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68)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68화
휴식(1)
트리샤, 아이린, 샤를로트, 리니아 그리고 티그리스는 집으로 돌아왔다.
티그리스는 평소에 잘 입지 않는 검은 양복을 입었고, 네 사람도 비슷하게 검고 격식 있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어제 라칸 팀을 지켜준 경호원들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것이다.
레니는 티그리스의 모자를 받으며 말했다.
“……차 한잔 드릴까요?”
티그리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소파에 앉았다.
트리샤를 포함한 네 사람도 약속한 것처럼 거실 소파에 앉았다.
제인은 가장 울적해 보이는 리니아의 옆에 앉아 리니아의 몸에 기댔다.
“잘 다녀왔어?”
“……네.”
제인은 작게 떨고 있는 리니아의 손을 말없이 잡으며 쓰다듬었다.
제인은 자신이 수호령이라는 것이 이렇게 안타까운 적은 처음이었다.
혼령만 아니었다면 리니아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제인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리니아의 떨림이 금세 잦아들었다.
따뜻한 차가 테이블 위에 올라오자 티그리스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작전의 성패와 관계없이 희생은 불가피하다.”
“노르베르드만 하더라도 검은 늑대 기사단에서 매년 5명에서 7명씩, 일반 병사들의 경우엔 10~20명씩 전사자가 나온다. 매년 천만 명이 타고 다니는 마력 열차를 지키는 트레인 가드의 경우에는 300~400명씩 꾸준히 전사자가 나온다. 회생할 수 없는 중상을 입은 사람들의 숫자까지 포함한다면 그보다 훨씬 많지.”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맡은 임무에 실패한 걸까? 아니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이 황국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멸지의 몬스터들이 남하하지 못하고, 매년 천만 명의 승객들을 수송하는 마력 열차는 아무 이상 없이 철로를 달린다.”
“너희를 지켰던 경호원들의 희생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희생의 가치는 너희들에게 달렸다. 너희들이 얼마나 이 황국에게 보탬이 되느냐에 따라 그들의 죽음의 값어치가 달라진다.”
티그리스는 표정이 어두운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충분히 주마. 다만 검을 드는 것은 금지하겠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훈련해 봤자 오히려 독이 될 테니까.”
세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더 강도 높은 훈련을 하겠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훈련을 하지 말란 이야기가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산책을 나가도 좋고 사람을 만나도 좋고 봉사 활동을 해도 좋다. 연극을 보거나 쇼핑을 해도 좋겠지. 훈련이 아닌 달리기나 수영과 같은 다른 스포츠로 스트레스를 해소해도 좋다.”
결코 죽음은 익숙해질 수 없겠지만, 파생되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세 사람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그 지옥 같은 전장을 버틸 수 있다.
“만약 이해가 안 가거든 이것도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임해라.”
샤를로트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좀 지쳐 보이나요?”
샤를로트는 자신이 나약하다는 말처럼 들려 자존심이 살짝 상했다.
이런 일쯤이야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일을 겪고 지치지 않는다면 이상한 거겠지.”
티그리스의 말에 세 사람은 움찔했다.
“원래 작전이나 임무가 끝나면 기사들은 하루나 이틀 정도의 휴식을 받는다. 그 휴식날에 무엇을 하든 상관이 없지만, 너희는 검을 놓고 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셋에겐 검술 외의 취미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검술 훈련이 일이자 취미가 되어버렸다.
이게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나중에 심리적인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무너지기 쉽다.
인간의 마음은 고장 나면 쉽게 고칠 수 있는 기계가 아니니까.
그러니 쌓여 있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이들은 알아야만 했다.
티그리스는 수표책을 뜯어 네 사람에게 건넸다.
수표엔 따로 금액이 적혀 있지 않았다.
“내일까지 충분히 쉬도록. 만약 내일 학교를 쉬어야 한다고 하면 다른 교관들에게 전달해 주마. 그리고 트리샤 너도 내가 따로 부를 때까지 자유행동을 해도 좋다.”
