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73)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73화
생일 파티(4)
라칸의 수사 메모장에 용의자로 지목된 사제의 이름은 마티아였다.
성씨는 따로 없었는데, 과거와 연을 끊고 룩스의 종이 되었다는 의미로 룩스교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모두 성씨를 버리기 때문이었다.
‘마티아. 마티아. 마티아.’
라칸은 머릿속을 뒤져 마티아 사제의 얼굴을 떠올렸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룩스교의 상징인 성배 모양의 목걸이를 했다는 것과 하얀 법복을 입고 있었다는 것 정도랄까?
‘누가 기도만 해준 사제의 얼굴을 다 기억하겠냐고.’
그러나 현시점에서 마티아의 얼굴은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마티아 사제가 범인이라면, 현재 비스코로 변장한 사내가 마티아 사제이거나 아니면 변장을 도와준 사람일 가능성일 테니까.
일단 라칸은 단역 대기실로 서둘러 향했다.
‘없다.’
대기실 구석구석을 뒤져봤지만 비스코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도 찾아보고 있을 법한 곳들은 다 가봤지만 없었다.
라칸의 등허리에 땀이 흘렀다.
경비병들과 실랑이를 하느라 너무 오랫동안 시간을 끈 탓일까?
아니면 비스코를 두고 자리를 뜬 것 자체가 문제였을까?
라칸은 일단 같은 대역 출신인 토미에게 비스코의 행방을 물어보기로 했다.
“토미. 비스코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나도 잘 모르겠는데? 무대 감독님이라면 아시지 않을까?”
“아! 고마워!”
머리가 복잡해진 탓에 비스코의 행방을 제일 잘 알고 있을 법한 사람을 까먹고 있었다.
대역이 자리를 뜨려면 일단 무대감독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
물론 놈이 보고했을 가능성은 희박하긴 했지만, 그나마 무대감독이라면 알고 있을 확률이 제일 높았다.
라칸은 바쁘게 무대 뒤를 통솔하는 무대감독을 찾았다.
“무대감독님. 혹시 비스코 못 보셨습니까?”
무대감독은 바쁜지 라칸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비스코?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냐?”
“이제 곧 저희 지나가는 시민들이 들어갈 시간이잖아요. 미리 준비시키려고요.”
무대감독은 시나리오를 잠깐 훑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짜증이 난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떠올리는 듯하기도 했다.
“……젠장. 이렇게 바쁠 때 말썽이라니. 가만있어 보자. ……마티아 사제님이 찾으셔서 갔나? 아니지 그건 리허설 끝나자마자였던 것 같은데…….”
“마티아 사제님이 비스코를 부르셨어요?!”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는 거냐!”
“아, 죄송해요.”
라칸은 다급하게 말했다.
“마티아 사제님이 비스코를 왜 부르신 거죠?”
“그건 또 왜 궁금한 건데?”
“어……. 그 또 마티아 사제님을 찾으러 갔을 수도 있으니까요.”
“뭐……. 그럴 수도 있겠군. 비스코 그 녀석이 너무 긴장한 것 같으니 긴장을 좀 풀어주겠다며 데리고 오라고 했었지. 또 찾아간 것 아닌가 모르겠군.”
“마티아 사제님은 어디에 계시죠?”
“저기 구석 6번 대기실에 있다. 아무튼 비스코 당장 찾아놔라. 곧 4장이 시작될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라칸은 재빨리 6번 대기실로 향했다.
* * *
라칸은 일단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들겼다.
“마티아 사제님! 라칸입니다! 혹시 문을 열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안에선 대답이 없었다.
“마티아 사제님! 라칸입니다! 문을 열어주십시오!”
여전히 대답이 없자 라칸은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철컥-!
6번 대기실 문이 잠겨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손잡이는 돌아가지만 무언가 문을 막고 있는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열쇠로 여는 구멍이 있나 확인해 봤지만, 열쇠로 잠기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 말은 누군가 일부러 이 문을 막아놨다는 뜻이다.
