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86)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86화
테호(1)
티그리스는 쏟아지는 따뜻한 물줄기를 맞았다.
클린 아티팩트로 노폐물과 피를 씻어내긴 했지만, 근육에 파고든 피로감은 이런 따뜻한 물밖에 씻어낼 길이 없었다.
티그리스와 트리샤는 바로스 후작을 죽이자마자 호텔로 복귀한 것은 아니었다.
레비스가 테호 대장로를 노린다는 정보를 아이작으로부터 입수한 후였기 때문에 곧바로 테호 대장로의 암중 경호를 했다.
그러나 테호 대장로가 할키스에 도착할 때까지 레비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바로스 후작이 사망한 것과 황실이 단번에 바로스 후작령을 장악한 것에 충격을 받은 것 때문인지 소극적으로 행동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조금 아쉽군.’
현재 티그리스의 수준이라면 레비스를 죽일 수 있다.
놈이 도망치지 못하게 천공의 사슬로 행동에 제약을 걸어두고, 놈의 목을 베어버리면 되니까.
물론 정말 안전하게 레비스를 잡으려면 해주의 성물이 필요하긴 하지만, 기습 공격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하긴 레비스가 여기서 잡혀줄 리가 없지.’
놈의 생존 본능은 가히 바퀴벌레와 비슷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비스가 베오울프에게 저주를 걸고 도주한 2년 동안 단 한 번을 나타나지 않았다.
티그리스에게 걸리면 레비스는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놈이 티그리스에게 죽은 이유는 템페와 페이라, 오슬로와 함께 티그리스를 노리면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오판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때 티그리스도 거의 죽을 뻔하긴 했지만, 때마침 라칸이 와서 구해준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차피 레비스 그놈은 모리타에게 접근하게 되어 있다.’
레비스는 아르펨과 함께 티그리스의 대적자를 찾아 나서고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모리타와 접근할 것이다.
그럼 모리타를 감시하게 한 밤 여우의 코에 걸릴 것이고, 그때 놈을 잡으러 가면 된다.
‘모리타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밤 여우에게 보고를 받아야겠군.’
티그리스는 샤워 밸브를 잠그고 몸을 닦은 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티그리스!”
라미와 라온은 뭐가 그리 좋은지 티그리스가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꼬리를 흔들거리며 달려왔다.
“밥! 라미 라온 꼬르륵!”
이 호텔 방에서 인퀴지터 요원들과 잠시 지내면서 제국 공통어를 배웠는지, 라미와 라온은 제국 공통어로 티그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티그리스는 라미와 라온의 머리를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뒤 입을 열었다.
“그래. 밥 먹자.”
“와!”
“여기서 말고 밖에서.”
“……?”
라미와 라온은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더니 소곤소곤거렸다.
트리샤는 그런 아이들이 귀여운지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라미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트리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미와 라온은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신발을 신으러 달려가는 라미와 라온을 보며 트리샤는 빙긋 웃었다.
“이제야 다 끝이 난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시작이지. 에이미로 황자 전하께서 하실 일은 더욱 힘드실 거다.”
이곳은 바로스 후작을 중심으로 군부 세력의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땅이다.
수많은 피가 흐를 것이고, 그 자리를 대체할 사람을 뽑는 것도 문제일 것이며 그 밖에 산재한 문제들이 한가득일 것이다.
“뭐, 그건 우리가 걱정해도 될 일이 아니잖아요.”
트리샤의 말이 틀리진 않았기에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이런 행정적인 분야는 티그리스보다 에이미로 황자가 훨씬 전문가다.
에이미로 황자는 제국 대학을 나오자마자 황도 미들타운의 부시장이 되어 각종 국정 업무를 수행했다.
나중에 해리 황태자가 황좌에 오르면 황도 빅토리에의 최고 행정관의 자리에 올라 국정을 돕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에이미로 황자가 바로스 후작령을 전부 다스리고 남부 사령관의 직책을 수행하는 것은 확실히 무리다.
그러나 황제는 에이미로 황자를 보좌할 부사령관으로 작년에 은퇴한 1군단의 군단장 ‘빌헬름’을 앉혔으니 괜찮을 것이다.
빌헬름은 회귀 전에 레인로버를 보필했던 카리스마 있는 철혈 노장이니 믿을 만할 것이다.
그때, 라미와 라온이 도도도 뛰어왔다.