트리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옙. 알겠습니다.”
티그리스는 몸을 일으켰다.
“돈이 필요하면 그 수표를 이용하도록.”
티그리스는 서재로 들어갔다.
* * *
리니아를 포함한 세 명은 수표책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세 사람의 루틴은 굉장히 단순했다.
새벽에 일어나 검을 휘두르고 학교에 갔다가 하교하면 또다시 검을 휘두르고 잔다.
매일이 훈련의 연속이었고 그 일상은 딱히 나쁘지 않았다.
세 사람 모두 천성이 검술사인지라 검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검을 휘두르지 말라고 하니, 마치 마석이 제거된 아티팩트처럼 가만히 멈춰 있었다.
눈동자에 생동감이 전혀 없었다.
‘……중증이네.’
트리샤는 왜 티그리스가 이 세 사람에게 검을 놓고 휴식을 취하라고 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마치 다 타버린 장작 같았다.
셋은 사람 하나를 우습게 죽일 수 있는 암살자들 사이를 거닐며 라칸을 호위한 임무를 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지켜주던 경호원들 9명이 오웬에게 죽고, 심지어 자신들도 그 녀석에게 죽을 뻔한 경험을 했다.
그런 일을 겪고도 마음이 괜찮다고 하면 그건 정신병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올바른 휴식이었다.
‘이거 내가 나서야겠네.’
트리샤는 이런 스트레스 관리 분야에선 전문가였다.
트리샤는 성좌의 시련 속에서 수백 번 죽어보고 수천 번 실패해 봤다.
그건 트리샤가 굉장히 강철 같은 정신력을 갖고 있기 때문도 있었지만, 쌓이는 스트레스를 올바르게 푸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트리샤는 성좌의 시련 속에서 너무 많이 실패하고 정신적으로 힘들 때, 시련의 목표를 포기하고 성좌의 시련 속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멸지의 마왕을 쓰러뜨린 용사 ‘페레이라’, 거인의 왕을 사냥한 버림받은 귀족 ‘티아노 폰 라바테스’와 같은 위대한 영웅들의 업적과 별개로 인간적인 면모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트리샤가 재담꾼이 된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정신적 탈진 상황을 면피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때, 제인과 트리샤의 눈이 마주쳤다.
둘은 거의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뭔가 찌릿하고 통하는 게 있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제인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는 처음 보시죠? 제인이라고 해요.”
“아, 반가워요. 전 트리샤예요. 그런데…실례지만 혼령 맞으시죠?”
“네. 맞아요. 저기 쿠키 잘 굽는 레니의 수호령이에요.”
“세상에 진짜요? 저 실제로 수호령을 보는 건 처음이에요. 아, 성좌의 시련 땐 몇 번 보긴 했지만 이렇게 현세에서 말이에요.”
트리샤와 제인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세 사람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 제가 듣기론 ‘성물 사냥꾼’이라고 하시던데……. 엄청 대단하신 모험가라고 들었어요.”
“대단하긴요. 그냥 좀 성물을 많이 찾은 거죠. 한 21개 정도?”
“21개나요? 어떻게 그렇게 많이 찾으신 거예요?”
“음…… 원래 알려주면 안 되는데……. 이게 제 밥줄이라서요.”
“아, 그래요? 죄송해요. 제가 너무 캐물었죠?”
사실 제인은 트리샤가 ‘별바라기의 천체지도’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건물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대화 내용은 제인의 귀에 모두 들어오니까.
하지만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갔다.
리니아를 포함한 세 사람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물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트리샤는 고심하는 척하더니 입을 열었다.
“여기에 있는 분들은 믿을 만한 분이니까 말씀드릴게요. 대신 정말 비밀을 지켜주셔야 해요. 다른 분들도 아셨죠?”
사람들은 비밀이란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
없던 호기심도 생기고 관심도 생긴다.
아이린과 샤를로트 그리고 리니아는 서로를 잠깐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트리샤는 셋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자 작게 미소 지으며 ‘별바락이의 천체지도’를 꺼냈다.
