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38
“좋아요. 그럼 맡겨요. 멋진 걸로 골라볼 테니까.”
“퇴근 시간 다 되어가네. 오랜만에 셋이 저녁 먹을까요?”
지훈이가 말했다.
그런데 금홍이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오늘은 갈 데가 있어서요.”
“뭐예요~ 우리 가서 아쉬운 거 아니었어요?”
“아니거든요, 지훈 샘~.”
금홍이 서류를 챙겨 다른 사무원에게 간다.
사무원들끼리 상의할 게 있는 모양이다.
지훈이 내게 슬쩍 말했다.
“금홍 샘, 요즘 일 끝나고 학원 다니는 것 같아요.”
“학원?”
“네. 저번에 사무원 선생님들 얘기하는 거 살짝 들렸거든요. 어떤 학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쁜가 봐요.”
학원이라…
아무래도 바리스타 학원이려나.
***
며칠 후, 우린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비즈니스 클래스.
짧은 비행이었지만 쾌적하게 일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
정신없이 입국 수속을 마쳤다.
공항을 나설 때 즈음엔 온몸이 녹초가 된 기분이었다.
“일단 호텔로 가시죠. 가는 길 알아놨어요.”
지훈은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일본에 자주 와봤다고 했다.
기차역으로 앞서가는 걸음이 능숙하다.
이렇게 물 만난 물고기 같은 녀석이,
어째서 일어는 하나도 못 읽는 건지.
나는 창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나의 시간으로만 따지면…
2년 만에 도쿄, 즉 내가 죽은 땅에 돌아온 셈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때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버블 경제 등.
이 나라도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본에 대한 미묘한 감정이 모두 사라졌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얻어갈 것들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
단순히 책 출판과 히루키와의 친교를 위해서만은 아니니까.
우리는 호텔에 도착한 후 짐을 풀었다.
5성급 호텔이라 그런지 두 개의 침대가 제법 널찍했다.
“이야… 좋은 호텔 잡아줬네요. 일본에서 이 정도 크기의 방이면 진짜 좋은 거거든요.”
“그래? 난 와 본 적이 없어서.”
“일본은 호텔 방이 워낙 작거든요. 일단 나가서 식사부터 하시죠?”
“룸서비스 시켜 먹으라던데. 도마크 편집장이.”
“형… 진짜 스타네요. 저 그럼 먹고 싶은 거 다 시킵니다?”
“마음대로 해라.”
지훈은 신이 나서 룸서비스 메뉴판을 뒤적거렸다.
“주문은 내가 해줄게.”
“아니에요. 영어로 하면 되죠. 영문과 조교 하면서 간단한 회화는 늘었어요. 그리고 이런 일은 매니저가 해야죠.”
지훈은 너스레를 떨며 전화로 이러쿵저러쿵 음식을 시켰다.
나는 피곤한 몸을 벌렁 침대에 눕혔다.
그때였다.
로밍을 해 온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생소한 번호였다.
일본 번호 같은데.
“네. 여보세요.”
-아, 이상 작가님 되십니까.
중후하지만 명랑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
그리고 일본어.
“네, 맞습니다. 누구십니까?”
-저, 무라카미 히루키라고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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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37)
다시 사는 천재 작가 37
무라카미 히루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상 작가님께서 도착하셨다는 소식을 들어서요.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내일 오전 11시에 그 호텔 쪽으로 간다면, 작가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까. 오시는 건 좋으나, 미쯔하루 편집장님과의 미팅은 1시로 알고 있는데요.”
-맞습니다. 사실 그 호텔에 제가 즐겨 찾는 ‘프라이빗 룸’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곳에 이상 작가를 초대하고 싶습니다만. 저와 대화를 나눈 후에 일정을 소화하시죠.
‘프라이빗 룸’이라.
궁금증이 일었다.
뭔가 흥미로울 것 같고.
“좋습니다. 가죠, ‘프라이빗 룸’”
나는 이 사실을 지훈에게 말했다.
