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80)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80화
경호(5)
트리샤는 사내의 얼굴을 확인했다.
티그리스가 주의하라고 알려준 바로스 후작 가문의 혈족 중 저놈이 있었다.
이름은 어셔 드 바로스.
바로스 후작과 정실부인 사이에서 나온 둘째 아들이었다.
여자를 밝히고 게으른 것으로 유명한 망나니로, 6서클의 마도사인 바로스 후작과 29살의 나이에 4서클 마도사의 반열에 오른 아이작과 달리 마법에 대한 재능이 없어 제국 대학에도 들어오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마력이 담긴 사파이어가 박힌 완드라니.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나 다름이 없었다.
“잘못 들어왔다는 게 날 보고 하는 소린가?”
트리샤는 붉은 매 상징을 이제 봤다는 식으로 다급하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절대 아닙니다.”
트리샤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이 정도 연기는 트리샤에게 있어서 별것도 아니었다.
어셔는 복종하는 자세가 마음에 드는 듯 와인을 병째로 들이켠 뒤 씨익 웃었다.
“고개를 들어봐라.”
트리샤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어셔의 눈이 트리샤의 몸매와 얼굴을 훑었다.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눈빛에 트리샤는 순간 짜증이 올라왔지만 참았다.
일단 임무가 최우선이기 때문이었다.
“흠……. 용병답지 않게 몸매는 썩 나쁘지 않은데 얼굴에 잔 상처가 많군.”
어셔는 트리샤를 품평하곤 입을 열었다.
“뭐, 용병들 중에서 이만한 년은 구하기 어렵겠지. 흥미가 생겼다. 따라와라.”
어셔는 따라오라는 식으로 2층으로 향했고, 트리샤는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젠장, 귀찮은 일에 휘말렸군.’
바로스 후작이 고용한 용병 출신인 것처럼 잠입해서 정보를 캐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귀찮은 일에 휘말릴 줄 알았다면 은묘의 망토를 사용할 걸 그랬다.
‘도망친다면 그냥 도망칠 수 있겠지만…….’
트리샤는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어셔에게서 정보를 더 뽑아보기로 했다.
어셔는 바로스 후작 가문의 둘째 아들인 데다가 1층에 있는 용병들을 통솔하는 역할을 맡은 것 같았다.
어셔는 용병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알았으면 알았지 모르진 않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트리샤는 군말 없이 어셔의 뒤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술을 기울이는 척하며 트리샤를 훑었다.
트리샤가 위험한 인물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리라.
‘수준이 전부 낮군.’
술하고 여색을 밝히는 어셔를 따르는 기사들의 수준이 얼마나 높겠는가?
트리샤가 봤을 때, 놈들은 기껏해야 3성, 그나마 괜찮은 녀석은 4성이 끝이었다.
다른 마법사들의 수준도 3~4서클이 끝인 것 같았다.
트리샤가 마음먹고 기세를 감춘다면 오러 하나 느끼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윽고 마법사들과 기사들은 흥미를 잃었는지 시선을 돌리고 저들끼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트리샤가 어셔에게 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셔는 가장 푹신하고 커다란 소파로 향했는데, 그 소파엔 야시시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둘이 있었다.
겉으로 보아 귀족들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술집 여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자리를 비켜라.”
어셔의 말에 둘 중 하나가 눈치를 보더니 자리를 피했다.
어셔는 소파 중앙에 앉더니 말했다.
“이리 와 앉아 술을 따라라.”
트리샤는 순간 열이 뻗었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할 것은 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주도권 없이 질질 끌려다니는 것은 절대 사양이었다.
트리샤는 테이블에 가득한 술 중 ‘드래곤 브레스’라는 가장 독한 증류주를 집었다.
“죄송하지만 너무 떨려서 그런데, 먼저 위에 알코올 좀 칠하겠습니다.”
그러곤 드래곤 브레스를 모조리 입에 털어 넣었다.
꿀꺽- 꿀꺽- 꿀꺽-
드래곤 브레스는 보통 저렇게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것은 불가능하고, 온더락으로 먹거나 칵테일로 만들어 먹는 게 일반적인 술이었다.
그런데 저걸 한 병을 통째로 마셔버리다니.
주변에 있던 어셔의 따까리들은 자신들의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에 눈썹이 찌푸려졌다.
“푸하!”
트리샤는 빈 병을 바로 옆에 대기하고 있는 종업원에게 던지듯이 건네곤 말했다.
“똑같은 것으로 한 병 더.”
트리샤의 화끈한 모습에 어셔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독한 술을 다 털어 넣는 여자는 처음 보는군.”
“제가 평범한 여자였다면 용병짓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하긴 그렇겠군.”
트리샤는 종업원에게 드래곤 브레스를 받아 들곤 병 모가지를 손날로 쳐서 날려 버렸다.
