 훑는 눈빛도 마음에 들었다.
마법사들의 수준은 티그리스가 알 수 없지만 제법 전투를 치러본 경험이 있는 듯, 기사들과 병사들 사이에 안전하게 들어가 탐색 마법을 펼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평을 하자면 사기도 좋고 훈련도 잘된 병사들이었다.
이 정도라면 오우거 한 마리가 갑작스레 나타나도 무리 없이 처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들이 주의해야 할 진짜 적은 하이덴 숲의 몬스터들이 아니라, 트레인 가드들을 죽인 범인들이다.
만약 놈들이 나타나 저들을 습격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티그리스는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때, 가드 포인트 입구에서 시신들이 하나둘씩 나왔다.
그들의 얼굴 위엔 손수건이나 낡은 옷들이 올라가 있었다.
그란츠는 한숨을 토해내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들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티그리스는 시신들을 보며 말했다.
“이 시신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죽은 기사들은 모두 하이덴 백작님의 기사들입니다. 시신을 수습해서 절차에 맞게 장례를 치러줘야겠지요. 하지만 만약 이 시신들이 주술의 제물인 게 확실하다면 땅에 묻진 못하고 태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란츠는 베테랑 기사답게 주술에 당한 시신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오크 주술사나 트롤 주술사에게 당해본 경험이 있는 듯했다.
“가족들이 반발을 할 수 있을 텐데요?”
“그건 보상을 주며 잘 얘기를 해봐야겠지요. 잘못하면 무덤가에서 좀비들이 튀어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란츠는 초승달을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밤이 너무 깊어버렸군요. 원래 이곳에 오랫동안 체류할 생각은 없었는데, 조사를 하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야밤에 숲을 이동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지만…….”
그란츠는 죽은 시신들을 흘금 보더니 말했다.
“이곳에 남아서 야영하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군요.”
다른 병사들도 이곳에 남는 걸 별로 원하지 않는 눈치였다.
티그리스도 이곳에 남는 걸 별로 추천하지 않았다.
이곳은 주술이 발현된 곳이다.
어떤 사이한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철도를 따라 동쪽으로 15㎞ 정도만 더 가면 소도시 테른이 나옵니다. 밤이 깊었으니 혹시 같이 가시겠습니까? 내일 아침 일찍 나설 수 있도록 말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그란츠의 제안은 순수한 호의가 아닌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티그리스의 도움에 기대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걸 알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그란츠와 동일한 5성 기사에 6성 기사도 죽였을 정도로 대단한 검사니까.
티그리스는 품속에 들어 있는 작은 수정구를 의식하며 말했다.
“혹시 장거리 통신이 가능한 통신구가 있습니까? 저를 기다리고 있을 교관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싶습니다.”
그란츠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아, 물론입니다. 리나!”
리나라 불린 마법사가 그란츠의 말에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티그리스 경이 제국 대학 측과 연락을 하고 싶다는데 혹시 방법이 있나?”
리나는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혹시 제국 대학 측과 연결된 통신구를 갖고 계십니까? 있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티그리스는 품속에서 통신 수정구를 꺼냈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합니다. 이 수정구와 연결된 상대측 수정구 식별 번호를 얻어야 하거든요. 혹시 이 통신구에 통신 보안 프로토콜이 부여되어 있습니까?”
“아닙니다. 일반 수신용 통신구입니다.”
“그럼 더 간단하겠군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리나는 티그리스의 통신구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만져보기 시작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반 수신용 통신구네요. 생각보다 쉽게 식별 번호를 땄습니다. 혹시 연락해야 할 분과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습니까?”
“30~40㎞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통달 거리가 그 정도면 충분하겠네요. 저를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티그리스는 리나의 뒤를 따라갔다. 리나는 등에 커다란 철제 가방을 메고 있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티그리스는 저 철제 가방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군용으로 사용하는 장거리 통신 아티팩트였다.
수정구의 통달 거리는 겨우 10㎞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저 아티팩트는 무려 40~50㎞ 정도 떨어진 곳과 통신을 할 수 있었다.
비싼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오직 해당 아티팩트에만 작동하는 전용 마법으로 조작해야 해서 리나와 같은 통신 전문 마법사가 필수였다.
