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76
현민상 시인이 너스레를 떨었다.
김미소 작가는 말도 없다.
…설마, 펑크는 안 내겠지?
― 이거 정말 재밌네요. 분명 혼자 쓰고 있는데 같이 쓰는 느낌이 나요.
한지온 작가가 말했다.
나는 씩 웃었다.
바로 이 느낌이다.
작가들의 소속감은 다른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
마음이 맞는 작가들과 ‘함께 쓰는 느낌’.
그게 다다.
* * *
프랑스 파리 8지구, 리브레 출판사.
해외저서팀.
장 사원은 <내외인>의 한국어판과 프랑스어판 원고를 교차해서 살펴보는 중이었다.
<심슬리 저택> 번역본의 최종교를 보고 있던 에바 편집위원이 물었다.
“장한테도 한국 문학은 어렵지?”
“제가 한국어가 짧아서… 쉬운 작품도 아니고요. 하지만 작품 자체는 정말 좋아요.”
장 스테판은 5살 때 한국에서 프랑스로 이민을 왔다.
한국어를 쓰는 부모님 덕에 모국어를 잊진 않았다.
한국어학을 복수전공을 하기도 했고.
“광고 문구도 다 뽑았고, 이제 최종교 보고 책만 나가면 돼. 마리앙 편집장한데 바득바득 우겨서 낸 책이니, 잘되어야 하는데.”
“….”
“장 사원이 보기엔 어때? <내외인>. 솔직하게.”
“음….”
장 사원은 말을 아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내외인>은 프랑스의 그 어떤 소설에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출판은 작품성이 다가 아니었다.
“작품 자체로만 보면 <심슬리 저택>보다 한 수 위예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 작가’라는 게 걸려요.”
“하아… 역시. 이번에도 동의.”
말하지 않아도 문제점은 명확했다.
<내외인>은 훌륭하다.
‘이상’의 작품관도 훌륭하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국적이 걸린다.
이상이 영화 감독이나 화가였다면 얘기가 달랐을 거다.
한국의 예술 영화나 화가는 꽤 ‘먹어 주니까’.
하지만 ‘문학’은 다르다.
유럽 문학 시장에서 작가의 국적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 ‘국적’ 자체가 작품 성향을 홍보해 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다.
유럽 작가의 작품은 와인 같은 깊은 맛.
미국 작가의 작품은 스낵 같은 가벼운 맛.
남미 작가의 작품은 새콤달콤하고 화려한 맛.
일본 작가의 작품은 단정하고 담백한 맛.
그런데 한국 작가?
유럽의 독자들은 한국 문학의 맛이 뭔지를 모른다.
모르는 맛을 굳이 먹어 보려는 독자들? 많지 않다.
“이거, 홍보가 굉장히 중요하겠는걸.”
“어려운 작업이에요. 팀장님.”
장 사원이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마리옹 편집장이 <내외인> 건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에바 편집위원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낼 건 내야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책은, 우리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게 읽혀도 부족하지 않을 작품이라고.”
장 사원은 피식 웃었다.
에바 편집위원은 그에게 말했다.
“마리옹 편집장은 절대 <내외인> 한 권에 홍보를 몰아주진 않을 거야. 우리끼리 할 수 있는 걸 생각해야 해. 장 사원도 아이디어 좀 내 봐. 알았지?”
장 사원은 난감했다.
‘우리끼리 할 수 있는 거’라니.
사원에게 뭘 바란단 말인가.
하지만 별수 있나.
하라면 해야지, 사원인데.
“…네. 생각해 보겠습니다.”
또, 같은 한국인으로서 <내외인>이 잘됐으면 싶기도 하고.
* * *
― 얼른 주시죠. 작가님.
― 자, 자비를… 잠시만요.
― 미소야.
― 언니 잠깐만. 나 마지막 부분 퇴고 중.
― 김미소 실망. 나보다 늦을 줄은 몰랐다.
― 오빤 시잖아!
앤솔로지 마감 30분 전.
‘앤솔로지 팀’ 단톡방은 난리가 났다.
김미소 작가는 논문이다 뭐다 불안불안 하더니.
결국 지금까지 퇴고를 하고 있다.
