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77)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77화
경호(2)
수인족 자치구로 떠나기 전날 밤.
트리샤는 곧바로 난장이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쾅!
“비상! 비상!”
“히에에에엑!”
트리샤는 은묘의 망토를 벗어 던지며 문을 박차고 들어갔고, 그 때문에 소라는 놀란 고양이처럼 펄쩍 뛰어 대들보에서 떨어졌다.
소라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트리샤 설마 벌써 짤린 거야? 고작 2주 만에?”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짤려.”
“나랑 땅딸보 아저씨랑 내기했거든. 한 달 안에 짤리나 두 달 안에 짤리나. 난 한 달에 걸었어.”
“됐어. 아무튼 땅딸보 아저씬 어디에 있어?”
“이 밤중에 뭐 하고 있겠어. 방에서 잠자고 있지.”
드르륵-
대장간과 연결된 미닫이문이 열리며 말레우스가 나왔다.
“커흠……. 결국 짤린 거냐?”
“무슨 소리예요. 제가 왜 짤려요.”
“그럼 다행이군. 기사 일을 그만두려거든 3주 뒤에 그만두거라.”
“참나. 어이가 없어 가지고. 됐고 잡담할 시간 없으니까 빨리 본론부터 말할게요. 저 내일 밀림에 가기로 했어요.”
“밀림을? 왜 갑자기?”
“자세한 건 아직 몰라요. 티그리스 님께서 내일 곧바로 밀림에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그것도 은밀하게요.”
트리샤는 티그리스가 건네준 가짜 신분증으로 기차표를 두 개 샀고, 심지어 무려 7서클 ‘폴리모프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와 비상시 사용 가능한 텔레포트 스크롤까지 받았다.
“황국이 그 정도 지원을 해준다는 것은 한마디로 밀림으로 극비 임무를 수행하러 간다는 건데. 그럼 하나밖에 없겠죠.”
“테호 대장로의 비밀 호위 임무겠군.”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길리온 왕국과 수인족 자치구는 오는 7월에 황국 빅토리에에서 키메라와 수인족 납치 관련된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수인족 자치구에선 테호 대장로가 대표로 오기로 했고 길리온 왕국에선 모르고트 왕자와 외무대신 미카엘이 오기로 했다.
사실 테호가 빅토리에로 오는 것은 정말 큰 모험이다.
밀림에서 빅토리에로 오려면 바로스 후작령의 수도 ‘할키스’에서 열차를 타고 무려 보름 가까이 이동해야 한다.
물론 황국에서 황금 기사들과 철혈 마법사들을 보내준다고 하지만 수인족 자치구와의 관계가 친밀해지는 것을 절대 좋아할 리 없는 바로스 후작과 길리온 왕국의 입장에서 어떻게든 테호가 빅토리에로 오는 것을 막으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적진 한복판인 바로스 후작령에서 회담을 열 수도 없는 노릇.
그나마 제일 안전한 빅토리에의 황궁에서 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황궁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을지 알 수 없었다.
“황국이 티그리스를 직접 파견할 정도라면, 그만큼 수인족과의 관계가 나아지길 바란다는 의미인데……. 비밀 경호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군.”
“정치적 스탠스보단 호위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겠다는 말이 아닐까요? 아니면 대놓고 수인족 자치구를 경호하면 길리온 왕국의 눈치가 보이니까 비밀 경호식으로 진행할 수도 있고요.”
“아니면 네가 여기에 올 거란 걸 예상하고 비밀 경호를 붙인 것일 수도 있지.”
말레우스는 티그리스가 트리샤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선 안 될 이유가 있거나 시기가 맞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이지.
안 그렇다면 이번 비밀 경호에 트리샤를 데려갈 이유가 없다.
“진짜로 제가 리베르인 것을 알긴 할까요?”
“난 알고 있다고 본다. 티그리스가 내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오지 않은 이유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 우리의 정보는 황국 내부에서도 극비니까.”
트리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티그리스 님의 기사가 되었을 때부터 내 입장이 굉장히 꼬일 거란 건 예상하고 있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골치 아프네요. 뭔가 티그리스 님을 속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소라는 눈빛을 반짝였다.
“그럼 그만둘 거야?”
“참나, 됐거든! 이미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둘 수 없어.”
트리샤는 붉은 마나초를 무려 두 개나 삼키고 고리 6개를 만들었다.
먹은 것을 뱉어낼 수도 없으니 꼼짝 말고 5년 동안 티그리스의 기사를 해야 했다.
“고리 6개가 되면 어떤 기분이야? 뭔가 세상이 달라 보여?”
