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24
아마…그 시절의 나 역시 좀 미숙했던 거겠지.
“영문 페이지도 길게 봐야 해요. 일본 시장 풀리면, 영미권도 노릴 수 있어요. 아시아에서 일본 짚고 가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
지훈이 술술 말했다.
“너, 마케팅 진짜 진지하게 배웠나 봐?”
“저요? 그럼요. 저는 등단해도 취업할 거예요. 한 군데에서 처박혀서 글만 쓰는 거, 돈 많이 준다고 해도 못 해요. 글도 좋지만, 사회생활 하고 싶어요.”
“그럼 지금 하는 일도 딱이네요. ‘팀 이상’ 마케팅.”
금홍이 말했다.
갑자기 지훈이 눈을 빛냈다.
“형, 안 그래도 저 드릴 말 있어요.”
“뭐?”
“저 아예 형 전속 매니저 할까 봐요.”
…이게 뭔 소리야.
“너 등단 안 해?”
“모르겠어요. 형 도와주는 일, 하면 할수록 천직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조회수랑 좋아요 수 올라가는 거 보면 막 너무 좋고.”
“아르바이트처럼은 계속 해. 하지만 지금까지 공부한 게 아깝잖아.”
“알죠. 그리고 형도 지금은 형 코가 석자일 테니까.”
“물론 네가 정식으로 나 챙겨주면 든든하지.”
지훈이만큼 진심으로 날 도와주고 싶은 사람은 없다.
경제경영 쪽 지식이 많아 실속도 있고.
문창과만 아니었으면 전속 직원으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훈이에겐 더 중요한 꿈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안 돼. 너는 등단부터 해야 해. 너 소설 합평 언제지?”
“…다음 달이요.”
“소설은 썼어?”
“…아뇨. 잘 안 써져요. 형 글 어떻게 홍보할지, 별스타그램 멘트는 뭘 쓸지, 그런 것만 생각나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하지만 녀석이 저런다고 나까지 흔들려선 안 되지.
“절대 소설 포기하지 마. 알았지? 여기서 나하고 약속해.”
“하지만 형…”
“어서.”
“…알았어요. 오늘부터 가서 쓸 게요.”
“자자, 싸우지 말아요. 오늘은 좋은 날이잖아요.”
금홍이 얼른 분위기를 풀어낸다.
그러고보니 금홍이는 바리스타 준비 잘 되어가고 있나?
지훈이 저렇게 죽상을 하니 물어볼 수가 있나.
우리는 그렇게 소고기를 먹으며 친목을 다졌다.
지훈은 속이 답답하다며 술을 내리 퍼마셔댔다.
덩치도 좋고 술도 센 편이라 딱히 말리지 않았던 게 문제였을까.
“혀엉…형은 진짜 잘돼야 해요…어?”
하고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해대더니,
쿵!!
“…헐.”
그대로 테이블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금홍과 나는 눈이 동그래져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
금홍이와 둘이 남았다.
소고기는 익다 못해 버석버석 말라간다.
지훈이 녀석은 잘도 잔다.
그리고…나와 금홍이가 마주앉아 있다.
지훈이가 입을 다무니 분위기가 급속도로 어색해졌다.
나는 금홍이를 좋아하니 그렇다 쳐도 금홍이는 왜 갑자기 말이 없어진 걸까.
“금홍 선생님은 요새 바리스타 공부 잘 되어 가세요?”
내가 슬쩍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럭저럭요. 3급은 딴 지 오래고, 2급 준비하고 있어요. 파트타임으로 카페 알바도 하고요.”
“번역도 하시고 파트타임까지 하시는 거예요? 대단하시네요. 영어도 잘하시고.”
“영어야 제가 문창과에 있어서 그렇지, 다른 과에 비하면 보통이에요. 소설도…”
소설도?
금홍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다.
“…쓰고 싶었지만…재능이 없어요.”
“누가 그래요? 재능이 없다고?”
“김한이요.”
개자식.
금홍이에게 무슨 소릴 한 거야?
“신입생 때 그 자식이랑 사귀었는데…그때도 김한은 최종심에도 몇 번 올라간 기대주였거든요. 남자친구랍시고 제 글을 많이 봐줬어요. 그리고 지 멋대로 결론을 내려버렸죠. 너는 이쪽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취업 쪽으로 진로를 바꿔라…라고요.”
