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94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아무리 팬들과 함께하는 북 콘서트라 해도, 문단의 지인들을 초청하는 게 관례.
그 과정에서 겪을 불편함과 신경전.
대한문학상과 북콘서트에 대한 무의미한 비교들.
이준환 편집위원은 바로 그걸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내가 일정을 바꿀 이유는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좀 적게 와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행사장에 사람이 많은 걸로 뭔갈 증명할 마음은 전혀 없으니까요.”
“….”
“하겠습니다. 28일에.”
* * *
이상이 신라문학을 떠났다.
사무실에 남은 박조운 편집장과 이준환 편집위원.
이준환 편집위원이 걱정스럽게 운을 띄웠다.
“정말 괜찮을까.”
“뭐 어때. 뭐가 겁나?”
“웬만하면 잡음이 적은 게 좋으니까. 우리에게도, 작가에게도.”
잡음이 생기는 건 쉬워도 없애는 건 어려운 일.
갈등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좋다.
특히 이 좁은 출판계와 문단에서는 더욱.
하지만 박조운 편집장의 생각은 달랐다.
“대한문학상이 같잖은 짓 하는 게 일이 년이야? 친한 작가들 우대하며 상 나눠 주기에, 예심 심사위원 압박에….”
듣기 싫어도 소문은 들려오기 마련.
원로라는 자리는 원래 그런 법이었다.
박조운 편집위원은 혀를 쯧 하고 찼다.
“특히 가사라대 그놈들 매해 상 가지고 장난질 치는 거 못 봐 주겠어. 없어져 버리라 해. 그따위 상.”
“과격하긴.”
“지네 입맛에 맞는 작가 고르고 적선하듯 상장 주는 게 무슨 문학상이야? 허울뿐인데.”
“알아. 그 말이 백번 옳은 거.”
이준환 편집위원은 나지막이 말했다.
“다만 첫 북콘서트를 이런 형식으로 내주는 게 좀… 그리고 본인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상처를 받을 수도 있잖아.”
“그것까지 감당하겠다는 거야. 이상 선생은.”
“….”
“상처받을 걸 각오하고서라도 자기 속도를 지키겠다는 거지.”
박조운 편집장은 이준환 편집위원의 어깨를 툭 쳤다.
“아무튼, 우린 책이나 잘 내고 북 콘서트 준비나 하자고.”
박조운 편집장이 나간 후.
이준환 편집위원은 양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생각했다.
‘대한문학상… 한때는 그 권위를 따라올 문학상이 없었지.’
격세지감(隔世之感).
모든 문인이 꿈꾸던 상이 어쩌다 이 꼴이 됐나.
문청 시절, 자신 역시 그 상을 동경했고.
…씁쓸했다.
하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니, 받아들여야 한다.
‘문학상’이라는 것도, 그 본질을 잃으면 아무 가치 없는 쇼에 불과하다는 걸.
이준환 편집위원은 마음을 다잡았다.
* * *
일본 도마크 출판사.
미쯔하루 편집장은 바쁘게 업무를 보고 있었다.
연말에 책을 내고 싶은 작가가 한둘이 아니다.
그만큼 편집장의 일거리도 쌓일 수밖에.
그래도 그는 이 연말을 잘 버티는 중이다.
이십여 년 경력의 ‘샐러리맨’의 근성이랄까.
똑똑!
“들어와요.”
“편집장님.”
한 직원이 책을 들고 들어왔다.
미쯔하루 편집장은 그 책부터 물끄러미 봤다.
“뭐가 새로 나왔나?”
“연말 작품집이 나왔습니다.”
“아, 그런가?!”
미쯔하루 편집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다가가 책을 받았다.
“이게 나와야 한 해가 갔단 느낌이 든다니까. 표지 잘 뽑았네. 아주 고급스러워.”
채도가 낮은 보랏빛 바탕에 깔끔한 은색 로고.
[도마크 연말 작품집 ― 가족]한눈에 들어오는 글자가 딱 마음에 들었다.
