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81)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81화
경호(6)
바로스 후작은 수인을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할키스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할키스 영지 동쪽 2㎞ 정도 떨어진 으슥한 숲속에 위치한 비밀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이 비밀 지하 감옥은 여타 다른 감옥들과 달리 내란을 일으킨 중범죄자들을 수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이곳에 수인들을 가둬둔 이유는 간단했다.
감옥이란 구조가 외부나 내부로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쉬운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움직임이 잽싼 수인족들의 장점을 깎아 먹을 수 있는 직선적이고 좁은 구조는 전투 시 유리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수인들이 아무리 많이 쳐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바로스 후작이 올 때까지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으…….”
지하 감옥 밖에는 수십 명의 기사들과 마법사들 그리고 간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바로스 후작은 그들을 싸늘한 눈빛으로 훑곤 지하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 감옥 정문은 마치 날카로운 칼로 종잇장을 자른 것처럼 깔끔하게 잘려 나가 있었다.
‘절대 평범한 솜씨는 아니군.’
이 감옥 정문은 단단하기로 소문난 흑철 합금으로 만들어졌고, 거기에 바로스 후작이 직접 강화 마법까지 걸어놓은 것이었다.
‘마법은 아니고 검이군.’
이 철문을 단칼에 베어낼 수 있는 검사는 베르강을 제외하면 없을 줄 알았지만…….
역시 세상은 넓었다.
바로스 후작은 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이 철문을 잘랐다는 점에서 더 들어가서 봐봤자 의미가 없었다.
바로스 후작은 지하 감옥 밖으로 나왔다.
바로스 후작 가문의 후계자이자 장남인 아이작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고해라.”
아이작은 면목이 없다는 식으로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괴한 하나가 검 하나를 들고 지하 감옥을 쳐들어오더니 삽시간에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다 제압하고 수인 두 명을 데리고 사라졌습니다.”
바로스 후작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고작 하나?”
“예. 그렇습니다.”
아이작은 아직도 얼얼한 뒤통수를 매만지며 말했다.
“실력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스튜어 경과 할로우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삽시간에 당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바로스 후작은 어이가 없었다.
스튜어 경은 5성 기사고 할로우는 5서클 마법사로 바로스 후작 가문 내에서 고용한 기사와 마법사 중 최고 수준의 실력자였다.
그 둘이 괴한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제압을 당하다니.
상대가 베르강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제압을 당한단 말인가?
“다른 기사들이나 간수들은?”
“모두 한 방에 제압을 당했습니다. 게다가 수감자들도 모두 풀려나 버렸습니다.”
바로스 후작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풀려난 수감자들이 밖으로 나와 바로스 후작의 비밀 지하 감옥의 위치와 함께 고작 한 사람에게 감옥이 뚫렸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낼 것이다.
이걸 어떻게 수습 해야할지 감도 안 왔다.
“그 씹어 먹을 놈이 수인을 어디로 데려갔지?”
“……그것도 알 수 없습니다. 지하 감옥 외곽을 감시하던 기사들이 제일 먼저 당해 버린 터라…….”
“허허허…….”
바로스 후작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바로스 후작은 주변을 살폈다.
아이작을 비롯해 스튜어 경, 할로우에 기사들과 간수들 마법사들까지 전원 멀쩡했다.
모두 뒤통수나 관자놀이를 매만지는 게 한 방에 기절시켰다는 것이다.
죽이는 것도 아니고 단번에 제압을 하다니.
이런 솜씨를 가진 자가 수인족들 중에 있었던가?
바로스 후작은 이런 솜씨를 가진 수인족 검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 도대체 누가…… 잠시만 설마…….’
바로스 후작은 레비스의 말을 떠올렸다.
-티그리스가 보름이 넘도록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더군.
“티그리스.”
“예?”
“티그리스가 이곳에 있다.”
티그리스는 6성 기사 루카스를 단 두 번 만에 목을 날려 버린 놈이었다.
루카스가 목이 날아가던 날 바로스 후작은 그 자리에 있었다.
바로스 후작은 검술을 잘 모르긴 하지만 녀석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놈이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할 수 있다.
으득-!
바로스 후작의 이가 갈리는 소리에 아이작은 움찔했다.
“또 그놈이군.”
바로스 후작은 티그리스만 생각하면 아직도 침대에서 벌떡벌떡 일어난다.
티그리스 그놈은 바로스 후작의 권위를 바닥까지 추락시킨 주범이었다.
그런데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몰래 들어와서 훼방을 놓고 간다 이 말인가?
결국 바로스 후작의 분노 게이지가 임계점을 돌파했다.
“아이작, 넌 내일 해가 지면 테론으로 고용한 용병 놈들을 보내라.”
테론은 수도 할키스와 15㎞ 떨어진 작은 도시였다.
