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198
“<지팡이>는….”
마리옹 편집장이 원고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겨울로 넘기죠. 그게 더 낫겠어요. 두 분 말대로.”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마리옹 편집장이 한 마디 더 덧붙였다.
“그리고 겨울 리브레 클럽 준비를 좀 더 빨리 시작해요. 할 수 있는 광고를 다 넣어서, <지팡이>의 완결과 리브레 클럽이 같이 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거예요. 이 리브레가….”
“….”
“절대 이상 작가의 책 발간을 놓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겨 줘야 해요. 알았죠?”
“…네, 편집장님.”
에바 편집위원이 결연하게 대답했다.
198회
아직 모두에게 밝히진 않았지만, <지팡이> 집필이 끝나면 여행을 떠날 것 같다.
일단 금홍과 함께 미국으로, 그 뒤는… 아직은 나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원하는 만큼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거겠지.
그날을 위해서라도, <지팡이>를 끝내야 했다.
서두를 건 없지만 적어도 늘어지지 않게.
그렇게 나는 작업실에서 집필에 몰두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만주에 도착한 하융.
그곳은 여러 인종과 계급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하융은 한 가지 다짐을 한다.
절대로 조선인과 어울리지 않겠다고.
어느 민족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조선인들은 조선인 군락에서 생활을 했다.
그들의 터는 조선 땅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사이에 섞이느니… 조선으로 돌아가는 게 나았다.
배우도 하융의 뜻에 동참했다.
그 역시 조선 땅에 미련이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본격적인 떠돌이 생활을 하며, 만주 특유의 다문화적인 분위기에 젖어 든다.
누군가 하융에게 조선인이냐 물으면, 그는 아니라고 했다.
중국인이냐 물으면, 또 아니라고 했다.
일본인이냐 물어도, 몽골인이냐 물어도, 심지어 러시아인이냐 물어도 아니라고 했다.
― 그럼 대체 당신은 누구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하융은 대답했다.
― 난 아무도 아니요.
하융은 더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싫었다.
이름 석 자도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는 계속 예술이란 걸 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배우와 만나게 된 건 하융의 행운이었다.
배우는 중국어를 제법 할 줄 알았다.
무턱대고 만주로 온 데에는, 중국어를 할 줄 안다는 자신감도 있었으리라.
하융은 글을 썼고, 배우는 공연을 했다.
다른 사람은 필요하지 않았다.
배우 혼자서 모든 역을 소화하는 1인극이었다.
하융은 그가 아는 모든 인물을 한계 없이 창조했다.
그 안에는 그를 버린 부모가.
머리 타래를 잘라 남기고 떠난 ‘희’가.
아직도 가끔씩 꿈에 나오는 ‘심’이.
허망하게 죽어 버린 스승이.
속 모를 인간인 총독부의 경감이.
무엇보다도 하융이 있었다.
천 하나를 걸쳐 놓고 하는 연극이었다.
배우는 부채든 곰방대든 안경이든 비녀든 들고, 여러 인물을 신들린 것처럼 연기했다.
처음에는 거리의 시장판에서 시작했다가, 그다음에는 술집과 식당에 고용됐고, 나중에는 연극 무대에 초대됐다.
그러나 극단 쪽에서 정식 고용을 하려 치면, 하융은 냅다 거절을 해 버렸다.
그리고 옆 마을로 가서 다시 시장판을 전전했다.
그 과정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배우는 결국 화를 내며 물었다.
― 대체 왜 그러는 거요? 여긴 조선도 아니고, 충분히 새로운 환경에서 영감을 받으며 극을 올릴 수 있는데, 왜 자리를 잡았다 하면 떠나고, 또 잡았다 하면 떠나는 거요?
하융은 그에게 반박했다.
너 역시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만주행 기차에 탄 게 아니냐고.
― 내가 생각한 자유는 조선 땅을 떠나는 거지 부랑자가 되는 게 아니었소.
하융은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 그럼 나는 부랑자가 되고 싶은 모양이지.