리나는 그 철제 가방을 마법으로 조작하더니 티그리스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제국 대학의 교관들이 혹시 이 전장 통신 장비를 갖고 있습니까?”
“유사시를 대비해 제국 경비대와 직통으로 연결된 통신 장비는 갖고 있습니다.”
“잘하면 대화도 가능하겠군요. 혹시 중요한 대화를 나누셔야 하는 거면 보안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으니 유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티그리스는 단순히 하이덴 백작가의 병사들과 움직이겠다고만 말할 거였다.
딱히 중요한 대화가 오갈 것은 없었다.
티그리스는 마이크를 대고 말했다.
“티그리스 보안 담당관입니다. 수신 중이시면 통신구를 두 번 껐다가 켜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철제 가방에 들어와 있던 붉은 불이 연속으로 두 번 꺼졌다가 켜졌다.
수신했다는 뜻이었다.
“현재 하이덴 백작가의 병사들과 합류한 상태입니다. 수련의 숲으로 홀로 복귀하는 것은 위험하니, 이들과 함께 있다가 날이 밝는 대로 수련의 숲으로 향하겠습니다. 수신하셨다면 통신구를 두 번 껐다가 켜주시기 바랍니다.”
또다시 붉은 불이 연속으로 두 번 꺼졌다가 켜졌다.
“이상입니다.”
티그리스는 리나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리나는 의외라는 듯이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전술적 통신 기법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따로 배운 것입니다.”
“제국 대학의 교관들은 이런 것도 배우나 봅니다. 제가 제국 대학을 다닐 때, 이런 것을 안 알려줬거든요.”
회귀 전, 티그리스는 전장을 몇 년이나 떠돌았기 때문에 이런 통신 기법은 기본으로 알고 있었다.
이것 외에도 수정구나 전술 통신 장비의 마이크가 망가졌을 때 사용하는 비상 통신 기법도 알고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혹시 제국 대학 측에서 연락이 오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티그리스는 그란츠에게 향했다.
어느새 시신들은 다 수습되었다.
문제는 이 시신들을 끌고 소도시 테른까지 가는 거였다.
이들을 병사들이 하나씩 업고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행히 가드 포인트를 뒤져보니 트레인 가드들이 사용하던 수레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텐트 봉과 텐트를 이용해 들것을 15개 정도 만들자 31구의 시신을 모두 나를 수 있었다.
“마법사들은 시신들과 수레에 경량화 마법을 걸도록.”
개인 짐을 지고 20㎞를 행군해야 해서 경량화 마법은 필수였다.
적당히 주변 정리가 끝이 나자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그란츠는 지도나 나침반은 꺼내지 않았다.
그냥 철도를 따라서 쭉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적막한 숲에 총총히 떠 있는 별과 달은 분위기에 취해 산책하기 좋아 보였지만, 문제는 하늘에서만 빛이 반짝이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이덴 숲에서도 붉은색과 노란색 빛들이 반짝였다.
-크르르르…….
시신들의 냄새를 맡고 몰려온 몬스터들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고블린, 놀, 망키는 기본이었고 심지어 범치와 샤벨 타이거들도 있었다.
녀석들은 백작가의 병사들을 잡아먹고 싶어서 난리가 난 것 같았다.
그러나 저들은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마법사들 때문이었다.
리나를 포함한 네 마법사는 주변을 시뻘건 불덩어리들로 가득 채웠다.
저 불덩어리들은 단순한 불덩어리가 아닌 몬스터들의 위험 본능을 자극하는 파장을 내뿜는 3서클 마법 ‘위협의 불꽃’이었다.
마치 악령들을 내쫓기 위해 만들어진 주술 ‘푸른 불꽃’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리폰 정도의 지성을 갖춘 몬스터들이 아니고서야 달려들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몬스터들이 으르렁거리며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다 보니 병사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바쁘게 발을 놀렸다.
어서 소도시 테른으로 돌아가고 싶은 듯했다.
주변에 붉은빛과 금빛 안광이 점점 많아졌다.
저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백작가의 병사들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시신에서 나오는 피 냄새와 부패하기 시작하는 냄새 때문이었다.
이러다가 한번 큰 사단이 일어날 것 같았다.
티그리스는 검을 뽑아 들었다.