라칸은 곧바로 어깨로 문을 강하게 밀어 쳤다.
“비스코! 안에 있어?! 비스코!”
라칸은 오러까지 사용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말이 되지 않았다.
라칸의 고리 개수는 1개다.
일반 성인 남성의 약 2배 정도의 근력을 갖춘 사람이란 뜻이다.
성인 두 명이 이 얇은 나무 문을 향해 진심으로 충격을 가했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건 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라칸의 어깨가 아파왔다.
‘나무 문이 아니라 강철 문을 두들기는 것 같아.’
나무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마법은 하나뿐이다.
‘강화 마법이 걸려 있는 게 분명해.’
강화 마법은 2서클 마법으로 서클의 개수를 늘려가면 늘려갈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특성이 있었다.
게다가 마티아 사제는 최소 5서클의 마법사로 추정된다.
5서클의 마법사가 걸어놓은 강화 마법을 라칸이 힘으로 뚫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런 강화 마법이 걸려 있는 문을 여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로 불을 지르는 방법이다.
강화 마법이라고 하더라도 이 문은 기본적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다.
강화 마법은 외부의 충격을 방어해 주는 것이지 화재로부터 문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
물론 내화 마법도 걸어놨다면 모르겠지만 문을 뚫을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이고 쉬운 방법이다.
당연하겠지만 이 방법은 사용해선 안 된다.
만약 라칸이 이 문에 불을 지른다면 사방에서 난리가 날 것이고, 비스코로 변장한 마티아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도망치거나 테러를 저지를 수 있었다.
두 번째 방법은 디스펠을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도 불가능하다.
현재 라칸의 능력으로 5서클 마법사가 걸어놓은 강화 마법을 해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포인트로 구매해?’
라칸은 그 생각은 집어치웠다.
당장 2서클 공통 마법 전체를 배우는 데만 10,000포인트가 든다.
그런데 5서클 디스펠 마법을 어떻게 배운단 말인가?
현재 라칸이 가지고 있는 포인트론 택도 없었다.
“젠장 이걸 어떻…….”
“라칸.”
바로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라칸은 어깨를 움찔했다.
“여기서 뭐 하나?”
라칸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비스코가 차가운 눈빛으로 라칸을 쳐다보고 있었다.
[신규 퀘스트!]마티아의 의심으로부터 벗어나세요!
보상: 1,000포인트.
* * *
트리샤, 샤를로트, 아이린과 리니아는 일단 티그리스에게 곧바로 향했다.
티그리스와 레인로버가 있는 블록형 관람석엔 황금 기사가 있었지만 트리샤와 네 사람의 얼굴을 보자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티그리스가 두 기사에게 미리 언질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블록형 좌석은 꽤 비좁았기 때문에 일단 세 명은 밖에서 대기하고 트리샤만 들어가기로 했다.
“티그리스 님.”
티그리스는 트리샤의 굳은 표정과 손에 들린 종이를 보자마자 심각한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바로 옆에 있던 레인로버도 곧바로 눈치채고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게 지금 무슨 일이죠? 혹시 화장실 갔다고 한 게 설마…….”
“저도 확신이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일단 자세한 것은 트리샤가 설명해 줄 겁니다.”
레인로버는 할 말이 많았지만 일단 참고 트리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트리샤는 곧바로 라칸이 넘겨준 그림을 펼쳐 두 사람에게 보여준 뒤 입을 열었다.
“일단 티그리스 님의 말씀대로 라칸에게 찾아갔고, 라칸은 저희에게 ‘비스코’란 이름의 단역배우가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가 비스코를 연기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폴리모프 마법이나 변장 마법 같은 것을 사용한 것이라 생각하면 되나?”
“네. 그렇습니다. 누가 비스코로 변장을 한 것인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두 가지 특이한 점을 알려주었습니다.”
트리샤는 일단 왼 손바닥의 마법진부터 가리켰다.
