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65)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65화
트리샤(4)
티그리스는 동그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트리샤를 보며 말했다.
“넌 영감(靈感)이 부족하다.”
“영감이요?”
“한마디로 검을 보는 눈이 부족하다는 거지.”
티그리스는 검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크게 세 가지로 본다.
첫 번째는 육체.
두 번째는 오러 운용력.
세 번째는 영감.
첫 번째 육체의 수준.
말 그대로 무투 계열을 배우기 적합한 몸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검술에 적합한 몸이 있고 창술, 권술 등 다양하게 나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러 감응력이다.
신체가 오러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검술의 폭이 달라지기 때문에 오러 감응력이 높은 육체일수록 좋은 육체라고 할 수 있다.
이게 고리 1개부터 3개까지 큰 영향을 미치며, 육체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1,000명 중 1명 정도 나온다.
두 번째 오러 운용력.
오러 운용력은 오러를 잘 다루는 능력을 의미한다.
태생적인 오러의 양에 문제가 있다면 곤란하겠지만, 그건 전투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검술 자체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러 운용력이 뛰어나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웬만한 검술들을 다 익힐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이 재능을 갖춘 사람들은 노력만 한다면 고리 6개까지 무난하게 올라갈 수 있다.
오러 운용력에 축복을 받은 사람은 100,000명 중에 1명 꼴로 나온다.
마지막으로 영감.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 구분할 수 있는 척도이며, 검술이 아닌 다른 기술이나 환경, 물건 등에서 검술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사람마다 트이는 영감의 방향이 다른데, 베르강의 경우에는 자연현상 속에서 검을 읽어내고 멸지의 마왕을 봉인했던 페레이라의 경우에는 마법에서 검을 읽어낸 것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에 따라 영감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이 영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검술의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올바른 지도를 받는다면 페레이라처럼 스물둘의 나이에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다.
티그리스는 이 영감을 갖고 있는 사람을 회귀 전까지 정확하게 9명 봤다.
베르강, 샤를로트, 아이린, 고든 그리고 모르고트.
‘우로스’를 얻기 위해 성좌의 시련에 들어갔을 때 만났던 엘프들의 영웅 ‘타티아나’와 ‘템베’, 인간들의 영웅 ‘마리켈’, 수인들의 영웅 ‘바야가’.
여동생인 리니아도 이에 포함될 수 있지만, 실전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영감이 있는지 없는지 더 두고 봐야 한다.
각설하고 트리샤의 경우엔 육체와 오러 운용력엔 문제가 없지만 ‘영감’이 부족한 상태였다.
영감이 있고 없고의 차이로 천재와 수재로 나뉠 정도로 검술의 발전 속도가 다른데, 특히나 티그리스가 가르치는 주문 사냥의 술은 영감이 굉장히 중요하다.
주문 사냥의 술은 마법을 무효화시키는 검술이다.
마법으로 따지자면 ‘역산’이나 ‘디스펠’ 마법을 상시 펼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검으로 마법과 같은 일을 벌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건 단순히 육체나 오러 운용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익힐 수 있는 검술이 아니다.
검이 아닌 곳에서 검을 볼 수 있는 영감을 갖춘 자여야만이 익힐 수 있다.
“원래라면 영감이 없는 기사는 최소 15년에서 20년은 이 검술에만 매달려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너는 다르다. 넌 영감이 없는 게 아니라 부족하다.”
그 점이 굉장히 희한했다.
영감이 있고 없고가 아닌 부족한 경우는 티그리스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후천적으로 영감이 생기는 경우는 있다.
그것을 심득을 얻었다고 하며 큰일을 겪거나 큰 깨달음을 얻는 경우 영감을 얻어 소드 마스터가 되곤 한다.
그런데 절반만 영감을 얻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티그리스는 그 해답이 바로 트리샤의 독특한 경험들에 있다고 생각했다.
“트리샤. 넌 성좌의 시련을 총 몇 번 극복했지?”
“정확히 말하자면 21번이네요.”
“전쟁을 치른 횟수는?”
“15번이요. 아, 죽은 횟수는 물어보지 마세요. 저도 다 못 셌으니까.”