본래 그 도시에서 레비스와 함께 대장로 테호를 기습하기로 했지만, 순서를 조금 바꾸기로 했다.
일단 티그리스 그놈부터 먼저 처리한다.
“네? 벌써 말씀이십니까? 아직 수인족들이…….”
“테호 대장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티그리스, 그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을 죽일 절호의 기회다.”
아이작은 다급히 바로스 후작을 말렸다.
“각하. 티그리스가 진짜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그를 죽이기란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빈스모크 백작을 떠올리십시오. 놈의 검술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빈스모크 백작은 일개 기사고 나는 마법사다. 철저히 준비만 해놓는다면 티그리스가 아니라 베르강이라고 하더라도 죽일 수 있다.”
바로스 후작은 결계 마법에 특화되어 있다.
결계 마법은 다른 마법들 중에서도 방어와 함정에 특화되어 있다.
티그리스가 바로스 후작이 쳐놓은 마법 결계에 들어오는 순간 놈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다.
“각하. 설령 티그리스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황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제발 진정하십시오.”
“귀족은 공격을 받으면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이들에게 얕잡아 보이질 않는다.”
바로스 후작은 숲속을 잰걸음으로 빠져나갔다.
아이작은 그런 바로스 후작의 뒤를 따랐다.
“이번 일로 바로스 후작 가문이 죽지 않았음을 황국 전역에 알릴 것이다. 그럼 그 거머리 같은 놈들도 어느 편에 서야 할지 제대로 알게 되겠지.”
“아버지!”
“지금은 네 아버지가 아니라 네 상관이다! 각하라고 불러라!”
아이작은 바로스 후작의 호통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바로스 후작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말했다.
“아이작. 내가 내린 명령을 복명복창해라.”
아이작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내일 해가 지면 테론으로 고용한 용병들을 보냅니다.”
“넌 아직 어리다. 그리고 실추된 권위를 다시 세우는 방법에 대해 모르지. 이번 일을 통해 배우도록 해라.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바로스는 숲 밖에 대기해 놓은 마차에 올라탔다.
“그럼 출발하지.”
아이작은 떠나는 바로스 후작의 마차를 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이작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아이작은 바로스 후작 가문의 후계자가 아닌 일개 군인이니까.
그저 명령을 받은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 * *
트리샤와 어린 수인 두 명은 화장실에서 나왔다.
식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꼬질꼬질했었는데, 깨끗하게 씻고 나오니 어린아이 특유의 우유 냄새가 방을 가득 메웠다.
트리샤는 수인족들이 사용하는 수인어로 말했다.
수인 두 명의 이름은 라미와 라온이었는데, 라미가 누나고 라온이 남동생이었다.
라미와 라온은 말없이 침대에 걸터앉아 트리샤에게 머리를 맡겼다.
둘의 옷은 너무 더러워져서 빨아서 쓸 수가 없는 수준이라 그냥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고, 대신 트리샤가 사용하던 깨끗한 티셔츠 두 개를 꺼내 입혔다.
하암-
배부르게 먹고 씻으니 노곤해졌는지 라온이 하품을 했다.
라미는 조심스럽게 트리샤에게 물었다.
그건 트리샤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직 티그리스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티그리스가 입을 열었다.
라미와 라온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라미는 쪼르르 달려와 티그리스의 앞에 섰다.
티그리스는 그 컴컴한 지하 감옥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라미와 라온을 떠올렸다.
그 모습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티그리스도 연민의 눈빛으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애처로웠다.
티그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라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 *
쌕-쌕-
남매는 그동안 많이 지쳤는지 폭신한 침대에 눕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다.
트리샤는 남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구하신 거예요?”
“바로스 후작이 일부러 지하 감옥에 두 남매가 있다는 정보를 풀었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죠?”
“수인족들을 도발하기 위해서였겠지.”
티그리스는 인퀴지터 요원이 알려준 정보를 트리샤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러니까 암살자들과 용병들을 모은 것도 일부러 수인들을 도발하기 위해서였다고요?”
“그래. 테호 대장로를 공격할 명분을 찾아야 할 만큼 바로스 후작의 입지가 많이 흔들린 모양이었다.”
키메라 실험실 사건과 루카스 백작 사건이 연달아 터지며 바로스 후작을 따르던 귀족 가문들은 큰 위기감을 느꼈다.
키메라 실험실에 저들이 자금을 댄 이유는 바로스 후작이 나중에 왕좌에 올랐을 때 한자리 꿰차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똑같은 꿈을 꿨던 루카스가 죽어도 죽지 않는 괴물이 된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니, 키메라 실험이 얼마나 위험했던 거였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바로스 휘하에 있던 귀족 가문들은 바로스 후작을 떠나 황실에 연줄을 대고 싶어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수인족들을 공격하는 것은 저들이 바로스 후작을 버릴 명분을 쥐여주는 꼴이 되는 거라는 거네요?”