“이 용의자의 왼 손바닥에 이런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각도가 좋지 못해서 완전히 보지 못했지만 약 5서클 마법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티그리스는 레인로버에게 쪽지를 넘겼다.
“혹시 무슨 마법인지 아시겠습니까?”
레인로버는 곧바로 마법진을 확인했다.
“5서클 폭발 계열 마법인 것 같아요. 익스플로전 마법처럼요. 하지만 뭔가 조금 이상하네요. 폭발력을 줄이는 대신 수증기 급속 증발……? 그 외에 또 뭔가가 추가 있는 것 같은데……. 마법진 전체가 다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서 확인하기 어렵네요. 바스티얀 학교장님을 찾아가는 것이 더 빠르겠어요.”
“이 마법진을 손바닥에 그려놓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마법진을 미리 그려놓으면 술식 발현이 거의 절반 가까이 빨라져요. 그리고 이 술식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 있다면 4서클 마법만 사용할 수 있던 마도사도 5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가 있죠.”
“한마디로 말하자면 마법 사용 난이도가 대폭 하락한다는 뜻입니까?”
“예. 그게 제일 정확할 것 같네요.”
비스코로 변장한 놈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폭발 마법을 왼 손바닥에 그려놓은 것으로 보아 테러범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이 테러범의 목적은 일단 뭔가를 폭발시키려는 것이고, 인명 살상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곳엔 고위 귀족들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왜 하필 레인로버의 생일 파티 때 테러를 저지르려는 것인지가 문제이지만, 그건 모든 테러들이 그러하듯 공포로 자신의 사회적ㆍ정치적 이념을 남에게 강요하려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왜 녀석이 테러를 저지르는지 알아내는 것은 2순위다. 일단 이 테러를 막는 데만 집중하자.’
티그리스는 문신이 그려져 있는 쪽지를 확인했다.
“이 문신은 뭐지?”
“그건 비스코의 몸에 그려져 있는 문신이라고 합니다. 라칸이 말하길 다른 단역들의 몸에 그려져 있는 바바리안 문신과 좀 다르다고 합니다.”
“흠…….”
비스코로 완벽하게 변장한 녀석이 일부러 문신을 다르게 그렸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문신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뜻인데…….
“어……? 잠시만…….”
“뭔지 알 것 같나?”
“아……. 음…….”
트리샤는 곤란하다는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마치 뭔가를 알아차린 것 같은데 설명하기 힘든 듯 입을 달싹였다.
“……이게 무엇인지 알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확실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이야기해도 좋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라…….”
트리샤는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더니 입을 열었다.
“만약 제가 알고 있는 문신이 맞다면…… 아니,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건 수인족들이 사용하는 ‘변장 주술’입니다.”
“변장 주술?”
“네. 본래 밀림에서 사냥을 하기 위해 몸을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위장하는 데 사용하는 주술이었죠. 하지만 최근엔 수인족들이 꼬리나 귀를 감춰 인간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사용하는 주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레인로버와 티그리스는 서로 눈을 잠깐 마주쳤다.
트리샤가 이 주술에 관해 알고 있는 이유는 트리샤가 수인 해방 집단 ‘리베르’ 소속이기 때문이란 것을 둘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트리샤는 티그리스에게 리베르 소속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 정보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에 대해 캐물으면 트리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감수하고서도 정보를 알려주었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티그리스는 잠시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이걸 수인족이 아닌 인간도 사용할 수 있나? 이 주술 하나만 익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건 저도 주술사가 아니라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문신 패턴은 변장 주술을 사용할 때 사용하는 패턴이 맞습니다.”
트리샤는 왼 가슴에 그려져 있는 호랑이 무늬 모양 문신을 가리켰다.
“다른 문신은 다 볼 필요 없고 이 문신만 보시면 됩니다. 이 호랑이 무늬 모양의 문신이 그려져 있으면 변장 주술을 사용한 거라 보면 됩니다.”
“주술의 대가는 뭐지?”