“몬스터들을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이렇게 몬스터들의 숫자가 많아질 때는 놈들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는 게 중요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적당한 양의 몬스터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굳이 어려운 먹잇감을 노리는 것보단 바로 옆에 죽어 있는 신선한 동료의 고기를 먹는 게 편하니까.
그란츠는 티그리스를 제지하려 했다.
“아닙니다. 제가…….”
“그란츠 경은 리더고 저는 일반 기사에 불과합니다. 제가 움직이는 게 맞습니다.”
그란츠는 티그리스가 하는 말의 의미를 곧바로 알아챘다.
그란츠는 50명이 넘는 병사들을 통솔해야 한다.
반면 티그리스는 통솔할 자격도 위치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티그리스가 움직이는 게 맞다는 것이었다.
마침 그란츠가 상명하복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차였는데, 티그리스가 알아서 움직여 주니 굉장히 편했다.
“……그래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티그리스는 후미로 돌아갔다. 전열의 전방이나 옆에 있는 몬스터를 죽이면 전진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었다.
반면 후미에 있는 몬스터들이 죽으면 옆에 있던 몬스터들이 뒤로 쏠리면서, 자연스레 몬스터들의 포위를 풀 수 있었다.
티그리스는 검을 정확하게 10번 내질렀다.
그러자 은빛 검기가 범치와 샤벨타이거, 그레이 울프 등 중형 몬스터들의 목을 갈랐다.
녀석들은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하고 피 분수를 쏟으며 쓰러졌다.
-크와아아앙!
근처의 몬스터가 죽자 옆에 있던 몬스터들은 백작가 병사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죽은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심지어 자기들끼리 싸우기까지 했다.
전열을 둘러싼 몬스터들이 많이 사라지자 티그리스는 다시 그란츠의 옆으로 복귀했다.
그란츠는 감탄 어린 눈빛으로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겉모습만 봐선 이제 막 기사가 된 어린 기사 같은데, 행동 하나하나가 베테랑급이었다.
만약 티그리스가 아니었다면, 그란츠는 곧바로 영입을 시도했을지도 몰랐다.
“단순히 검만 잘 다루시는 줄 알았는데, 몬스터 행동학이나 전투 지식도 해박하신 것 같습니다.”
“교관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제 겨우 나이가 20인데…….’
그란츠는 마지막 말을 내뱉지 않고 생각만 했다.
티그리스의 콤플렉스일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 덕에 살짝 여유가 생기자, 그란츠는 티그리스를 흘금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숲지기가 수련의 숲을 침입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숲지기의 흔적을 추적하다가 저희가 있는 쪽까지 오셨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숲지기가 B-13 가드 포인트 근처에서 나타났다고 보는 게 맞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흠…….
그란츠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조금 이상하군요. 지금 숲지기가 하이덴 숲에 있을 시기는 아니거든요.”
티그리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숲지기는 늦봄부터 활동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만, 숲지기는 겨울과 봄 시기엔 남쪽에 있는 바로스 후작령 쪽이나 밀림으로 이동했다가 늦봄부터 위로 북상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땅에 수분이 많아야 제대로 움직이는 놈들이다 보니, 한창 비가 내리는 6~7월에야 숲지기가 하이덴 숲에 출몰하기 시작합니다.”
티그리스는 정체를 알 수 없던 기시감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 말씀은 숲지기가 이 시기엔 하이덴 숲에 있어선 안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시기상 그렇습니다.”
만약 이번 트레인 가드 살인 사건과 이번 숲지기의 출몰과 연관이 있다면, 숲지기의 출몰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가 의도한 것이 분명하다.
‘그 말은…… 설마 소환 마법사?’
티그리스는 주변을 훑었다.
몬스터들이 또 많아졌다.
그런데 몬스터의 종류가 달라졌다.
놀과 고블린, 망키 같은 중소형 몬스터들이 아닌, 오크들과 트롤들과 같은 중대형 몬스터들로 가득 찼다.
그란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왜 트롤들이 이렇게 많이…….”
하이덴 숲에 트롤이 안 사는 것은 아니지만, 트롤은 개인행동을 하는 몬스터다. 지금처럼 7~8마리가 한 번에 몰려올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오크들의 숫자도 너무나 많았다. 눈대중으로 세봐도 40마리가 넘어갔다.
