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6)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6화
빅토리에
제국 대학의 검술 교관직은 기사들에게 인기가 많다.
연봉도 높고 수도에 집도 주며 주말 근무도 없다. 거기에 개인의 성장을 위해 수련할 시간도 근무 시간에 따로 준다.
퇴직 후엔 다른 기사단에서 모셔 가려고 하니 기사들에겐 꿈과 같은 직업이었다.
많은 사람이 지원하는 만큼 2차 면접 평가를 많이 볼 것 같지만 95% 이상이 1차 서류 심사에서 탈락한다.
심사의 조건은 총 세 가지다.
최소 고리가 3개일 것
과거에 문제가 없을 것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것.
대다수가 첫 번째 조건은 통과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조건에서 탈락한다. 특히 세 번째 조건에서 많이 걸러지는데 웬만한 별 볼 일 없는 귀족이나 평민 출신 기사들은 이곳에서 다 탈락하기 때문이다.
그건 제국 대학 학교장이 지독한 혈통주의자라서가 아니었다.
제국 대학은 황녀는 물론이고 각국의 귀족과 왕국의 자녀들은 물론이고 부호들의 자녀들이 모이는 곳이다.
한마디로 교관들을 매수할 수 있는 재력과 권력을 갖춘 사람들이란 것이었다.
-이번 한 번만 봐주면 나중에 내 휘하 기사단에 넣어주겠다.
-좋은 점수를 주면 금은보화를 주겠다.
-좋은 영약을 줄 테니 편의를 봐줘라.
아예 가주들이 교관들에게 찾아와 대놓고 요구할 때가 있다.
그러니 평민이나 하급 귀족들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해당 가문의 자녀에게 편의를 봐주곤 한다.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지체 높은 가문 출신이거나, 명예롭다고 소문이 난 기사거나, 제국 대학과 종신 계약을 맺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아니면 받아주질 않았다.
그렇게 추리고 추린 면접자들의 이력서 5장이 학교장 바스티얀의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제국 대학의 학교장 바스티얀은 이력서를 꼼꼼히 읽어나가다가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나이: 19.
성별: 남.
가문: 노르베르드.
고리 개수: 3개.
사용할 수 있는 검술: 노르베르드 검술, 검은 늑대 검술, 황국 제식 검술, 와그너 방검술, 비스티얀 검술 등 12개.
······.
바스티얀은 이력서를 테이블 위에 놓고 긴 수염을 만졌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차기 블랙 마이스터라 소문난 검술 천재,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가 얼마 전 고리 3개를 만들었다는 소문은 바스티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국 대학에 입학하면 따로 특별 과정을 만들어야 하나 검술 교관들과 학교장이 고민하고 있었던 차였다. 그런데 학교 입학이 아닌 검술 교관 지원이라니. 이건 현자라 불리는 바스티얀도 예상하지 못한 행보였다.
검술 학과의 학과장 네이션은 곤란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조건에 부합하기 때문에 학교장님께 가져오긴 했습니다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네이션 자네는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나?”
“서류 심사에서 떨어뜨리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나이도 나이거니와 아직 기사 서임도 받지 않은 풋내기입니다.”
“검술을 12개나 사용할 수 있는데? 우리 교관들 중에 검술을 12개 이상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자네 말고 또 있던가?”
“티그리스는 오만하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12개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고 자기는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시연을 해보면 엉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거겠지?”
네이션은 바스티얀의 장난기 가득한 눈빛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인만 안 했을 뿐이지 바스티얀은 이미 티그리스의 1차 서류 심사를 통과시켰다.
호기심 많은 마법사답게 티그리스와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은 모양이었다.
“희박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티그리스가 익힌 검술들은 노르베르드 가문에서만 익힐 수 있는 노르베르드류 검술과 검은 늑대 검술을 제외하면, 모두 잘 알려진 황국 제식 검법과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용병들의 검술이니까요. 배운다면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검술들입니다.”
“흠·…··. 역시 그렇군. 그런데 티그리스는 왜 용병들이 사용하는 하류 검법을 익혔을까?”
네이션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만나서 얘기를 나눠봐야겠습니다.”
“허허. 역시 자네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은 모양이구먼.”
네이션은 학과장의 직분을 벗고 솔직해지기로 했다.
“확실히 궁금하긴 합니다.”
“그럼 서류는 통과시키는 것이 맞겠어.”
바스티얀은 티그리스의 이력서에 사인을 했다.
“면접 날이 기대되는군.”
바스티얀은 이력서 한편에 자리한 티그리스의 사진을 보며 웃었다.
