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69
오진우 평론가는 <무한 설계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의미를 차치하고서라도,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이 나. 이건 마치…’
그의 머릿속에 한 이미지가 스쳐 갔다.
‘거대한 스마트폰 화면 같군.’
오진우 평론가는 다음 시를 봤다.
<입>
“흠…”
읽고 있긴 하지만, 의미를 모를 말들이었다.
-나는 누구냐 나는 너를 먹으러 왔으나 나를 두려워함은 먹는 너의 먹음의 행위에 다름 아니다 나의 먹음은…
이렇게 이어지는 시는 A4용지의 끝까지 닿아 있었다.
‘먹는다는 행위에 중심을 둔 건 확실하다. ‘나’라는 존재와 ‘너’라는 존재가 있고. 그런데 그게 ‘먹는다’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아리송했다.
오진우 평론가는 다소 오만한 사람이었다.
시만이 모든 문학의 정수고,
가장 최상위 수준의 언어 예술이라 여기는.
시를 해석해내는 일에도 자신이 있었는데…
“…어렵네.”
이번만큼은 쉽지 않다.
그는 <은은>을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등단도 안 한 작가가 이런 전위적 형식을 구현하다니.
그것을 발견한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무한 설계도>와 <입>은 차원이 달랐다.
<은은>은 적어도 ‘연애시’라는 틀 안에서 전위적 요소를 가미했다.
그에 비해 이 두 개의 시는…
‘‘제대로’ 쓴 거구나. <은은>은 장난이었어.’
오진우 평론가의 몸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직 제대로 이해되지도 않는 시.
그러나 느낄 수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를.
‘정신 차리자.’
그는 양 손으로 자신의 뺨을 쳤다.
그리고 예전에 뽑아뒀던 <은은>을 가져왔다.
그리고 세 장의 종이를 나란히 늘어놓았다.
세 개의 시.
이상은 이 세 개의 시로 비평을 해달라고 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하나의 시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보자.’
그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세 개의 시를 한꺼번에 내려다보았다.
평범한 연애시 속 비대칭성.
숫자라는 기호의 연쇄.
‘먹음’의 변주.
‘이 안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 거지?’
오진우 평론가는 기어이 손톱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뭔가에 강하게 집중할 때의 그의 습관이었다.
여유롭게 미소를 띠던 이상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디 한번 해보라는 듯한 그 얼굴.
이 숙제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역시 계속 시를 쓸 것 같았다.
‘쉬운 것부터 생각하자.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입>의 ‘가르강튀아’.’
가르강튀아 자체는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문제는 가르강튀아로 ‘무엇을’ 표현하려는 거냐- 하는 문제.
‘두 번째는… 디지털의 기호. 무한하게 확장되어가는 이미지 그 자체.’
그렇다면 마지막 하나.
‘<은은>이 의외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오진우 평론가는 <은은>의 종이를 들어 올렸다.
“흐음…”
‘아무리 봐도 연결점은…’
그는 무심코 책상에 종이를 내려놨다.
정확히는 나머지 두 종이의 위편에.
그리고 그 순간,
“어?”
그의 머릿속에 뭔가가 들어와 박혔다.
“설마…”
그는 세 개의 종이 사이를 조금씩 벌렸다.
위에 <은은>이, 아래에 <무한 설계도>와 <입>이 오도록.
오진우 평론가가 홀린 듯 중얼거렸다.
“…삼각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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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 390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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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67)
다시 사는 천재 작가 67
나리타 국제공항.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어서야 히루키를 만났다.
공항에서 만난 우리는 바로 카페로 들어갔다.
히루키는 아쉬운 티를 냈다.
“만나자마자 헤어져야 한다니. 아쉽군요.”
“공항에서라도 만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못 뵙고 갈 줄 알았거든요.”
히루키는 집필을 할 땐 아무도 만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집필을 끝낸 그는 약간 말라 있었지만,
어딘지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를 흘긋흘긋 보았다.