그 묘기와도 같은 솜씨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어셔는 뻑이 간 듯 멍하니 쳐다봤다.
“죄송한데 제가 할키스는 처음인지라 성함을 모릅니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어셔 드 바로스다.”
“그렇군요. 전 니나라고 합니다. 성은 없고 그냥 편하게 니나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트리샤는 어셔 바로 앞에 놓인 글라스에 드래곤 브레스를 가득 부어 따르곤 말했다.
“그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찐하게 한잔하실까요? 어셔 공자님?”
“좋지.”
어셔는 트리샤의 배포에 그 독한 독주를 한 번에 다 들이켰다.
“쿨럭!”
어셔도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드래곤 브레스를 글라스로 마시는 것은 처음인지라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트리샤는 일어나 드래곤 브레스를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게 따랐다.
꿀꺽-
그들은 자신 앞에 가득 담긴 드래곤 브레스를 보며 긴장했다.
어셔도 한 번에 다 들이켰는데, 이걸 안 마시기엔 눈치가 보인 것이었다.
“쿨럭! 어서들 마시지! 오랜만에 꽤…… 재밌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데?”
어셔는 자신이 남자답게 보이기 위해 애써 화통한 척 웃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어셔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당장에라도 오바이트를 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뭐 합니까 안 마시고.”
트리샤는 병에 남은 드래곤 브레스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셨다.
그 모습에 어셔와 기사들은 멍하니 트리샤를 쳐다봤다.
“설마 용병들도 하지 않는 밑잔을 까는 행동은 하지 않으시겠죠?”
트리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카리스마에 기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결국 술을 들이켰다.
“컥…….”
몇몇 마법사들이 다 마시지도 못하고 잔을 내려놓자 어셔가 눈치를 줬다.
용병에게 얕잡아 보이는 것만큼 치욕스러운 일은 없으니까.
결국 그들은 어셔의 눈치를 이기지 못하고 억지로 다 마시고 말았다.
“이거 똑같은 거로 다섯 병 더.”
그러나 트리샤의 말에 테이블에 앉은 모든 사람들은 몸을 떨었다.
트리샤는 오늘 이 녀석들을 네발로 기어 나가게 만들 생각이었다.
* * *
한바탕 술이 오가자 테이블에 제대로 고개를 들고 있는 사람은 트리샤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이거 전혀 취하질 않네.’
6성 기사가 된 뒤로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몸에 해롭거나 정신을 혼탁하게 만드는 독이나 술은 자동으로 오러가 죄다 분해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트리샤는 취한 척 어셔의 머리를 마구 헝클며 말했다.
“야. 어셔.”
술자리의 왕은 술 잘 마시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 술자리의 여왕은 트리샤였다.
“……뭐야 너 왜 반말…….”
“우리 야자 타임 중이잖아. 너 설마 취했어?”
“아니! 아니! 안 취했지이이…….”
“그럼 한 잔 더 마셔.”
트리샤는 드래곤 브레스를 스트레이트 잔에 따라 건넸다.
어셔는 침을 꿀꺽 삼키며 멍하니 술잔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 마셔?”
“…….”
결국 어셔는 강한 남자인 척 연기하기 위해 스트레이트로 마셨지만 거의 반 이상을 흘렸다.
확실히 맛이 간 것 같았다.
“이거 벌써부터 질질 흘리면서 먹으면 어떻게 해. 오늘 끝까지 달리기로 했잖아.”
“그러취……. 끝까지 달리기로 했지…….”
이제 슬슬 이놈의 기름진 배를 갈라 정보를 얻을 때가 된 것 같았다.
트리샤는 어셔의 뒤통수를 잡으며 말했다.
“어셔. 너 누나한테 거짓말하기 없기로 했지?”
“어……. 어? 누…… 나……? 나 누나 없는데에에?”
“우리 서로 누나 동생 하기로 했잖아. 기억 안 나?”
“그랬던가……? 그렇지. 맞아. 내가 그랬지? 흐흐…….”
어셔는 완전히 맛이 갔고, 다른 테이블에 앉은 기사들도 그런 어셔를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오히려 놈들은 어셔 눈치도 안 보고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자 더 좋은 것 같았다.
그만큼 어셔가 가신들 사이에서 별로 소문이 좋지 않은 망나니라는 소리였다.
트리샤는 어셔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기 1층에 있는 용병들이 전부 다야?”
“용병들? 1층? 아, 맞아. 어. 오늘까지 다 모이라고 했으니까 그렇지 않을까?”
“그렇구나. 그럼 우린 언제쯤 수인족 놈들을 쓱싹하러 가는 거야?”
어셔는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엉……? 수인족들을 쓱싹……? 우린 수인족들 사냥하러 모인 게 아닌데……?”
트리샤는 지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그럼 왜 우리가 모인 건데?”
