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97)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97화
모르고트(2)
모르고트는 길리온 왕국 출신 제2왕자다.
길리온 왕국 내에서 모르고트보다 신분적으로 위에 있는 사람은 오직 왕 하나뿐인 최고 존엄이라는 것이다.
“으아아악! 살려줘!”
그런 존재가 어울리지 않는 콧수염을 붙이고 가발을 쓴 채 샤를로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솔직히 좀 전에 성기사가 모르고트라고 얘기해 줘서 알아본 거지, 전혀 못 알아볼 뻔했다.
아무튼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머뭇거리고 있을 때, 사복을 입고 있던 성기사 하나가 모르고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억!”
“……!”
샤를로트와 세 사람은 믿을 수 없었다.
성기사가 모르고트의 허리를 잡고 테이크 다운을 한 것이다.
모르고트는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렀고, 성기사는 반항하는 모르고트의 몸을 오러까지 사용해 가며 속박했다.
샤를로트는 길리온 왕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일개 성기사, 그것도 길리온 왕국에게 충성한 기사가 왕자의 허리를 잡고 바닥에 깔고 뭉갤 것이라곤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으아아아아아!”
모르고트의 볼 피부가 날카로운 벽돌에 찢겨 피를 흘렸다.
성기사는 그러거나 말거나 모르고트를 강하게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다리 하나를 분질러 반항하지 못하게 하려는 건지 관절기까지 쓰려고 했다.
모르고트가 길리온 왕국 내에서 입지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이것은 절대 상식적이지 않았다.
“반항하지 말고 가만히…… 컥!”
퍽!
샤를로트의 몸이 스프링처럼 튕겨 나갔다.
그리고 성기사가 샤를로트의 돌진을 인지하기도 전에, 샤를로트는 놈의 관자놀이에 니킥을 꽂아버렸다.
성기사는 그대로 바닥을 몇 바퀴 구르며 입에 피거품을 물고 혼절해 버렸다.
모르고트는 안경을 벗는 샤를로트를 올려다봤다.
“걸으실 수 있겠어요?”
샤를로트의 말에 모르고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뒤!”
아이린의 외침에 샤를로트는 고개를 바로 숙였다.
성기사의 솥뚜껑만 한 주먹이 샤를로트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컥!”
샤를로트는 몸통이 빈 놈의 옆구리에 팔꿈치를 집어넣었다.
놈의 무지성 돌진, 완벽한 타이밍에 급소에 날아가 꽂힌 타격기에 성기사는 숨이 순간 멈추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샤를로트는 무릎을 꿇은 성기사의 코에 주먹을 갈겼다.
성기사는 코피를 쏟으며 기절해 버렸다.
“일어나시죠.”
“……예.”
모르고트는 샤를로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아이린과 리니아는 주변에서 달려든 성기사 세 명을 빠르게 때려눕히고 합류했다.
샤를로트는 라칸을 봤다.
라칸은 어디서 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4성 기사도 단번에 기절시키는 ‘스턴 샷’이란 아티팩트로 성기사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파지직-!
“전 신경 쓰지 마시고 가세요!”
라칸의 외침에 샤를로트는 망설이지 않았다.
정확하게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세 사람은 라칸을 안다.
아무 이유 없이 길리온 왕국의 왕자를 탈출시킬 리가 없었다.
“가자.”
모르고트를 어디로 데려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방향으로 빠져나가야 할지는 알 것 같았다.
다른 길에선 성기사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동쪽 길 하나만큼은 들리지 않았다.
“이쪽으로.”
* * *
샤를로트와 아이린 그리고 리니아는 체력이 좋아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달려도 상관이 없었지만, 모르고트는 달랐다.
“헉……. 헉…….”
모르고트는 이제 겨우 20분 정도 뛰었을 뿐인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샤를로트는 어제 밀러 부단장님께서 VIP 경호 업무를 위해 주신 모르고트의 기본 정보를 떠올렸다.
키 181㎝에 120㎏.
