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66)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66화
임무(1)
샤를로트와 아이린 그리고 리니아는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쩡-!
샤를로트의 검과 리니아의 검이 부딪혔다.
리니아는 샤를로트의 검을 간신히 비켜 막아냈다.
원래라면 샤를로트의 몸이 열린 지금 반격해야겠지만 반격하지 않았다.
지금 반격해 봤자 샤를로트는 피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피하면서 잠시나마 리니아가 상대적으로 우위에 서겠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리니아는 그것보다 확실하게 샤를로트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타이밍에 공격하길 원했다.
리니아가 원한 타이밍은 그리 멀지 않았다.
아이린이 샤를로트의 뒤에서 나타났다.
훙-!
아이린의 매서운 롱소드가 샤를로트의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온다.
샤를로트는 보지도 않고 옆으로 돌아 피했다.
티그리스가 가르쳐 준 감지계 오러 운용술 ‘복합 감지’ 덕분이었다.
그러나 피하면서 몸의 균형이 흐트러졌고, 리니아는 그 틈을 노려 샤를로트의 복부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절대로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공격이었다.
쩡-!
그러나 아이린이 대신 막아주었다.
뒤이어 샤를로트의 검이 리니아를 향해 날아가고 리니아는 뒤로 물러나 피했다.
셋은 한바탕 공방이 이어진 후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렇게 바로 옆 사람이 한순간에 적이 되기도 하고 아군이 되기도 하는 이 훈련법은 ‘트라이앵글 훈련’이라 불린다.
이 트라이앵글 훈련은 판단력과 세 사람의 유대감을 늘리며 서로의 전투 스타일에 대해 알아가기 위한 실전 훈련법이었다.
검술을 잘한다고 해서 전투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검술은 전투를 위한 도구 중 하나일 뿐이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빠른 판단력과 동료와의 연계 플레이다.
티그리스는 이 두 요소를 기르기 위해 이 트라이앵글 훈련법을 선택했고, 이 훈련은 이 세 사람에게 굉장히 잘 맞아떨어졌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리니아는 주저앉았다.
리니아의 왼손에 걸려 있던 푸른색 팔찌가 빛을 잃었다.
배리어 아티팩트에 들어 있던 마나 잔량이 다 소모된 것이었다.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리니아의 상태를 확인했다.
“리니아 괜찮아?”
“네. 괜찮아요.”
상대적으로 두 사람보다 약한 리니아는 이 트라이앵글 훈련을 할 때 제일 많이 졌다.
그러나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리니아가 얼마나 빨리 발전했는지 알고 있었다.
이 훈련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거의 한 달 동안 패배를 전담했던 건 리니아였다.
그러나 지금은 간혹가다가 샤를로트나 아이린이 질 때도 있었었다.
리니아는 난전 상황 속에서 유리한 포지션을 잡으며 확실한 타이밍에 공격을 집어넣었고, 그 공격은 샤를로트와 아이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러나 리니아는 여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리니아는 빨리 샤를로트와 아이린의 수준까지 올라가고 싶었다.
그래야 티그리스 오라버니가 자신을 믿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라칸을 믿어주듯이.
그때, 리니아의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라칸이었다.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검을 내려놓고 라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라칸의 손엔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잠깐 얘기 가능할까요?”
* * *
라칸과 샤를로트, 아이린 그리고 리니아는 테라스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그나마 라칸과 말문을 튼 아이린이었다.
“스승님이 왜 널 부르신 거야?”
“임무를 하나 내리셨어. 임무 종류는 전에 케일 자작을 찾아내는 것과 결이 같은 수색 임무고.”
“그럼…….”
“잠시만 아이린. 나 말 다 끝나고 질문을 해줬으면 좋겠어.”
라칸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제국대학에서나 서열전에서 보여줬던 헤실거리던 표정과는 전혀 다른 진중한 표정이었다.
라칸은 서재를 나올 때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왔다.
세 사람에게 절대 휘둘리지 말자고.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무려 고리가 3개고 리니아는 고리가 2개다.
반면 라칸은 이제 1서클 공통 마법을 다룰 줄 아는 초짜 마검사일 뿐이다.
그런데 티그리스는 이 수색 임무의 책임자 자리를 라칸에게 주었다.
