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75
“네?”
“전 이 내용 나가도 상관없거든요.”
“…그럼.”
서인희 기자가 다시 녹음기를 켰다.
“언젠가 제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 있어요. 제 소설의 가치는 제 방식으로 증명하겠다고.”
“그러셨죠. 저도 그 기사 봤어요.”
“유럽 문학 시장은 한국 문학 시장보다 특별하지 않아요. 다만 유럽 문학 시장이 한국 문학에 익숙하지 않아서, 작가로서 좀 어려운 점이 있을 뿐이죠. 두 시장 모두 제 소설의 가치를 증명할 동등한 장이에요.”
“그럼 한국 독자 분들은….”
“제 소설의 가치를 가장 먼저 증명해 주신 감사한 분들이죠. 이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이 이야기를 정말 하고 싶었어요. 다들 저를 신데렐라 취급하셔서.”
서인희 기자가 아하하 하고 웃었다.
“신데렐라라. 재밌는 말이네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럽 문학 시장은 왕자님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직 거기서 제 책은 단 한 권도 안 팔렸어요. 앞으로 한 권도 안 팔릴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잘 팔릴 것 같은데요? 저만의 생각일까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하하… 유머가 느셨네요. 그럼 요새는 계속 집필을 하고 계신 건가요?”
“네. 이번에 무라카미 히루키 작가의 새로운 단편집 <밤 11시의 공사>가 나와요. 거기에 들어갈 추천사를 어제 겨우 다 썼어요. 그리고… 재미있는 일을 준비하고 있어요.”
“재미있는 일이요?”
나는 씩 웃었다.
<내외인>의 이야기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홍보.
“몇몇 작가들과 앤솔로지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어머, 앤솔로지요? 그 소식은 처음 들어 봐요.”
“아직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아서요. ‘기억’이라는 키워드로 현민상 시인과 김미소 작가, 한지온 작가, 그리고 저까지 네 명이 작품을 써서 신―문학 플랫폼을 통해 올릴 예정이에요.”
“기억이라… 멋진데요? 그런데 왜 갑자기 앤솔로지를 기획하시게 된 거예요?”
음… 구인회 이야기를 할 순 없겠지.
하지만 이번 생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제가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장하늘 씨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해 봤잖아요.”
“아, 그렇죠. 저 <은은> 좋아해요. 그 노래, 작사가가 이상 작가님으로 올라가 있죠?”
“네. 개사는 장하늘 씨가 했지만, 올리는 건 그렇게 됐죠. 아무튼 작가는 외로운 직업이잖아요. 동료가 있어도 함께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고.”
“음… 그럴 것 같아요.”
“많은 분야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는 순간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문학에서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획해 보게 됐어요. 소재를 함께 생각하고, 작품을 나누고… 다른 작가와 자신의 상상력을 비교도 해 보는 거죠.”
“그렇군요. 나중에 책으로도 나오겠죠?”
“반응이 좋으면 그렇게 되지 싶어요.”
“각자 어떤 내용을 쓰셨는지 궁금한데요. 이상 작가님은 어떤 작품을 쓰셨어요?”
“거기에 관해선 한마디만 해 드릴 수 있겠네요. 시가 아니라 소설을 썼다고요.”
“소설! 많이 기다렸어요. 이상 작가님, 시도 멋지지만 단편 소설을 내신 지 오래됐잖아요.”
“맞아요. 오랜만의 단편 소설이죠.”
“그래도 한 가지 힌트를 주실 수 있을까요?”
“음… 지금의 제가 바라보는 저의 옛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요?”
“결국 이상 작가님의 이야기네요.”
“작가의 이야기가 담기지 않은 소설이란 없으니까요.”
나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저희 네 사람의 작품 모두, 다음 주 자정에 신―문학 앤솔로지를 통해 보실 수 있어요.”
인터뷰가 끝난 후.
서인희 기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외인> 프랑스 진출에 대해 말씀하시려는 줄 알았더니, 앤솔로지 홍보를 하러 오셨군요?”
“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
나는 서인희 기자와 가볍게 악수를 했다.
내 행보가 이슈가 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더 이상 대한문학상과 엮여 가십으로 소비되긴 싫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작품으로 이야기되어야 하니까.
* * *
Y일보와의 인터뷰 이후.