3성 기사이긴 하지만 검을 놓은 지 거의 5년이 넘었기에 근력만 조금 좋을 뿐이지, 체력은 일반 성인 남자보다 아주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했다.
샤를로트는 모르고트의 발을 봤다.
모르고트는 구두가 벗겨져 맨발로 뛰고 있었다.
흰 양말에 묻은 오물들 사이로 붉은 피가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달리다가 발을 다친 모양이었다.
절뚝- 절뚝-
심지어 상처 난 발이 꽤 아픈지 모르고트는 절뚝이며 달리고 있었다.
더 달리는 것은 무리였다.
‘일단 생각도 좀 할 겸 잠시 쉬어야겠어.’
샤를로트는 주변을 살폈다.
적당히 몸을 숨길 장소는 여러 곳이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좁은 골목길도 있었고, 여관도 있었으며, 마구간도 있었다.
‘마구간!’
마구간마다 주인 잃은 말들이 하나쯤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은 굉장히 눈에 띄는 일이지만, 모르고트의 체력과 발 상태로 봐선 이대로 도망치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이 나쁘지 않은 선택지일 수도 있다.
성기사들에게 눈에 띈다는 말은 라칸과 다시 접촉할 기회를 얻는다는 말과 똑같으니까.
라칸과 다시 접촉하면 안전한 도주 루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저기로 가자.”
샤를로트는 마구간 중에서도 제일 허름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말똥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모르고트는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고 마구간 안으로 몸을 숨겼다.
한 나라의 왕자가 머물기엔 굉장히 누추하지만, 모르고트도 찬물 더운물 따질 때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뉘신데 여기에……어?”
마구간지기는 샤를로트가 깊게 눌러쓴 모자를 벗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마구간지기는 샤를로트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본 모양이었다.
뒤이어 아이린과 리니아도 안경을 벗자 마구간지기는 순간 말이 나오지 않는 듯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이렇게 귀하신 분들이…… 여기엔 무슨 일이십니까?”
샤를로트는 말없이 품에서 은화 한 닢을 꺼내 마구간지기에게 건넸다.
“혹시 남는 붕대나 포션이 있으면 하나 줄 수 있겠습니까? 남는 부츠도 있으면 주시고요.”
마구간지기는 모르고트의 상태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아이린, 같이 따라가 줘.”
아이린은 코트 깃을 세우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마구간지기의 뒤를 따라갔다.
리니아는 눈치 좋게 마구간 입구에 경계를 섰다.
샤를로트는 초조한 눈빛으로 마구간 입구를 쳐다보는 모르고트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모르고트 왕자 전하. 전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의 제자 샤를로트 드 프리하르덴이라고 합니다.”
모르고트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세상에…… 어디선가 낯이 익다 싶었더니만……. 경황이 없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만나 뵙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샤를로트 경.”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일단 발을 많이 다치신 것 같으니 양말부터 벗기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벗을 수 있습니다.”
모르고트는 샤를로트가 손을 대기도 전에 양말을 벗으려고 했지만, 뱃살 때문에 손이 끝까지 닿지 않았다.
낑낑거리며 양말을 벗으려는 모습이 조금 애처로워질 때쯤, 샤를로트는 한쪽 무릎을 꿇어 모르고트의 양말을 벗겨주었다.
모르고트의 발바닥은 날카로운 무언가에 찢긴 듯 피가 흐르고 있었다.
“윽…….”
고통은 둘째치고 수치심 때문에 모르고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샤를로트는 모르고트의 상처를 봤다.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자세히 보니 발바닥뿐만이 아니라 엄지발톱도 아예 들려 있었다.
포션이 있다면 모를까 일반적인 연고나 붕대로 상처를 치료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때, 아이린과 마구간지기가 들어 왔다.
“포션은 없었어.”
“어쩔 수 없지. 괜찮아.”
포션이 최근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곤 하지만 이런 허름한 마구간까지 들어올 정도로 값싼 물건은 아니었다.
마구간지기는 낡은 부츠를 샤를로트의 옆에 놓으며 말했다.
