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95)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95화
진정한 사과
티그리스는 말없이 침대 앞에 있는 탁자 위에 식사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모리타의 발에 묶여 있는 밧줄을 풀어주었다.
모리타는 밧줄이 풀리자 발목을 한번 움직여 보더니 대뜸 말했다.
“……난 안 먹을 거다.”
“포그 우드에 내려오는 격언 중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라는 말이 있다.”
“그건 무슨 말이지?”
“‘먹을 수 있을 때 일단 먹는 편이 좋다’라는 뜻이다.”
티그리스는 모리타를 놔두고 의자에 앉았다.
“그러니 와서 먹어라.”
“안 먹겠다.”
티그리스는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손은 대지 말고 자리에 앉아라. 내가 왜 투기장에 나타났는지 그리고 레비스가 널 찾아왔는지 설명해 주지.”
“…….”
그러나 모리타는 침대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모리타가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 보이자, 티그리스는 홀로 식사를 시작했다.
모리타는 한동안 티그리스가 음식을 먹는 것을 쳐다봤다.
음식 앞으로 갈 자신이 없었다.
지금 엄청나게 배가 고파서 저 의자에 앉는 순간 자존심도 버리고 음식을 마구 집어 먹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꿀꺽-
모리타는 마른침을 삼켰다.
따뜻한 스튜와 모락모락 김을 내는 빵 그리고 고소한 베이컨이 티그리스의 입에 들어갈 때마다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모리타의 의지는 모르겠으나 모리타의 몸은 영양소를 갈구하고 있었다.
모리타는 양손이 잘려 길바닥에 나앉았을 때도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먹었다.
그때도 죽을 생각을 했지만, 몸은 살고자 아우성을 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케돈으로 돌아가 귀족의 권위와 명예는 쓰레기통에 버려 버리고 투기장 생활을 했던 것이었다.
모리타가 입을 열었다.
“……난 두렵다.”
티그리스의 손이 멈췄다.
“그 음식을 먹으면 또 살고 싶어질까 봐.”
모리타의 몸이 덜덜 떨렸다.
“난 죽고 싶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걸 먹으면 또 살고 싶어질 것 같아…… 내 자존심마저 버리고 네 뜻대로 삶을 살게 될 것 같아…… 두렵단 말이다.”
모리타는 바보가 아니었다.
티그리스가 모리타에게 식사를 내어왔다는 것은 모리타에게 살길을 내어준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양손을 가져간 사내에게마저 동정을 받아 살고 싶지 않았다.
모리타는 충혈된 눈으로 티그리스를 노려봤다.
“티그리스. 제발 내게 살아야 할 이유를 주지 마라.”
티그리스는 모리타의 처절한 말투에 포크와 나이프를 놓은 뒤 입을 닦았다.
“넌 굉장히 성가신 녀석이었다.”
회귀 전, 모리타는 도플갱어의 능력을 이용해 티그리스 행세를 하고 다녔다.
티그리스의 모습을 한 채로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 추태를 보이거나, 티그리스의 이름으로 고금리 대출을 받거나.
노르베르드 가문 휘하에 있는 가문에 찾아가 죽이거나.
선량한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등.
티그리스의 모습으로 온갖 행패를 부리고 다녔다.
뒤늦게 황실과 노르베르드 가문이 나서서 수습을 해보려 했지만, 티그리스와 노르베르드 가문의 위신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네놈 때문에 노르베르드 가문을 따르던 가신들이 모두 떠나고, 노르베르드 가문은 급속도로 쇠락의 길을 걸었지. 가만 생각해 보니 베이튼의 배신도 네놈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네 미래이자 내 과거를 말하는 것이다. 난 미래를 이미 겪고 왔고 네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두 알고 있다.”
모리타는 순간 티그리스가 정신이 회까닥 돌아간 게 아닌가 의심했다.
“지금 나랑 말장난을 하자는 거냐?”
“그 말장난 같은 일 덕분에 난 레비스를 잡아냈다. 실제로 황국도 내가 겪은 미래를 바탕으로 황국을 넘어서 인류에 해가 되는 레비스와 같은 존재들을 잡아 죽이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네놈 말 하나를 믿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럼 5성 기사에 불과한 내가 루카스와 바로스 후작을 죽인 것은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빅토리에 지하에 있던 키메라들을 잡아 죽인 것은?”
“…….”
“그리고 널 미끼로 삼아 레비스를 잡아낸 것은?”
모리타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럼 제국 대학에서 나와 결투를 한 것도 설마…….”
“그래. 모두 계획된 일이었다.”
“이 개자식이!”