꺅꺅거리며 호들갑을 떨긴 해도, 거기까지였다.
“이 주 정도 계셨죠? 계약을 한 것 치곤 오래 계셨는데… 그간 뭘 하셨습니까?”
나는 먼저 일본대에서의 일화를 말해주었다.
특히 내가 받은 ‘보수적인 질문’에 대하여.
그러자 히루키는 아주 즐거워했다.
“그것이 강연의 맛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죠.”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내외인>은 프랑스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프랑스로요? 미국이 아니라요?”
“네. 다들 제 글을 미국으로 보낼 줄 알고 있지만… 제 생각은 달라서요. 세계 시장에 진출할 거라면 제대로 시작하고 싶거든요.”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제대로’의 의미를 그도 모르진 않으리라.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이상 작가님은 참 신인 작가 같지 않습니다. 아니, 이제 신인은 아니지만…”
“서구권에서는 신인이다- 이거죠?”
“바로 그거죠.”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았다.
신인 작가들 특유의 겁먹음이 없단 거겠지.
“제가 처음으로 세계문학 시장에 진출했을 땐… 아닌 척 하긴 했지만 겁을 많이 먹었거든요. 나라를 고를 여유라… 그런 건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되는대로, 마구잡이로 책을 보냈죠.”
“저도 겁먹긴 마찬가지입니다.”
“….”
“하지만 기회를 놓칠 생각도 없으니까요. 한 번 사는 삶이잖아요.”
이건 스스로에게 보내는 농담이다.
나의 이 두 번째 삶.
이 삶 자체가 기회다.
나는 이 기회를 내 뜻대로 몰고 가려는 것뿐이고.
히루키가 씨익 웃었다.
“세계문학 시장에서 만날 날이 머지않았군요.”
“리브레가 절 뽑아준다면 말입니다.”
“리브레라. 나쁘지 않은 곳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바보는 아니라서요. 좋은 글은 반드시 알아봅니다. 다만…”
그는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는 듯했다.
“유럽 시장은 확실히 좀 까다로워서 작가의 전작을 찾아보는 경우도 왕왕 있죠. 그 작가의 작품관이라 해야 할까요? 그런 걸 확인하는 겁니다.”
작가의 ‘작품관’이라.
그들이 찾아볼 수 있는 내 ‘작품관’이라 한다면…
영어로 번역한 <다시 사는 일> 정도일 거다.
…빈약하군.
“제가 더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준비해야겠군요.”
“너무 걱정하진 마십시오. 일단은 <내외인>이 좋은 작품이니까요.”
“과찬이십니다. 아, 히루키 작가님도 도마크 연말 작품집에 원고를 주신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하여간 쉴 틈을 안 준다니까요.”
그는 투덜거렸다.
그래도 마감까진 두어 달의 시간이 있으니, 어떻게든 좋은 작품을 내겠지.
슬슬 수속을 해야 할 시간이 됐다.
가야 한다고 말하자, 그는 ‘벌써?’라고 놀라며 시계를 보았다.
“아- 아쉽군요. 아, 이상 작가님.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을 뻔했습니다.”
“네? 뭡니까?”
“이번에 제가 집필한 단편집, 한국어판에 추천사를 써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저번에 약속도 하지 않았습니까.”
<다시 사는 일>을 발간하러 일본에 왔을 때,
나는 히루키에게 추전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다음 책에 추천사를 써주기로 했지.
그는 입국장까지 날 배웅했다.
슬슬 입국장 앞에서 줄을 서야 할 때, 그가 말했다.
“그럼,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히루키 작가님.”
“이상 작가님.”
“네.”
“우리, 같이 작품을 발표하는 건 처음 아닙니까?”
“…그렇게 되죠.”
“원고, 기대하겠습니다.”
그의 부드러운 눈매에 약간의 경쟁의식이 비쳤다.
작가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런 경쟁의식.
나는 그에게 말했다.
“네. 저 역시도요.”