* * *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듯이 티그리스는 1차 서류 통과를 받았다는 전보를 받자마자 황국의 수도 빅토리에로 떠날 준비를 했다.
리니아는 다소 섭섭한 눈치로 말했다.
“정말로 모레 떠나시는 거예요?”
“그렇다.”
노르베르드 영지 갈리아에서 수도까지 가는 데 약 열흘 정도 걸린다.
오래 걸린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도 굉장히 빨라진 것이었다.
마차만 있던 시절에는 거의 한 달이 넘게 걸렸지만 최근 마력 열차가 생긴 덕분에 수도까지 금방 갈 수 있었다.
“면접만 보고 바로 오실 건가요?”
“아니, 여러 가지 볼일이 있어서 아마 12월 초나 중순에 올 것이다.”
티그리스는 기왕 수도로 가는 김에 제대로 된 검을 하나 얻어 올 생각이었다. 티그리스가 쓰고 있는 검도 꽤 좋은 축에 속했지만, 계속 쓰기엔 모자람이 있는 검이었다.
티그리스는 어디서 쓸 만한 검을 얻을 수 있을지 알고 있었다. 11월 22일에 황실이 개최하는 젊은 피 토너먼트가 열리는데, 그곳에서 1등을 하면 황실의 3등 보고(寶庫) 중에서 무기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3등 보고에서 얻을 가져갈 검은 정해져 있었다. 티그리스는 묵철검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
묵철검은 성물도 아니고 그냥 단단하고 자가 복구 기능이 있는 아티팩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황국 3대 강철인 ‘흑철’로 만들어진 검이다 보니 검기로도 베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했고 산성 용액에 담아도 쉽게 녹슬거나 부식되지 않았다.
‘그 검 정도는 되어야 레비스를 죽일 수 있겠지.’
물론 묵철검 하나만 있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었다. 레비스는 저주를 부리는 저주술사답게 저주에 저항할 수 있는 성물도 있어야 하고, 검기를 마음껏 뽑아낼 수 있는 고리도 하나 더 추가해야만 했다.
‘할 것이 산더미긴 하군.’
그래도 차근차근히 해나가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들이었다.
“그동안 검술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거라. 안 본 사이 많이 검술에 많은 진척이 있으면 좋겠구나.”
“네. 오라버니.”
리니아는 얼굴을 붉혔다. 리니아는 이제 온화해진 티그리스에게 표정을 드러낼 정도로 친해졌다. 티그리스가 매일 아침 검술을 봐주면서 마음이 가까워진 덕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받고 싶은 것이 있느냐? 수도에서 선물을 사 오겠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냥 사 주고 싶어서 그러니 말만 하거라.”
리니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음……. 모래주머니? 요즘 무게가 부족해서 더 필요할 것 같아요.”
“······.”
리니아도 티그리스를 닮아 수련광이었다.
* * *
티그리스는 노르베르드 승강장에서 빅토리에역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명상으로 보냈다.
2등급 침실석이라 방 한 칸을 통째로 쓸 수 있었기에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았다.
‘확실히 성장이 빠르군.’
티그리스 수준이라면 명상만으로도 육체 성장이 가능하다. 오러로 근육에 미세한 흠집을 내고 그 안에 오러를 밀어 넣어 빠르게 회복시킨다.
그렇게 되면 회복된 근육 세포가 오러를 머금어 더욱 질겨지고 오러에 쉽게 감응하게 된다.
이 오러 연공법은 본래 7년 뒤에 개발될 ‘세포 성장술’이라는 오러 연공법이다.
당시 외과 의사이자 마법사인 데미안의 논문 ‘유기물의 기초 구성과 성장’을 보고 티그리스가 즉석으로 만든 연공법이었다.
당시엔 티그리스는 이미 고리 7개를 만든 소드 마스터였던지라 이미 육체의 성장은 의미가 없어서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겨우 고리 3개짜리인 검사인데다가 전체적으로 육체의 성장이 덜 되었기에 사용하기 굉장히 좋았다.
-이번 역은 빅토리에. 빅토리에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왼쪽입니다.
티그리스는 안내음을 듣자 눈을 떴다. 그리고 커튼을 걷었다. 수도 빅토리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도 빅토리에는 모든 신식 문물들이 모이고 개발되는 곳인 만큼 노르베르드와 달리 굉장히 진보적이었다. 노르베르드 장벽보다 높은 빌딩들이 올라서기 시작했고, 사내들은 최신 유행하는 신사복을 입고 다녔다.
“우와……. 읍.”
전속 메이드로 따라온 레니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하마처럼 쩍 벌렸다. 그리고 바로 티그리스의 눈치를 보더니 표정을 감추었다.