“그럼 네가 만난 마스터 클래스의 영웅들은 몇 명이지?”
“음……. 총 26명이요.”
성좌의 시련을 실패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마치 티그리스가 회귀한 것처럼 말이다.
트리샤는 수없이 많은 죽음을 경험해 봤고, 수없이 많은 도전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트리샤는 사람이 살면서 단 한 번 겪어보기도 힘들 경험을 수차례 겪었다.
트리샤는 성물을 찾아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전쟁 영웅들을 가까이서 봐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라 또는 민족 또는 세계를 구한 영웅들이었다.
트리샤는 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었으며 검을 간접적으로 배웠고, 그들의 전투 방식을 배웠다.
한 명의 영웅이 아닌 26명의 마스터 클래스 영웅들을 바로 옆에서 비교 분석해 가며 봐왔을 테니, 보는 시각이 많이 변화했을 것이다.
그래서 5년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군. 어떻게 21번이나 성좌의 시련을 겪었는데, 그렇게 젊을 수 있지?”
7년 전부터 바로 성물 모험가 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하다.
성물과 던전의 위치를 찾아내는 시간도 있고, 수없이 많이 실패하고 도전하면서 걸리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트리샤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게 있진 않아요? 어떻게 성좌의 시련을 수십 번이나 실패했는데 죽지 않았는지?”
라칸이 성좌의 시련에 빠졌을 때 죽지 않은 것은 치유 마법사들의 보살핌 덕분이었다.
그런데 던전에 들어가면 그 누구도 케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사람은 물만 안 마셔도 일주일이면 죽는다.
특히 트리샤나 티그리스 같은 기사들의 경우에는 신진대사가 워낙 빨라서 5일만 굶어도 아사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트리샤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뭐, 이건 비밀이긴 한데 티그리스 경이니까 말씀드릴게요.”
트리샤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밤하늘을 담은 듯한 수정구를 꺼냈다.
겉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이게 별바라기의 천체지도라는 거예요.”
“모험가들이 원하는 3대 보물 중 하나로군.”
북극성의 망토, 천사 날개의 축복, 별바라기의 천체지도.
북극성의 망토는 현재 황실에서 보관하고 있고, 천사 날개의 축복은 사라졌고, 별바라기의 천체지도는 어디에 있는지 알려진 바가 없었다.
특히 별바라기의 천체지도는 모든 성물 모험가들의 꿈과 같은 지도였다.
성좌의 던전과 성좌의 시련이 내려진 성물들을 찾아낼 수 있는 성물이니까.
“오. 생각보다 잘 아시네요. 이 천체지도의 능력이 단순하게 성물을 찾아내는 능력만 있는 게 아니라 성좌의 던전이나 성좌의 시련을 들어갈 때, 모험가의 몸을 온전히 지켜주는 능력도 있어요. 덤으로 성좌의 시련의 시간과 현세의 시간의 비율을 10배까지 늘리거나 줄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현세의 시간이 하루 지나면 성좌의 시련 속 저는 10일이 지나는 것처럼 말이죠.”
티그리스가 알기론 저 성물은 길리온 왕국의 매튜 왕자가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트리샤가 갖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트리샤가 죽으면서 자연스럽게 매튜 왕자에게 흘러간 모양이군.’
조만간 미소 짓기 훈련을 위해 황녀를 만날 때, 이 내용은 수정해야 한다고 전해줘야 할 것 같았다.
트리샤는 별바라기의 천체지도를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아무튼 요약하자면 5년 동안 티그리스 경과 함께 24시간을 계속 훈련해야 주문 사냥의 술을 익힐 수 있다는 거네요? 아이린이나 샤를로트처럼 말이죠?”
“그렇다. 그런데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너도 알고 있을 거다.”
“티그리스 경이나 저나 모두 바쁠 테니까요.”
티그리스나 트리샤나 단순히 검만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티그리스는 이제 검술을 수련할 수 있는 시간보다 전쟁터에 나가거나 각종 작전을 수행해야 할 날이 더 많아질 것이다.
트리샤도 마찬가지로 리베르 활동이나 성물을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훈련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럼 포기하는 게 맞을까요?”
