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9
김한조차도 이렇게까지 화가 난 모습은 처음이었다.
“내가 저놈 소설을 가져오라고 했지 누가 표절하라고 했어?!!!”
“아, 아니에요. 교수님.”
김한이 얼른 자세를 잡고 호소했다.
“소설을 표절한 건 김혜경이라고요! 제가 그놈의 소설 도입부에서 영감을 받은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게 표절은 아니잖아요. 나머지는 제가 쓴 겁니다. 지 글이 더 안 써진다고 제 글을 베낀 그놈이 표절을 한 거죠!”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거짓말.
이현강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한아.”
“네. 교수님. 저는 정말-”
“넌 그런 작품을 쓸 수가 없어.”
“…네?”
“너는 그런 작품을 쓸 능력이 없어. 지능이 안 된다고. 이 모자란 새끼야.”
이현강은 낮게, 그러나 시릴 정도로 매섭게 말했다.
김한은 침을 꿀꺽 삼켰다.
김한은 자신이 있었다.
혜경이 자신의 말을 안 듣고 신춘문예에 <세속적 사랑의 노래>를 낸다 해도 상관없었다.
표절시비가 붙으면 기성 작가인 자신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게다가 뒤를 봐 줄 이현강까지 있으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물론 요즘 들어 슬럼프가 오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제자에게 ‘모자란 새끼’라니.
하지만 김한은 따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죽여버릴 듯한 이현강의 눈빛에 기가 질려서였다.
“똑바로 말해. 내가 네놈의 뒤를 조금이라도 봐주길 바란다면.”
일
이
삼 초.
김한이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 데는 딱 삼 초가 걸렸다.
김한은 바닥으로 내려가 무릎을 꿇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글이 너무 안 풀려서 그만…”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죄송합니다. 교수님. 하지만 자신 있어서 한 짓입니다. 김혜경이 원작자라는 증거도 다 없앴습니다! 절대 문제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요.”
“…증거를 없앴다고?”
“네. 그 녀석 노트북에 있는 원본 파일을 완전히 삭제했습니다.”
김한은 더 이상 자신의 속물성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어설픈 위선을 떠느니 그 편이 나았다.
이현강 역시 자신 못지않은 속물인 걸 알기에.
“저 이제 책 나옵니다. 책 나오기 직전에 이런 이슈 있으면 판매부수 확 뛰는 거 잘 아시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어가긴 아까운 기회였어요. 교수님도 제 마음 이해,”
쫙!!!!!
이현강의 매질에 김한의 눈앞이 다시 한 번 번쩍였다.
그러나 그 눈은 이내 비굴함으로 끈적였다.
“교수님 제발…”
“나가, 이 새끼야.”
“…이해해주셨으리라 믿습니다.”
“나가라고.”
이현강이 김한을 찢어놓을 듯 노려보았다.
김한은 뺨을 잡고 담담하게 교수실을 나갔다.
“…하이씨. 사람 새끼는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이현강이 열불이 터져 숨을 길게 내쉬었다.
김한은 알고 있었다.
이현강이 결국 자신의 뒤를 봐줄 것이라는 걸.
그러니 이런 고얀 짓을 한 거겠지.
두 사람은 문단에서 유명한 사제지간이었다.
이번 일로 김한의 입지가 흔들리면, 이현강에게도 영향이 미칠 것이다.
선생이 제자의 표절을 눈감아줬다느니-하면서.
김혜경을 불러 등단을 포기하라 종용한 것도 그래서였다.
어디까지나, 이현강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또 하나.
이현강은 소파에서 일어나 컴퓨터 앞으로 갔다.
달칵-
‘소설’ 폴더.
달칵달칵-
‘신작’ 파일.
화면 가득 열린 한글 문서엔 제목만 덩그러니 있었다.
<가제 : 세속적 사랑의 노래 – 이현강>
“김한 그 개 같은 놈…선수를 치고 지랄이야.”
1년 만에 계약한 신작이었다.
소설가로서의 이현강의 업적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1년의 공백기가 부담스러웠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신작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소설을 지난 달에 만났다.
문창과 공식 머저리 김혜경의 소설.
빼앗기에 딱 좋았다.
그런데 그걸 중간에 낚아채다니.
생각할수록 이현강은 김한이 괘씸했다.
그렇다고 김한을 버리기에도 아까웠다.
원로 소설가는 유행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수로서 존경을 받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제자’다.
제자가 잘 나가면 선생의 위상도 높아진다.
그가 구닥다리 취급을 안 받는 것도 김한의 공이 컸다.
김한은 그런 역할로는 딱 안성맞춤의 인물이었다.
“그래…아직은 김한을 버릴 때가 아니지.”
그리고 김혜경?
일단은 한 번 회유해 볼 생각이었다.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버리기엔 재능이 아까웠다.
만약 회유에 넘어오지 않는다면?
작가로서의 맥을 잘라버리면 그만.
제아무리 천재라도 이 문단의 룰에 순종하지 않으면 잊혀지는 게 순리다.
이현강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어. 표 편집장. 내가 일이 좀 꼬여서 부탁할 게 있는데 말야.”
그는 통화를 하며 신작 제목을 한 자 한 자 지웠다.
아깝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
이현강을 만나보니 확실해졌다.
표절은 김한의 독자적인 소행이다.
이현강은 몰랐다.
하지만 이현강은 그 표절을 덮으려 한다.
결국 다 똑같은 놈들이다.
씁쓸했다.
이 나라의 문단이라는 것이.
이 작은 판에서 밥그릇 싸움을 해대는 꼴이.