아직 신발이 어색한지 라온이 엎어지려 하자 티그리스가 반사적으로 라온의 겨드랑이를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티그리스는 라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또 넘어지면 무릎이 다칠 테니까.
그러자 라온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티그리스의 손을 잡았다.
아이의 손은 너무나도 부드럽고 폭신했다.
그 폭신하고 따뜻한 감촉에 티그리스는 잠시 멈칫했다.
“……그럼 가지.”
* * *
테호 대장로와의 식사는 호텔 1층 라운지에서 하기로 했다.
티그리스가 현재 남부 지방에 있다는 게 공식적으로 밝혀져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일단 숨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1층 라운지로 향하자 라미와 라온의 코가 벌름거렸다.
라미와 라온은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은 듯 심장이 마구 쿵쾅쿵쾅 뛰었다.
티그리스와 트리샤 그리고 인퀴지터 요원들이 최대한 따뜻하게 돌봤다고 하더라도, 같은 수인이 아니다 보니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티그리스와 트리샤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조금 더 빨리 라운지로 향했다.
그곳엔 하얀색과 검은색이 오묘하게 뒤섞인 긴 머리칼을 깔끔하게 뒤로 묶은 노인이 자리에 있었다.
라미와 라온처럼 귀나 꼬리는 없었는데, 주술로 숨기거나 없앤 모양이었다.
그러나 풍기는 기백이나 덩치 그리고 얼굴은 정말 호랑이를 자동으로 연상케 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라미와 라온이 테호에게 달려갔다.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던 테호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라미와 라온을 안아주었다.
늑대와 호랑이라는 전혀 다른 종족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마치 진짜 친할아버지, 손자 손녀를 대하는 것처럼 대했다.
라미와 라온은 테호의 품에 안기자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긴장이 풀어지고 마음이 안정되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난 것이다.
테호는 그런 라미와 라온를 꽉 껴안아주었다.
라미와 라온이 어떻게 밀렵꾼들에게 잡혔는지 티그리스와 트리샤는 묻지 않았다.
괜히 둘의 트라우마를 자극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어린 수인들이 제일 참기 힘든 식욕을 미끼로 납치한 모양이었다.
테호는 라미와 라온을 껴안아 들곤 티그리스와 트리샤를 쳐다봤다.
테호는 트리샤와 기묘한 눈빛 교환을 했다.
트리샤는 ‘리베르’ 소속이다 보니 이미 서로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밀림의 대장로 테호라고 합니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입니다.”
“트리샤입니다.”
티그리스는 회귀 전을 통틀어 테호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테호는 밀림의 황폐화 때 사망했으니까.
그렇기에 테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들은 것은 있었다.
테호 대장로는 호랑이족답게 굉장히 호전적이고 용맹하며 굉장한 주술사라고.
그러나 인간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회귀 전, 밀림이 황폐화가 진행되던 와중에도 절대로 황국에 손을 벌리지 말자는 강경한 입장을 내놓을 정도였다.
그러나 라칸의 기나긴 설득 끝에 황국에 수인과 드워프들의 미래를 맡기며 탈출 도중 템페에게 사망했다.
티그리스와 테호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서로를 가늠하는 것이었다.
‘강하군.’
수인의 오러 사용 체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은연중에 풍기는 오러의 기운으로만 봐선 거의 베르강과 비슷한 정도였다.
인간은 고리라는 특유의 방식으로 오러를 통제하며 발전해 왔다면, 수인들은 주술의 힘이 담긴 문신의 힘으로 오러를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문신의 개수와 종류는 그 수인의 재능을 포함한 노력에 따른 신체 성장 등 복합적인 요소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며, 평균 1~2개 정도가 끝이었다.
‘밤 여우가 분명 4개였지.’
밤 여우를 기준으로 보자면 테호는 약 5~6개 정도 문신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마스터 클래스 이상일 게 분명했다.
“우선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라미와 라온을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해야만 했던 일이었습니다.”
테호는 티그리스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의 눈은 현자의 눈처럼 티그리스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가늠해 보고자 하는 것 같았다.
아직도 인간을 잘 믿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티그리스의 무력을 가늠하지 못해서일까?
테호의 표정은 다소 복잡해 보였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면 없던 이야깃거리도 생기고 자동으로 말문이 트일 것이다.