“그럼 저는 위에 잠시 올라가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구간지기는 눈치가 꽤 좋은 듯했다.
마구간지기가 자리를 비켜주자 샤를로트는 본격적으로 모르고트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깨끗한 물로 상처를 씻고 거즈로 닦아주었다.
물론 샤를로트도 누군가의 상처를 치료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황금 기사단에서 배운 것을 천천히 떠올리며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여쭙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만, 왜 성기사들에게 쫓기고 계셨던 겁니까?”
“……알고 계시던 것 아니었습니까?”
“아뇨. 저흰 아예 모릅니다.”
모르고트는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저를 왜 도와주신 겁니까?”
“라칸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라칸이라면…….”
“모르고트 왕자님과 같이 켈틱 호텔에서 탈출한 친구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하긴 범상치 않은 인물인 것 같긴 했습니다.”
모르고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탈출 루트나 접선 장소 아무것도 모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모르고트는 복잡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네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진짜 왕자답지 않네.’
발을 다쳤으니 발을 치료하고 갔으면 좋겠다.
체력이 떨어졌으니 쉬었다 갔으면 좋겠다.
이런 애로 사항을 단 한 번이라도 말할 법하건만, 모르고트는 발이 이 지경이 되도록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단순히 왕자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다기보단 샤를로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상당히 위축되어 있어.’
모르고트가 원래 이런 소심한 성격인지 아니면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소심하게 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성격이 귀족 세계에서 흔하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모르고트는 생각을 정리한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얼마 전 루체트 황국에 망명을 요청했습니다.”
모르고트는 넋두리를 하듯 자신의 처지를 간략히 설명했다.
모르고트는 제1왕자인 매튜 왕자와 7살 차이로 제법 나이가 많이 차이 난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매튜 왕자가 이미 왕위에 오르기 위한 입지를 다져놓은 상태라 모르고트는 왕위에 거의 위협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모르고트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왕위에 오를 생각은 없다고 몇 번이고 피력해 온 터라 매튜 왕자를 위협할 만한 세력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매튜 왕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모르고트를 말려 죽이기 시작했다.
“저와 친하게 지내던 몇몇 귀족들이 먼저 저를 떠나기 시작했죠. 그다음은 저와 검을 나누던 기사들이 떠나고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한 유모와 시종들도 바뀌었습니다.”
모르고트는 목에 나 있는 흉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심지어 암살자가 침실까지 들어왔었죠.”
“……왕위 계승 문제 때문입니까?”
“그게 제일 유력한 이유이긴 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길리온 왕국 내에서 제 존재감은 거의 공기나 다름이 없어서 위협이 되질 않는데…….”
모르고트는 차라리 매튜 왕자가 노골적으로 죽이려 든다면 왕위 계승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매튜 왕자는 모르고트를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서서히 말려 죽였다.
마치 뭍으로 헤엄쳐 나온 개미를 자꾸 깊은 물에 빠뜨리는 것처럼.
“그래서 망명을 요청하신 겁니까?”
“안 그러면 암살자에게 죽기 전에 제가 목을 매달 것 같더군요. 전 더는 이런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한 일에 휘말렸네.’
모르고트는 자신의 형이자 차기 국왕으로 뽑히는 매튜 왕자의 암살 시도를 이기지 못해 망명을 시도하는 거다.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는 순간 매튜 왕자는 큰 정치적 스캔들에 휘말리게 될 것이고 골치를 꽤 썩일 것이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샤를로트와 아이린, 리니아의 얼굴이 저들에게 알려졌다는 것이다.
만약 이 문제를 놓고 길리온 왕국이 공식적으로 항의를 해온다면 굉장히 곤란해질 것이다.
“……죄송합니다.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아닙니다. 이건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요. 끝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모르고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번 일에 전혀 관련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멈추시면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받은 경찰을 구한 것으로 끝날 수 있을 겁니다.”
모르고트의 말이 맞았다.
모르고트와 라칸은 분장을 한 채 경찰복을 입고 있었고, 성기사들은 모두 사복을 입은 상태였다.