“방법이 총 두 가지가 있다.”
“네? 두 가지나 있다고요?”
“그렇다. 하나는 네가 소드 마스터가 되면 된다.”
“……엥?”
트리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주문 사냥의 술을 익힐 수 없으니 소드 마스터가 되라니. 그냥 하지 말라는 소리 아니에요?”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넌 소드 마스터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네? 제가요?”
“물론 혼자 수련한다면 주문 사냥의 술을 배우는 것보다 오래 걸리겠지만, 내가 도와준다면 2년 내로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다.”
트리샤는 티그리스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트리샤는 마스터 클래스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수도 없이 많이 봐온 사람이다.
트리샤는 소드 마스터를 이렇게 평한다.
검으로 마법을 부리는 경지.
트리샤는 언감생심 꿈도 꿔보지 못할 수준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넌 다른 사람이라면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죽음을 수차례 경험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전설 속 영웅들과 함께 검을 휘둘렀지. 그 영향을 받아 원래는 없어야 할 영감이 싹을 틔우기 직전이다.”
트리샤의 육체 상태와 오러 운용력 자체는 이미 소드 마스터가 되고도 남을 수준이다.
당장에라도 충분한 영약만 있다면 여섯 번째 고리를 만들 수 있었고, 티그리스의 지도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트리샤의 영감을 다잡아줄 수 있다.
티그리스는 트리샤의 영감의 방향이 어디로 잡혀 있는지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소드 마스터가 된 후에 주문 사냥의 술을 배우면 쉽게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땐, 네가 검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완벽하게 깨우친 상태일 테니까.”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시겠죠?”
“그렇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그걸 어떻게 티그리스 경이 알려주실 수 있는 건데요? 티그리스 경은 아직 소드 마스터가 아니시잖아요.”
“그렇다면 내가 루카스를 죽인 것은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아뇨.”
“그럼 5성 기사에 불과한 내가 심상을 담은 검을 사용할 수 있는 거는? 20살에 나이에 5성 기사가 된 것도 이해가 가나?”
“……천재시니까 가능한 거 아니에요?”
“그래. 그러니 너는 나를 믿고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나는 네가 말하는 천재로 만들어줄 수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너는 그 가능성이 있으니까.”
자신을 천재로 만들어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트리샤는 머리가 복잡했다.
지금 자신이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게 있었다.
티그리스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비밀을 갖고 있다.
그게 바로 이 엄청난 실력과 자신감의 이유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 두 번째 방법은 뭔가요?”
“네가 주문 사냥의 술을 배우려는 이유가 던전에 들어가기 위함이지 않나?”
“네. 그렇죠?”
“그럼 내가 대신 들어가도 상관이 없겠군.”
“……어? 어?!”
트리샤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지?”
“난 엘프들의 주문 사냥의 술과 월녀의 검무를 익히고 있다. 엘프들이 사용하는 형태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 모두 다 알고 있지. 그럼 나는 그 던전의 입장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사람이겠군.”
“도대체 어떻게…… 아 비밀이라고 했지.”
트리샤는 티그리스의 비범함에 혀를 내둘렀다.
트리샤는 역사 속 수많은 영웅들을 만나봤지만, 티그리스처럼 격이 다른 천재는 본 적이 없었다.
따지자면 페레이라 정도랄까?
‘페레이라하고 비교하기엔…… 음…….’
아무튼 티그리스는 지금 현 상황에서 제일 필요한 사람이었다.
“혹시 던전 입장에 인원수 제한이 있나?”
“엘프들의 검술을 익히고 있는 사람 한 명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외하면 인원수 제한은 없긴 한데…… 정말로 같이 들어가 주실 생각이세요? 그 던전을 깨는 데 1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어요.”
“당연하겠지만 지금 당장 그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황국은 키메라와의 전쟁을 선포한 상태니까. 황국의 수사관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어……. 그렇긴 하겠네요.”
트리샤는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런데 첫 번째 방법이든 두 번째 방법이든 티그리스 경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겠지.”
“혹시 대가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성물이나 이런 걸 원하시면 제가 최대한 구해볼게요.”
“아니, 그런 것은 필요 없다.”