나머지는 이미 원고가 준비된 상태.
기다리는 동안 나는 두 사람의 글을 봤다.
현민상 시인의 작품은 <리모트콘트롤러>.
기억의 작동법을 유쾌한 언어로 표현한 산문시.
한지온 작가의 작품은 <사자의 꿈>.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의 엉켜 버린 내면을 담담한 고백체로 풀어놓은 소설.
좋은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내 작품인 <새>까지 하면.
모두 ‘기억’이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마감 15분 전.
단톡방에 파일이 하나 올라왔다.
― 미안! 마지막 퇴고까지 끝!
― 오타 많은 거 아니냐?
― ㅡㅡ없거든. 양심적으로 시인은 그런 말 맙시다?
― 미소 고생 많았어.
― 언니ㅜㅜ
김미소 작가가 소설을 보내왔다.
제목은 <벤쿠버, 벤쿠버>.
내가 파일을 업로드하려 준비하는 동안, 현민상 시인이 물었다.
― 무슨 내용이야?
― 음… 한 여자가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는데, 그 시간을 굉장히 화려하게 기억하지만 사실은 암담하게 실패했단 이야기.
― 흥미롭네요. 그럼 이제 올립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들은 모두 좋다고 말했다.
나는 네 편의 소설을 다 올리고, 게시판을 오픈했다.
― 으아, 진짜 올라갔다.
― 오빠 호들갑 그만.
― 벌써 누가 결제했는데?
― 올리자마자 오십 명? 헐??
― 미소야 호들갑 그만.
― ㅡㅡ자기도 좋으면서… 팔십 명!
결제 수는 순식간에 오십 명을 넘어 백 명에 다다랐다.
출발이 아주 좋았다.
하지만 결제 수가 다는 아니었다.
한지온 작가가 링크를 하나 보내며 말했다.
― 인터넷 기사 바로 떴는데요? 기다렸다는 듯이.
74화
앤솔로지를 업로드한 건 12시 정각.
앤솔로지에 관한 기사가 나온 건 12시 2분.
한국 기자들, 여러 의미로 정말 대단하다.
<신―문학의 첫 앤솔로지, 독서 문화를 바꿀까?>
<‘대한문학상’ 탈락 논란 이상 작가, 앤솔로지로 창작 재가동>
<‘프랑스 진출’ 이상, 한국 작가들과 앤솔로지 시도>
등등.
앤솔로지를 나의 이슈와 엮은 기사들.
자극적이기도 하다.
나는 거기까지만 보고 바로 잠이 들었다.
취침할 시간이 이미 한참 지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막 아침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웬일로 일찍 일어난 지훈이 작업실에서 나왔다.
“작가님, 송지훈 브리핑 들어갑니다.”
“앤솔로지?”
“네. 지금 들으셔야 해요.”
“그래. 알았어.”
나는 밥을 한 술 입에 넣었다.
지훈은 앞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보며 브리핑 내용을 줄줄 읊었다.
“지금까지, 12시간 만에 결제 인원 칠천 명. 형 개인 작품 빼면 신―문학에서 신기록이에요.”
“좋네.”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작품을 한 개씩 구매하는 게 아니라 네 개를 한꺼번에 구매하게 한 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작품 간 결제 수 편차가 크면 위화감이 조성되니까.”
“작품 자체의 평도 좋아요. 이건 형이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지훈은 내게 댓글창을 보여 줬다.
― 헐… 재밌어.
― 주제는 같은데 다른 스타일로 변주되고 있어서 신선합니다.
― 앤솔로지 기획한 사람 이상이지? 어떻게 이렇게 쩔어 주는 작가들만 모았대?
― 현민상 시 웃기지 않냐? 뭔가 위트 있음.
― 이런 작품들 보다 보면 문청멍청에서 지망생으로 레벨업 가능한 겁니까?
― 한지온 작가 글, 뭔가 읽으면 꿈꾸는 것 같은 느낌.
― 한지온 작가님은 원래 내 존잘님이시다.
― 김미소는 이번에 워홀 얘기 썼네? 워홀도 노동은 노동이지. 이 작가 주제 의식 강한 만큼 좀 질리기도 했었는데 워홀 얘긴 좀 신선하다.