인터넷 뉴스는 내 말들을 무한대로 복제 재생산했다.
역시 인터넷 세상이란 무섭다.
여론의 관심은 ‘신데렐라 이상’에서 ‘앤솔로지’로 서서히 옮겨 갔다.
신라문학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독자들에게 다소 낯선 앤솔로지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해 올렸고, 배너까지 달아 줬다.
앤솔로지의 마감은 한 달 뒤.
슬슬 집필을 시작해야 한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나는 지금에야 글감을 정했다.
내가 ‘기억’하는 유년의 김해경.
‘이상’이라는 작가의 자아를 만든 시작점.
한 번쯤은 그 기억을 짚고 넘어가고 싶었지.
그리고 그 유년의 시간을 마주하려면….
‘그곳’으로 가야 한다.
집을 나서는 내게 지훈이 물었다.
“형, 어디 가요?”
“소설 때문에.”
“엥? 작업실 두고? 학교 도서관에서 쓰시게요?”
“아니. 쓰려는 게 아니라, 취재를 나가려고.”
어리둥절해 하는 지훈을 두고 집을 나섰다.
차도 가져가지 않았다.
목적지는 종로구 통인동 154번지 골목.
내가 태어나고 자란 ‘터’가 있는 곳이다.
73화
서울 종로구 통인동 154번지.
내가 자란 큰아버지의 집이다.
내가 세 살 때.
가난한 부모님이 나를 맡긴 곳이기도 하고.
할아버지 때만 해도 우리 집은 부자였다.
통인동 골목이 다 우리 가문 것일 정도로.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세가 기울었다.
청소년이 될 무렵 남은 건 이 한 칸의 집뿐.
큰아버지는 장손인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기술을 배우라는 압박에 건축술을 선택했다.
나는 나를 키워 준 큰아버지가 항상 고마웠다.
동시에 항상 미웠다.
왜 할아버지의 재산을 지키지 못했는가.
왜 화가가 되고 싶은 내 욕망을 묵살하는가.
나는 그의 뜻대로 건축기사가 됐다.
하지만 결국 작가로 죽었다.
예술가로 죽은 것이 그에 대한 나름의 복수이려나.
통인동 154번지 골목에는 큰아버지의 집이 남아 있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바로 그 집.
용케 허물리지 않고 ‘이상 기념관’이 된 건물.
나는 지금 그 앞에 서 있다.
현대식 건물 사이에 우두커니 남은 집.
벽은 기념관답게 유리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들락거리며 내 이야기를 숙덕거린다.
전시된 것들이야 뻔하다.
어디선가 기증받은 내 육필 원고.
나를 영웅으로 만드는 찬사들.
나는 그 안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저 안에 있는 건 하나같이 가짜처럼 느껴졌다.
대신 나는 통인동 골목을 걸었다.
한때 우리 가문의 것이었던 그 땅을.
카페며 가게며 가정집이며….
그 땅을 지금 여러 사람들이 조각조각 나누어 가졌다.
우리 가문의 것이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골목의 끝까지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늘을 보았다.
청명한 하늘이다.
그리고 저 하늘에서 내려다볼 이 골목을 상상했다.
조각조각 난 땅.
이 땅에 살았던 할아버지, 큰아버지, 그리고 나.
“음….”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눈앞의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를 한 잔 시키고,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제목을 붙였다.
<새>
이 ‘새’는 <오감도>를 떠올린 ‘조감도’의 ‘조’를 의미한다.
소설은 새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새의 시선.
그 시선이 닿은 곳은 작은 땅덩어리.
그 땅덩어리에 세 명의 부자가 산다.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아들.
세 사람은 서로를 죽도록 증오한다.
새는 하늘을 빙글빙글 돈다.
그리고 세 부자를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훔쳐 듣는다.
그들은 항상 화를 낸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럽다.
원래 세상일은 멀리서 볼수록 희극적이다.
가문의 일이란 특히 더 그렇다.
세 부자는 싸움 끝에 땅을 세 조각으로 나눈다.
그러나 땅을 나누는 일로 또 갈등이 생긴다.
그들은 뒤엉켜 싸운다.
새는 여전히 하늘을 뱅뱅 난다.
아들이 그 새를 손가락질한다.
‘저 새는 건방집니다.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 순간.
