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89)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89화
질투(2)
티그리스와 트리샤는 라미와 라온과의 작별 인사를 호텔에서 해야 했다.
바로스 후작령에 티그리스와 트리샤가 있다는 것은 아직 극비 사항이기 때문에 본모습을 드러내고 열차에 탑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트리샤는 한쪽 무릎을 꿇고 라미와 라온과 눈높이를 맞췄다.
라온은 이날이 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눈물이 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라온은 애타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라온은 인간 나이로 치면 이제 겨우 5살에서 6살 정도다 보니 아직 이별에 익숙하지 않았다.
트리샤는 라온의 통통한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라온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결국 말없이 트리샤의 품에 안겼다.
라미는 라온과 달리 굉장히 어른스럽게 대했다.
그러나 라미도 눈물이 흘리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라미도 트리샤의 품에 안겼고 트리샤는 라미와 라온을 부서져라 안아주었다.
그리고 라미와 라온의 머리에 키스를 해주며 말했다.
라미와 라온의 시선이 티그리스에게 향했다.
라미와 라온의 눈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부모를 만나러 가고, 티그리스는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것이다.
분명 서로에게 좋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아쉬움만 남는 것일까?
이 인간적인 모순이 티그리스의 마음을 간질였다.
티그리스는 둘에게 천천히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무슨 작별의 인사를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뭇거리고 있을 때, 라미와 라온은 티그리스의 품에 들어왔다.
티그리스는 살짝 얼어붙었다.
그러고 보니 살아 있는 누군가를 품에 안아본 적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그리스가 안은 것은 모두 죽어가는 이들이었다.
샤를로트, 베오울프, 리니아…….
티그리스가 손 써볼 겨를도 없이 차갑게 죽어가는 이들이 아닌 티그리스의 손으로 직접 구한 자들이 티그리스의 품에 들어오는 느낌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묘한 기분이었다.
티그리스는 손을 뻗어 라미와 라온을 안았다.
티그리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헤어짐의 아쉬움은 훗날 다시 만날 것이란 약속으로 털어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만날 날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날까지 기대와 행복이란 잔잔하면서도 즐거운 감정으로 세월을 보낼 수 있으리라.
* * *
테호와 티그리스는 열차 안에서 만남을 다시 가졌다.
여러 빈말이 오간 뒤 테호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중간에 마케돈에 내리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모리타를 만나러 가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테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주제넘은 이야기라 생각되지만……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겠습니까?”
테호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티그리스는 생각을 해봤다.
점을 칠 수 있는 수준 높은 주술사다 보니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걸까?
아니면 티그리스에게 단순히 고마워서 그런 걸까?
티그리스의 고민을 읽은 테호는 곧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어제 천기의 흐름을 읽었는데, 티그리스 경이 가는 마케돈 쪽에 흉살이 뻗어 있었습니다.”
“흉살이라고 하면 안 좋은 기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티그리스 경께서 하실 일에 문제가 생긴다고 단정을 지을 순 없겠지만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니지요.”
테호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겠습니다만, 작은 힘이라도 보태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이번 모리타 일에 관해 도울 일이 있겠습니까?”
티그리스는 점괘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
그래서 흉살이 뻗어 있다는 말이 얼마나 안 좋은 일인가에 대해 가늠할 수도 없다.
애초에 주술이라는 것 자체가 효과도 그렇고 과정 자체도 굉장히 모호한 기술이니까.
“주술에 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테호 대장로님께서 제게 도움을 주시고 싶으시다고 할 정도라면 무시하지 못할 일임은 분명하겠죠.”
티그리스는 곰곰이 생각했다.
테호는 굉장히 훌륭한 주술사다.
티그리스에게 효험있는 부적을 만들어 줄 수도 있고, 아니면 좋은 주술을 걸어줄 수도 있다.
아니면 좋은 성물을 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흠……. 해주용 성물이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원래 빅토리에에 도착하면 트리샤를 곧바로 애통의 던전에 보내 해주용 성물을 얻어 오려고 했었지만, 테호에게 해주용 성물을 받을 수 있다면 굳이 트리샤를 보낼 필요는 없다.
“혹시 해주용 성물이 있습니까?”
“해주용 성물이라고 하면 저주를 푸는 성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애통의 반지처럼 말이죠.”
