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Doctor RAW novel - Chapter 1076
1075화 본격적으로 (4)
“모르겠습니까?”
수혁은 모른다는 걸 다 알면서 굳이 한 번 더 물었다.
기어코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소아과 의사는 그리 눈치 없는 사람도 아닌 데다가, 수혁에 대해 들리는 풍문 또한 확인한 바가 있다 보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모르겠습니다.”
그로서는 그냥 하는 말이었다.
일흔이 가까워 오는 대가에게는 오히려 모른다는 말이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니어서 그랬다.
자신이 알고 있는 영역이 확실하게 있고 또 이미 쌓아 온 명성이 확고부동한 사람일수록 실수나 잘못 또는 무지를 인정하는 데 부담이 적지 않겠나?
허나 옆에 있던 스튜어드에게는 충격이었다.
‘이놈에게 모른다는 말을……!’
그는 아직 여물지 못한 열매여서 그랬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이대로 가면 평생 여물 일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대단하군……. 과연 소아과 명성이 괜히 대단한 게 아냐.’
알버트는 오히려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수혁?
수혁은 그냥 신났다.
모른다고 하잖아?
설명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자, 일단 증상을 토대로 그리고 환자의 병력을 토대로 보죠. 일단 영양학적인 문제는 아프가니스탄에 있을 때도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맞습니까?”
“아, 네. 거기도 저희가 이미 구호 물품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미흡한 면이 있긴 했을 테지만…… 그래도 성장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네, 그랬을 겁니다. 그럼 그건 넘어가고…… 아이의 눈물이 부족하다는 걸 인지한 것이 3세라고 들었습니다. 맞죠?”
“네.”
“그전에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없나요?”
수혁의 말에 보호자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 수 있을 터였다.
고민해 본 적이 없긴 하지만……
지금 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이는 어릴 때도 눈물이 부족했던 느낌이었다.
얘가 혹시 지금 억지 울음을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그랬다.
“거기에 더해 경련이 최초로 발생한 건 언제입니까?”
“그건 두 살인가…….”
“네. 이러한 것을 종합해 보면 아이의 질환은 선천성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자, 그럼 아시겠습니까?”
모를 거다.
여기서 알면 김이 좀 샌다.
그러면서도 물은 건 절대 모를 거란 확신이 있어서 그랬다.
“모르겠습니다.”
예상대로 소아과 노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른다는 뜻이었다.
‘잘난 척이 심하다더니…… 근데 잘난 것도 사실이다 보니 뭐라 할 수도 없구만.’
이번에는 약간 빈정이 상했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전문가의 영역에서는 더 아는 놈이 깡패인 법이었다.
그렇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수혁은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트리플 에이 신드롬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음.”
병명을 말했음에도 잘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없다면 알 수가 없는 질환이었다.
애초에 너무 희귀한 질환이다 보니 딱히 배울 필요가 없기도 했다.
게다가 선천성질환이라는 거까지 왔다면 굳이 여기서 더 추론을 할 이유는 없기도 했다.
그냥 유전자 검사를 돌리면 될 일이니까.
허나 수혁은 자신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이들 앞에서 공표하고 싶었다.
“올그로브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상염색체 열성 장애인데…… 12q13에서 돌연변이가 관찰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허.”
“어…….”
“끄응…….”
사실 수혁이 나섰을 때부터, 그러니까 자꾸 모르냐고 할 때부터 이 양반이 뭔가 한바탕하기는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허나 수혁의 답변은 그것보다도 더 구체적이었다.
아니, 과하게 구체적이었다.
유전자 레벨에서의 설명이라니.
“1978년에 처음 보고되었는데…… 사실 아이는 굉장히 경미한 레벨의 질환입니다. 그래서 아마 지금까지 몰랐을 겁니다. 다행히 다른 부작용이 지금은 없는 거 같고…… 대개는 아이가 보이는 증상에 더해 성장 장애와 경미한 지적장애를 동반합니다만 아이는 그런 게 없죠.”
“아…… 그렇군. 그건 다행인데…….”
하여간, 소아과 의사의 얼굴은 어두워져 있었다.
설명이 너무 뛰어나서는 아니었다.
아까 선천성질환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그랬다.
왜냐.
선천성질환이라는 것……
유전자 단위에서 발생한 질환이지 않나.
‘치료가…… 되나?’
그런 경우엔 치료가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일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
영화 가타카에 나오는 구절인데, 그냥 보면 저게 뭔가 싶을 터였다.
하지만 의사들만은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유전질환에 있어서만큼은 아무리 발전한 현대 의학이라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서 그랬다.
‘저 사람, 걱정하고 있네.’
[그럴 수밖에 없죠. 이기자 교수도 그러지 않습니까?]‘아무래도 소아과 선생님들이 다 좀 사람들이 좋은 거 같아.’
[그런 사람들이 택하는 과죠.]동시에 너무 약한 사람은 선택하지 못하거나 중도에 떨어져 나가는 과이기도 했다.
아무튼, 저런 걱정을 하고 있는 게 보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수혁은 바로 입을 열었다.
“다행히 치료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스테로이드 호르몬…… 하이드로코티졸 대체 요법을 사용하면 사실상 아이에게 가장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부신 기능 부전에 대한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증상에 대해서는요?”
“진행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조증에 대해서는 인공 눈물을 넣으면 됩니다. 식도 이완 불능증 또한 발룬을 이용해서 풀어 주면 되고요.”