“난 히루키랑 얘기를 좀 나누고 있을게. 필요하면 전화할 테니까 넌 좀 쉬고 있어.”
“크으… 히루키와 ‘프라이빗 룸’… 그런데 제가 없어도 괜찮겠어요?”
“안 괜찮을 게 뭐겠어.”
“하지만 그쪽에서 엄청난 경호원을 데리고 나타나면 어떡해요. 저라도 있어야죠.”
“하하… 장담하건대 혼자 올걸?”
무라카미 히루키는 이미지를 중시하는 작가다.
웬만큼 위험한 곳이 아니면 혼자 다니겠지.
작가에게 ‘자유’라는 이미지는 중요하니까.
내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11시.
히루키는 혼자서 호텔 로비에 서 있었다.
사진에서 봐 왔던 것보다 작고 왜소한 스타일.
살짝 까무잡잡한, 흔하디흔한 중년 남자의 얼굴.
“무라카미 히루키 작가님.”
내가 부르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상 작가님! 정말 반갑습니다!”
그리고 나를 와락 안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이 이렇게 스킨십에 관대했나?
뜨거운 포옹이 끝나고 그는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정말 좋군요. 오지 않으실까 불안했습니다.”
“이렇게 극진하게 초대를 해주셨는데, 당연히 와야지요.”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미남이십니다.”
사진이라면… 시상식에서 찍힌 것들이겠지.
그러니 결연하고 경직된 표정만 봤겠구나.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과찬이십니다. 자, 그럼 ‘프라이빗 룸’으로 가는 겁니까? 정말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이리 오시죠.”
히루키는 나를 엘리베이터로 다시 데려갔다.
엘리베이터 탄 그는 카드리더기에 골드카드를 갖다 댔다.
“꼭대기 층으로 갈 겁니다. 이 카드가 있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죠.”
스위트 룸 같은 건가?
좀 더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우리는 어두운 복도를 죽 걸었다.
그리고 복도 끝에 있는 문.
히루키는 이번에도 문고리 위 리더기에 카드를 댔다.
딩동-
철컥…
알림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어둡습니다. 발밑을 조심하십시오.”
옅은 전등이 어둠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는 방.
그곳에선 묘한 냄새가 났다.
담배 연기를 닮았지만 어딘가 부드럽고 중후한 냄새.
나는 그가 주는 일회용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대체 이 방은 무엇일까?
“1시까지 예약을 해 뒀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지 않을 겁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원목의 낮은 콘솔과 테이블. 그리고 환풍기.
가구는 그게 전부였다.
방 중앙의 검고 둥근 원목 테이블은 아주 무거운 느낌을 주었다.
그와 나는 마주보는 안락의자에 앉았다.
테이블엔 와인 한 병과 잔 두 개, 그리고 나무상자가 다였다.
히루키가 나무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다름 아닌 시가(cigar)가 잔뜩 있었다.
“여긴 시가룸입니다. 호텔의 프라이빗 손님을 위해 마련한 방이죠.”
“시가룸이라… 솔직히 처음 와보는군요.”
“저도 아주 가끔 온답니다. 귀빈을 맞이할 때에 애용하죠.”
귀빈.
그는 그렇게 매 순간마다 내 기분을 띄워주고 있었다.
“하지만 전 담배는 하지 않습니다. 구경만 하죠.”
“시가는 독하긴 하지만 겉담배로 피우는 거라, 부담이 덜하실 겁니다. 여기 있는 시가는 얼마든지 피워도 좋고요. 아까운 기회이니 한 번 경험해보시죠.”
그는 재차 권했다.
희미하고 몽환적인 전등빛.
원목 가구와 시가.
히루키가 따르는 레드와인.
작가의 허영 아닌 허영을 채워주기에 아주 좋은 공간.
“…그럼 한 대만 피워보죠.”
“정말입니까? 그럼 제가 알려드리죠.”
히루키는 신이 나서 시가를 골랐다.