이번 임무에 무력이 아니라 수색 능력이 중요한 것도 있겠지만, 티그리스가 라칸이 이 세 사람을 제대로 이끌어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라칸은 티그리스의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
“고마워. 그럼 계속 이어나갈게. 티그리스 교관님께선 너희도 이 수색 작전에 참가해도 된다고 하셨어. 하지만 방해가 되거나 불필요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내 판단에 따라 곧바로 돌려보내라고 하셨지.”
샤를로트는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럼 라칸 네가 이번 작전의 리더라는 거네?”
“맞아요. 선배.”
“그럼 우리가 맡게 될 임무는 뭐야? 똑같이 너랑 같이 수색을 하는 건가?”
“아뇨. 세 사람은 저를 지켜주는 호위 임무예요.”
“호위?”
“일단 이번 임무에 대해 설명해야겠네요.”
라칸은 트리샤를 노리는 암살자 목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번 임무의 목표는 트리샤 씨를 노리는 암살자들을 찾아내 티그리스 교관님께 곧바로 보고하는 거예요.”
아이린은 살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트리샤 씨가 노려지고 있다고?”
“네. 정확한 이유는 저도 몰라요. 아마 티그리스 교관님은 아시겠지만 저희가 알아서 좋을 게 없는 내용이니 알려주시지 않았을 거예요. 아무튼, 저희는 이 21명의 암살자들을 찾아내 티그리스 교관님과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 수정구로 위치를 보고하면 돼요.”
“우리가 직접 처리하면 안 돼?”
“그건 저희에게 내려진 임무가 아니니까 하면 안 돼요. 물론 암살자가 눈치를 채고 공격해 오는 경우엔 어쩔 수 없겠지만요. 하지만 그런 상황은 되도록 일어나면 안 되겠죠.”
라칸은 트리샤의 사진을 올려놓았다.
“트리샤 씨는 공식적으로 고리 3개의 모험자로 알려져 있지만, 암암리에 소문이 퍼진 건지 비공식적으로는 고리 4개의 모험가로 취급받는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성물들도 많이 들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있어서, 꽤 수준 높은 암살자들이 모여들었죠.”
“그럼 트리샤 씨는 고리가 4개인가?”
“아뇨. 5개라고 알려주셨어요.”
아이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기껏해봤자 20대 중반처럼 보이는데 고리가 5개라고? 어떻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티그리스 교관님께서 그렇게 알려주셨거든.”
“그럼 우리가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 고리 5개면 혼자서도 이 사람들은 다 처리할 수 있을 텐데?”
“티그리스 교관님께서 생각이 있으시겠지. 우리는 이 21명의 위치를 파악해서 티그리스 교관님께 알려주면 되는 거고. 우린 그것만 하면 돼.”
아이린과 세 사람은 일단 알겠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찝찝하긴 하지만 이게 라칸 팀에게 주어진 임무라면 일단 해내는 게 중요한 거니까.
리니아는 암살자들의 신상 명세를 하나하나 훑으며 말했다.
“그런데 고리가 3개이거나 4서클 마법사들이 대부분이네요? 고리 4개짜리로 알고 있으면 최소 고리가 5개거나 5서클 마법사가 노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 사람들은 전부 개개인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최소 3명에서 8명까지 한 팀으로 구성되어 있죠.”
“아하…….”
그리고 애초에 그렇게 높은 수준의 프리랜서 암살자는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런 암살자들은 국가나 정보기관에 고용되어 흑색 작전을 펼치는 데 사용된다.
국가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받을 수 있고, 따박 따박 안정적으로 돈이 나오는데 굳이 프리랜서로 일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은 프리랜서로 나오는 순간 모든 국가들의 표적이 된다.
녀석들의 날카로운 단검이 자신들의 목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보호해 줄 국가에 몸을 의탁하는 경우가 많았다.
라칸은 서류를 정리했다.
“일단 독이 주특기인 포이즈너 암살단, 마법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그믐달 암살단, 그 외에 군소형 암살단까지 총 6개 팀으로 구성되어 있지.”
“……이런 정보는 어떻게 모았어요?”
대부분이 인퀴지터에게서 나온 정보들이지만, 라칸이 인퀴지터인 것은 비밀이기 때문에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티그리스 교관님이 구해다 주신 거야. 나도 정확한 건 몰라.”
“아하…….”
세 사람은 티그리스가 구해 왔다는 말에 바로 납득했다.
샤를로트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수색 작전이라고 하면 은밀하게 조사하는 게 중요한 거 아니야? 우리나 너나 얼굴이 잘 알려져 있어서 대놓고 수색하기 시작하면 암살단원들이 전부 도망치거나 역으로 공격해 올 텐데?”
