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90)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90화
질투(3)
모리타는 마케돈 투기장 한편에 마련된 집으로 향했다.
물론 자물쇠 키가 모리타가 아니라 투기장 직원에게 있고, 문이 무거운 강철 문으로 되어 있으며, 창문도 팔 하나 겨우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작으며, 경기를 치를 때를 제외하면 나갈 수 없다.
그런 곳을 보통 감옥이라고 부르지만, 그래도 투기장의 인기 스타다 보니 경기를 치른 후에는 맛 좋은 음식들과 술이 나오기에 나름대로 만족했다.
엄동설한의 길바닥에서 딱딱하게 굳은 빵이나 음식물 쓰레기들을 주워 먹는 것보단 백배 나으니까.
모리타는 투기장 직원에게 자신의 양팔에 달린 의수검을 넘기고, 가면도 벗었다.
철컹-!
투기장 직원이 감옥 문을 열어주자 모리타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 안엔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모리타의 형, 그리프 자작이었다.
그리프 자작은 벽에 붙은 사진들과 신문 스크랩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오늘도 이겼더군.”
“오늘도 살아남은 거지.”
그리프 자작은 벽에 걸린 사진 하나를 떼어냈다.
파파라치가 찍은 티그리스의 사진이었다.
“최근 검투사들에게 이상한 말을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네가 이 마케돈 투기장의 티그리스라고.”
“뭐, 그랬었지.”
“이제 와서 별칭을 바꾸고 싶은 거냐?”
모리타는 탁상 위에 올려져 있는 나무 의수를 팔에 끼우며 말했다.
“이제 내 별칭이 제법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왜 바꾸겠어?”
“그럼 왜 검투사들에게 이상한 말을 하는 거지?”
“그런 시답지 않은 일 때문에 온 건가?”
그리프 자작이 말없이 모리타를 지긋이 쳐다보자, 모리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별거 아니야. 처음엔 날 이 시궁창으로 밀어 넣은 놈이 정말로 밉고 싫고 질투 났는데…….”
모리타는 그리프 자작의 앞에 섰다.
“매일같이 미워하고 증오하고 저주하다 보니 어느 순간 티그리스가 되고 싶어졌어.”
그리프 자작은 벽에 걸린 신문 스크랩의 제목들을 훑었다.
[황도의 영웅 티그리스, 반역자 빈스모크 백작을 베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 최연소 5성 기사가 되다.] [베르강, 티그리스는 대륙 역사상 최연소 소드 마스터가 될 것…….]“양손도 없는 병신이 티그리스가 되고 싶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큭……! 크크크크!”
모리타는 어깨를 들썩이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형은 몰라. 아니, 이 기사들을 쓴 기자들을 포함해서 티그리스가 어떤 녀석인지 아무도 몰라.”
모리타는 의수로 티그리스의 사진을 매만졌다.
“놈은 그렇게 대단한 놈이 아니야. 남을 깔보고 병신으로 만들길 좋아하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지.”
모리타는 이제 막 말문이 트인 아기처럼 미친 듯이 말을 쏟아 냈다.
“기억나? 제이콥 형이라 나랑 형이랑 같이 잠자리랑 나비 날개를 하나씩 하나씩 뜯은 다음 구경했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놈은 마치 날개를 하나씩 뜯어내듯이 내 자존심을 철저하게 짓밟았어. 마치 자기가 선생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야.”
“분명 내가 살려달라고 빌었을 때 놈은 참을 수 없는 희열을 느꼈겠지. 자신이 목숨을 구걸하는 이 벌레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고 말이야.”
“티그리스 그놈은 결코 황도의 영웅이 아니야. 놈은 남의 인생을 가지고 놀고 지배하고 부숴 버리는 것을 좋아하는 잔혹한 쾌락주의자지.”
모리타는 양손으로 그리프 자작의 손에 들려 있는 티그리스의 사진을 집었다.
“녀석과 나와의 차이는 하나야. 놈은 그 쾌락을 너무 일찍 안 것이고 난 이제 와 알게 된 거지.”
모리타는 벽에 꽂혀 있는 핀 하나를 입으로 물어 뺀 뒤 사진을 다시 벽에 고정시켰다.