“문신을 새겨 넣을 때 겪는 고통입니다. 그 외에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치긴 하는데 그것까진 저도 주술사가 아닌지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렇게 복제해서 변신하는 것은 굉장히 까다롭고 주술의 대가도 크다는 것입니다.”
주술의 대가가 크다.
그 말은 진짜 비스코는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인신 공양보다 더 큰 주술의 대가는 없으니까.
티그리스를 포함한 셋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으나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감정 때문에 큰일을 그르칠 수 없었으니까.
그것보다 이 테러를 일으킬 만한 집단이 어디냐는 것을 알아내는 게 중요했다.
현시점에서 수인족의 주술을 알고 있고 레인로버 황녀의 생일 파티에 테러를 저지를 놈이라면 사실 하나밖에 없었다.
‘길리온 왕국 놈들이군.’
바로스 후작은 수인족들을 납치해 길리온 왕국으로 팔아먹는 일만 하지 수인족의 주술을 훔치는 일 따위 하지 않는다.
수인족들을 고문해 수인족들의 각종 기술과 비밀을 토해내게 만드는 짓을 하는 것은 길리온 왕국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일은 이상했다.
현재 길리온 왕국은 이렇게 황국의 어그로를 끌면 안 된다.
길리온 왕국의 입장에서 놈들은 황국이 흑토 지대에 관심을 갖고 있는 편이 좋았다.
그래야 수인족 자치구를 쳐들어가도 황국이 내부를 정리하느라 관심을 가지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이 상황에서 길리온 왕국이 테러를 저지르면 길리온 왕국에 어그로가 끌리면서 놈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특히 바로스 후작가는 황제가 벼르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흑토 지대의 안정화는 늦추더라도 바로스 후작을 먼저 죽이려 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오히려 놈들에게 별로 좋지 못한 상황이 나올지 몰랐다.
‘도대체 길리온 왕국과 룩스 교단이 무엇을 노리는 건지 모르겠군.’
티그리스는 일단 놈들의 의중 파악은 미뤄두고 이 테러를 막는 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정리하자면 놈이 수인족의 변장 주술을 이용해 변장했고 폭발 마법으로 테러를 저지르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는 거군.”
“네. 맞습니다.”
티그리스는 마법진이 그려진 쪽지를 트리샤에게 넘기며 말했다.
“트리샤 너는 이 마법진을 들고 바스티얀 학교장님께 찾아가서 이 마법진을 면밀하게 분석해 달라고 부탁해라. 그리고 만약 문제가 터진다면 디스펠 마법이나 폭발의 범위를 축소시켜 달라고 부탁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라칸과 긴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통신용 수정구도 하나 받아서 라칸에게 전해주고 오도록. 그리고 베르강 경에게 가서 현 상황을 설명하고 경계 태세를 강화하도록 부탁하고. 시간이 촉박하니 샤를로트와 아이린 그리고 리니아를 이용해라.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이해했다면 복명복창해라.”
트리샤는 한번 머리로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바스티얀 학교장님께 찾아가 마법진의 분석을 의뢰하고, 만약 이 마법이 발현되려고 하면 디스펠 마법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라칸과 긴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직통 통신 수정구를 받아 라칸에게 건네줍니다. 그리고 베르강 경에게 찾아가 경계 태세 강화를 부탁합니다. 시간이 촉박하니 홀로 움직이지 말고 샤를로트를 포함한 세 사람을 이용합니다.”
“좋다.”
티그리스는 레인로버를 보며 말했다.
“혹시 더 지시하실 내용이 있으십니까?”
레인로버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인퀴지터들도 소환해야 할 것 같아요.”
“그건 제가 은사를 갖고 있으니 호출하겠습니다.”
“그럼 그 외엔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티그리스는 트리샤를 보며 말했다.
“신속 정확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보고하도록. 알겠나?”
트리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 * *
비스코, 아니, 마티아는 라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라칸의 표정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창백했다.
땀도 나는 것이 잔뜩 긴장한 것 같았다.
‘설마 들켰나?’