“……뭐 강해졌다기보단 좀 더 여유로워진 거지. 오러 양도 확실히 늘었고 오러 고리 한 개가 더 늘면서 예전엔 못 했던 방식의 다채로운 전투를 할 수 있으니까.”
소라는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거 기회 되면 언제 한번 한판 붙어봐야겠는걸? 이번엔 얼마나 버티려나? 30분은 버티겠지?”
“30분에 걸 거야? 그럼 난 31분에 걸게.”
“우와……. 땅딸보 아저씨보다 치사해. 오러 양이 늘어난 만큼 속은 더 좁아진 것 같은데?”
“그 말 취소해 소라.”
둘이 투덕거리기 시작하자 말레우스는 헛기침으로 둘의 대화를 끊었다.
“큼! 그럼 네 검들이 필요하긴 하겠군.”
“뭐, 그러면 좋긴 한데. 아직 수리 중인 거 아니었어요?”
“그래도 오늘 대충 손을 봐줘야지. 다른 임무도 아니고 테호 대장로를 호위하는 임무인데.”
“그래주면 고맙죠.”
말레우스는 벽걸이 시계를 봤다.
“내일 몇 시에 출발하지?”
“오전 10시 기차예요.”
“흠……. 그럼 내일 오전 7시까지 와라. 그 안에 내가 대충 검날 부분만이라도 완벽하게 수리를 해놓을 테니.”
“오! 감사합니다.”
말레우스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짤릴 거면 두 달을 넘기고 짤리도록 해라.”
“아저씨! 두 달을 넘기고 짤리면 무승부죠!”
“거참……. 난 두 달은 무조건 버틴다에 걸었지!”
“와 세상에 말 바꾸는 거봐!”
말레우스가 잘하지도 못하는 말장난을 하는 이유는 트리샤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트리샤는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트리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난 5년 걸게요.”
* * *
다음 날.
티그리스는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입을 열었다.
“나와 트리샤는 오늘부터 약 한 달가량 집을 비울 것이다.”
티그리스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제인을 제외한 모두가 깜짝 놀랐다.
“……네? 갑자기 왜요?”
“황제 폐하가 직접 내리신 기밀 임무다. 본래 내가 기밀 임무를 맡았다는 것도 알려져선 안 되나 너희들은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말하는 것이니 그리 알고만 있거라.”
“아니,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도 어제 황제 폐하께 받은 것이라 말할 시간이 없었다.”
레니는 허둥지둥대며 말했다.
“그러면 뭐를 준비해야……. 아! 일단 옷부터…….”
“옷가지를 비롯한 모든 물자와 자금은 황국에서 제공해 줬으니 따로 챙길 필요는 없다.”
리니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번 임무는 저희가 관여해선 안 되는 거겠죠……?”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다만, 이번 임무는 너희가 감당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
그 말에 리니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그럼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인가요?”
“위험하다는 것보단 순간적인 판단력과 결단력이 중요한 임무다. 미안하지만 더 이상 이 임무와 관련된 질문은 받지 않겠다. 리니아.”
“……죄송해요.”
샤를로트는 떠는 리니아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주며 말했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하나요? 이 펜트하우스에서 개인 훈련을 하면 되나요?”
“아니, 너희들은 황금 기사들의 훈련 과정에 참여할 것이다. 요인 경호 및 경계 훈련을 받게 될 것이다.”
“그 훈련을 잘 받으면 앞으로 스승님과 같이 임무에 나갈 수 있나요?”
샤를로트의 눈빛에 간절함이 담겼다.
샤를로트의 열의를 티그리스는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은 부족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떤 임무냐에 따라 다르겠지.”
티그리스의 희망적인 말에 샤를로트를 포함한 세 사람의 눈빛이 바뀌었다.
아직 순수한 젊은 기사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타오르는 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저들의 패기와 열정은 이번 황금 기사들과 함께 정규 훈련을 받으며 깎여 나가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저들이 티그리스에게 배웠던 것들은 모두 검을 사용해 효과적으로 적을 제압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제 저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검을 휘두르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 훈련을 통해 검은 문제를 해결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티그리스는 제인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제인. 너도 황궁으로 향한다.”
“에?! 나도?”
“레니와 카렌도 함께 봄의 궁전으로 갈 테니 너도 당연히 가야겠지. 너는 따로 황궁에 이야기를 해두었으니 들어가도 괜찮지만 다른 혼령들은 출입해선 안 된다. 애초에 들어갈 수도 없겠지만.”
제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 뭐, 알겠어. 수호령이 된 채로 봄의 궁전으로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제인은 170년 만에 봄의 궁전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지 뭔가 기분이 묘한 듯 보였다.
“아, 그럼 그 사람은 어떻게 할까?”