― 그런데 이상도 취향 소나무네. 소설 추상적이고 스타일리쉬한 거 보소.
― 아냐, 이번엔 좀 달라. 가족 얘기가 나와서 그런가. 이제 좀 사람 같은 느낌.
“사람 같은 느낌?”
“지금까지 형 소설이 좀 건조했잖아요. 상징적이고. 가족 서사를 간접적으로 풀어내니 인간미가 느껴졌다는 거겠죠.”
인간미라.
하긴, 내 글은 그쪽이랑은 거리가 있지.
“<새>, 일본어판 결제는 어때?”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홈페이지에 올린 거 말이죠? 그쪽도 나쁘지 않아요. 아직 SNS에 홍보도 안 했으니, 하면 더 오르겠죠.”
독자 반응이 나쁘지 않다.
앞으로 계속 앤솔로지를 기획해 봐도 좋을 정도로.
하지만 독자 반응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며칠 후.
신―문학의 ‘독자 공간’ 게시판에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 앤솔로지를 보고 영감을 받아 저도 한 편 써 봤습니다. 제목은 <꿈>.
한 독자가 ‘기억’을 주제로 짧은 소설을 쓴 것이다.
그 글을 시작으로 수많은 독자 소설이 올라왔다.
― 저도 한 편 써 봤습니다. 제목은 <회상 이후>.
― 쑥스럽지만 올려 봐요. <엄마의 화장대>.
― 요새 이게 유행이라면서요? <낮 두시, 여자>.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 글들을 읽었다.
처음 소설을 써 봤는지 서툰 작품도 있었고,
제법 능숙하게 필력을 뽐내는 작품도 있었다.
이 글들을 묻어 두기엔 좀 아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신라문학에서 호출이 왔다.
― 신라문학입니다. 앤솔로지에 참여한 네 작가님을 모시고 저녁 식사라도 한번 하려고 합니다만.
* * *
합정동의 고급 중식당.
우리 네 작가는 함께 안내받은 룸으로 들어왔다.
먼저 와 있던 이준환 편집위원이 우릴 맞았다.
“다들 어서 오십시오.”
“편집위원님.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군요, 이상 작가님. 한지온 작가님, 현민상 시인도요.”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김미소 작가님은 초면이군요. 반갑습니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한지온 작가나 현민상 시인은 워낙 인지도가 높다.
이준환 편집위원과도 안면을 텄던 모양이다.
작품 활동의 ‘필드’가 다른 김미소 작가만이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요리가 나오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가 시작됐다.
“신―문학이 안정기에 접어든 것도, 이번 앤솔로지가 잘 된 것도 다 작가님들 덕입니다.”
“아닙니다. 저희도 돈 많이 벌었어요. 시인이 돈 벌기 얼마나 어려운데요.”
현민상 시인이 너스레를 떨었다.
웃자고 한 얘기였지만 뼈가 있는 말.
소설의 원고료는 몇 푼 안 된다.
하지만 시 원고료에 댈 바는 아니다.
시 원고료는 ‘푼’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
영세한 출판사는 원고료로 돈 대신 쌀이나 음식을 주기도 한다지.
기가 막힌 일이다.
한지온 작가가 말했다.
“민상 시인 말이 틀린 건 아니에요. 제 주위에서도 앤솔로지에 대해 관심들이 많아서요. 작가들이 관심을 보이는 이상, 앤솔로지 자체는 계속 생겨날 것 같아요.”
“좋네요. 이상 작가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군요.”
이준환 편집위원이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냥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말았다.
“엔솔로지 활성화에 대해선 저희 신라문학도 고민을 해 봐야겠군요. 사실 이건 부차적인 얘기고, 여러분의 앤솔로지를 가지고 한 가지 일을 더 해 보려 하는데요.”
한 가지 일을 더 한다고?
우리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지금 독자들이 여러분들을 흉내 내서 ‘기억’이라는 주제로 소설을 많이 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첫 앤솔로지의 의미도 있고 하니… 거기서 수상작을 뽑는 게 어떨까요?”
“수상작을요?”
“네. 수상작 한 편을 뽑아서 여러분의 작품 네 편과 함께 종이책으로 제작하는 게 어떨까 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