깨끗한 수정구에 마치 밤하늘을 담은 듯한 아름다운 모습에 세 사람은 절로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이게 바로 별바라기의 천체지도라는 거예요. 아직 그 누구도 성좌의 시련을 깨지 못한 성물들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지도죠.”
성물들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단 말에 아이린의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그럼 전에 용혈검의 위치를 알려주실 수 있다는 말이…….”
“네. 맞아요. 이걸로 알아낼 수 있어요. 아, 기왕 이렇게 된 김에 한번 찾아볼까요?”
아이린은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네. 아……. 잠시만, 그때 분명 의뢰를 하라고 하셨죠.”
“물론 그러긴 했지만 우리 사이에 돈이 오가면 정이 없잖아요?”
“……우리 사이요?”
“앞으로 티그리스 님께 검을 배워야 하는 사이죠. 그리고 그 의뢰 이야기는 뻥이었어요.”
“뻥이요……?”
“저 성물 위치를 알려달라는 의뢰 안 받거든요. 그냥 아이린 씨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거짓말 좀 친 거예요. 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아니…….”
“아아. 일단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리 용혈검이 현세에 있는지만이라도 한번 알아보죠.”
트리샤는 딴말이 나오기 전에 별바라기의 천체지도를 작동시켰다.
“별바라기야. 용혈자리를 찾아다오.”
그러자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이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이 형형색색의 별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우와…….”
레니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에 눈빛을 반짝거렸다.
아름다운 별이 마치 반딧불처럼 바로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너무나도 신비하고 아름다워서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갔다.
그러나 만져지지 않고 레니의 손을 통과했다.
곧이어서 수백 만개의 별들 중 25개의 별들이 서로를 향해 빛을 쏘아냈다.
마치 별이란 이름의 등대가 서로를 향해 인사하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아이린도 입을 쩍 벌렸다.
“저기 있네요. 용혈(龍血)자리.”
이윽고 별의 등대에서 나온 빛들이 어떤 형태를 빚어내기 시작했다.
우주라는 예술가가 빛으로 소조(塑造)를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형태가 완성되자 모두 탄성을 내질렀다.
용혈 자리는 거대한 용의 목에 검을 꽂아 넣은 듯한 위대한 영웅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용의 목에서 나온 붉은 별빛의 피가 은하수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트리샤는 용혈자리에 다가가 손끝으로 만졌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역시 아직 현세엔 없나 봐요.”
보통 성좌가 새로운 성물을 내려줄 때, 최소 5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이 걸린다.
그런데 용혈검이 부서진 지 이제 겨우 3년도 채 되지 않았다.
만약 용혈자리가 빠르게 내려준다고 하더라도 2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였다.
“……만약 용혈검이 현세에 나타나면 바로 알려주실 수 있나요?”
“매일같이 확인은 할 수 없지만, 나타나면 바로 알려 드릴게요.”
아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트리샤 씨.”
아이린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용혈검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떡하고 나타나니 눈이 마치 아름다운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그런데 성좌의 시련을 극복하셔야 하는데 가능하시겠어요?”
“반드시 해야죠.”
“음……. 용혈 자리의 시련은 모험가 등급으로 따지자면 SS급이에요. 제가 알고 있기론 멸지의 마왕이 탄생하기도 전의 일인 데다가, 아시겠지만 모험가가 공략한 것이 아니라 벨프 가문의 초대 가주가 공략한 것이라서 어떻게 성좌의 시련을 공략한 것인지 저로선 알 수 없어요.”
아이린은 주먹을 부서져라 쥐었다.
만약 벨프 가문의 서고가 멀쩡했다면 어떻게든 공략법을 찾아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벨프 가문의 서고는 루카스가 벨프 가문의 흔적을 아예 없애기 위해 모조리 불태워 버렸으니까.
만약 아이린이 ‘용 가르기’를 서고에서 몰래 훔쳐 나오지 않았다면 이것도 그때 함께 불타 버렸을 것이다.