그러나 배우도 지지 않았다.
― 당신은 지금 이 생활을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언젠간 이 세상의 부스러기가 되어 사라지고 말 거요.
세상의 부스러기.
그 모욕적인 말에도, 하융은 화가 나지 않았다.
다만 몇 가지를 깨달았을 뿐이다.
첫째.
자신은 결국 세상의 부스러기로 죽고 말리라는 것.
인간의 운명이 다 그렇듯 말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영원히 살고 싶다는 것.
셋째.
인간을 영원히 살게 해 주는 건,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뭔가를 남기는 것뿐이라는 것.
― 난, 영원히 살 거요.
하융이 말했다.
― 세상에 그런 건 없소.
배우가 말했다.
그러자 하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당신에게는 그런가 보지.
하융의 말에, 배우는 화가 나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하융은 그와 결별하고 나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자신과 가장 닮았던 그 남자.
그 남자와 헤어짐으로써, 안정된 삶에 대한 자신의 마지막 미련까지도 털어 낼 수 있었다는 걸.
하융은 혼자가 되어 다시 길을 떠났다.
…오늘 원고는 여기까지 써야겠다.
나는 원고를 저장하고 컴퓨터를 껐다.
지훈은 오늘 평론가들 모임이 있어 늦을 것이다.
아쉬운 대로 혼자서 저녁을 챙겨 먹어야 했다.
텅 빈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집도… 조만간 안녕이겠구나.
원래 혜경은 아주 작은 방에서 혼자 살았다.
마치 내가 죽었던 일본 다다미방처럼.
환생을 하고 등단한 직후에는… 돈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사부터 했지.
혜경의 몸을 더 큰 보금자리로 옮겨 주고 싶어서.
또, 본격적으로 ‘팀 이상’을 꾸려 볼 마음에, 지훈까지 같이 살자 꼬드기지 않았나.
“…지훈이한텐 어떻게 말하지.”
본의 아니게 지훈에게 비밀이 많아졌다.
금홍과 만나게 된 것도, 곧 무기한 여행을 떠나리라는 것도.
너무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착한 지훈이라도 화를 낼지 모른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식사를 차릴 때였다.
우웅― 우웅―
휴대폰이 진동을 했다.
번호를 보니…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떠 있었다.
바로 누들 출판사의 파멜라 조이.
어쩌지.
지금 금홍도 없는데.
하지만 전화를 무시할 수도 없는 일.
나는 전화를 받았다.
“헬로.”
아니나 다를까, 쏟아지는 영어.
난 혼신의 힘을 다해 집중을 했다.
그녀는 왜인지 너무 흥분해 있어서, 조금만 천천히 말해 달라고 누차 부탁해야 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이해했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이해한 말이 맞다면…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의 책 <그 집>이 아마존 도서 스릴러 부문 베스트셀러 1위가 됐다’라고.
나는 몇 번이나, 그게 정말이냐 되물었다.
그러자 파멜라는 또 영어를 폭포처럼 쏟아부었다.
안 되겠다 싶었다.
나는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는 거다.
바로 미국 아마존에 접속해 베스트셀러를 확인했다.
몇 번의 링크를 타고 ‘스릴러’ 파트로 들어가자,
<The Home>이 정말로 가장 위에 있었다.
식사를 차리려던 것도 까맣게 잊은 채, 나는 입을 틀어막고 의자에 앉았다.
물론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일본과 유럽에서도 내 책은 꾸준히 베스트셀러였다.
하지만 미국은 달랐다.
나는 처음부터 미국 시장을 공략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백인 위주로 돌아가는 미국 문화 시장의 ‘그들만의 룰’.
그걸 깨기 위해 내가 선택한 건 공모전이었다.
공모전뿐이랴.
5위로 입선을 한 후, 나는 <그 집>의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미국 문화시장에 내 작품을 확실하게 쐐기 박기 위하여.
그리고 바로 그 결과가, 이 베스트셀러 1위였다.