그 사람은 베이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베이튼은 현재 노르베르드 가문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케일 자작을 비롯한 부동산업을 주로 하던 부패한 귀족들이 모두 잡혀가면서 빅토리에의 대부분의 빌딩 건축과 인프라 건설은 ‘더 노르베르드’가 담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만약 이 상황에서 베이튼이 변절하거나 신변에 위협이 생기는 경우 노르베르드 가문에 큰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었다.
“혼령들이 감시만 하게 놔두고 따로 황궁으로 부르지 마라. 문제가 생기면 한 달 뒤에 한 번에 받는 것으로 하지.”
“알겠어.”
“그리고 내게 붙여놓은 혼령도 떼어놓을 수 있도록 해라.”
그러자 보라색 라벤더 꽃 하나가 날아와 애처롭게 흔들렸다.
떼어놓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제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레이아나 어차피 너 빅토리에 밖으로 못 나가잖아. 투정 부리지 마.”
라벤더 꽃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곤 꽃병으로 되돌아갔다.
집안 정리까지 끝이 났으니 이제 출발할 일만 남았다.
티그리스는 트리샤를 보며 말했다.
“준비는 다 끝났나?”
“예. 바로 출발만 하면 됩니다.”
트리샤는 티그리스에게 7서클 폴리모프 마법이 걸려 있는 반지형 아티팩트를 건넸다.
티그리스는 그 반지를 품속에 넣곤 말했다.
“그럼 바로 빅토리에역으로 가지.”
* * *
잠시 후.
티그리스와 트리샤는 빅토리에역에 도착했다.
물론 본모습이 아닌 폴리모프 마법을 건 상태였다.
티그리스는 검은 중절모에 지팡이를 짚은 젊은 신사로 변했고 트리샤는 얇은 여름용 코트를 입은 젊은 여인으로 변신했다.
트리샤는 승무원에게 열차표와 신분증을 건넸다.
“포터 부부 맞으시죠?”
“네. 맞아요. 호호호.”
“1등석 확인되셨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트리샤는 호호 웃으며 열차표와 신분증을 되돌려 받았다.
티그리스는 어이없는 눈빛으로 트리샤를 쳐다봤다.
“왜 그러시죠 달링?”
“…….”
트리샤는 티그리스의 귓가에 대고 소곤소곤 말했다.
“표정 푸세요. 무섭게 왜 그래요.”
“……왜 부부지?”
“뒤에 성씨가 같으면 부부 아닌가요? 그래서 부부 동반 여행 패키지로 주문했는데요?”
“보통 남매를 떠올리지 않나?”
“아, 저희 남매였나요? 그런데 저희 머리카락 색깔이 서로 다르잖아요.”
“……네가 바꾼 거 아니고?”
“그냥 좀 그러려니 넘어가요. 그게 더 재밌잖아요.”
승무원이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티그리스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어서 타기나 하지.”
티그리스는 열차에 탔고 트리샤는 호호 웃으며 승무원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우리 달링이 좀 지친 모양이에요. 어제 너무 무리해서 그런가?”
“……아, 네. 문 닫아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승무원은 어설픈 미소를 띠며 열차 문을 닫았고, 트리샤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침대엔 장미꽃잎이 하트 모양으로 그려져 있었다.
트리샤는 장미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어머, 내가 부부 동반 여행 패키지가 아니라 신혼부부 패키지로 신청했었나?”
저렇게 사소한 장난을 치는 게 트리샤 나름대로 긴장을 푸는 것이란 걸 최근 알게 됐기 때문에 티그리스는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
티그리스는 창가 쪽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사운드 블록 마법을 걸 수 있는 만년필을 꺼내 작동시켰다.
“앉아라. 우리가 맡을 임무에 대해 설명해 주겠다.”
“네. 알겠습니다.”
트리샤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우고 티그리스의 맞은편에 앉았다.
“우리가 맡을 임무는 수인족 대장로 테호의 비밀 경호다.”
“음…….”
역시 예상했던 대로 테호를 경호하는 일이었다.
“그럼 저희는 테호와 만나서 직접 경호를 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 직접 경호는 황금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인 밀러 경을 포함한 36명의 황금 기사, 철혈 마법 병단의 부단장 소냐를 포함한 12명의 마법사가 맡을 것이다.”
“그럼 저희는 뭘 하면 되나요?”
“위험 요소 배제다.”
“위험 요소 배제라고 함은…….”
티그리스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서류 뭉치를 꺼냈다.
그 서류들엔 인물 사진과 함께 이름과 특징 등 신상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을 모두 엮어보자면 전부 수인족 밀렵꾼, 브로커, 암살자 등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이라는 것이었다.