애통의 반지란 말에 테호는 잠시 고민했다.
애통의 반지는 모든 종류의 저주를 해주할 수 있는 굉장히 효험 있는 성물이다.
그런 성물이 정말 흔한 것은 아니지만, 테호에겐 마침 한 가지 성물이 있었다.
테호는 품속에서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팔찌를 꺼내 들었다.
“백호족에게 내려오는 성물 중 하나입니다. 이름은 ‘수호의 팔찌’입니다. 본래 제사용 성물이긴 하지만 각종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운수를 좋게 만드는 효과가 있죠. 물론 이 팔찌를 착용한 상대의 몸에 걸린 저주를 막아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테호는 티그리스에게 수호의 팔찌를 건넸다.
“물론 완전히 드릴 순 없습니다. 이 성물은 제가 백호족의 수장이라는 상징과 같은 거라서 말이죠.”
“……그렇게 소중한 것을 제게 빌려주실 것까진 없습니다.”
“아뇨. 드려야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마음이 불편하시면 라미와 라온이를 구해준 보답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티그리스는 결국 수호의 팔찌를 받아들였다.
레비스를 상대할 때 준비하고 또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다.
“잘 사용하겠습니다.”
* * *
티그리스와 트리샤는 할키스로 올 때처럼 같은 칸에 탑승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처럼 침대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로 나뉘어 있는 형태였다.
티그리스는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었다.
트리샤는 질리는 표정으로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티그리스 님은 정말 잠시도 쉬지 않으시네요.”
“쉬고 있는 거다.”
“수인어를 배우고 있는 게요? 그건 공부라고 하는데요?”
티그리스의 열차 안 루틴은 굉장히 단순했다.
일어나 씻고 식사를 하면 점심때까지 세포 성장술을 사용해 신체 단련을 한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저녁이 될 때까지 수인어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다.
저녁이 되면 세포 성장술을 이용해 몸을 다시 단련하고 잠에 든다.
정말 지독할 정도로 근면 성실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수인어가 아닌 점성술을 공부하고 있다.”
“……그 책은 또 어디서 난 거예요.”
“테호 대장로님께 빌렸다.”
“설마 수인어도 공부하고 점성술도 공부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란 생각으로 그 어려운 책을 보고 있는 건 아니죠?”
“맞다.”
트리샤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 눈을 감아버렸다.
트리샤는 눈을 흘금 떠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저 할 말 있는데요.”
“말해라.”
“……저 리베르예요.”
티그리스는 그제야 책에서 시선을 떼고 트리샤의 얼굴을 봤다.
트리샤는 물끄러미 자신을 쳐다보는 티그리스의 시선이 부끄러웠는지 뺨을 긁적였다.
“……속여서 죄송해요. 기사가 되기 전에 먼저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그런데 아시잖아요. 저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알고 있었다.”
“……제가 리베르인 것을 알고 계셨어요?”
“그래.”
“언제부터요?”
“널 만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트리샤는 ‘그럼 그렇지…….’라며 작게 중얼거렸다.
티그리스가 자신의 정체에 대해 전혀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속 편한 생각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하신 거예요?”
“레인로버 전하께서 수인들을 괜히 자극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네가 리베르인 것을 알게 된다면 수인족 자치구에서 황국과의 수교를 안 좋게 볼 수도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지. 난 레인로버 전하의 걱정을 이해했고, 그래서 네게 리베르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대답에 트리샤는 살짝 고장이 났다.
“……그러니까 저 때문이 아니라 수인족 자치구를 자극하기 싫어서 일부러 모른 척했던 거라고요?”
“그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럼 두 번째 이유는 뭔데요?”
“네가 리베르여도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정확히 무슨 말이에요?”
“너는 기사 계약을 떠나 주문 사냥의 술을 배우려면 내가 반드시 필요하다. 네가 날 배신할 리가 없었다고 생각했지.”
“등에 칼 꽂는 일만이 배신이 아니잖아요. 수인들에게 티그리스 님에 대한 정보를 넘기는 것도 배신이죠.”
“그래서 내 개인적인 정보를 넘긴 적이 있나?”
트리샤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런 적은 없지만……. 그래도 티그리스 님과 제가 테호 대장로님을 경호하기 위해 내려간다는 건 말한 적이 있는데요?”