그 어떤 성공보다도 감회가 새로웠다.
뚫기 어려운 ‘유리 천장’을 깨부신 기분이라 해야 하나.
이걸 나 혼자 알고 있을 순 없지.
나는 휴대폰 화면을 캡쳐해서 ‘팀 이상’ 톡방에 올렸다.
잠시 후.
― 허얼!!!!!!!!!!!
지훈이 톡을 본 모양이었다.
― 대박!!!!!!!! 우와!!!!!!!! 형!!!! 축하해요!!!!
느낌표 닳겠다.
지훈이 호들갑을 떠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금홍은 아직 톡을 못 본 듯하고.
그때, 지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왁자지껄한 걸 보아 회식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 형! 축하해요.
“그래, 그래. 고맙다. 덕분이다.”
― 작가님! 축하드려요!
― 축하해요! 너무 멋져요!
…누구지?
― 형, 여기 평론가들이랑 같이 있어요. 지금 여기 형 소식 듣고 난리 났어요.
그걸 벌써 얘기했구나, 송지훈.
뭐, 탓할 일은 아니지.
“감사하다고 꼭 전해 드려.”
― 형!! 지금 집이에요?
“응. 밥 먹으려고.”
― 이런 날에 혼밥 절대 안 되죠. 저 지금 집에 들어갈게요.
“지금? 너 회식하는 거 아냐?”
― 이 사람들이 뭐가 중요합니까. 지금 갑니다.
휴대폰 너머로 야유가 들려온다.
송지훈 평론가 그럴 줄 몰랐다는 둥.
평론가 버리고 소설가에게 간다는 둥.
저런 농담들을 나누는 걸 보니 여간 친한 게 아닌 모양이지.
나는 차리다 만 식탁을 바라보았다.
딱히 혼밥에 쓸쓸함을 느끼는 타입은 아니다.
평소였다면 지훈에게 그냥 자리를 지키라 했을 테고.
하지만 오늘은.
“그래. 빨리 와라. 샴페인 사 들고.”
나도 왁자지껄하게 놀고 싶은 마음이었다.
전화를 끊자, 그새 금홍의 톡이 와 있었다.
― 헉… 축하해요!
그리고 부재중 전화까지 와 있는 걸 보아, 금홍도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나는 단톡방에서 금홍에게 물었다.
― 우리 지금 소소하게 파티할 건데.
금홍이 바로 대답했다.
― 지금요?
― 네. 지금 올래요?
― 와요! 금홍 샘이 빠지면 섭하지.
지훈도 거들었다.
저녁 여섯 시.
썩 늦은 시간은 아니긴 하지만… 금홍이 워낙 바빠서 긴가민가했는데.
― 그럼요. 가야죠.
역시 금홍인 최고다.
두 사람이 오기 전에, 나는 한 가지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이 소식을 조나단 감독에게 알리는 것.
짹짹이 글쓰기에 들어가, 조나단 감독과 <그 집>을 태그했다.
그리고 아까 캡쳐한 아마존 베스트셀러 화면을 첨부했다.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지만, 조나단 감독은 모든 걸 알아먹을 거다.
내 기쁨과 감동, 그리고 고마움까지.
십 분이나 지났을까.
우웅― 하고 휴대폰이 울렸다.
짹짹이 알람이었다.
조나단 감독은 내 사진을 자신의 피드에 다시 게시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 오 마이 갓. 우리의 예술이 먹혔어.
‘우리’.
나는 그 단어에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조나단 감독은 SNS를 통해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바로바로 번역기를 돌려가며 대화를 나눴다.
― 친애하는 내 친구, 천재, 내 동지, 축하합니다.
― 감사합니다. 영화 <그 집>이 잘 나온 덕분이죠.
― 그 말이 맞습니다. 부정하고 싶지 않네요.
역시. 솔직한 사람.
하지만 영화의 덕을 많이 본 것도 사실이니까.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영화 <그 집>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확실히 문화시장에 영화가 주는 영향력은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