게다가 위협의 불꽃을 봐도 전열의 앞에 서 있는 트롤 4마리는 마치 벽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전진은 멈추고 말았다.
-크르르르…….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그란츠는 검을 뽑았다.
현재 지리 조건이 너무 좋지 못했다.
왼쪽으로 철도를 끼고 있었지만, 앞 오른쪽 뒤로 모두 오크들과 트롤들로 가득했다.
피할 곳이 철도밖에 없었지만, 저 멀리 열차 하나가 오고 있었다.
그란츠는 현시점에서 가장 나쁜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열차가 병사들 쪽으로 다가오는 순간 트롤과 오크 무리들이 동시에 덮치는 것이다.
그러면 철도 쪽으로 대피하지 못한 병사들과 기사들은 단숨에 살육당할 게 분명했다.
그란츠는 저놈들이 그런 작전을 짤 정도로 머리가 좋은 녀석들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들을 통솔할 소환 마법사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설마 소환 마법사? 도대체 왜…….”
“왜는 아직 중요하지 않습니다.”
티그리스는 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우선 살아남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그란츠는 검에 힘을 주었다.
“……그 말이 맞군요.”
“지금 여기서 테른까지 몇 ㎞ 남았습니까?”
“대략 7㎞ 정도 남았습니다.”
“단번에 달려서 테른까지 도착하는 건 무리겠군요.”
“지원 병력을 요청해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병사들이 불안한 시선으로 티그리스와 그란츠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란츠와 티그리스는 전혀 당황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저 담담한 눈빛으로 오크들과 트롤 무리를 보고 있었다.
그란츠와 티그리스는 자신들이 당황하면 휘하 병사들의 사기가 바닥을 친다는 걸 경험상 알았기 때문이었다.
“시신과 짐은 모두 버리고 무장하라!”
그란츠의 명령에 병사들과 기사들은 시신들을 버리고 모두 무장했다.
병사들의 눈빛에 다소 불안감이 느껴졌지만, 그란츠의 마력이 깃든 목소리에 정신을 바짝 차린 듯 창을 바짝 잡았다.
“쐐기 진으로 테른까지 달려간다. 리나! 테른과 연락은 되었나?!”
“네. 이미 연락했습니다. 현재 위치를 공유했고, 지원 병력을 파견해 주기로 했습니다!”
“좋다.”
티그리스는 그란츠에게 말했다.
“선봉은 제가 서겠습니다. 그란츠 경.”
“그래주시겠습니까?”
“예.”
그란츠는 언제 출발할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병사들은 모두 언제 출발할 것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저 멀리 열차가 선두를 지나쳐 갈 때 달려 나갈 것이다.
두구- 두구- 두구-
열차가 다가오기 시작하자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침을 삼키며 달려 나갈 준비를 했다.
열차가 거의 코앞까지 다가오자, 티그리스는 목소리 높여 말했다.
“모두 당황하지 말고 정면을 보고 달려라!”
병사들은 티그리스가 내뱉은 말을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말로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곧 티그리스가 보여줄 무위에 당황하지 말고 달리라는 뜻이었다.
티그리스는 열차가 옆을 지나쳐 가자 곧바로 검을 내질렀다.
수려한 은빛의 호선이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 은빛의 호선은 마치 열차처럼 막힘없이 모든 것을 가르며 지나갔다.
푸화아아아악!
전방을 가로막던 트롤들과 오크 수십 마리의 허리가 죄다 잘려 나갔다.
그러자 창백한 달빛이 오크와 트롤들의 허리에서 솟구친 피 분수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몬스터들의 비명은 없었다.
그저 피가 솟구쳐 떨어지는 소리와 나무들이 잘려 나가 옆으로 쓰러지는 소리 그리고 반절로 잘려 나간 몬스터들의 상체가 바닥에 철푸덕 떨어지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병사들을 비롯해 그란츠까지 모두 경악했다.
“이게 무슨…….”
열차가 지나갔지만 몬스터들이 돌진해 오지 않았다.
모두 티그리스의 흉흉한 은빛 안광에 겁을 집어삼킨 것이었다.
그란츠는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전원 탈출한다!”
“우와아아아아아!”
병사들의 발은 굉장히 가벼웠다.
티그리스의 뒤만 보고 달리면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보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