“너와 내가 밀림으로 향하는 것은 극비이긴 하지만 테호 대장로도 알게 될 사실이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제가 먼저 리베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이런 극비 정보를 리베르에 넘길 수 있었잖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지.”
“아니, 결과론적으론 그렇긴 한데……. 왜 그렇게 절 신뢰하시는 건데요? 솔직히 말해서 저희 본 지 이제 겨우 1달 하고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잖아요.”
티그리스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지자 책을 덮었다.
“한 가지 물어보지. 넌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나?”
“……네.”
“거짓말이군.”
“…….”
트리샤는 변명을 하지 않았다.
티그리스는 진실을 판독할 수 있는 눈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기사는 위험에 처한 주군을 위해 죽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기사도와 계약서에 명백하게 나와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기사는 흔치 않다.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 부양해야 할 부모님이 있어서,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막상 죽으려고 하니 두려워져서. 네 경우에는 네가 이뤄야 할 목표가 있기 때문이겠지.”
“그건…….”
“널 책망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세상에 네 목숨은 하나뿐이고 귀중하니까. 그러니 네가 나를 위해 죽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냥 도망만 치면 다행이다.
나중에 탈영 죄를 받을 것이 두려워 자신의 상관의 등에 칼을 꽂고 후방으로 도망치는 경우도 있다.
당연하겠지만 티그리스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티그리스의 휘하에 있던 기사들이 모두 반기를 들고 티그리스를 함정에 밀어 넣고 도망쳤다.
“……물론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을 정도라고 하기엔 아직 제가 준비가 덜 됐다는 것은 인정해요. 하지만 그건 너무 극단적인 상황을 예로 드신 거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진정으로 기사도를 실천하기 위해선 너와 나 사이에 신뢰와 유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뢰와 유대는 내가 강요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이 진리를 티그리스는 레니를 통해 알게 되었다.
레니는 티그리스가 잘못된 판단으로 노르베르드를 몰락의 길로 인도했었지만, 시종장으로서 남아 티그리스의 옆을 지켜주었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행동으로 자신의 신뢰를 먼저 보여준 레니의 모습에 티그리스는 타인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선 먼저 신뢰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진리를 깨달았을 땐 너무 늦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래서 난 네게 먼저 신뢰를 보일 것이다. 네가 하는 말을 경청할 것이고, 내 명령과 네 가치 기준이 충돌한다면 난 다시 심사숙고할 것이다.”
티그리스는 트리샤의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을 보며 말했다.
“네 신뢰를 얻기 위해서.”
“…….”
티그리스는 아직 트리샤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트리샤가 진심으로 티그리스를 따르게 만들기 위해 트리샤를 먼저 믿는다.
철학이나 제왕학에서나 나올 법한 고리타분한 말이지만, 티그리스가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고 말을 하니 트리샤는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기사가 되기로 결정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이해가 됐나?”
“……네.”
트리샤는 다시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는 티그리스를 흘금 봤다.
뭔가 오늘은 검술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운 것 같았다.
…….
“그런데 티그리스 님.”
“말해라.”
“언제 첫 페이지를 넘기실 건가요?”
“…….”
“책이 좀 어렵죠?”
수인어도 어려운데 각종 주술 관련 단어가 나열되어 있는 점성술 관련 책을 읽는 것은 엄청 어려울 것이다.
트리샤는 의자를 끌고 와 티그리스의 옆에 앉았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건 우리 사이를 더욱 끈끈해지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죠.”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티그리스는 트리샤가 잘 볼 수 있게 책을 기울였다.
* * *
티그리스는 마케돈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마케돈에 대해 어느 정도 들은 것은 있다.
마케돈은 황국 내에 몇 없는 관광도시였다.
각종 유흥 시설을 비롯해 도박장, 투기장, 경마 등을 즐길 수 있는 데다가 다른 지역보다 서늘해서 돈 많은 귀족들이나 부호들이 피서를 오곤 하는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티그리스와 트리샤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신혼부부시구나! 혹시 머무실 호텔 예약하셨나요?”
“마사지샵이 있는데 마사지를 받고 가세요!”
“단돈 10실버만 주시면 제가 마케돈 한 바퀴를 싹 돌아드리겠습니다! 물론 좋은 호텔도 소개해 드리고요!”