모리타는 벌떡 일어나 티그리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발이 꼬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모리타는 티그리스를 쏘아봤다.
“네놈이!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 건지 뻔히 알면서! 네놈이 감히……!”
“적반하장도 유분수군.”
“뭐?!”
“그때, 넌 내 가문과 나를 모욕했다. 노르베르드 가문의 후계자인 내가 바스티얀 학교장님께 청탁을 했다고 말했었지.”
“……!”
“그때 바스티얀 학교장님께서 중재하시지 않았다면 넌 그날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나와 내 가문을 모욕한 것은 죽어 마땅한 일이었으니까.”
티그리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기에 모리타는 반박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너는 투기장에서 레비스의 유혹에 넘어가 나를 죽이려 했다. 만약 내가 막지 않았다면, 질투를 깎아내는 자가 되어 인류의 배신자로 낙인이 찍혔겠지.”
“그래서 네 잘못이 없다는 거냐?! 내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을 분명히 알고서도 너는 나를 방치했다! 잘못된 길로 갈 것임을 알고도 회피하는 것은 죄가 아니란 말이냐?!”
“네 말이 맞다. 그러나 그 죄는 네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뭐?”
“난 길리온 왕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키메라 실험으로 죽어가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 고디바 사막에선 여행자와 순례자를 납치하여 키메라 실험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방관하고 있다.”
티그리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왜냐고? 난 적은 목숨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눈앞에 있는 적의 목을 베는 것뿐이지 보이지 않는 적의 목을 벨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는다. 그 사실이 너무 개탄스럽고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티그리스의 목소리는 분노와 슬픔이 뒤죽박죽 섞여 떨리고 있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내가 네게 저지른 방관의 죄는 씻어지지 않는다. 그 죄는 네가 나를 용서해야 사라질 테니까.”
티그리스는 일어나 모리타 앞에 섰다.
“내가 투기장에서 했던 사과는 내 양심의 가책을 견디기 힘들어 일방적으로 한 사과였다. 그러니 다시 한번 진정으로 사과하마.”
티그리스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모리타.”
티그리스의 사과에 모리타는 부들부들 떨더니 고함을 쳤다.
“으아아아아!”
모리타의 갈라진 목소리에서 갈 길을 잃은 비통함이 느껴졌다.
모리타는 일어나 티그리스의 가슴을 밀쳤다.
“이 개자식이! 이 개자식이! 어디서! 어디서! 너만 자유로워지려고! 어디서 네가 저지른 죄에서 벗어나려고!”
모리타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티그리스가 너무나도 미웠다.
모리타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난 그 추운 길바닥에서 딱딱하게 굳은 빵을 먹었다. 주점에서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들을 게걸스럽게 주워 먹었다. 추운 길바닥에서 더러운 거지들과 몸을 부대끼며 잠을 청했다. 내게 거지로 살아남는 법을 알려준 거지는 얼어 죽었다. 한 끼 식사를 위해 둘째 형을 죽인 첫째 형의 발을 핥았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오직 네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그런데 너는 네 죄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것이냐!”
모리타는 고개를 떨궜다.
“……그럼 나는 뭐가 되는 거냔 말이다. 널 죽이기 위해 선량한 시민들을 죽이기로 결심한 나는 뭐가 되냔 말이다. 네가 그리 사과를 해버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냐…….”
모리타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난 너무나도 추악한 놈이구나. 너보다 나은 점이 단 하나도 없다.”
모리타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내가 너를 만나지 않았어도 나는 분명 악인의 삶을 살았겠지. 난 질투심 많고 나태하면서도 욕심 많은 겁쟁이니까.”
모리타는 지금까지 평생을 남 탓만 하며 살아왔다.
7년이 넘는 세월 동안 4성 기사가 되지 못한 것은 같이 어울린 술친구들 때문이고.
그리프 자작령에서 쫓겨난 것은 첫째 형 바리온 때문이고.
양손이 잘린 것은 티그리스 때문이었다.
모리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티그리스를 보며 깨달았다.
“난 도대체 지금까지 무슨 인생을 살아온 거지?”
모리타는 혼절했다.
* * *
티그리스는 모리타를 침대에 누인뒤 방에서 나섰다.
밖에는 아모리스가 있었다.
“사과는 잘했어?”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들었을 땐 잘한 것 같아.”
“……그렇습니까?”
“그 정도면 훌륭한 거 아닐까?”
아모리스는 티그리스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럼 이제 모리타한테 생각할 시간을 좀 주자고.”
아모리스가 모리타의 관상을 보자마자 알게 된 것은 하나였다.