하지만 눈동자는 호기심 가득한 강아지처럼 계속 창가로 향했다.
처음 수도로 왔을 땐, 티그리스도 노르베르드와 전혀 다른 모던한 도시에 놀랐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화려하고 깔끔해 보이는 도시 아래에 얼마나 더럽고 추잡한 것들이 판을 치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력 열차가 멈추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빅토리에에 처음 온 사람들은 최대한 촌놈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촌놈들이네.’
표정에서 티가 나는지라 수도 빅토리에 사람들은 비웃으며 지나갔다.
그리고 한 사내 앞에서 눈이 모두 멈췄다.
바로 티그리스였다.
-우와……. 저기 봐.
-세상에 잡지 모델인가?
티그리스는 최근 유행하는 중절모를 쓰거나 신사복을 입지도 않았고, 지팡이를 짚거나 콧수염을 기르지도 않았다.
검은 바지에 하얀색 셔츠 그리고 회색 코트를 입었을 뿐이었다. 남들에겐 평범한 패션이지만 티그리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시크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리고 패션 업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티그리스의 옷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직 최상위 귀족만을 위한 옷을 만드는 최고급 브랜드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아르망디……! 저 코트 아르망디 거다. 저 코트 하나가 수도의 작은 집 하나와 비슷한 가격대일 텐데…….’
‘구두도 블랙 크로커다일 거야. 저 사람 도대체 누구지?’
‘귀족이 비싼 옷을 입고 다니면 꼴불견이라 생각했는데, 저 사람은 다른 것 같은데?’
‘양복도 아니고 저런 평상복에 저만한 돈을 지를 수 있는 가문이 어디지?’
티그리스는 질시와 부러움이 뒤섞인 눈빛을 받는 것은 익숙했지만 레니는 그렇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이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레니는 눈알이 핑글핑글 도는 것 같았다.
레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자 빅토리에 역 안내 책자를 봤다.
“에……. 그러니까 4번 출입구로 나가려면…….”
“지도를 보고 걸으면 넘어진다. 따라오거라.”
티그리스는 아주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역은 굉장히 복잡했지만 수십 번이고 와봤기에 길을 잃을 일이 없었다.
4번 플랫폼으로 향하자 티그리스에게 익숙한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유행하는 콧수염을 기르고 깔끔하게 머리를 뒤로 넘긴 중년의 사내는 깔끔한 집사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티그리스를 보자마자 바로 정중하게 숙였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 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베이튼이라고 합니다. 수도에 계시는 동안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베이튼은 노르베르드 가문의 집사이자 가문이 소유한 부동산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최근 집사의 업무는 거의 보지 않고 부동산 회사 ‘더 노르베르드’를 운영했다.
베오울프는 광산 사업에서 벌어들인 돈을 가만히 두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사업에 투자했다.
그중 부동산 관련 사업은 모두 베이튼이 관리했다. 베이튼은 부동산업에 꽤 재능이 있어 노르베르드 가문의 재산을 몇 배로 불려주었다.
그렇게 유능한 베이튼이 티그리스에게 목이 잘려 죽은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욕심 때문이었다.
베이튼은 노르베르드 가문의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자 바로 노르베르드 가문의 부동산을 자신의 페이퍼 컴퍼니에 헐값에 매각해 모조리 집어삼켰다.
세간의 지탄을 받았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체포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분노한 티그리스의 검을 막을 순 없었다.
-이…… 이러고도 당신이 무사할 것 같소?! 아무리 변경백이라고 하지만 수도에서…….
그것이 녀석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어떻게 할까?’
가장 쉬운 방법은 적당한 트집을 잡아 베이튼을 내쫓아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귀족적이지도 않고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 때문에 베이튼의 재능을 버리는 것은 살짝 아쉽다.
티그리스는 잠깐 고민하곤 입을 열었다.
“잘 부탁하네. 베이튼.”
일단 놔둔다.
어차피 시간은 충분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일도, 가세가 기울 일도 없다. 아버지를 해한 로타의 입은 티그리스가 제일 먼저 찾아서 죽여 버릴 것이니까.
……그러나 경고는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깨에 먼지가 묻어 있군.”
티그리스는 베이튼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곤 마차에 올랐다.
“……감사합니다.”
베이튼은 마차 문을 닫고 관자놀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베이튼은 티그리스의 오른손이 어깨에 올랐을 때 마치 칼이 목에 들어온 것 같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오른손에 눌린 어깨가 무거웠다.
‘……위험하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본 베이튼은 눈빛만으로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게 있다.