길리온 왕국과 룩스 교단은 라칸을 관심 대상으로 지정해 둔 상태였다.
티그리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제국 대학의 학생이자 케일 자작을 찾아내는 데 큰 공을 세운 놈이었다.
그래서 놈이 피오라 극단에 단역으로 들어왔다고 했을 때, 황국이나 티그리스가 ‘빛의 인도’ 작전을 알아챈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마티아의 강력한 주장으로 이 ‘빛의 인도’ 작전은 통과되었고 작전 성공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렇게 그냥 포기하라고?’
마티아가 봄의 궁전에 잠입한 순간부터 이 작전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제 마티아가 심어둔 ‘폭탄’들이 저 이단 놈들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 터뜨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1시간 반만 지나면 모든 것이 끝나거늘…….’
마티아가 이대로 도주를 선택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무렵, 라칸이 마티아의 어깨를 툭 쳤다.
“비스코 왔으면 말을 해야지. 깜짝 놀랐잖아.”
마티아는 라칸의 돌발 행동에 잔뜩 경계했지만, 라칸은 태연하게 말했다.
“비스코 너 도대체 어디에 갔었던 거야.”
“…….”
“뭐야.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마티아는 라칸의 표정을 살폈다.
라칸은 진심으로 마티아를 걱정하는 듯했다.
“왜 날 찾았지?”
“왜긴 왜야. 곧 우리 차례니까 찾으러 온 거지.”
“그럼 마티아 사제님 대기실에서 날 찾은 이유는?”
라칸은 고개를 갸웃했다.
“너 질문이 조금 이상하다? 그게 지금 중요해?”
마티아는 라칸에게 오히려 역질문을 받자 뜨끔했다.
지금 라칸을 취조하는 모양새가 더 의심 가는 행동이란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하지만 마티아는 왜 라칸이 이곳에서 자신을 찾은 것인지 알아야만 했다.
“그냥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건지 궁금해서 물은 거다.”
“에휴……. 너 긴장한다고 리허설 끝나자마자 마티아 사제님께 찾아갔잖아. 그래서 또 여기에 있나 싶어서 온 거지. 그리고 지금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너 찾고 있어. 저기 봐봐.”
-라칸! 비스코! 어디에 있는 거냐!
-젠장! 이 개자식들 찾기만 해봐라!
단역들과 스태프들이 사방을 뛰어다니며 라칸과 비스코를 찾고 있었다.
이제 진짜 4장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어서 가자. 이러다가 무대감독님한테 보수도 제대로 못 받고 쫓겨날 수도 있어.”
라칸은 재빨리 무대감독에게 향했다.
“여기 비스코 찾았어요!”
“젠장할 놈들! 어서 당장 뛰어오지 못해!”
“죄송합니다!”
마티아는 라칸의 옆을 달리며 의심의 눈초리로 라칸을 쳐다봤다.
하지만 라칸의 표정은 진짜 혼날까 봐 긴장한 표정이었다.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건 아닌가 모르겠군.’
제아무리 라칸이라고 할지라도 이 변장 주술을 알아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투나 이런 것들은 조금 특이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로 마티아가 테러를 저지르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알아도 놈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미 폭탄은 마티아가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곧바로 폭발할 수 있게 조치가 취해진 상태였다.
설령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곧바로 폭탄을 작동시키면 될 일이었다.
“이 자식이 늦게 온 주제에 지금 딴생각을 해!”
퍽!
무대감독은 마티아의 머리를 시나리오 뭉치로 쳤다.
순간 마티아의 눈에 불꽃이 튀었지만 참아냈다.
“……죄송합니다.”
“눈은 또 왜 부라려!”
퍽!
마티아는 눈을 내리깔았다.
“너 제대로 안 하면 내가 죽여 버릴 거야. 내가 똑똑히 본다. 알았어?!”
“……예.”
마티아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라칸은 분을 삭이는 마티아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급 연기를 여기서 사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퀘스트 성공!]마티아의 의심으로부터 벗어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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