그리고 오가는 잡담 사이에서 상대방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티그리스의 제안을 테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죠.”
* * *
티그리스는 테호가 호랑이족이라고 해서 고기만 먹는 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실제로 밤 여우는 여우족이지만 고기만큼이나 아삭한 식감의 당근도 좋아하니까.
그런데 테호는 굉장히 특이했다.
“호랑이가 풀만 먹으니 이상하십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테호는 소고기 스테이크가 아닌 야채 볶음밥과 샐러드를 주문해 먹었다.
물론 양은 덩치만큼이나 많이 먹긴 했지만, 고기는 일절 쳐다도 보지 않았다.
채식주의자 호랑이라니.
특이하지 않다면 이상할 것이다.
“작년부터인가? 초식계 수인족을 이해해 보기 위해 채식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입맛에 잘 맞아서 기회가 되면 채소만 먹습니다.”
“수인족들은 농사를 안 짓습니까?”
“밀림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땅을 개간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 밀림 땅이 농사짓기 좋은 땅은 아니라서 인간들처럼 농사는 짓지 못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수인들은 천 명, 백 명 단위로 뭉쳐 지내는 성격도 아니고요.”
테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수인들이 모두 함께 뒤섞여 살게 된 것은 2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수인들이 납치에 취약했던 가장 큰 원인이 이것이다.
수인들은 원래 대단위로 뭉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단위 아니면 기껏해야 부족 단위로 뭉쳐 지낸다.
그냥 단순히 먹는 것만 생각해봐도 답이 나온다.
예를 들어 늑대족이 먹는 것은 육식이다.
밀림에 돌아다니는 노루를 사냥해 먹는데, 그것을 노루족이 보고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주로 활동하는 시간도 겹치지 않는다.
올빼미족이나 박쥐족과 같이 야행성도 있고 원숭이나 사슴족과 같이 주행성 수인도 있다.
서로 사는 삶의 방식 자체가 많이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종족 아니면 가족별로 떨어져 지내게 되었고, 밀렵꾼들이 초반에 기성을 부렸다.
“수인 납치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하자 공동생활 형태로 전환된 것이죠.”
“갑자기 공동생활로 변한 만큼 트러블이 많을 것 같습니다.”
테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편한 점도 있고 여러 문제들이 있긴 하죠.”
테호의 표정으로 보아 현재 수인족 자치구의 상황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아마 테호가 지금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테호는 열심히 고기를 썰고 있는 라미와 라온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어른들이 많이 견디고 있는 셈이죠.”
약간 분위기가 무거워지려고 하자 트리샤는 눈치 좋게 끼어들었다.
“그러면 황궁에 고기 준비하지 말고 야채랑 채소를 잔뜩 준비해 달라고 해야겠네요. 테호 대장로님이 고기보다 야채를 좋아하실 줄은 몰랐을 테니까요.”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달그락-
그때 라온이 식기를 떨어뜨렸다.
티그리스와 트리샤 그리고 테호가 포크와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것을 보고 따라 해보려 했는데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티그리스는 라온의 접시를 가져와 대신 썰어주었다.
원래라면 종업원이 대신 썰어줘야 하지만 내부 보안 문제 때문에 종업원들은 식사를 건네주기만 하고 모두 식당에서 떠난 상태였다.
티그리스는 잘게 썰린 스테이크를 라온에게 건네며 말했다.
티그리스가 수인어를 할 줄 알자 테호는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수인어를 할 줄 아십니까?”
“조금 할 줄 압니다.”
수인어는 회귀 전 라칸에게 배운 것이다.
일반 병사와 수인족들이 뒤섞여서 편제가 구성되어 있을 때, 올바른 의사 전달을 위해 수인어를 배워두었다.
“노르베르드는 밀림과 거의 정반대에 있는 곳이라서 배울 필요가 없으셨을 텐데요?”
“필요 없는 지식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처럼 잘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렇군요.”
테호의 시선이 조금 더 부드러워진 것은 착각일까?
티그리스가 수인어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티그리스를 향한 호감도가 많이 올라간 듯했다.
* * *
식사가 모두 끝나고 테호는 주변을 둘러싼 황금 기사들과 수인들에게 말했다.
“잠시 이렇게 셋만 대화를 나누고 싶군요.”
그 말에 황금 기사들과 수인들은 서로를 잠시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떠났다.