모리타는 지금까지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어왔지만, 앞으로 몇 번 더 넘겨야 빛을 볼 녀석이었다.
마치 매미가 성충이 되기까지 기나긴 세월을 땅속에 웅크려 지내듯이 모리타는 더욱 아프고 힘들어야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버틸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리타의 역량과 의지에 달린 일이긴 하지만…… 아모리스는 모리타를 응원해 주고 싶었다.
모리타가 악인인 것은 맞지만, 안쓰러운 녀석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 맞다. 이거.”
아모리스는 티그리스에게 천공의 사슬을 넘겼다.
“……이걸 어떻게.”
“난 멸지의 마왕까지 봉인한 몸이야. 그깟 영혼 하나 봉인 못 할까 봐?”
아모리스는 뼈 말뚝이 박힌 상자를 보여줬다.
“여기에 로타의 반쪽짜리 영혼이 담겨 있어. 시체는 내가 알아서 처리했으니 그렇게 알아두고.”
“……감사합니다.”
아모리스는 까치발을 들고 티그리스의 목에 팔을 걸었다.
“그럼 우리 밥이나 좀 먹을까? 누나가 쏠게.”
“…….”
“그런데 너 설마 누나가 아니라 할머니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
“야. 얼굴 좀 보여봐.”
티그리스는 아모리스의 팔을 풀며 말했다.
“식사하러 가시죠.”
“야! 이리 오라니까!”
* * *
모리타는 다시 눈을 떴다.
말라붙은 눈물 때문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모리타는 한동안 누운 채로 있었다.
생각을 한다거나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를 그리는 사람만이 하는 일이니까.
그냥 멍하니 머리를 비우고 싶었다.
모리타는 고개를 들어 창문 밖을 봤다.
포그 우드는 굉장히 우울한 동네였다.
멀리 보려고 해도 희뿌연 안개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푸른 등불만이 보일 뿐이었다.
‘……내 인생 같군.’
모리타는 몸을 일으켰다.
발치엔 모리타의 발을 묶었던 밧줄이 놓여 있었다.
‘죽자.’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
살고 싶지도 않았고.
모리타는 밧줄을 안았다.
그리고 옷을 걸어놓기 위해 툭 튀어나온 걸이에 밧줄을 던졌다.
“…….”
문제는 손가락이 하나도 없는 몸이라 밧줄을 도저히 묶을 수가 없었다.
입을 이용해 묶어보려고도 하고 목과 발을 이용해 보기도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심지어 30분간 사투를 벌이자 힘이 다 떨어져 눈앞이 팽글팽글 돌았다.
모리타는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제 죽으려면 티그리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모리타는 털썩 주저앉았다.
“인생 참 거지 같군.”
이제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다니.
게다가 호텔 방도 2층으로 잡아놔 떨어져 죽는 것도 불가능했다.
문득 모리타의 눈에 음식이 보였다.
다 식어버린 빵과 스튜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베이컨이었다.
모리타는 반사적으로 기어서 식탁으로 향했다.
꿀꺽-
더 이상 모리타의 코끝을 간질이는 맛있는 향기는 나지 않았지만 침이 고였다.
이 와중에도 먹을 것을 보자 몸이 반응하는 것을 보니, 모리타의 의지와는 별개로 몸은 살고 싶은 듯했다.
모리타는 식탁에 앉았다.
빵을 양팔로 짚었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그냥 밋밋한 밀빵일 뿐인데 단맛이 났다.
모리타는 천천히 씹어 넘겼다.
이미 식고 질겨진 밀빵이지만 고소한 향기가 혀와 코 사이 공허한 공간에 맴돌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보다 맛있는 빵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어느새 모리타의 팔에 들려 있던 빵이 사라졌다.
한번 먹을 것이 입에 들어가니 모리타는 거침이 없었다.
모리타는 포크를 요령 있게 들어 빵에 쿡 찍었다.
그리고 스튜에 담갔다가 빼 먹었다.
빵 틈 사이로 부드러운 고기 스튜가 스며들면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맛을 냈다.
모리타는 앞접시에 빵을 올리고 스튜에 큼지막하게 들어 있는 고기를 빵 위에 올린 뒤 베이컨까지 올렸다.
그리고 앞접시를 들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먹는 과정이 너무나도 불편했지만, 모리타는 꾸역꾸역 먹을 방법을 찾아내 어떻게든 맛있게 식사했다.
스튜까지 모조리 핥아먹은 모리타는 부족함을 느꼈다.
모리타는 건너편 티그리스의 접시까지 노렸다.
게걸스럽게 먹느라 옷에 스튜가 튀고 바닥에 빵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냥 음식이 너무나도 맛있었다.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아낸 모리타는 트림을 했다.