“그러니까 변장해서 은밀하게 수색해야죠.”
“……변장? 변장 아티팩트를 사용하겠다는 건가?”
“변장 아티팩트는 황국 법상 만드는 것도 사용하는 것도 불법이라서 사용은 불가능해요.”
“그럼 어떻게 해?”
“뭐 다른 방법이 있겠어요? 거지로 변장한다면 진짜 거지 옷을 입고, 회사원으로 변장해야 한다면 회사원 옷을 입어야겠죠.”
세 사람은 미묘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가 그런 걸 잘할 수 있을까?”
“그런 건 제가 전문이죠. 케일 자작을 잡을 때, 거지로 분장해서 잡아낸 경험이 있어요.”
“오……. 그럼 뭐로 변장하게?”
“황도 빅토리에에 어딜 가도 있고 네 사람이나 뭉쳐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며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껴도 되는 직업이 하나 있죠.”
“그게 뭔데?”
라칸은 씨익 웃었다.
“환경미화원이요.”
* * *
트리샤는 저녁 늦게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티그리스 경의 제자들하고 라칸이라는 제국대학 1학년짜리가 암살단원들을 추적하고 있다고요?”
“그렇다.”
트리샤는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걱정 안 되세요? 제자들이 뛰어난 검술가라곤 하더라도 상대는 프로 암살자들이에요. 그놈들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요. 추적당하고 있다는 거 눈치채면 곧바로 쓱싹하고 도망칠 수 있다고요.”
“불가능한 일이었다면 맡기지 않았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트리샤는 머리를 북북 긁으며 말했다.
“아오. 어린애들 죽으면 꿈자리 사나운데.”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너랑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
“제국 나이로는 25살이긴 하지만, 진짜 햇수로 따지면 42살이거든요. 티그리스 경도…… 아녜요. 이건 말실수했네.”
티그리스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래서 생각은 해봤나?”
“네……. 뭐…….”
트리샤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입을 뗐다.
“티그리스 경…… 아니지. 티그리스 공자님의 직속 기사가 되겠습니다.”
말레우스와 소라에게 트리샤와 티그리스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전부 전해주자, 소라는 답답한 마음에 빽 소리쳤다.
-트리샤! 이걸 고민하고 있어?!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게 지원해 주겠다는데 당연히 해야지!
-아니, 그래도 리베르 활동에 차질이…….
-네가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다면 5년은 충분히 기다려 줄 수 있어. 자금은 조금 빠듯하긴 하겠지만 그거야 아껴 쓰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말레우스도 거들었다.
-최근 네가 너무 성좌의 시련에 빠져 있는 것도 걱정되었다. 티그리스의 옆에서 수련도 하면서 황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면밀하게 관찰해라. 뭐, 그대로 네 삶을 살아도 좋고.
말레우스는 트리샤가 리베르 활동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트리샤가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트리샤를 진심으로 딸처럼 아끼기 때문이었다.
수인과 드워프들 사이에서 살아봤자 트리샤는 외로움만 더욱 증폭될 뿐이다.
말레우스는 밀림을 위해 헌신을 해주는 트리샤의 모습이 정말로 고마웠지만, 그만큼 트리샤가 인간의 삶을 살며 행복해지길 바랐다.
-됐어요. 뭐 말리지 않으니까 티그리스의 기사가 될게요. 연봉도 잔뜩 올려 받으면, 자금 조달도 문제없을 테니까요.
-고집 세긴……. 그 돈으로 결혼 자금이나 모아라.
-참나. 나 결혼 안 할 거라니까.
트리샤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나저나 기사 서임은 처음 해보는데 어떻게 하는 건가요? 지금 무릎 꿇으면 되나요?”
“서임식은 따로 필요 없나?”
“참나. 제가 뭐 그런 걸 따지겠어요? 그냥 대충 후다닥 하죠. 아. 계약서! 계약서는 있어야 해요! 저 연봉 많이 받고 싶거든요.”
트리샤의 눈이 금화처럼 반짝이는 것 같았다.
“계약서는 나중에 준비해 주겠다. 연봉은 찬찬히 생각하고 말하거라. 서임식은 계약서를 작성하고 난 후에 하도록 하지.”
“넵! 알겠습니다! 아, 맞다.”
트리샤는 오늘 말레우스에게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 네 정체에 대해선 모르더냐?
-정체? 뭐요? 아, 저 고디바 왕국의 공주라는 거 바로 들켰는데.