“바로 시장에 풀라고. 머뭇거릴 것 없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똑똑!
누군가가 또 노크를 했다.
미쯔하루 편집장의 개인 비서였다.
“또 뭔가?”
“독일 뮌 출판사에서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아, 바로 모셔 줘. 제1응접실로.”
미쯔하루 편집장은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다졌다.
독일의 뮌 출판사.
명실상부 독일의 대표적 출판사였다.
어제 오후, 뮌 출판사 해외문학팀 팀장 도미닉 크로스에게 연락이 왔다.
일본으로 가족 여행을 왔으니 얼굴이라도 보자고.
도미닉 크로스 팀장.
뮌 출판사를 지금의 자리로 이끈 개국공신.
미쯔하루 편집장의 입장에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제1응접실로 향했다.
회색 양복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벽안의 신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미닉 팀장님.”
“미쯔하루 편집장님.”
두 사람은 영어로 말문을 열었다.
“재작년에 편집장님께서 뮌을 찾아 주신 이후로는 처음이죠?”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격조했습니다. 하하….”
그래도 그간 오고 간 메일이 수십 통이었다.
그만큼 도마크와 뮌의 관계는 가까웠다.
“가족 여행을 오셨다고 했는데, 가족분들이 서운해하시겠네요.”
“하하… 제가 여기 온다니까 와이프는 더 좋아하던데요.”
그의 위트에 미쯔하루 편집장이 웃었다.
“어떻게, 일본은 잘 구경하셨습니까?”
“네. 정말 좋더군요. 내일이면 귀국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두 사람은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소개’를 통해 양국에 발간된 책에 대한 것이었다.
한참 수다를 떨던 도미닉 팀장이 책장을 가리켰다.
“그나저나 응접실이 정말 멋지군요? 저게 다 도마크의 책입니까?”
“맞습니다. 천천히 보시죠. 혹시 일본어는…?”
“죄송합니다. 한자 문화권 언어는 다 젬병이라서요. 배워 보려고 했는데, 어려워서 포기했죠.”
그는 웃으며 책장을 훑어보았다.
“이쪽을 보시죠. 이쪽이 신간입니다.”
미쯔하루 편집장은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인 책들을 가리켰다.
도미닉 팀장은 그 책들을 손끝으로 하나씩 짚었다.
“멋지군요. 이건 뭐라고 쓴 겁니까?”
“아, 이건 도마크의 연말 작품집입니다. 무라카미 히루키의 작품이 실렸죠.”
“흠… 읽어 보고 싶군요.”
“연말 작품집은 국내용이라서요. 하지만 히루키 작가의 다음 작품집에 실릴 겁니다.”
“그럼 기다려야겠군요.”
“아, 그리고 이번에는 특별히 한국의 이상 작가의 작품도 실렸답니다.”
“…이상이요?”
도미닉 팀장이 눈을 빛냈다.
“네. 이번에 루브르 앞에서 낭독회를 가진 이상 작가 말입니다.”
“음… 그분을 여기서 만나는군요.”
도미닉 팀장은 연말 작품집을 목차를 살폈다.
미쯔하루 편집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뮌 쪽에서도 이상 작가의 작품 발간에 대한 이야기가 안 나왔을 리 없는데… 물어볼까?’
미쯔하루 편집장이 입을 열려 할 때였다.
도미닉 팀장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이 책, 혹시 제게 주실 수 있습니까?”
91화
북콘서트가 대한문학상과 겹치는 것.
신경이 아주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다.
좋은 쪽이건 아닌 쪽이건 엮일 수밖에 없을 거고.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도 웃긴 일.
내게 중요한 건 북콘서트의 주제가 될 <등>.
발간 일정을 맞추기 위해 최종 퇴고에 들어갔다.
<등>
요즘 소설치고도 클래식한 타입.
형식적 기교는 최대한 배제.
중요한 건, 안정적인 서술과 묘사.
광기 어린 인간의 일대기를 다루는 진정성.
천재의 재능을 보여 줄 묵직한 대사.