“가장 순한 걸로 드리죠. 머금고 바로 뱉으세요. 연기만 보는 겁니다. 어차피 시가는 분위기거든요. 무드죠.”
그는 통통한 시가를 꺼내 그 끝을 시가용 커터로 잘랐다.
그리고 불을 붙이며, 낮게, 그러나 여러 번 빨아들여보라 했다.
“불을 단번에 붙이시는군요. 처음엔 많이 실패하곤 하는데.”
“폐활량이 좋은가 봅니다.”
“역시 젊음은 다르군요.”
히루키는 이번엔 제 시가의 끝을 잘랐다.
그리고 능숙하게 불을 붙였다.
엄청난 양의 연기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제가 애연가는 아닙니다만, 좋은 날에는 이걸 피우곤 합니다.”
“덕분에 멋진 경험을 하는군요.”
우리는 잠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나도 가끔씩 연기를 머금었다가, 내뱉었다.
오랜만이구나. 담배도.
전생에 폐병으로 죽은 입장에서 담배는 죽어도 입에 대기 싫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무드’ 때문이었을까.
줄담배를 끼고 살았던 과거로 다시 돌아 온 기분이 들었다.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히루키 작가님.”
“무엇이죠?”
“제게 주신 관심의 이유가 좀 궁금합니다. 훌륭한 작가는 세계 어디에나 있지 않습니까.”
‘이상, 그는 진짜다’
이 말부터가 어딘가 맹목적이지 않은가.
‘쿨’한 히루키의 이미지와 맞지 않은 SNS에서의 말들도,
이렇게까지 날 대해주는 정성도.
히루키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시가를 즐겨요. 그것도 소중한 시간을 골라서 말이죠.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
“폼 잡는 걸 좋아한단 뜻입니다.”
나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작가란 그런 법이죠.”
“아니요. 이상, 당신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당신은 아무런 폼을 잡지 않아도, 아무런 이미지 메이킹 없이도, 당신이란 사람 자체에서 글이 나오죠. 글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난 그런 사람을 천재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런 천재를 직접 보는 건, 당신이 처음이고요.”
“그것이 천재라면, 저는 천재가 맞습니다.”
그가 날 시가룸에 데려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곳은 왠지 모르게 사람을 솔직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도, 나도.
“제가 부러워서 부르셨습니까.”
“하하… 그러기엔 제가 나이가 많습니다. 십 년쯤 전이었다면 모를까요. 저는 그냥 궁금했습니다. 당신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이죠?”
내 눈에 보이는 세상.
조인창 교수가 했던 말이 맞았다.
히루키는 나의 시선, 나의 생각이 궁금했구나.
국적과 상관없이 작가 대 작가로서.
“글쎄요. 제가 남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 적이 없으니 뭐라 말은 못 하겠습니다만…”
나는 시가를 한 번 빨았다가 뱉어냈다.
미세하게, 고소한 아몬드 향이 나는 것 같았다.
울컥-
뭔가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에 와서일까.
시가 때문일까.
집념 가득한 히루키의 눈빛 때문일까.
아니면 여기선 모든 걸 말해도 될 것 같은 느낌 때문일까.
그래서 난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한 적 없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저는 굉장히 불안정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부모는 가난했고, 큰아버지 댁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자랐죠. 의식이 생긴 순간부터… 제 내면과 생각은 이미 어른처럼 성숙해져 있었습니다. 유년기를 뛰어넘어 버린 거죠.”
히루키에게 말할 순 없었지만,
그 배경에는 일제강점기가 있다.
그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는 아이로서 자라는 걸 허락받지 못했다.
“이미 어른이라…”
“인간의 시선은 유년기라는 사회화 과정을 거쳐 안정이 됩니다. 하지만 제 안엔 유년기를 거치지 않은 수많은 시선들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 글을 쓸 때마다 그것들이 튀어나오곤 합니다. 소설에서건 잡문에서건… 어린아이들처럼 달려 나오죠. 제가 막을 새도 없이.”
그래서 예전 날, 나는 ‘오감도’라는 시를 썼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