-……그것도 알더냐?
-네? 그것도 라뇨?
-흠…….
말레우스는 트리샤가 믿기 어려운 말을 했다.
티그리스가 네메시스와 말레우스가 수인 해방 집단 리베르 소속이란 것을 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트리샤도 리베르 소속인 것을 아는 건 아닐까?
“뭐지?”
“……아녜요.”
궁금증이 몰려왔지만, 트리샤는 이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 줄도 모르겠고, 티그리스가 자신이 리베르 소속인 것을 알든 모르든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자신이 리베르 소속 요원이란 것을 다 털어놔야만 했다.
‘알고 있다면 언젠간 털어놓겠지.’
트리샤는 티그리스를 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굉장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 판단했다.
트리샤는 수없이 많은 영웅들을 만나며 대화를 나눴다.
그들에겐 모두 비밀이 있었고, 그 비밀들은 감춰져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트리샤가 생각했을 때 이런 평화의 시대가 아니었다면, 티그리스는 분명히 세상을 구할 영웅이 되었을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티그리스가 자신에게 많은 것을 숨기는 이유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트리샤는 시계를 봤다.
“그나저나 저 라칸이라는 애는 왜 아직도 안 갔대요? 아직도 테라스에서 계속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던데.”
티그리스는 귓가로 들려오는 라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일단 작은 암살단들부터 노리는 게 맞아요. 포이즈너나 그믐달 같은 녀석들은 쪽수가 많아서 교대로 돌아가면서 노르베르드 타워를……
“라칸은 책임감이 강하다. 그래서 라칸에게 믿고 맡기는 거다.”
“흐음~ 그렇군요.”
트리샤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저 하나 부탁이 있는데요.”
“뭐지?”
“그게…….”
트리샤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에이. 답답해. 그냥 속 시원하게 다 말할게요. 저 어린 꼬마들이 저를 도와주겠다고 저렇게 밤늦도록 작전 회의하는데 좀 도와주고 싶어서요.”
“어떻게 도와줄 생각이지?”
“쟤네들 뒤따라가다가 위험해지면 슥 나타나서 구해주려고요. 전 은묘의 망토가 있으니까 절대 안 들킬 거예요.”
티그리스의 안목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사도 아니고 용병도 아닌 어린 것들을 밖에 내놓고선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트리샤는 모험가로서 개인주의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하지만 특유의 오지랖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 모험가를 등쳐먹으려는 사기꾼들을 만나면 혼쭐을 내주었고, 가만히 술을 먹다가 꽐라가 된 여자를 어떻게든 해보려고 달려드는 원숭이 같은 놈들을 만나면 가랑이 사이를 걷어찼다.
그렇다고 해서 거지들에게 적선을 한다거나 봉사활동을 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트리샤는 말 그대로 꼴리는 대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밀림을 지키는 밀림의 수호대와 인연이 닿았고, 수인 해방 집단 리베르에 들어오긴 했지만……
아무튼 트리샤는 저 라칸 팀 중의 한 사람이라도 죽거나 다치면 찝찝할 것 같았다.
그냥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다.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어? 허락해 주시는 거예요?”
“검을 수련하는데 마음이 다른 데로 가 있으면 수련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네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맞겠지.”
“넵! 감사합니다!”
묵은 체증이 날아가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 그런데 그러면 저는 저를 죽이려는 암살자를 쫓는 라칸 팀을 지키는 비밀 경호원이 되는 거네요? 이거 관계가 굉장히 재밌는데요?”
“…….”
* * *
다음 날 늦은 저녁.
네 사람은 라칸이 준비한 환경미화원 복장을 갖춰 입고 마스크를 쓴 채 골목을 나왔다.
샤를로트는 자신의 복장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라칸.”
“왜 그러시죠?”
라칸이 준비한 환경미화원복은 리얼함이 넘쳤다.
넘치다 못해 흘렀다.
신발과 팔에는 구정물과 각종 음식물 쓰레기들이 묻어 있었고, 악취가 굉장히 심했다.
게다가 장갑도 여러 번 쓴 것처럼 굉장히 더러웠으며, 모자도 이마가 닿는 부분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냥 거의 거지꼴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옷 전부 어디에서 난 거야?”
“진짜 환경미화원 아저씨들 아줌마들 옷을 사서 구해 온 거죠. 비밀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웃돈을 쥐여주고 사 온 거라 비싼 거예요.”
라칸을 제외하면 세 명은 모두 고귀한 귀족 출신이다.