“미친놈이네요.”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와버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김한이 요샛말로 ‘가스라이팅’을 금홍이에게 해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 글이 얼마나 얄팍한지, 제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절 문학에서 슬슬 밀어낸 거죠. 제가 책 읽는 것도 안 내켜했거든요. 차라리 그 시간에 영어를 한 자 더 보라고. 뭐…결과적으로 보면 도움이 됐죠.”
“도움이요?”
“네. 헛꿈 꾸지 않게 됐잖아요. 저, 되게 현실주의자거든요.”
“헛꿈이라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나는 금홍이의 잔에 맥주를 채워줬다.
금홍이, 강해보이지만 자신감이 없는 편이다.
2021년도의 취준생의 삶이란…씁쓸하다.
“멋진 카페 여시길 바랄게요. 예술가들의 쉼터 같은 곳.”
문득 <제비>를 열었을 때가 떠올랐다.
<제비> 뿐만이 아니다.
나는 그 후로도 <학>이니 <69>니 하는 카페를 열었지만 모두 망했다.
그럴 수밖에.
예나 지금이나 경영 같은 것엔 젬병이니.
하지만 금홍이라면 잘 해내가겠지.
“하하…글쎄요. 별벅스 점장이나 하면 성공한 인생 같은데요?”
별벅스 점장?
무슨 소리.
금홍이 정도라면 별벅스 건물주 정돈 돼야지.
“제가 나중에 별벅스 차려드릴게요.”
나는 장난처럼 말했다.
금홍이가 까르르르 웃는다.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인데, 술을 먹어서인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약속이에요?”
“약속.”
나는 새끼손가락을 살짝 들어올렸다.
약속했다?
나중에 별벅스 건물 주면 받아야 해?
건물주에 별벅스.
금수저가 아닌 이상 이 둘 중 하나조차도 이루기 어렵다는 걸 안다.
하지만 꿈을 가지려면 제대로 가져야지.
돈을 왕창 벌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
엠플릭스 드라마 부문 심사장.
엠플릭스 본사 제1 회의실엔 드라마 기획안과 시놉시스 출력본이 가득 쌓여 있었다.
기획안과 시놉시스를 살펴보는 1차 심사,
그리고 극본을 보는 게 2차 심사였다.
즉, 1차를 통과하지 못하면 극본은 내보일 수조차 없는 것이다.
심사위원은 신작을 맡을 드라마 PD, 엠플릭스 기획 팀장, 극본 작가, 그리고 방송문학 박사 송 교수 네 명이었다.
강인춘 PD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골 아프게 다 돌려 볼 것 없이, 각자 딱 세 개의 작품만 골라볼까요?”
극본 작가 송예나가 대답했다.
“그렇게 해요, PD님. 어차피 나중엔 극본까지 다 봐야 하는데.”
기획 팀장 이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절약하면 좋죠. 다만 뽑으실 때 저희 입장도 좀 고려하셔서 제작 가능한 선에서 해결해 주세요. 허허…”
“아이고, 그 잘 나가는 엠플릭스 아닙니까. 괜한 겸손은 마십시오. 껄껄껄…”
마지막 말은 송 교수였다.
“자, 그럼 시작하십시다.”
강인춘 PD의 말에 다들 앞에 놓인 기획안들을 무작위로 집어 들었다.
송 교수만이 눈치를 보며 기획안들을 들춰댔다.
‘젠장…어딨는 거야, 그 놈 건.’
수백 개의 기획안들 사이에서 특정한 서류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손길은 집요했다.
부스럭부스럭…
‘아. 찾았다!’
그가 찾은 기획안의 제목은 <무너지는 날>
송 교수는 <무너지는 날>과 함께 다른 기획안들을 한 뭉텅이 가져왔다.
“크흠…”
제일 먼저 <무너지는 날> 기획안을 살폈다.
아니, 살피는 ‘척’을 했다.
펄럭-
송 교수는 <무너지는 날> 기획안은 바닥에 떨어뜨렸다.
탈락작이라는 뜻이었다.
펄럭-펄럭-
다른 심사위원들도 탈락작들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무너지는 날>은 그렇게 탈락작들에 덮여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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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23)
다시 사는 천재 작가 23
엠플릭스 드라마 부문 심사장.
밤 열 시에 시작했던 심사는 새벽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펄럭-펄럭-
기획안들이 우후죽순 바닥으로 떨어졌다.