“SS급이면 난이도가 얼마나 어려운 거죠?”
“SS급은 거의 소드 마스터나 대마법사가 한 명 이상 포함된 팀으로 공략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어요. 물론 이것도 굉장히 오래전 이야기라서 정확한 것은 저도 잘 몰라요.”
아이린은 잠시 계산했다.
자신이 2년 내로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시간은 아이린의 편이다.
티그리스가 말하길 아이린은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는 재능을 갖췄다고 분명히 말했다.
꼭 2년이 아니라 3년, 아니, 5년 후에 공략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이린은 용혈 자리를 눈에 담았다.
“불가능은 없어요. 반드시 해야죠.”
트리샤는 별바라기의 천체지도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주변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며 원래 거실의 모양으로 변했다.
트리샤는 아공간 주머니에 천체지도를 담았다.
리니아나 샤를로트나 조금 아쉬운지 입맛을 쩝 다셨다.
별바라기의 천체지도는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굉장히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혹시 또 궁금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찾고 싶은 성좌가 있다면 물어보셔도 좋고 아니면 다른 이야기도 괜찮아요.”
조용하던 리니아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까 오라버니의 직속 기사가 되셨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네. 아직 서임식은 안 해서 기사는 아니에요.”
“오…….”
샤를로트의 눈이 호기심으로 젖어 들었다.
“기사가 되실 정도면…… 정확하게 고리가 몇 개세요? 최소 4개 이상이신 것 같은데?”
“5개예요.”
“네? 5개나 되신다고요?”
“네. 좀 많죠? 성좌의 시련을 많이 겪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요.”
트리샤는 간단하게 자신이 어떻게 고리가 5개나 될 수 있었는지 설명했다.
현세의 나이론 25살이지만 성좌의 시련 때문에 사실은 42살에 고리 5개를 단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영약을 많이 먹기도 하고 했죠.”
“영약은 어떻게 구하셨나요?”
“던전에 들어가면 종종 구할 수 있어요. 그 외에 성물이나 오래된 유물을 팔아서 직접 사기도 했고요.”
트리샤는 셋의 앞에 놓인 백지 수표를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그 돈으로 뭐 하실 생각이세요?”
샤를로트는 머리를 긁적였다.
“……잘 모르겠네요.”
아이린이나 리니아도 마찬가지였다.
세 명 다 귀족답지 않게 검소하게 살아온 터라 돈을 어떻게 써야 할 지 잘 모르는 듯했다.
쇼핑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평상시에 입고 다닐 옷을 사는 정도였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데……. 아, 그러고 보니 여기 밑에 통째로 다 백화점이었죠?”
트리샤는 재미있는 생각이 났는지 씨익 웃었다.
“우리 쇼핑하러 가죠.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돈지랄만큼 쉬운 건 없거든요.”
* * *
저녁 10시 반.
백화점은 원래라면 닫혀야 할 시간이지만, 백화점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백화점에 다른 고객들은 단 한 명도 없고 펜트하우스 식구들밖에 없다는 것이다.
“야호~!”
트리샤의 목소리가 텅 빈 백화점을 메아리쳐 울렸다.
종업원들도 정말 최소 인력을 제외하면 없었기 때문에 백화점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조용했다.
“이야~ 역시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짱이고, 조물주보단 건물주가 100배는 낫네. 이 넓은 백화점을 통째로 빌릴 수 있다니.”
트리샤는 신이 난 듯 이곳저곳을 누비며 상품들을 구경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 가게에 온 것 같았다.
그에 반해 아이린이나 샤를로트 그리고 리니아는 멍하니 트리샤를 쳐다봤다.
트리샤는 그 세 사람이 답답한지 손짓했다.
“뭐 해요! 어서 와서 돈 뿌려야지.”
“그렇게 말씀하셔도…….”
“뭘 사야 할지 모르시겠다?”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쉬운 것부터 시작해야지.”