샤를로트는 드높은 프리하르덴 백작 가문의 후계자고, 아이린은 용을 베어낸 벨프 가문의 후계자이며, 리니아는 황도의 영웅 티그리스의 여동생이다.
평민들은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값비싸고 좋은 옷을 입고 다니던 그녀들에게 있어서, 이렇게 더러운 옷을 입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제는 티그리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환경미화원이든 거지든 되겠다며 나섰지만, 막상 이렇게 더럽고 냄새나는 옷을 입으니 버티기 힘들었다.
“그럼 이 마스크…….”
“네. 당연히…….”
“말하지 마. 나 그냥 모른 채로…… 우엑…….”
샤를로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 기분 나쁜 눅눅함과 악취의 원인을 알 것만도 같았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세상엔 알려지지 않아야 할 비밀도 있는 법이니까.
[퀘스트 성공!]샤를로트, 아이린, 리니아에게 더럽고 냄새나는 환경미화복 입히기!
100포인트 획득!
라칸의 손이 불끈 쥐어졌다.
노린 것은 아니지만 포인트를 버니 기분이 좋았다.
아이린은 바람이 숭숭 뚫린 신발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어서 시작하죠. 환경미화원들의 몫을 우리가 해주기로 했기 때문에 골드라인 스트리트부터 시작해서 세시뇽 스트리트까지 전부 청소해야 해요.”
“……알았어.”
라칸은 리어카를 끌기로 했고, 세 사람은 라칸을 빙 둘러싼 채로 집게와 마대를 들고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라칸을 호위하기 제일 좋은 포지션을 구상한 결과 이게 제일 나았다.
라칸과 세 사람이 오늘 노리기로 한 암살단은 소형 암살단들이었다.
이름은 각각 ‘검지 암살단’과 ‘엄지발가락 암살단’, 마지막으로 ‘오른눈 암살단’이었다.
모두 2명에서 4명으로 구성된 작은 암살단으로 수준도 그리 높지 않은 암살자들이었다.
암살단의 이름이 사람의 신체 부위로 된 이유는 의뢰인들이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함이었다.
암살자들은 의뢰에 성공했음을 알리기 위해 대상의 신체 부위를 잘라서 의뢰인들에게 가져온다.
검지 암살단은 검지를 가져오고 엄지발가락 암살단은 엄지발가락을 가져오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포이즈너’나 ‘그믐달’과 같은 암살단 같은 경우에는 이 바닥에서 유명해졌기 때문에 특별한 이름이 붙는 것이다.
라칸 팀이 노리는 세 암살단의 은신처는 따로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트리샤를 노리기 때문에 이 노르베르드 타워의 근처에서 잠복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라칸 팀은 바로 노르베르드 타워로 향하지 않고 주변을 빙 돌아서 쓰레기를 주워 담은 뒤 가기로 했다.
“……이렇게 쓰레기가 많았다니.”
세 사람이 본 업타운의 거리는 항상 깨끗했다.
그러나 늦은 저녁이 되자 깨진 병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강아지가 싸 놓은 똥까지 있었다.
리니아는 커다란 바나나 똥을 내려다보며 라칸에게 말했다.
“……이것도 우리가 해야 하나요?”
“당연하죠.”
“……세상에.”
“어서 주워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기 전에.”
리니아는 덜덜 떠는 손으로 근처에 굴러다니는 종이를 주워 덮은 뒤 집게로 집어냈다.
물컹-
“으윽…….”
리니아의 눈에서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리니아는 참아냈다.
그리고 그 똥이 담긴 종이를 마대에 담았다.
아이린이 다른 종이를 주워 들어 똥이 묻은 자리에 내려놓고 신발로 막 비볐다.
그리고 샤를로트가 그 더러운 똥 묻은 종이를 자신의 마대에 집어넣었다.
“……고마워요.”
“뭘……. 어서 일하자.”
세 사람은 서로 검을 맞댈 때보다 지금이 더 친해진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던 네 사람은 노르베르드 타워 앞에 도착했다.
네 사람은 잔뜩 긴장한 채로 쓰레기들을 주웠다.
근처에 파파라치들이 넘쳐났지만, 그 누구도 이 네 사람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만큼 리얼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라칸이 입을 열었다.
“저기 쓰레기 있네. 주워서 좀 가져와 봐.”
세 사람의 눈빛이 더욱 진지하게 변했다.
이 말은 라칸이 암살자를 발견했다는 암구호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