티그리스와 트리샤가 마케돈역에 내리자마자 호객꾼들에 둘러싸여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티그리스와 트리샤가 입고 있는 옷이 제법 고급 옷이다 보니 돈 냄새를 맡은 호객꾼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트리샤는 이런 관심을 꽤 즐겼지만, 티그리스는 피곤할 뿐이었다.
트리샤는 티그리스가 귀찮아한다는 것을 바로 눈치채고 손을 번쩍 들었다.
“잠깐! 모두 조용!”
트리샤의 우렁찬 목소리에 호객꾼들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다물었다.
“지금부터 경매에 들어가겠습니다! 마케돈을 구경하고 싶은데, 엉덩이 안 아픈 편안한 4인용 마차 갖고 계시는 분!”
트리샤의 말에 호객꾼들은 곧바로 눈치 좋게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8실버에 모시겠습니다!”
“아냐! 저는 7실버! 7실버에 모시겠습니다!”
“5실버! 5실버요!”
호객꾼들은 서로 경쟁을 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트리샤는 50쿠퍼에 좋은 마차를 하나 구할 수 있었다.
“……저 부부는 여자가 기가 세구먼.”
“딱 봐도 남자가 잡혀 살게 생겼어.”
“제기랄 오늘 호구 하나 잡나 했는데.”
트리샤는 티그리스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자기 뭐 해요. 어서 타지 않고.”
“……제법 능숙하군.”
“이런 호객꾼들을 다루는 것쯤이야 눈감고도 하죠.”
트리샤와 티그리스는 마차에 올라탔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혹시 구경하고 싶은 데가 있나요?”
“마케돈은 처음이라서요. 그냥 한 바퀴 쓱 훑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강변부터 가시죠!”
마케돈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바로스 후작령과 달랐다.
굉장히 활기차고 자유로웠으며 길목마다 음악이 흘러넘쳤다.
귀족들과 부호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보니 길목도 제법 깨끗했다.
그러나 사람은 달랐다.
“나리! 한 푼만 줍쇼!”
“이틀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요!”
마차 창문으로 손을 뻗어오는 거지들이 많다는 점은 별로 좋진 않았다.
심지어 손을 뻗어 티그리스의 옷에 달린 단추나 브로치를 떼어 가려고 하자 티그리스는 그냥 창문을 닫아버렸다.
“할키스하곤 여러모로 다르네요.”
할키스도 거지들은 있었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돈을 달라고 손을 뻗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순찰하는 경비대에게 걸리면 죽을 때까지 매를 맞아 죽을 테니까.
마케돈 거리를 20분 정도 돌았을까?
두건을 쓴 여인 하나가 마차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마부는 깜짝 놀라 말을 멈춰 세웠다.
“지금 뭐 하는……!”
“그냥 가게. 아는 지인이니.”
티그리스의 말에 마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 사람 더 추가하면 추가 비용이 붙는…… 아이고 감사합니다.”
트리샤가 센스 있게 은화를 하나 튕겨 마부에게 건네니 입을 다물었다.
트리샤는 마부와 연결된 유리창과 커튼을 쳤다.
그러자 갑자기 마차 안으로 들어온 여인은 두건을 벗었다.
밤 여우.
네메시스였다.
“오랜만이군.”
“마차에 걸어둔 손수건이 아니었으면 못 알아챌 뻔했어. 마차 안에서 풍기는 냄새가 아예 달랐거든.”
네메시스는 티그리스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네메시스는 티그리스의 옆에 앉은 트리샤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이쪽은 누구야?”
“나야. 네메시스.”
트리샤는 폴리모프 마법을 풀었다.
네메시스는 트리샤의 얼굴을 보더니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날 아는 체하는 걸 보니 결국 너도 들켰구나.”
“뭐 그런 셈이지. 그나저나 잘 지냈어?”
네메시스는 티그리스를 째려봤다.
“겨우 2골드로 거의 반년 넘게 부려 먹은 누구 때문에 짜증이 솟구치던 차였지.”
“자금이 다 떨어졌나?”
“여기 물가가 진짜 장난 아니거든? 이미 선수금은 다 동나 버렸지.”
“얼마나 더 필요하지?”
“필요 없어.”
네메시스는 품에서 작은 쪽지를 꺼냈다.
“의뢰를 완수했거든. 당신이 찾는 그 사람 어제 모리타랑 접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