“인퀴지터들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최소 100명 이상의 밀렵꾼들과 길리온 왕국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 암살자 12개 팀, 그 외에 길리온 왕국의 특수부대가 테호를 노리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을 추적하여 배제하는 것이다.”
티그리스가 왜 샤를로트네들을 데려오지 않은 것인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임무는 필연적으로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굉장히 많이.
“……이 많은 사람들을 전부 죽이나요?”
“살인은 수단일 뿐이다. 놈들이 테호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중요하지.”
“인근 경찰이나 경비대에 넘기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 하지만 손속을 봐줬다가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트리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공사 구분은 확실하죠.”
“그럼 네게 지금 임무를 맡기마. 현재 2등석 13번 칸에 ‘베키 용병단’이 타고 있다. 모두 밀렵꾼 출신이고 빅토리에에서 신분 세탁을 한 뒤, 바로스 후작령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신분 세탁이요?”
“신분 세탁에 대해 전혀 모르나?”
“그런 걸 알고 있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저처럼 선량한 모험가들은 그런 범죄와 엮일 일은 거의 없다고요.”
“그럼 조금 설명해 주지.”
용병들과 모험가들이 안전하게 신분 세탁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다.
바로 빅토리에의 그레이 타운에 있는 ‘미스터 우드’를 통해 신분을 세탁하는 것이다.
“미스터 우드요? 사람 이름인가요?”
“꽤 이 바닥에서 유명한 신분 세탁업자다. 신분 세탁을 받으면 모두 성씨를 우드로 바꾼다고 해서 미스터 우드라고 하더군.”
“오……. 저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봐요.”
“정말로 성물 사냥만 한 모양이군.”
“뭐…… 꼭 그런 것만은 아니죠. 아시다시피 모험가가 사람 눈길 닿지 않는 곳을 잘 돌아다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무슨 짓을 해도 잘 들키지 않죠.”
트리샤는 입을 가리며 말했다.
“아. 그렇다고 저 이상한 사람으로 보시면 안 돼요. 제가 이유 없이 사람을 해쳤겠어요. 다 제 뒤통수치려던 죽일 놈들이었으니까……”
“알겠으니 변명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그리 떳떳한 것은 아니니.”
“……떳떳하지 않다고요?”
“그 얘긴 주제에서 벗어나니 나중에 이야기해 주지.”
미스터 우드를 통해 신분 세탁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훔치거나 죽인 용병이나 모험가들의 신분패와 금화 5개를 미스터 우드에게 내면 미스터 우드가 알아서 신분패에 걸려 있는 보안 마법을 해제해 새로운 신분패를 만들어 준다.
“세상에 신분 세탁이 그렇게 쉬워요?”
“일부러 쉽게 해준 것이다.”
“네? 왜요?”
오직 인퀴지터만 알고 있는 기밀 사실이지만, 사실 신분 세탁업자 ‘미스터 우드’는 인퀴지터 요원이다.
신분 세탁을 하는 용병이나 모험가들을 모두 기록하여 위험 등급을 나눈 뒤 매월 인퀴지터 본부에게 보고한다.
“세상에 범죄를 눈감아주는 것도 모자라 범죄를 직접 저지르다니…….”
“이런 식으로 범죄자들의 살 구멍을 하나 정도 뚫어주지 않으면 이상한 곳에서 신분 세탁업자들이 탄생한다. 그러면 범죄자들을 관리하기란 쉽지 않지.”
“덤으로 이런 고급 정보도 얻고요?”
“그런 셈이지. 너를 노리는 암살자들의 신상 정보를 얻은 것도 모두 ‘미스터 우드’ 덕분이다.”
“……나중에 기회 되면 고맙다고 인사 한번 해줘야겠네요.”
트리샤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이거 제가 알아도 되는 정보인가요? 딱 봐도 아무나 알면 안 되는 정보 아니에요?”
“내 기사가 된 시점부터 넌 아무나가 아니다.”
“……뭔가 굉장히 어깨가 무겁네요.”
“혹시 지금이라도 발을 빼고 싶나?”
“아뇨. 뭐 이제 와서 발을 빼요. 저도 티그리스 님의 기사가 된 시점부터 이런 일을 많이 하게 될 거라 각오하고 있었어요.”
“이런 일이라는 게 정확히 뭐지?”
트리샤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을 죽이는 일이요.”
티그리스는 트리샤의 눈을 쳐다봤다.
각오가 된 자의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런 눈빛을 하고도 막상 실전에 들어가면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티그리스는 트리샤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럼 이자들은 네게 맡기겠다. 네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 선에서 이 열차가 바로스 후작령의 수도에 도착하기 전까지 모두 배제해라. 수단과 방법은 네 자유에 맡기겠다.”
트리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