새는 관찰자에서 인간들에게 쫓기는 생물이 된다.
세 부자는 새를 향해 돌을 던진다.
새는 돌을 맞는다.
새의 시선이 하늘에서 바닥으로 거꾸러진다.
나는 그렇게 정신없이 초고를 써 내려갔다.
세 부자는 우리 가문의 모습이다.
‘새’는 지금의 내가 되겠지.
‘기억’이란 내려다보는 행위다.
과거에는 몰랐던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의 입장에선… 내려다보는 인간이 건방질 수밖에.
새가 죽었는지 어쨌는지는 소설에서 밝히지 않았다.
그 부분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싶어서였다.
오랜만에 산문을 쓰니 재미가 좋았다.
시가 내 속을 끝까지 털어 내게 하는 힘이 있다면, 소설은 쓰면 쓸수록 나를 정돈하게 하는 힘이 있다.
아이로 남고 싶을 때는 시를, 어른이 되고 싶을 때는 소설을 쓰는 게 맞는 거겠지.
<새>는 우리 집안 남자들의 이야기다.
부자였던 할아버지.
가산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와 삼촌.
목숨마저 부지하지 못한 나.
삼대의 우스운 연대기를 떠올리는 나의 기억과 시선.
한때 우리 집안의 땅이었던 통인동의 작은 카페.
나는 그곳에서 한 편의 단편 소설을 뚝딱 써냈다.
* * *
그날 밤.
나는 <새>의 초고를 지훈에게 보여 줬다.
지훈은 <새>를 뚝딱 읽었다.
“크으… 마초적이야.”
“그렇지?”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려다보는 시선’. 이게 한 건 했는데요? 왜, 그렇잖아요. 객관적인 시선에서만 보이는 매력. 특히 이런 남자들 싸움들에서 감정의 기름기를 싹 빼고 행동만 보여 주면… 굉장히 마초적으로 변하죠. 싸움은 싸움이되 본질은 스포츠인 권투처럼.”
“딱 그 지점을 노린 거야. 사람의 싸움은 감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새’의 시선을 통해 행위만 보여 주는 거지. 감정의 기름기를 없애고, 버석버석한 느낌만 날 수 있도록.”
내가 기억하는 버석버석한 어린 시절처럼.
그런데 지훈이 대뜸 이런 소리를 했다.
“형, 근데 아버지랑 사이 안 좋았어요? 아니면 할아버지랑?”
소설은 작가의 내면을 반영한다.
지훈도 이 글에서 내 가족사를 읽어 낸 거다.
내 경우엔 아버지가 아니라 큰아버지지만.
“뭐… 그런 셈이지.”
“형, 외동이죠? 같은 외동인데 저랑은 다르네요.”
지훈이야 남자치곤 말도 많고 애교도 많으니.
이래저래 집안에서 사랑을 받는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외동은 내가 아니라 혜경이다.
사실 내겐 두 명의 동생이 있다.
남동생 운경과 여동생 옥희.
그중에서 옥희는… 아픈 손가락이랄까.
옥희는 내가 24살 때 애인과 만주로 도망을 가 버렸다.
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옥희를 죽을 때까지 못 봤다.
아꼈던 동생이던 만큼 씁쓸한 일이었다.
아주 간만에 가족 생각을 했다.
언젠가 옥희와의 일도 소설로 쓸 수 있을까.
앤솔로지 마감까지는 앞으로 일주일.
신―문학에 동시에 네 개의 작품이 올라가야 한다.
신라문학 측에서 앤솔로지 게시판 권한은 받은 상황.
내가 모든 원고를 받아서 한꺼번에 올리기로 했다.
슬슬 다른 작가들도 초고가 나왔어야 할 텐데?
나는 ‘앤솔로지 팀’ 단톡방을 열었다.
― 다들 진행 사항이 어때요?
― 음….
이건 김미소 작가.
― …ㅎ
이건 현민상 시인.
뭐, 다들 평범한 마감 직전 모습들이군.
― 전 준비된 것 같아요.
역시 한지온 작가.
다르긴 다르다.
마감 일주일 전에 원고가 나오다니.
― 이상 작가님은요?
― 저는 초고만. 이제 퇴고해야죠.
― 당장 쓰겠습니다. 죽을죄를 지을 순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