라미와 라온도 수인들의 품에 안겨 떠났고 셋이 남았다.
이제 진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테호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바로스 후작을 죽이셨다고 했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황국이 그런 결정까지 내리실 줄은 몰랐거든요.”
“바로스 후작은 키메라 실험에 자금을 댔다는 것 하나만으로 원래 목을 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실리적인 문제 때문에 가만히 두고 있었던 것이죠.”
“실리적인 문제라면…….”
“바로스 후작이 죽고 난 후에 남부 지방 안보가 흔들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테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뜻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에이미로 황자 전하를 비롯해 군사 및 행정 전문가들이 남부 지방을 안정화하기 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흑토 지대와 달리 주변 귀족들이 황제 폐하께 호의적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흑토 지대가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다곤 하지만 여전히 성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을 부리는 지역 유지들과 귀족들이 있는 상태다.
심지어 흑토 지대의 귀족들은 자기들만의 군소 왕국을 세우겠다며 난리를 치고 있는 중이라 꽤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남부 지방은 달랐다.
남부 지방의 귀족들은 황제의 군세를 모두 받아들이고 그 어떤 처벌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었다.
황제의 언더커버가 단 하루 만에 바로스 후작과 후계자의 목을 쳐버렸으니 자신들도 똑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기 때문이었다.
황제 입장에서야 감히 반기를 들었었던 28가문의 가주들의 목을 모두 치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하지만 흑토 지대처럼 귀찮게 왕국을 세우겠다고 난리를 치면 귀찮아질 게 분명했기에 일단 그들이 얼마나 황실에 충성하는지 지켜본 후에 판단을 내리기로 했다.
구태여 많은 피를 볼 필요는 없으니까.
“그럼 바로스 후작은 티그리스 경이 죽인 게 맞습니까?”
숨길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테호는 그럴 것으로 예상하고 있긴 했지만 굉장히 놀랐다.
겉모습으로 보면 티그리스는 이제야 20대 초반처럼 보이는데, 그 악마 같은 바로스 후작을 죽이다니.
그것도 베테랑 6서클 마도사를.
“제가 알고 있기론 티그리스 경이 5성 기사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5성 기사가 6서클 마도사를 죽이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만반의 대비가 되어 있는 마도사를 상대로 말이죠.”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티그리스 경은 어떻게 바로스 후작을 죽인 겁니까?”
테호의 질문에 티그리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바로스 후작은 저를 잘 몰랐고 방심했습니다. 그래서 죽은 겁니다.”
티그리스는 티스푼을 들었다.
그리고 오러를 집어넣었다.
“……검강.”
5성 기사가 검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심지어 스푼으로 검강을 빚어내니 도저히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스푼은 오러의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빨갛게 달아올랐다.
티그리스는 두꺼운 손수건에 스푼을 올려놓았다.
“제가 루카스를 두 번의 칼질로 죽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스 후작은 저를 죽이기 위해 결계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때, 분명 검강도 사용했었죠. 그러나 바로스 후작은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어 황국과 제게 대적했고, 죽은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테호는 할 말을 잃었다.
고작 티스푼으로 검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사에게 바로스 후작이 덤벼들었으니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테호는 세기 아니,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를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해했습니다.”
테호는 떨리는 가슴을 차로 달랬다.
티그리스란 인적자원을 테호의 암중 경호를 위해 파견할 정도라면 수인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솔직히 터놓고 말하겠습니다. 몇 달 전, 황국이 키메라 실험실 사건과 관련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해서 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수인들을 이용해 키메라를 만들었다는 말에 저희도 굉장히 분노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황국의 입장에서 수인의 도움이 왜 필요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테호는 라미와 라온에게 따뜻하지만, 사실 굉장히 냉소적이고 계산적인 성격이었다.
수인들은 현재 밀렵꾼들을 막는 데만 급급한 상황인데 어떻게 키메라 실험실 문제까지 건드릴 여력이 있겠는가?
테호는 티그리스를 통해 황국의 의중을 어렴풋이 듣고 싶어했다.
티그리스는 잠시 생각했다.
로타와 아르펨이 대륙을 점령하기 위해 마수를 뻗어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될 테지만, 근거도 부실하고 설득하려면 너무나도 많은 비밀을 풀어야만 했다.
그러니 티그리스는 얼마 전 아이작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공개하기로 했다.
“수인족 자치구 내에 ‘거인들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