“우리인~ 수인족들이 미친개처럼 달려들면 막으라고 해서 온 건데……?”
“수인족들이 달려든다고? 누구를?”
“누구긴 누구야. 영주민들하고 기사들이지. 뭐……. 아, 누나는 그런 줄로 알고 있었을 수도 있겠네……. 한탕 할 줄 알고 왔는데 실망했나? 푸흐흐흐. 괜찮아 내가 돈 많이 줄게. 나 그것밖에 없거드은…….”
어셔의 말은 진실인 것 같았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이유로 수인들이 영주민들을 죽인다는 말인가?
“수인족들이 무슨 이유로 공격하는데?”
“몰라. 나도 그냥 들은 거야. 아버지가 수인족들을 믿을 수 없다면서 용병들을 모은 거니까아. 젠장……. 자세히 알려달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아이작 형만 편애하고오…… 아닌가? 이젠 나도 믿어주니까 용병들을 모으라고 한 건가? 흐흐흐…….”
트리샤는 분명 용병들과 암살자들을 통해 테호 대장로와 수인족들을 죽이려고 한다고 전해 들었다.
그런데 역으로 수인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용병들을 모았다고?
저렇게 비싼 베테랑 용병들을?
바로스 후작이 돈이 많다곤 하지만 이렇게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인물은 아니었다.
“너 정말로 다른 건 몰라?”
“몰라~ 아이작 형이 다 알지. 나는 그냥 오늘 아빠가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용병들 잘 관리하라고……. 아, 그런데 누나 나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됐고 그럼 성기사들이나 사제들은? 아니면 길리온 왕국 놈들은 없어?”
“아~ 그 룩스 교단의 사제들이 오긴 했찌……. 뭐…… 봉사활동 왔다고 들었는데 아버지가 제법 신경을 쓰는 것 같긴 했어…….”
“사제들이 얼마나 왔는데?”
“몰라……. 거의 10명쯤? 그런데 누나 나 화장실 좀……”
쿵!
결국 어셔는 머리를 테이블에 처박으며 기절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트리샤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빠졌다.
‘뭔가 일이 단단히 꼬였다.’
황국은 바로스 후작과 길리온 왕국이 수인족들을 노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어셔의 말을 들어보니 바로스 후착 측에선 오히려 역으로 수인족들이 사람들을 노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정보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 사실을 티그리스에게 알리는 게 중요했다.
트리샤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나 이제 가요. 어셔 공자님. 오늘 끝까지 달리기로 했는데 먼저 죽으셨으니 전 먼저 떠납니다.”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그렇게 독주를 퍼마시고도 비틀거리지 않는 걸음걸이에 신기한지 트리샤를 멍하니 쳐다봤다.
술자리의 여왕은 독한 알코올 냄새를 남긴 채 떠났다.
* * *
레비스는 바로스 후작의 집무실에서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레비스는 최근 바로스 후작령에 봉사활동을 온 사제로 변장했기 때문에 하얀 법복을 입고 있었다.
레비스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베일, 네가 말한 건 어떻게 되고 있지?”
“아직 걸린 게 없다.”
바로스는 용병들과 암살자들을 끌어모은다는 정보를 한 달 전부터 은밀하게 흘렸다.
이런 정보를 흘린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스 후작이 테호 대장로를 공격할 명분을 얻기 위해서였다.
“설마 함정이란 것을 들킨 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베키 용병단 놈들이 열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잡혔다더군. 내 영향권 밖에서 베키 용병단을 건드려 우리의 반응을 보려 한 것 같다.”
베키 용병단을 잃은 것은 뼈아픈 일이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놈들은 바로스 후작이 무슨 의도로 용병들과 암살자들을 끌어모으는 건지 명확하게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바로스는 술을 벌컥 들이켰다.
“젠장……. 내가 황국과 수인족들 눈치를 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군.”
만약 4개월 전에 수인족 대장로가 빅토리에로 온다고 했다면 황실이나 다른 귀족들 눈치 볼 것도 없이 군사를 움직여 그냥 죽였을 것이다.
명분이야 나중에 대충 만들어내면 되니까.
그러나 지금은 막무가내로 움직였다간 바로스 후작의 목이 날아갈 수 있었다.
키메라 실험실 사건과 루카스 백작의 죽음, 레인로버와 티그리스와의 약혼설까지 퍼지면서 황실의 권위는 루체트 황국 역사상 최고점을 찍고 있었다.
심지어 더 성장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루체트 황가의 뜻을 거스른다?
그건 바로스 후작 휘하에 있는 귀족들이 등을 돌릴 명분을 쥐여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거머리 같은 새끼들.”
거머리란 바로스 후작 휘하에 있는 28가문의 가주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8가문의 가주들은 바로스 후작의 눈치를 보며 황실로 라인을 갈아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스 후작의 시대는 끝이 나고 이제 팍스 황국 때처럼 중앙집권의 시대가 열렸음을 눈치챈 것이었다.