“그러니까 날 죽이려거든 좀 실력 있는 놈을 데려와. 괜한 돈 날리지 말고.”
그리프 자작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흠……. 그리프 자작이 널 살려두는 이유가 투기장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널 죽이기 위해서였나? 왜 그런 불편한 짓거리를 하는 거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오늘 뭐 잘못 먹었어?”
“내가 아직도 그리프 자작으로 보이나?”
“그게 무슨…… 어?”
그리프 자작은 오른손으로 얼굴을 쓸어 올렸다.
그러자 새하얗고 메마른 사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레비스였다.
“……네 놈은 누구지?”
“대충 스미스라고 부르게.”
“딱 봐도 진짜 이름은 아닌 것 같군. 여길 어떻게 들어온 거지?”
레비스는 모리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아니지. 그 질문이 아니지. 진짜 궁금한 건 그게 아니지 않나. 내가 왜 자네를 찾아왔을까가 궁금한 거 아닌가?”
레비스는 모리타의 귓가에 속삭였다.
“난 자네에게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를 주려고 왔네.”
“……기회?”
레비스는 벽에 붙은 신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네는 분명 처음에 티그리스가 되고 싶다고 말했지. 하지만 그것에 대한 설명은 제대로 하지 않았어. 네가 왜 검투사들을 가지고 노는지에 대해서만 설명했을 뿐이지.”
레비스는 티그리스의 사진을 짚으며 말했다.
“자넨 왜 티그리스가 되고 싶은 거지?”
“……그건.”
“바로 이유가 튀어나오지 않는군. 난 그 이유를 아주 잘 아네. 자넨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고 제법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지. 가면을 쓰고 상대의 팔을 썰어버리는 도살자 주제에 말이야.”
레비스는 신문 스크랩들을 하나둘씩 떼어내기 시작했다.
[티그리스, 최연소 소드 마스터가 되나?]“네 가슴속 깊이 자리한 네 진심을 꺼내보게. 넌 티그리스의 쾌락 따위를 따라 하고 싶은 게 아니야.”
[티그리스, 금십자 훈장을 받다.]“티그리스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지.”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 최연소 제국 대학 교관이 되다.]“넌 네 모든 것을 빼앗은 티그리스를 미워할 수 없어서 사랑하게 된 것이다.”
레비스의 말이 이어질수록 모리타는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티그리스가 이룬 업적들은 모두 말이 안 되는 것들이거든. 20세의 나이에 5성 기사가 되고, 반역자 빈스모크 백작을 죽인 위대한 황도의 영웅이 네 손을 앗아간 것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레비스는 모리타의 귓가에 속삭였다.
“티그리스가 미웠지? 남들은 모두 티그리스를 칭송하는데, 그놈은 네 모든 것을 앗아갔잖나? 그래서 넌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었던 거야.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공포와 외로움에 넌 미워하기를 포기한 것이다.”
모리타는 이성의 벽이 허물어지며 동공이 풀렸다.
“어서 네 본심을 이야기해 봐라.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왜 티그리스가 되고 싶다고 말한 거지?”
“……난.”
모리타의 눈이 붉게 충혈되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난…… 티그리스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모리타는 애증과 경외심으로 파묻어놓았던 감정을 끄집어냈다.
“내 손을 앗아간 그놈의 모든 것을 갖고 싶다. 놈의 명예도 인기도 재력도 검술도……. 그 모든 것을 갖고 싶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레비스는 모리타에게서 넘쳐흐르는 질투의 악취에 환희했다.
이 정도면 이미 무르익을 만큼 무르익었다.
“그래. 맞아. 그게 네 본성이다. 그 추악한 질투와 시기. 그것이 네 본성이지.”
레비스는 품속에서 작은 주사기를 꺼냈다.
“……그게 뭐지?”
“말했잖나. 기회라고.”
레비스는 주사기를 모리타의 오른 팔뚝에 주사했다.
그러자 마치 도마뱀처럼 모리타의 오른손이 자라났다.
모리타는 갑자기 자라난 오른손에 놀라 말을 잊었다.
“……이게 무슨.”
모리타가 멍하니 오른손을 보고 있는 사이 반대편 팔뚝에도 주사기를 놓아주었다.