“…….”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나니 더 먹고 싶은 게 생겼다.
부드러운 안심 스테이크가 먹고 싶었다.
토마토 파스타가 먹고 싶어졌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단 크레페가 먹고 싶어졌다.
시원한 파인애플 주스가 먹고 싶어졌다.
“……X발.”
모리타는 살고 싶어졌다.
그런 자신이 너무나도 미워서 눈물이 났다.
* * *
모리타는 커다란 백 팩을 멨다.
그 안에는 모리타가 신비의 땅에 갈 때까지 먹을 식량과 물 등과 함께 레비스의 영혼이 들어 있었다.
목에는 악령들을 내쫓는 부적이 걸려 있었고, 오른손에는 마케돈에서 사용했던 것과 유사한 의수검이 달려 있었으며 왼손에는 후크가 달려 있었다.
“준비는 다 됐나?”
“그래.”
모리타는 지난 사흘 동안 먹고 마시고 자기만 하며 푹 휴식을 취했고 제법 컨디션이 돌아왔다.
아직 약물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라서 며칠 더 요양하라고 권했지만, 모리타는 빨리 자신이 맡은 임무를 끝내고 싶은 듯했다.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새 신분을 얻어 새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때, 방문이 열리며 아모리스가 들어왔다.
“나도 준비 끝났어.”
아모리스도 여행복을 갖춰 입었는데, 모리타가 신비의 땅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모리타가 신비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 레비스의 영혼을 건네는 역할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제가 같이 안 가도 되겠습니까?”
아모리스는 티그리스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말했잖아. 나한테 다 맡기라고. 모리타가 신비의 땅까지 들어가는 거 제대로 볼 테니까.”
포그 우드에서 신비의 땅까지 가는 데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린다.
편도로만 거의 열흘 넘게 걸리다 보니 티그리스도 살짝 부담스럽긴 했었다.
시간이 제법 남았다곤 하지만 거의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안개의 숲을 헤치고 다니는 것은 아까운 일이긴 했으니까.
“모리타, 잘 모시도록 해라.”
“……나도 알고 있다고.”
모리타는 아모리스가 용사 페레이라의 동료였다는 것을 티그리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모리타는 그 사실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바닥에 빵을 떨어뜨릴 정도였다.
“그럼 바로 출발할까? 티그리스 넌 바로 빅토리에로 갈 거지?”
“예. 그렇습니다. 아모리스 님도 바로 빅토리에로 올라오실 겁니까?”
“노파의 집 정리를 좀 하고 가야 해서 조금 걸릴 것 같아.”
“도움이 필요하시면 제게 연락을 주십시오.”
“너한테 손 벌릴 정도는 아니야. 아무튼 올해 겨울 안으로 빅토리에로 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둬.”
“예. 알겠습니다.”
티그리스는 모리타의 눈을 봤다.
모리타는 티그리스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몸 조심히 돌아오길 바라마.”
“신비의 땅이 위험하다곤 하지만 난 뒤질 생각 없으니까 죽은 사람처럼 보지 마라.”
아모리스에게 듣기로 모리타는 신비의 땅에서 죽을 고비를 수차례 겪을 것이라고 했다.
살 확률보단 죽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고 하니 모리타를 보는 게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다.
모리타와 딱히 친한 것도 아니고 지난 사흘간 모리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신경이 쓰였다.
이런 뒤숭숭한 감정을 느껴본 것은 처음인지라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알겠다.”
아모리스는 문을 열었다.
“헤어짐은 짧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지. 어서 가자, 모리타.”
“예. 알겠습니다.”
모리타는 아모리스의 뒤를 재빠르게 따라갔다.
제아무리 싸가지가 없는 모리타라고 하더라도 아모리스 앞에선 순한 강아지처럼 굴었다.
아모리스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럼 나중에 황도에서 보자. 티그리스.”
문이 닫히며 아모리스와 모리타가 떠났다.
티그리스도 이제 빅토리에로 가기 위해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냈다.
그때, 방문이 다시 벌컥 열리며 아모리스가 들어왔다.
“아, 맞다. 티그리스.”
“네.”
“빅토리에로 가면 새로운 만남이 기다릴 거야. 그 녀석 모리타만큼이나 불쌍한 녀석이니까 잘 보듬어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냥, 그런 줄만 알아둬. 뭐 너라면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럼 진짜 간다.”
그 말을 끝으로 아모리스는 문을 닫고 나갔다.
티그리스는 괜스레 찝찝한 마음에 빨리 빅토리에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그리스는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