레비스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입을 열었다.
“만약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셈이지?”
“인퀴지터들이라면 모를까 수인 놈들은 반드시 내가 판 함정에 걸릴 수밖에 없다.”
“그 근거는 뭐지?”
“며칠 전부터 새끼 수인 2마리의 정보를 흘리고 있으니까. 놈들은 그 어린놈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할키스를 공격할 수밖에 없을 거다.”
수인족들은 인간과 달리 인내심이 부족하고 본능에 충실하다.
테호 대장로처럼 나이가 들거나 ‘마사라이의 뼈 바늘’의 효과 중 ‘지혜의 문신’을 받은 놈들이 아니라면 본능을 제어할 수 있는 놈들은 없다.
어린 수인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 두고 매정하게 돌아설 놈들이 절대 아니었다.
‘바로스 후작도 여기에 모든 걸 걸었군.’
바로스 후작은 이미 황실과의 관계는 고칠 수 없고 길리온 왕국, 룩스 교단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바로스 후작은 빈스모크 백작과 동일한 절차를 밟고 있었다.
이제 놈은 레비스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다.
레비스는 그게 내심 마음에 들면서도 찝찝했다.
빈스모크 백작이야 길리온 왕국과 멀기도 하고 자금과 노력을 쏟아부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냥 버렸지만, 바로스 후작을 잃으면 루체트 황국으로 향하는 중요한 길목을 잃는 것이니까.
“만약 네가 먼저 어린 수인을 갖고 협박한 사실이 드러나면 어쩔 거지?”
바로스 후작은 코웃음을 쳤다.
“여기는 빅토리에가 아니라 할키스다. 할키스 지역 기자들은 내 입에서 나온 말을 받아적는 8살짜리 놈들뿐이지. 아둔한 평민 놈들이나 거머리 같은 귀족 놈들은 신문에 나오는 정보만 믿기 때문에 관리가 수월하지.”
바로스는 자신의 손패를 다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레비스의 차례였다.
“그래서 레비스 너는 어떻게 할 셈이지?”
“베일 자네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데, 나도 적극적으로 나서야지. 놈들이 네가 풀어놓은 미끼를 물든 안 물든 상관없이 테호 대장로를 저지할 명분을 만들어주겠다.”
“뭐? 그게 가능한가?”
레비스는 악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인족들이 역으로 평범한 시민들을 공격하게 만들면 되니까.”
“설마 ‘야생의 본능’을 사용할 셈인가? 그건 전에 한 번 들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당할 수밖에 없는 주술이기도 하지. 그에 대한 대처를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직접 주술 집행을 맡을 거라 쉽게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레비스가 직접 주술 집행을 맡는다는 말에 바로스 후작은 씨익 웃었다.
“드디어 네 무거운 엉덩이가 들리는군. 죄다 베르강에게 관심이 가 있을 줄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베르강은 룩스 교단에서 알아서 처리할 거니까 신경은 끄도록 해라.”
레비스는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것보다 주의해라.”
“뭐를 주의하라는 거지?”
“티그리스가 보름이 넘도록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더군.”
“내가 알고 있기론 황제의 지시로 황궁에 들어가서 베르강을 대신해 황금 기사들을 교육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안 보이는 거 아닌가?”
“그래도 시기가 묘하게 겹치지 않나? 하필 이 중요한 시기에 보름 동안이나 단 한 번도 얼굴을 안 비치다니 말이야.”
“티그리스가 후작령에 몰래 잠입했을 거란 이야긴가?”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 신중하게 움직이게.”
바로스 후작의 눈에 살기가 담겼다.
“아니, 오히려 놈이 왔으면 좋겠군. 오면 놈의 모가지를 내가 직접 비틀어 버릴 테니까.”
“놈은 루카스를 단칼에 죽이고 변이체를 죽인 놈이다. 네가 생각했던 것처럼 쉽진 않을 거다.”
바로스는 등받이에 허리를 대며 말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 * *
트리샤는 저녁 7시 정각에 정확하게 호텔로 돌아왔다.
더 일찍 돌아올 수 있었지만, 혹시 뒤따라오는 놈들이 없나 일부러 길을 돌고 폴리모프 마법도 원래대로 바꾸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다.
트리샤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와구- 와구-
트리샤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너무 개연성이 없었다.
트리샤의 눈앞에 회색 늑대 귀와 꼬리를 가진 꼬맹이 두 명이 테이블에 앉아 양손에 고기를 집어 와구와구 씹어 먹고 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맛있게 먹는지 귀는 쫑긋 섰고 꼬리는 살랑이고 있었다.
트리샤는 창가 의자에 앉아 검을 닦고 있는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저희 언제 애까지 낳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