만약 몰랐다고 잡아뗀다면 세 사람이 크게 곤란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 그래도…….”
“샤를로트 경 개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티그리스 경과 프리하르덴 가문의 명예도 생각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티그리스와 가문을 언급하자 세 사람의 표정은 삽시간에 굳어졌다.
세 사람은 단순한 기사가 아니다.
리니아는 티그리스의 여동생이고,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티그리스의 제자이자 한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다.
이번 일이 잘못되든 잘되든 간에 추문을 피해갈 순 없을 것이다.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도 문제지만 티그리스와 자신 가문의 명예까지 훼손된다는 생각에 선뜻 도와주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모르고트는 샤를로트의 굳은 표정을 보더니 애써 웃으며 일어났다.
“여기까지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여기서 헤어지는 것이 좋겠네요.”
“…….”
샤를로트는 머리가 복잡했다.
모르고트를 돕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옳은 일을 함에 따라 티그리스와 프리하르덴의 가문에 누를 끼치게 된다면 그것만큼 견디기 힘든 일은 없을 것이다.
샤를로트는 참을 수 없는 무력감에 손이 떨려왔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정말 감사했습니다.”
모르고트는 절뚝이며 마구간을 나갔다.
샤를로트와 세 사람은 떠나는 모르고트를 멍하니 쳐다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 *
아이린은 주저앉아 머리를 헝클었다.
“……젠장.”
아이린은 로이와의 결투 이후로 티그리스를 곤란하게 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가 티그리스에게 피해를 주면, 도저히 티그리스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리니아도 마찬가지였다.
리니아는 지금 티그리스와의 관계가 너무나도 좋았다.
1년 전과 달리 티그리스는 좋은 오빠이자 귀감이 될 귀족이자 멋진 기사이자 스승이었다.
만약 리니아의 철없는 행동으로 티그리스가 크게 실망하여 1년 전의 티그리스로 돌아가 버린다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샤를로트는 마른세수를 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스승님과 다른 게 뭔지 알 것 같아. 우린 우리가 내린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없어.”
특히 이번 모르고트 일은 더더욱 그렇다.
단순하게 한 사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간의 극심한 분쟁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건 샤를로트나 아이린이나 리니아 개인이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만약 모르고트 왕자님이 성기사들한테 잡히면 어떻게 되죠?”
“……아마 본국으로 끌려가 사형을 당하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길리온 왕국의 왕자가 망명을 시도한 거니까.”
샤를로트는 애꿎은 벽을 이마로 쳤다.
이런 상황에서 자꾸 생각이 나는 사람은 티그리스였다.
“스승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긴 침묵 끝에 리니아가 입을 열었다.
“도와주셨겠죠.”
“왜?”
“……원래 그런 분이시니까요.”
샤를로트는 눈을 감고 그날을 떠올렸다.
몰려오는 수천 마리의 몬스터들.
몬스터들은 천지를 울릴 듯이 몰려왔고, 그들이 만들어낸 땅울림 때문에 샤를로트는 제대로 설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놈들의 앞을 가로막은 31명의 기사와 45명의 장정이 있었다.
-가십시오! 여기는 저희가 막겠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손은 떨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샤를로트를 포함한 어린아이 13명, 노인 8명, 임산부 3명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렸다.
그들에겐 아내가 없었나?
모셔야 할 부모님은?
금쪽같은 자식들은?
그들은 모두 책임질 가정이 있는 가장이었다.
왜 그들은 자신을 희생한 것일까?
그것이 기사도니까.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
샤를로트는 눈을 떴다.
“나, 갈게.”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것 없이 자신에게 당당해지기 위해.
그것이 샤를로트가 기사가 되기로 한 이유이니까.
“여기서 멈춰 버리면 또 똑같은 이유로 멈춰 버릴 것만 같아.”
설령 이번 일로 티그리스에게 파문을 당하더라도.
설령 이번 일로 가헌의 기사들이 찾아와 샤를로트에게 가주의 자격을 물을지라도.
오늘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샤를로트는 검을 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