트리샤는 백화점 관계자를 보며 말했다.
“아멜리아 씨 여기 백화점하고 계약을 맺은 아티팩트 공방들이 몇 개죠?”
“총 125곳입니다. 어떤 공방 물품을 원하십니까?”
“이 사람들 여기사나 여모험가용 필수 아티팩트도 없거든요. 정말 기초적인 것들로 부탁드려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죠?”
아멜리아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곳에서 차를 한잔하고 계시면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잠시 후 아멜리아를 포함한 종업원들은 수십 종류의 아티팩트를 가져와 세 사람에게 대령했다.
아티팩트의 종류는 굉장히 많았다.
옷부터 시작해서 팔찌, 목걸이 귀걸이, 심지어 속옷 형태의 아티팩트도 있었다.
세 사람은 이 기묘한 형태의 아티팩트들을 어디에 사용하는 것인지 당최 알 수 없었다.
아멜리아는 그중 딱 달라붙는 드로어즈형 아티팩트를 꺼냈다.
“이것은 여모험가들이나 여용병들이나 여기사들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 사용하는 아티팩트입니다. 실제로 최소 한 달 동안 외지에서 근무하시는 여기사들의 필수품이죠. 상시 청결 마법이 발동하고 있어서 땀이나 노폐물들을 자동으로 걸러주죠. 한번 작동시키면 2주간 지속됩니다.”
샤를로트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좀 오래가는 팬티…… 란 말인가요……?”
트리샤는 풋! 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건 그 날에 사용하는 겁니다. 샤를로트 씨.”
“그 날?”
“그거 있잖아요. 여자들이 매달 치르는 전쟁.”
“아……!”
아멜리아는 다른 상품들도 소개해 줬다.
“이건 4서클 전신 클린 마법이 들어 있는 아티팩트입니다. 몸 전체를 깨끗하게 씻겨주기 때문에 남녀 상관없이 많이 사용하시죠. 몇몇 분들은 체취를 없애기 위해 사용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 브래지어는 최근 개발된 것으로 끈 형태가 아니라 가슴 부위를 전체적으로 잡아주기 때문에 어깨 결림 같은 것은 없으실 겁니다. 이건 반영구 마법이 걸려 있기 때문에 꽤 비싸지만 최소 3년에서 5년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좋죠.”
“긴 머리칼 때문에 조금 거슬리셨다면 이 머리망을 사용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연약한 머리망이나 끈과 다르게 고정 마법이 걸려 있어서 과격한 움직임에도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군용 아티팩트들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게 굉장히 엄격한 규제가 걸려 있지만, 이런 편의용 아티팩트들은 규제가 빡빡하지 않다.
이런 편의용 아티팩트가 하나 있고 없고에 따라 전장 컨디션이 확 달라지기 때문에 웬만큼 돈을 모은 모험가나 용병들은 편의용 아티팩트를 자주 구매하곤 한다.
리니아는 푸른색 보석이 박힌 아티팩트를 들었다.
“이건 어디에 사용하나요?”
“피임용 아티팩트입니다.”
“아……! 앗.”
리니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반지를 선반 위에 돌려놓았다.
“일반 여성분들도 은근히 많이 구매하시는 상품입니다. 하나쯤은 구비해 두시는 편이 좋으실 겁니다. 세상일은 정말 모르니까요.”
트리샤는 리니아의 옆으로 다가왔다.
“왜요? 구매하시게요?”
“아…… 아뇨! 저는 아직……!”
“아멜리아 씨 말대로 하나쯤은 구매하는 게 좋아요. 저도 비슷한 거 하나 있거든요. 간간히 쓸데가 있거든요.”
“쓸데…. 아…….”
리니아의 얼굴은 거의 폭발하기 직전까지 달아올랐다.
“혹시 구매 기록에 남을 까봐 걱정되세요? 그럼 제가 대신 사드릴까요?”
“아…안 산다니까요!”
리니아가 빽 소리를 지르자 트리샤는 깔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