나 역시 물러날 마음은 전혀 없다.
***
한국에 돌아왔다.
9월 1일.
완연한 가을이자, 새 학기의 시작이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한 일.
일본에서 쓴 시 두 편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리고 <은은>과 함께 세 편을 묶어 신-문학에 게재했다.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이게 뭔 말이여.
-이거 시예요?
-못 알아먹겠는데…<은은> 빼고는.
-<은은>도 장하늘이 가사로 만든 부분 빼고는 모르겠음.
-이상 그냥 소설 쓰는 게 낫지 않나;
-난해해. 뭘 나타내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분위기가 압도적이긴 한데.
-시 보는 거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극도의 표현주의적 시임. 그러니까 내용이 아니라 시 이미지 자체에서 뭔가를 느끼길 바라는 거. 음… 뭔가 쏟아져 내리는 느낌? 그런 거 든다.
-저게 시면 나도 쓴다. 010101010100101000111 됐지?
-윗분; 이상이 이미 저걸 쓴 이상, 님이 쓴 건 베낀 것 밖에 안 됨; 처음 썼다는 게 중요한 거임. <무한 설계도>가 이진법을 쓴 거 보니 디지털 세계를 드러낸 것 같은데. 중간 중간 빈 공간이 의미하는 건 뭘까. 괜히 저런 걸 넣진 않았을 텐데. 모르겠다. 난 여기까지.
-<입>은 소리 내서 읽어보면 좀 매력적. ‘먹다’가 계속 나오니 랩 같기도 하고. 스웩 있네ㅎ
1930년대보단 좀 낫군.
그때는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화들을 냈는데.
그 여파로 <오감도> 연재를 중단하기도 했고.
지금 독자들은 나름대로 해석도 해보고, 즐기기도 하는 것 같다.
오진우 평론가는 아직 말이 없다.
나는 지훈에게 그의 소식을 슬쩍 물었다.
“오진우 평론가. 요즘 아무데도 안 나타난대요. 엄청 집중하는 중인가 봐요.”
지훈은 내가 일본에서 사온 젤리를 우물대며 대답했다.
지훈도 그새 논문을 삼분의 일이나 썼다.
확실히 예비발표를 잘 해놓으니, 진도가 빠르다.
“논문에 집중하니까 잡생각 안 들고 좋더라고요.”
“논문 다 쓰면 청탁 받을 거지?”
“청탁도 받고 비평도 써서 신-문학에 올리려고요.”
좋아.
지훈도 점점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고 있다.
나도 이제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새로이 적응해야겠지.
내 새로운 모교, 한국대학교에서.
***
모교가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진 건 별로 없다.
인수대 때처럼 수업은 특강으로 대체되었고,
논문도 나중의 일이니.
그럼에도 대단히 만족스러운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도서관이다.
한국대라는 위용에 걸맞은 도서관.
그 안엔 인수대에선 꿈도 못 꿔봤던 고서와 보존자료가 쌓여 있었다.
나는 갓 발급받은 학생증으로 책을 잔뜩 빌렸다.
그리고 막 도서관을 나가려던 찰나, 한 사람이 떠올랐다.
김미소 작가.
그러고 보니 이젠 동문이 되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톡을 해보니, 마침 학교라고 했다.
-커피라도 한 잔 하실래요?
내 톡에 김미소 작가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제 몰골에 놀라지 않을 자신 있으시다면.
몰골?
그렇게 말하니 오히려 기대되잖아.
우리는 교내 브런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자리를 잡고 그녀를 기다리던 중.
“이상 작가님.”
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흠칫 놀랐다.
위아래로 갖춰 입은 회색 트레이닝복, 후드를 눌러 쓴 머리. 뿔테안경.
“…학교에서 밤 샜어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주시겠어요? 이번 학기에 박사 논문 예비 발표 들어갈 거거든요. 그거 준비 중이에요.”
그리고 입을 가리고 하품까지 했다.
한국대 박사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