“아!”
“이 병원에서 그 정도 치료는 전혀 어려울 거 같지 않은데요.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아…… 다행입니다. 정말……”
소아과 의사는 이미 체면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아이가, 절망 끝에 놓여 있던 아이가 구원을 얻었단 사실에 대해 즐거워하고 있었다.
정작 그 구원자라 할 수 있는 수혁은 그렇게까지 흥분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이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제대로 된 진단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해야 합니다.”
“하하. 그래야죠. 아…… 지금 찾아보니 확실히 아이는 이 질환이 맞는 거 같습니다.”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구조를 통해 보는 아이들에게는 괜히 빚진 마음이 있어 더 고통스러웠는데, 이번엔 심지어 케이스까지 어려운 케이스이다 보니 정말이지 고통 그 자체였더랬다.
이런 케이스의 아이가 올 거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소화가 안 되기 시작했고, 어제 직접 대면했음에도 불구하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 보니 잠도 못 잤다.
그러던 것을 단 한 번에 해소해 주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이란 말인가.
“혹시 모르니까 그래도 검사는 해 보시죠.”
“네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이번에는 정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 보은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꼭 도움이 되겠습니다.”
노교수는 악수를 청하다 말고 수혁이 동양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고개를 숙였다.
[받아 주시죠. 좋은 사람 같습니다. 높은 사람 같기도 하고.]‘그래, 그래야지. 이기자 교수님보다도 더 위 같은데…….’
[그렇죠? 나이가 아주 많아 보입니다.]수혁이 눈치가 없는 사람인 것이지 싸가지가 없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해서 그는 즉시 같이 고개를 숙이고 예의를 차렸다.
미국 사람에게 이러한 것이 뭐 얼마나 효과가 있겠나 싶기는 했지만, 하여간, 분위기는 좋았다.
딱 한 사람.
스튜어드만 빼고 그랬다.
“하하하.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니, 뭘.”
“역시 교수님이십니다! 영광 있으리!”
“너는…….”
“정말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 아뇨.”
알버트, 안대훈 그리고 소아과 의사는 물론이거니와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직원까지 모조리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특히 눈치가 좋은 편에 속하는 직원은 수혁에게 연락처까지 건네주었다.
“저희가 혹시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현장에 나가다 보면 안 좋은 상태의 어린아이들…… 혹은 그 부모들을 보게 됩니다. 꼭 소아 환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저희는 다른 단체하고도 협업을 꽤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조금 미안해하면서였다.
지금도 도움을 받았는데 앞으로도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지 않나.
물론 단체가 커다란 단체이니만큼 보수를 안 주는 건 아니었다.
턱없이 적어서 그렇지.
“네? 아, 좋죠. 너무 좋은데요?”
그런 상황에서 수혁의 반응은 퍽 의외의 것이었다.
‘성인군자인가……?’
봉사해 달라고 할 때 허락하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사실 어느 정도 위치에 도달한 의사들은 대개 긍정적인 편이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흔쾌히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았다.
“그…… 감사드립니다.”
“꼭 입니다. 꼭 연락 주셔야 합니다! 반드시 뭐, 직원분 통해서 하실 필요도 없어요. 여기, 저희 센터 연락처입니다.”
“어…… 네네. 알겠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렇게까지 적극적이라니.
‘허어…… 정말 대단하다. 아직 나이도 젊은 사람이…… 보통 실력이 너무 좋으면 싸가지가 없어지는 편인데…… 이 사람은…… 바로 보고드려야겠어. 총재님이 만나셔야 할 인재다.’
놓칠 수 없다 뭐 이 정도가 아니었다.
이 정도 되는 사람에게는 예우가 필요했다.
아니, 존경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듣자니 여기 며칠 더 있을 걸로 보이지 않나?
마침 유니세프 총재가 뉴욕에 와 있으니 만사 제쳐 두고 한 번쯤 보라고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럼…….”
물론 수혁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저 아직 오전이 안 끝났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 말은 곧 환자를 볼 생각만 있다, 이 말이었다.
“아, 피곤하시죠?”
“네? 아뇨. 다른 환자 봐야죠. 스튜어드?”
알버트는 그의 말을 오해해서 밖으로 이끌려 했으나, 수혁은 그런 알버트를 만류하고 스튜어드를 바라보았다.
정작 스튜어드는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더 본다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더 본다고 하면 얼씨구나 했을 터였다.
망신을 한 번 더 줄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을 테니.
하지만 이제 알았다.
격이 다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쯤 되면 어쩔 수가 없었다.
‘이 괴물이…….’
망설이는 스튜어드의 손에서, 수혁이 종이를 낚아챘다.
“아까 보니까 여기 있는 거 같던데. 뭘 그렇게 쑥스러워하셔. 다 준비해 놓으시고. 스튜어드, 바보 아니고 좋은 사람. 하하.”
“응?”
낚아챈 것도 어이가 없는데 이상한 말까지 듣다 보니 스튜어드는 숫제 고장 난 인형처럼 뚝딱거리게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혁은 알버트에게 여기 이 병동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안 와요? 케이스 받은 사람도 같이 가야지.”
그러면서 스튜어드도 재촉했는데, 스튜어드로서는 하는 수 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될 대로 되라…… 나도 이제 모르겠다…….’
반쯤 포기한 얼굴이 되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