티그리스는 트리샤와 대련을 해보며 느낀 것이 있다.
트리샤는 아이린이나 샤를로트만큼 재능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투 센스가 남달랐다.
워낙 역사적인 전쟁터를 많이 다녀 봤다 보니 전투 시야도 좋고, 얕은수엔 걸리지도 않았으며, 그 무엇보다 전투 시 검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물론 진짜 사용하는 검은 쌍검인 것 같지만.’
요지는 지금 당장 티그리스와 전쟁이나 작전을 나가도 기용할 수 있는 유능한 인적 자원이라는 것이다.
이런 유능한 인재를 그냥 놓칠 순 없었다.
“널 소드 마스터로 만들어주겠다. 그리고 네가 원하는 던전에도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바로 들어가 주도록 하지. 대신, 5년 동안 내 밑에서 일을 해라.”
“네? 5년 동안 일을 하라는 게…….”
“내 기사가 되라는 것이다. 기사가 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제자가 되어도 좋다. 다른 것은 바라지 않으마.”
이런 조건을 걸 줄은 전혀 몰랐기에 트리샤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정말 다른 조건은 없나요? 5년은 좀…….”
“다른 건 없다.”
어차피 곧 로타와 아르펨과의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트리샤가 성물을 얻으러 던전을 들어갈 시간이 없었다.
“어……. 그럼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나요?”
트리샤가 그냥 자유 모험가 신분이라면 그냥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트리샤는 수인 해방 집단 리베르 소속이다.
트리샤가 리베르 내에서 다소 행동이 자유로운 자금 조달원 신분이긴 하지만 5년 동안 티그리스의 밑에서 묶이는 것은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티그리스도 트리샤가 리베르 소속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마든지 주지.”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저 밖에 볼일이 있거든요. 혹시 잠시 나갔다 와도 될까요?”
트리샤는 현재 암살자들에게 노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마 이미 트리샤가 티그리스의 펜트하우스에 있다는 것이 알려졌을 것이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암살자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네가 직접 해야 하는 일인가?”
“네. 짐도 챙겨야 하고, 은행 업무도 좀 봐야 해서요.”
티그리스는 트리샤가 드워프와 해당 내용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혹시 신분을 감출 수 있는 아티팩트 같은 게 있나?”
“그것보다 더 좋은 게 있죠.”
트리샤는 씨익 웃으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검은 망토를 하나 꺼냈다.
검은 망토엔 고급스러운 금색 고양이 수가 놓여 있었다.
“은묘의 망토라고 해서 몰래 어디 갔다 올 때 좋은 성물이에요.”
티그리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 망토도 티그리스가 아주 잘 알고 있는 망토였다.
저 성물은 회귀 전 아르펨이 사용하던 성물 중 하나였다.
단순히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주고 기척을 없애는 능력뿐만이 아니라, 순간이동 능력도 있어서 도망칠 때 굉장히 좋은 성물이었다.
저 성물을 이용해 티그리스의 추적을 번번이 벗어났었기 때문에 발견하면 제일 먼저 찢어버리거나 회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저 성물이 트리샤의 손에 들려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럼 오늘 저녁까지 돌아올게요. 아, 경비들에겐 미리 얘기해 주세요.”
“알겠다.”
“아, 맞다. 샤워실 좀 쓸게요. 좀 꿉꿉해서.”
“레니를 따라가라. 안내해 줄 거다.”
“감사합니다!”
트리샤는 레니의 뒤를 따라 샤워실로 향했다.
* * *
어스름이 지는 저녁.
라칸은 티그리스의 서재에 들어왔다.
“이야 이 펜트하우스 정말 좋네요.”
“와서 앉아라.”
“넵!”
라칸은 군말없이 자리에 착석했다.
“이 펜트하우스로 오면서 뭐를 봤지?”
라칸은 티그리스가 단순히 차나 한잔하자고 부른 게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곧바로 이런 질문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미 라칸은 많은 것을 파악해 둔 상태였다.
“파파라치로 위장한 암살자들이 많다는 거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인퀴지터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지?”