티그리스는 지금 당장에라도 베이튼을 죽일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틀리면 칼질을 해대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는 절대로 아니다.
그저 티그리스는 베이튼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이었다. 왜 그런 것인지는 베이튼으로선 알 수 없었다.
‘……그래 봤자 19살짜리 애송이겠지.’
베이튼은 빅토리에에서 수도 없이 많은 귀족들을 만나봤다. 이런 19살짜리 애 하나 구워삶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베이튼은 마부 자리에 앉아 마차를 몰았다.
* * *
티그리스는 ‘노르베르드 타워’라고 적힌 빌딩에 도착했다.
빌딩은 총 19층으로 수도에서 5번째로 높은 빌딩이었다. 1층부터 14층까지 백화점이 들어섰고, 15층부터 16층까진 고급 레스토랑, 17층과 18층은 ‘더 노르베르드’의 사무실과 빌딩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19층은 오직 노르베르드 직계 가족들을 위한 펜트하우스가 있었다.
티그리스는 오직 노르베르드 가문의 식솔들만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우와…….”
레니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엘리베이터 벽면엔 투영마법이 적용되어 실시간으로 바깥을 볼 수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때마다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점으로 보일 만큼 작아졌다.
그 광경이 너무나 신기한지 마치 수족관 물고기를 쳐다보는 어린아이처럼 레니는 밖을 계속 내다봤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펜트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부는 모던한 분위기의 무채색 가구들과 벽지로 꾸며져 있었다. 깔끔하고 차가운 느낌이 딱 마음에 들었다.
거실 전면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햇빛이 잘 들어왔고, 거실에서 밖으로 벗어나면 푸른 잔디가 깔린 드넓은 테라스가 나왔다.
노르베르드 가문이 검술 가문인 만큼 집안에서도 검술 훈련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베이튼은 황금색 카드를 티그리스에게 정중하게 드리며 말했다.
“이 카드는 이 펜트하우스로 올라올 수 있는 열쇠입니다. 이 카드를 소지하지 않고 전용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면 구속 및 기절 마법이 발동하니 꼭 지참해 주십시오.”
티그리스는 말없이 카드를 받아 품속에 넣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방 곳곳에 있는 붉은 버튼을 누르시면 제가 곧바로 오겠습니다. 혹시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레니가 알아서 해줄 것이네. 식재료만 부족하지 않게 넣어주게.”
조금 덜렁거리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지 레니는 꽤 요리 솜씨가 좋았다.
고급스러운 맛이라기보단 친숙하고 따뜻한 맛이라 계속 손이 가게 되는 음식을 잘했다.
베이튼은 레니를 쳐다봤다. 레니는 베이튼이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자 살짝 기가 죽어 눈을 내리깔았다.
“저 어린 메이드에게 요리를 맡기신단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그러시지 마시고 16층에 있는 끄띠아 레스토랑을 애용하시지요. 제가 따로 말을 해둘 테니 그곳에서…….”
“내가 싫어하는 것 세 가지가 있네.”
베이튼은 티그리스의 서늘한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첫 번째, 내 말에 토를 다는 것. 두 번째, 내 사람을 무시하는 것. 세 번째, 같은 말을 또다시 하게 하는 것.”
베이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넨 이미 내가 싫어하는 것 세 가지를 모두 어겼네.”
“……죄송합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가주님께서 아껴 쓰는 사람이니 한 번만 봐주지. 다음은 없네.”
베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베이튼은 입술을 콱! 깨물었다.
‘이 정도 조언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각별히 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티그리스가 베이튼을 경계하는지 몰랐다.
‘아니면 모두에게 다 이렇거나.’
만약 그런 거라면 자신의 실수다. 최근 부동산업에만 집중했던지라 집사 본연의 일을 잊고 있었는데, 언제나 모시는 주인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런데 베이튼은 그냥 좀 자존심 강한 19살짜리 애송이라고 생각하고 대했다.
이것은 명백한 자신의 실수였다.
‘당분간 좀 더 티그리스 공자를 파악한다.’
몸을 사리면서 티그리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옳았다.
가문의 후계자가 자신을 이토록 경계하면 훗날 가주가 되었을 때 자신을 내칠지도 몰랐다.
그러면 평민에서 벗어나 귀족이 되겠다는 꿈이 단숨에 진창에 처박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 없지.’
베이튼은 티그리스를 더욱 신중하게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만 저는 물러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저를 불러주십시오.”
“알겠네.”
베이튼이 물러가고 티그리스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레니. 배가 고프니 식사를 부탁하네.”
레니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네! 티그리스 님!”
그날 식사는 유난히 더욱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