그러자 왼손도 똑같이 자라났다.
“앞으로 딱 한 번 30분 동안 손을 사용할 수 있을 거다. 만약 양손을 영원히 되찾고 싶다면 네 형과 일반 시민 10명을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죽여라.”
“……왜 그런 짓을 내게 시키는 거지?”
“네 각오를 보기 위해서다. 양손을 얻기 위해 네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고 싶거든.”
레비스는 얼굴을 다시 그리프 자작의 것으로 바꾸었다.
“일을 다 마치면 뒤는 내게 맡겨라. 난 네게 겨우 양손만 줄 수 있지만, 네 추악한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는 분을 소개시켜 주지.”
레비스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30분 동안 자유를 만끽해 보고 잘 생각해 보게. 난 이만 가겠네.”
레비스는 문을 열고 나갔고, 홀로 남은 모리타는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모리타는 양손으로 얼굴을 만져봤다.
거친 피부와 온기가 느껴졌다.
탁상도 만져봤다.
까끌까끌하면서도 무른 나무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벽에 붙은 티그리스의 사진과 신문 스크랩을 향했다.
모리타는 티그리스의 사진을 만져보더니 모조리 떼어내기 시작했다.
신문 스크랩도 뜯어내고 핀도 모조리 뽑아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찢어발긴 뒤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티그리스…….”
모리타의 눈은 창문 밖 지는 노을처럼 활활 타올랐다.
모리타는 이미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린 듯했다.
…….
창문 밖 벽에 기대고 가만히 듣고 있던 네메시스는 그림자를 타고 사라졌다.
* * *
네메시스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이 스미스라는 녀석을 추격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어. 조금이라도 시선을 느끼면 골목 구석으로 들어가서 얼굴하고 옷차림을 바꾸고 머물던 호텔도 바꿔 버렸거든.”
트리샤는 땅콩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런데 용케도 잘 찾았네.”
“다른 것은 다 숨길 수 있는데 체취를 숨기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더라고. 물론 동족의 피 냄새를 계속 맡는 것은 참기 힘들긴 했지.”
네메시스는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이제 이놈을 어떻게 할 거야?”
티그리스는 담백하게 말했다.
“레비스가 마케돈에 있는 걸 알았으니 죽여야지.”
“이 녀석 본명이 레비스야?”
“그렇다.”
“아무튼, 이 녀석을 어떻게 죽이게? 이 녀석 보통 눈치가 아니라서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도망칠 텐데?”
티그리스는 레비스의 얼굴이 그려진 몽타주를 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놈이 고정적으로 올 만한 장소에서 대기하면 될 거다.”
“그럴 만한 데가…… 아.”
네메시스는 마차 창문 밖 보이는 커다란 원형 투기장을 봤다.
“모리타의 경기가 있는 날은 무조건 오겠네. 모리타가 레비스와의 계약을 지킨다고 하면 경기 중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모리타가 무기를 들 수 있는 날은 오직 경기 날밖에 없다.
그리고 그리프 자작과 10명의 시민들을 죽이라고 했으니 투기장에 그리프 자작이 오는 날 모리타는 행동할 것이다.
“좋아. 그럼 레비스가 투기장에 왔다고 치자. 그러면 녀석은 관중들 중 하나로 위장할 텐데, 어떻게 죽일 거야? 죽이고 나서 뒷수습은 어떻게 할 거고?”
티그리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투기장 내에서 놈과 싸우는 것은 위험하다. 다른 관중들이 휘말릴 수 있으니까. 그럼 방법은 하나지. 놈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면 된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할 건데? 우리 중에 텔레포트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대마법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건 우리가 고민할 필요 없다.”
“……그럼 누가 고민하는데?”
“이런 특수작전의 프로들은 따로 있으니까.”
티그리스는 품속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통신.”
회중시계는 은색 뱀으로 변했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다. 접선 바란다.”
* * *
모리타는 경기장 문 앞에서 심호흡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오늘이다.’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양손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 컨디션은 최고였다.
철컥!
투기장 직원이 모리타의 양팔에 의수검을 끼워주었다.
“이봐, 톰. 오늘 상대가 누구지?”