“사실 좀 난리가 난 상태이긴 해요. 왜 노르베르드 타워로 암살자들이 몰려들었는지 진상 파악을 하고 있는 중이죠. 물론 스승님은 대충 감을 잡으신 것 같긴 하지만요.”
라칸은 품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트리샤였다.
“이 사람 때문이죠?”
“그렇다. 히드라는 뭐라고 하지?”
“인퀴지터와 황금 기사가 나서려고 하는데, 혹시 직접 움직이실 거냐고 물어보라고 하셨어요.”
“그래. 나도 움직일 거다.”
“으음……. 그렇군요. 그런데 이 트리샤라는 사람이 교관님이 직접 움직일 만큼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렇다. 아마 나 다음으로 차기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으니까.”
“헐…….”
“헐?”
“아, 이건 한국말인데. 그냥 어이없다는 뜻이에요. 아무튼! 저를 부르신 이유가 정확히 뭔가요? 이 사람들을 모두 찾아오면 되나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넌 이 사람들의 위치를 파악할 때마다 내게 수정구로 보고해라. 그럼 내가 직접 찾아가 죽이겠다.”
“음……. 일단 알겠습니다. 그런데 평일에도 찾아야겠죠?”
“한시가 급한 일이니까.”
“평일에도 외출할 수 있게 외출증만 써주시면 가능할 것 같아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해주마.”
“넵! 알겠습니다!”
그때, 라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신규 퀘스트!]살인 청부 업자들을 잡아라!
살인 청부 업자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티그리스 경에게 보고할 때마다 포인트를 얻습니다!
보상: 한 명당 500포인트.
기한: 일주일.
“오! 퀘스트 떴어요! 이 살인 청부업자들을 잡으라는데요?”
“마침 잘됐군. 그리고 너무 위험하면 발을 빼도록 해라. 이들 중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살인 청부업자들 중에 무려 고리 5개짜리 모험가를 암살할 수 있는 실력자가 있을 수 있으니까.”
라칸은 목에 걸린 루비 목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목걸이가 있는데 뭐가 무섭겠어요. 그리고 3등 보고에서 가져온 방어용 아티팩트도 있어요.”
라칸은 자신의 팔찌를 가리켰다.
팔찌는 평범한 패션용 팔찌 같아 보였지만 무려 5서클 짜리 ‘앱솔루트 배리어’ 마법이 3중으로 걸려 있었다.
검강을 사용할 수 있는 소드 마스터가 아닌 이상 3중 배리어를 단번에 깨부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티팩트를 너무 맹신하지 말아라. 수준 높은 마법사는 아티팩트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으니까.”
“넵!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내일부터 바로 움직일게요.”
라칸은 티그리스의 서재를 빠져나오기 전에 발을 멈췄다.
“아, 그런데…….”
“무슨 일이지?”
라칸은 잠시 눈알을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아이린하고 샤를로트 선배랑 리니아랑 같이 움직여도 될까요?”
“왜지?”
“어……. 그러니까…… 뭔가 아티팩트만으로는 조금 걱정되기도 하고…… 호위가 필요할 것…….”
“세 사람이 부탁했나?”
라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티그리스가 라칸만 믿고 일을 맡긴다는 것에 둘이 다소 불만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제인이 슬쩍 와서 세 사람이 자신들을 너무 못 믿어주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는 걸 전해줬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세 사람과 같이 움직여라. 대신, 네가 판단했을 때 부주의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곧바로 되돌려 보내라.”
“네? 제가 판단하라고요?”
“그렇다. 이제 두 사람은 슬슬 움직여 줄 때가 되었으니까.”
리니아는 아직이긴 하지만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이제 티그리스와 함께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리니아까지 움직일 필요는 없지만 리니아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눈치를 계속 보이고 있었다.
그러니 한 번은 믿어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라칸. 네가 이번 수색 작전의 팀장이다. 세 사람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내게 보고할 수 있도록 해라.”
갑자기 머리에 감투가 쓰이니 라칸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신규 퀘스트!]수색 작전의 팀장으로서 티그리스에게 인정받기.
보상: 1,000포인트.
그 부담은 퀘스트 한 방에 날아가 버렸다.
1,000포인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의 라칸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말과 똑같았으니까.
라칸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알겠습니다. 교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