즉, ‘기본기’가 가장 중요한 소설.
‘기본기’만으로 모든 걸 보여 줘야 하기에 작가의 역량이 가장 잘 드러나는 타입의 글이지.
문득, 소설을 처음 썼던 시절이 떠올랐다.
기교가 무엇이고 형식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시절.
그저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쓰려 노력했던 나날.
다시 그 순수한 시절도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렇게 <등>에 빠져 있을 때였다.
우웅― 우웅―
반가운 전화가 걸려 왔다.
조인후 감독이었다.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감독님!”
― 오오, 작가님. 바로 받으시는군요.
“몽테뉴 영화제 극본상, 정말 축하드립니다. 한국에 돌아오신 겁니까?”
― 하하… 작가님 덕 아니겠습니까. 어제 들어와서 꼬박 잠만 잤습니다. 음… 한번 뵙고 정식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언제 시간이 되십니까?
나는 모니터를 봤다.
<등>의 퇴고를 다 할 때까진 곤란한데.
“12월이나 되어야 가능할 듯한데요.”
― 아… 그때는 제가 다시 외국으로 가는데요. 세미나가 있거든요. 이걸 어쩐다.
“어쩔 수 없죠. 어쨌건 해를 넘기지 않는 쪽으로….”
― 음. 아쉬운 대로 일단 작은 선물을 하나 보내 드리죠.
“네? 갑자기요?”
― 거절하시면 안 됩니다. 그럼 사람들이 저 양심 없다고 욕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래도….”
원작을 제공한 대가는 이미 충분히 받았다.
심지어 러닝개런티라 앞으로도 계속 들어올 테고.
― 그럼 추후에 뵙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또 연락 드리죠.
그렇게 통화는 마무리가 되어버렸다.
좀 황당했지만, 이내 신경 쓰지 않았다.
‘작은’ 선물이라고 했으니.
기껏해야 한우 세트 정도 되겠지.
그럼 지훈이와 신나게 구워 먹어야겠다.
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름 정도가 지난 오늘.
<등>의 퇴고를 끝냈을 때였다.
마지막 온점을 찍는 순간.
“와… 죽겠네.”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훈이 뒤를 돌았다.
“다 썼어요?”
“방금. 시간 되면 이거 신라문학에 메일로 보내 줄래?”
“네. 바로 보낼게요.”
나는 작업실의 간이 소파에 늘어졌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지훈이 바로 내 자리로 와서 원고를 살폈다.
“지금 원고 보내면 책은 언제 나온대요? 북콘서트 딱 한 달 남았는데.”
지훈은 좀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녀석은 북콘서트 얘기가 나온 후, 내내 그걸 신경 쓴다.
정작 나는 별 실감이 안 나지만….
출판사 일정이야 뒤죽박죽 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등>의 경우는 아니었다.
“마감에만 제때 보내면 바로 출판 공장 돌려준대. 교정 바로 보고 인쇄하면, 연말 직전에는 나올 거야.”
“으흠. 특별 대우네요. 그래서 마감이 언젠데요?”
“오늘.”
“…바로 보내겠슴다.”
지훈은 재빨리 메일을 보냈다.
그때, 현관문 초인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딩동― 딩동―
“택밴가? 제가 나가 볼게요.”
“…부탁해.”
나는 전자레인지에 돌린 인절미마냥 늘어져서 말했다.
지훈이 얼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들려오는 외침.
“형! 좀 나와 봐요!”
…왜 또.
귀찮은 마음으로 터벅터벅 밖으로 나갔다.
저게 뭐야…?
지훈이 웬 거대한 박스를 들고 거실로 들어왔다.
“뭐야 그게?”
“모르겠어요. 엄청 무거운데요? 조인후 감독님이 형한테 보내셨어요.”
“아, 맞아. 작은 선물 하나 보낸다고 했어. 뜯어 보자.”
우리는 별생각 없이 박스를 뜯었다.
그리고 그 안엔, 접이식 자전거가 들어 있었다.
“웬 자전거를 보내셨지?”
“헐…!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