1930년대에도 작가는 가난했다.
하지만 그땐 모두가 가난했다.
지금도 작가는 가난하다.
아니, 작가‘만’ 가난하다.
문제는 청탁문화다.
겉으로는 출판사가 글을 써주십사-하는 허울 좋은 모양새였지만, 사실 아쉬운 건 작가다.
출판사가 원하지 않은 작가는 글을 실을 지면을 잃기에.
그래서 작가는 작은 권력 앞에서도 몸을 옹송그린다.
단 한 가지, 작가로서 생존하기 위하여.
…이 판을 바꿔야 한다.
바꾸지 않고는 최고의 소설가가 되어도 불행할 것이다.
판을 바꿔야 한다…판을…
그렇게 교학팀 사무실에 앉아서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우웅-우웅-
휴대폰이 진동했다.
익숙한 번호였다.
Y신문사 신춘문예 담당 기자.
“하아…”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전화를 받았다.
“이상입니다.”
-이상 선생님? 저 서인희기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선생님의 당선 소설이 오늘 발간된 가라사대 봄호에 실린 김한 작가의 소설과 매우 흡사하단 의견이 제시되어서요.
기자의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이것이 얼마나 불미스러운 일인지 아는 것이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화기 너머로 꿀꺽-하고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저희 Y신문사 입장을 전하겠습니다. 저희 신문사는 표절의 논란이 있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할 수 없기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선생님의 작품을 당선 취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표절 논란을 끝내면 되는 거잖아요.”
-네?
“그러면 당선 취소는 할 필요 없겠죠?”
-그럼 혹시…
“해명하겠습니다. 기사로 내셔도 무방합니다.”
-그, 그래도 되나요? 그럼 저희 쪽은 좋!…아, 좋은 건 아니고요. 기사를 내게 해주시면 더 감사하죠.
문화부에서는 특종 물기가 쉽지 않다.
서인희 기자는 살짝 흥분한 것 같았다.
“그럼 언제 뵐까요?”
-오늘 신문사 쪽으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죠.”
드라마를 써야 하지만…이쪽이 더 급하니까.
예상하건대 김한은 지금쯤 인터뷰를 다섯 갠 했을 거다.
“단, 조건이 있어요.”
-조건이요?
“네. 해명 인터뷰는 2회에 나눠서 하죠.”
-네? 굳이요?
“그렇게 해주세요. 시간을 많이 뺏진 않을게요. 오늘 한 번, 내일 한 번. 어떠세요?”
-음…네. 그래야 한다면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쪽으로 바로 가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젠장.
등단이고 드라마 공모전이고 간에 돈이나 빨리 줘라.
***
정석대로라면 Y신문사에는 등단 시상식 때에나 와야 한다.
이런 식으로 먼저 오는 당선자는 내가 최초가 아닐까.
‘1층 로비에 프리즘이라는 카페가 있어요. 거기서 인터뷰 하죠.’
서인희 기자의 문자를 보며 Y신문사 정문에 들어섰다.
멀지 않은 곳에 카페 ‘프리즘’ 있었다.
그때였다.
우웅-우웅-
또 누군가가 전화를 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거, 김혜경 선생이신가?
어딘가 경박한 말투의 남자였다.
-나 K출판사 편집장 표한수라고 하네.
“아, 예.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이번에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죠?
“…그거, 누가 말한 겁니까?”
-그건 알 거 없고, 내 한 가지만 말합니다. 이번이 아니라 내년 겨울에 등단하면 우리 출판사 잡지에서 바로 청탁이 갈 거요. 내가 장담하지.
“…끊습니다.”
더 들을 것도 없다.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추악한 늙은이.
청탁으로 작가를 입맛대로 휘두르려 하다니.
그따위 청탁, 줘도 안 받는다.
아마도 이현강의 사주겠지.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날 회유하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웃기지 말라 해라.
난 오직 내 힘으로 문단에서 생존할 것이다.
“저…이상 선생님?”
창가 쪽에서 한 젊은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깔끔한 인상의,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였다.
“네. 이상입니다.”
우리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그녀는 사람을 퍽 편안하게 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희 신춘문예에 투고해주신 소설, 저도 읽어봤는데 ‘이상’이란 필명이 아깝지 않단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국문과를 나왔거든요. 창작 쪽은 잘 모르지만, 대단하시더군요.”
“이상을 좋아하시나요?”
“정말 정말 좋아해요. 우리나라 역사에 몇 없는 천재잖아요.”
나는 대답 대신에 그냥 웃었다.
서 기자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서, 사실 저희 Y일보 문화부도 대단히 당황스럽다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이해합니다. 고생이 많으세요.”
“그럼 슬슬 인터뷰를 시작해도 될까요?”
“네 좋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제가 먼저 하고 싶은 얘길 해도 될까요? 시간은 내일도 있으니까요.”
“음…어떤 얘길 하고 싶으세요?”
“저의 작품…<세속적 사랑의 노래>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볼까 하는데요.”
#
# 10 – 3778665
#
다시 사는 천재 작가 – (9)
다시 사는 천재 작가 9
문단이건 연예계건 이슈는 아주 중요하다.
이슈는 소비자의 ‘관심’이기도 하니까.
심지어 표절 시비?
문단에서 그보다 더 뜨거운 감자는 없다.
누군가 펜을 꺾고 매장되어야 끝나는 싸움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나는 <세속적 사랑의 노래>를 이슈의 중심에 올리기로 했다.
한국에 한 줌 남은 문학 독자들은 물론이고,
대중 독자들의 관심까지 끌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