기획안을 떨어뜨리는 심사위원들의 손길도 빨라졌다.
심사위원들도 지칠 대로 지치고, 지루해졌다는 의미.
“아후….”
강인춘 PD가 기지개를 켰다.
지금가지 그가 떨어뜨린 작품은 백 개는 족히 넘었다.
건진 건 두 작품.
그마저도 뽑을 게 없어 개중 나은 것을 고른 것뿐이다.
강인춘 PD는 펜을 탁, 하고 내려놓곤 짜증을 냈다.
“대체 뭘 건지란 거야? 이건 뭐 하나같이 멜로물이잖아.”
극본 작가 송예나가 킬킬거렸다.
“우리나라는 드라마라고 하면 멜로 생각하니까요.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전문가물이라고 써놨으면 그쪽으로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습작생들이 그게 쉽나요~”
기획 팀장 이솔이 체념투로 말했다.
강인춘 PD외에도 다들 뽑을 만한 작품을 찾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세상 경험이 좁아서야…난 시마이! 두 개만 뽑을래!”
강인춘 PD는 양 손을 들었다.
어차피 1인분 이상은 해냈으니 쉴 자격이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기 소파에서 좀 쉬세요.”
송 교수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송 교수는 이상에겐 자신이 엠플릭스의 심사위원장이나 되는 듯이 굴었다.
하지만 실상은 심사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초빙교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실권을 잡고 있는 PD의 눈치를 볼 수밖에.
“예. 교수님. 저는 그럼 좀 쉬겠습니다. 2차 때는 제가 더 열심히 볼 게요.”
“예예, 그럼요.”
강인춘 PD는 소파에 벌렁 누웠다.
‘머리 아파…올해는 어쩌면 당선작을 못 낼 수도 있겠어. 그럼 제작은 뭘로 하지? 차라리 웹툰 쪽을 뒤져볼까.’
드라마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콘텐츠였다.
망하면 리스크가 어마어마하다.
신인 작가의 극본이란 안 그래도 모험인데, 애매한 작품을 뽑으라고?
“하아…”
드라마를 총괄해야 하는 PD로서, 속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멀거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안 되겠어. 뭐라도 더 봐야지. 손 놓고 있을 수야 있나.’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작품들을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어차피 떨어진 작품이지만, 혹시 몰라서.
혹은 이대로 가만히 있기엔 불안해서.
‘역시…아니고….아니고…이것도 아니고…’
기획안들이 빠르게 넘어간다.
‘…아니고…역시 어쩔 수 없나…이건…음?’
<무너지는 날>
강인춘 PD는 그 기획안 앞에서 멈칫했다.
‘건축가물이라. 쉽지 않은 장르지만…가시적인 매력이 커서 영상미가 좋겠지. 중산층에서 인테리어 붐을 일으킬 수도 있고. 내용은 어떻지?’
“흠…판타지도 좀 섞였고…”
강인춘은 <무너지는 날>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작품을 누가 떨어뜨린 거지? 분명 저쪽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의 시선이 송 교수의 등에 닿았다.
그는 송 교수를 차가운 눈으로 빤히 바라봤다.
‘다음 심사 때는 저 교수를 부르면 안 되겠어.’
***
“스물 하나…스물 둘….”
저녁을 먹고 방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던 중이었다.
하루에 8시간 취침, 1시간 운동.
운동도 습관이 되니 하지 않으면 허전할 정도였다.
“스물 셋…스물…넷…”
우웅-
문자가 왔다.
나는 나머지 열다섯 개를 다 채우고 나서 핸드폰을 살폈다.
-제 2회 엠플릭스 드라마 공모전 결과가 나왔습니다. 홈페이지를 확인해주세요.
…맞다.
나 드라마 공모도 냈었지.
그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신춘문예 결과를 기다리던 중에 냈던 드라마 기획안.
심사가 세 달 가까이 걸린다더니, 정말 3월에야 결과가 나오는구나.
난 바로 컴퓨터를 켰다.
떨어졌을 수도 있다.
송 교수가 엠플릭스 심사장에서 손을 썼다면 막을 재간은 없을 테니.
뭐, 떨어지면 다른 곳에 내면 그만 아닌가.
내 글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부활> 덕분에 지갑도 꽤 두둑해졌으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