“그리프 자작님께서 오늘은 네놈을 죽이기로 작정하신 모양이더군. 최근 흑토 지대에서 전쟁범죄를 일으켜 불명예 전역을 당한 기사를 섭외하셨다. 실력 하난 제법이라고 하더군.”
모리타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인 3성 기사겠지.”
“지금까지 네가 상대해 왔던 어쭙잖은 용병들이나 살인마들과는 다르다. 놈은 제대로 검을 배운 녀석이라고.”
“왜 이렇게 말이 길지? 혹시 나한테 베팅했나?”
“뭐, 그런 셈이지.”
모리타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크크크크……!”
“오늘 상태가 이상한 것 같은데…….”
“톰. 넌 내가 특별히 살려주지.”
“……뭔 개소리지?”
철컹-!
투기장 문이 열렸다.
“보면 알게 될 거다.”
모리타는 경기장 한가운데로 향했다.
-수집가! 수집가! 수집가!
사방에서 모리타를 부르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모리타는 경기장에 나와 있는 기사가 아닌 VVIP 관중석에 앉아서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그리프 자작을 봤다.
그리프 자작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모리타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리타의 둘째 형 제이콥을 죽였을 때와 같은 눈빛이었다.
‘이번엔 내가 죽을 거라 확신하고 있군.’
그리프 자작이 모리타를 투기장에 내보낸 이유는 하나였다.
모리타가 상품성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양손이 잘린 기사가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와 양팔에 의수검을 달고, 싸우는 것을 보면 관중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리프 자작의 예상은 적중했다.
모리타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싸움을 이겨왔고, 그 덕분에 이 투기장은 모리타의 팬들로 가득 찼다.
모리타가 경기를 하는 날에는 암표 가격이 열 배로 뛸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다만, 그리프 자작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모리타가 너무나도 오랫동안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1달 아니면 2달 정도 버틸 줄 알았지만, 어느새 반년이 넘게 이 검투사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제 네놈의 장난감 생활은 그만이다.’
모리타는 가면을 벗어 던졌다.
그러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수집가가 가면을 벗었다!
-저 사람 누구지? 왜 갑자기 가면을 벗은 거지?
-어? 저 사람 설마…… 모리타?
-그리프 자작의 막냇동생 아닌가?
관중들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리프 자작도 모리타가 가면을 벗어 던질 줄은 몰랐는지 포도주 잔을 떨어뜨렸다.
그리프 자작이 가면을 벗으면 무조건 죽이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모리타는 관중들에게 외쳤다.
“난 바리온 디 그리프 자작의 막냇동생 모리타 디 그리프다! 오늘 결투를 끝으로 난 이 투기장을 벗어나겠다!”
모리타는 결투 상대에게 칼을 겨눴다.
상대는 덤덤하게 모리타를 쳐다봤다.
“오늘은 양팔 수집가가 아니라 모리타로서 네 목을 가져가 주마.”
모리타는 사회자를 향해 말했다.
“어서 경기 시작종을 울려라!”
사회자는 그리프 자작의 눈치를 보더니, 어쩔 수 없이 시작종을 울렸다.
“준비…… 시작!”
모리타는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상대는 모리타의 굉장히 빠른 움직임에 반응을 하지 못했는지 가만히 서 있었다.
‘이겼…….’
“억!”
그러나 모리타의 검은 한참을 빗나가고 상대는 가볍게 발을 걸어 모리타를 넘어뜨렸다.
모리타는 피 냄새가 가득 밴 흙에 몸을 굴렀다.
그리고 재빨리 몸을 일으켜 놈의 이어지는 공격을 방어하려 했다.
“이 개…….”
그러나 모리타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기사의 검이 모리타의 목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리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목덜미에서 흐른 피가 칼날을 타고 흐르는 것이 생생하게 보였다.
기사는 굳게 닫은 입을 열었다.
“방심했군.”
모리타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목소리 톤은 달랐지만, 이 오만한 말투는 모리타의 뼛속까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리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며, 관중들의 환호성이 심장 박동 소리에 묻혔다.
“한 수 물러주지.”
상대는 모리타의 목에 닿은 검을 뗐다.
그리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모리타는 몸이 얼어붙어 일어나지 못했다.
놈의 얼굴도 체형도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모리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은 티그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