“그런 셈이지. 그래서 바로스 후작은 수인들이 먼저 공격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도발을 했던 거고, 그것도 먹히지 않자 저 남매를 미끼로 삼은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한데요. 바로스 후작이 그렇게까지 무리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트리샤는 바로스 후작의 뒤에 로타와 아르펨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 바로스 후작이 왜 그렇게 무리하는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길리온 왕국에 기밀 자료를 넘기고 백성들과 수인들을 대상으로 불법 키메라 실험을 했으며, 지금도 로타와 아르펨에게 자금을 대고 있다.
이미 바로스 후작은 놈들과 엮인 순간부터 결정을 내렸다.
황국을 멸망시키고 왕이 되던가.
아니면 자신이 죽거나.
“바로스 후작은 곧 죽을 목숨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다.”
“바로스 후작이 죽다니요? 왜요?”
“황제 폐하께선 바로스 후작을 죽일 명분을 이미 갖고 계신다. 당장 목을 치기엔 황국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상황이 좋지 않아서 섣불리 군사를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지. 준비만 되면 바로스 후작의 목을 칠 것이었다.”
“바로스 후작도 그걸 알았고요?”
“그래.”
“그럼 바로스 후작이 막 나가 버리면 어떻게 하죠? 테호 대장로를 죽이기 위해 암살자를 보내거나 군대를 보내는 식으로요.”
“그럼 그것 나름대로 좋다. 그렇게 된다면 바로스 후작 휘하에 있는 귀족들이 모두 등을 돌릴 테니까.”
“그게 아니라 제 말은 테호 대장로님이 다치시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거죠.”
“만약 할키스 내에 있는 암살자들이 움직이면 우리도 척살 작전으로 들어가면 된다.”
“테호 대장로님 앞에 암살자들이 도착하기 전에 모조리 처리하면 된다는 거죠?”
“그렇지. 그러기 위해 우리가 여기에 온 거니까.”
다만 걱정되는 것은 로타와 아르펨의 권속들이 움직이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현재 걱정해야 하는 놈들은 세 명이다.
교만을 깎아내는 자 펠렌.
나태를 깎아내는 자 오슬로.
로타의 입 레비스.
세 명 모두 몸이 자유로운 상태다.
펠렌은 바로스 후작이 지원하던 키메라 실험실이 사라지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고, 오슬로는 지금 티그리스 앞에 등장하면 그냥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나와줬으면 하는 반면 펠렌과 레비스는 조금 까다롭다.
펠렌은 8서클 대마법사로 전기 계열 마법을 다룬다.
펠렌은 벼락을 무영창으로 내리꽂을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신체 전기 신호를 뒤틀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장비를 잘 갖춰야 대항할 수 있다.
레비스의 경우엔 ‘천공의 사슬’이 있으니 놈이 저주를 걸고 도주하기 전에 죽여 버릴 수 있지만, 레비스의 성격상 직접 적과 마주 보고 싸우지 않는다.
만약 티그리스가 레비스라면 ‘야생의 본능’과 같은 수인족 전용 주술을 걸거나, 평형감각을 무너뜨리는 주술을 펼치는 등 신체 컨디션을 망가뜨리는 주술을 사용했다가 혼령술로 공격할 것이다.
“그럼 암살자들이 아니라 바로스 후작이 직접 움직이면요?”
“바로스 후작의 결계 마법은 대단하다고 알려져 있긴 하지. 미리 함정을 파두고 공격하면 위험하긴 하겠지. 그러나 다 해결 방법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바로스 후작의 결계 마법을 몇 번이나 경험해 봤고, 어떻게 파훼하는지 다 알고 있다.
그리고 놈은 아직 6서클 마법사다.
회귀 전에 바로스 후작과 마주했을 땐, 놈은 ‘교만의 창’ 시술을 받아들여 7서클 마법사가 된 상태에서 싸웠었다.
지금 바로스 후작이 아무리 열심히 결계 마법을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티그리스를 막을 수는 없었다.
똑- 똑- 똑- 똑- 똑-
그때, 일정한 리듬으로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트리샤는 살짝 긴장했지만, 티그리스는 이미 저 문밖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잠시 후 문을 열었다.
문 아래에 작은 종이가 깔끔하게 접혀 있었다.
티그리스는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와 쪽지를 읽었다.
[바로스 후작 18:45경 할키스에서 테론으로 출발.] [아이작, 용병들과 암살자들에게 내일 저녁 8시에 테론으로 향할 것을 지시.] [바로스 후작 테론과 할키스 영지 사이에 결계 마법 캐스팅 진행 중.]티그리스는 모두 읽곤 성냥 불을 붙여 태워 버렸다.
“트리샤 네 생각이 맞았군.”
바로스 후작은 막 나가기로 결정을 내린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