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Doctor RAW novel - Chapter 1237
1236화 집에 가 그냥 (2)
우리는 크루즈를 탈 거다.
이현종은 신현태와 조태진이 남긴 말을 곱씹었다.
세상에!
크루즈라니!
큰 배 타고 여유 있게 다니는, 부자들의 전유물 같은 거 아닌가?
그걸…… 수혁이랑 셋이서 타고 나가겠다고?
‘망할…… 망할 놈들.’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이현종도 못 타 본 것을 한참 어린 것들이 타겠답시고 설레발을 치고 있는 것부터가 그랬다.
‘크루즈라니……. 허어…….’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어?
갈 거면 나를 데리고 가야지.
수혁이는 막말로 아직 삼십 대 초반이고, 돈도 잘 벌고,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이른 나이에 결혼도 할 것 같지 않나?
그럼 신혼여행도 갈 것이고, 애들 낳으면 또 그 빌미로 여행을 하게 될 것인데…….
자신은 빈말로도 떠오르는 해라고 보기엔 많이 늙었다.
근데 이것들이 지은 죄니 뭐니 운운하면서 수혁이만 쏙 데리고 가겠단다.
‘근데 또 이게.’
이현종은 자신의 가슴어림을 내려다보았다.
심장이 있는 곳인데 당연하겠지만,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 망할 놈의 심장은 또 솔직해서, 자식새끼 호강한다니까 마냥 좋다고 뛰고 있었다.
‘사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내가 수혁이를 독점하고 있는 게 맞기는 하지?’
늙어서 그런가?
아니면 이기자 교수랑 같이 살게 되면서 행복해져서 그런가?
아무튼, 마음이 좀 넓어지긴 했는데…….
그 탓인지 뭔지 이현종은 결국, 일단 보내 주는 것으로 결론을 짓고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보내 주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다들 정당한 휴가를 행사하는 것이긴 하지만.
병원이라는 곳이 워낙에 특수한 곳이다 보니 부서장 권한이 아주 강력하지 않던가?
특히 상대가 이수혁이라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면 휴가 제한을 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 가라. 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혁이는 보내기로 했다.
그에 더해 아주 제대로 보내기로 작정했다.
대신이라고 하면 뭐한데…….
휴가를 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나?
아, 여기서 전제로 깔고 있는 건 당연하게도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다.
아무튼,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이현종의 지난 삶을 돌이켜 보면 자명했다.
바로…… 든든한 백이다, 백.
‘수혁이가 휴가 가면서도 불안해하면 되겠나?’
심장이야 뭐 자신이 있으니 수혁이가 불안해하면 뒤통수 한 대 때리면 된다.
하지만 나머지는 어떤가?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제 이현종은 대다수의 파트에서 수혁을 따라가지 못한다.
아니, 부끄러운 말은 아니다.
그럴 수 있지 않겠나?
수혁은 진짜 개미친 천재니까?
하지만 다른 놈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특훈으로 간다…….’
이제 와서 특훈을 시킨다고 해도, 애들이 수혁의 발뒤꿈치나 따라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특훈을 기획하고 있는 이현종 본인도 그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일단 그렇게라도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야 이 불합리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이 넓어져서 뭔가 이해를 할 수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분풀이 대상이 필요했다.
“자자, 다들 모였나?”
그렇게 이현종은 수혁을 제외한 센터 놈들 모두를 불렀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의 호출이었지만, 레지던트를 제외한 나머지는 딱히 피곤해 보이지도 않았다.
어차피…….
뭔가 열심히 하는 데 있어서는 도가 튼 인간들이라 그랬다.
“다들 알다시피 수혁이가 아파. 새벽까지 수액 맞고 자다가, 내가 집으로 보냈어.”
“아…….”
하윤을 제외한 나머지가 안타까움에 입을 벌렸다.
하윤이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건 안타깝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어서 그랬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출근하기 전에 잠깐 수혁의 오피스텔에 들렀다 왔다.
말이 집이지. 거의 들어가지도 않는 곳인 데다가, 애초에 두바이 왕자님이 준비해 주신 가구나 인테리어 자체도 고급이다 보니 모델 하우스 느낌을 늘 풍기는 곳이었다.
아무튼, 하윤은 거기서 같이 아침을 먹고 왔더랬다.
“그러니까…… 수혁이가 없다는 거야. 수혁이가 왜 아픈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네, 그렇습니다!”
하윤이 그렇게 아까 전에 벌어졌던 일을 떠올리는 동안, 이현종은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계속 진중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아프니까.
그리고 동시에 속으로 그리 좋지 못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무리해서 그래. 환자를 너무 많이 봐서. 물론! 수혁이는 환자 보는 것을 좋아해. 하지만……. 실제로 그거 이상으로 많아. 인정하지?”
“네, 그렇습니다!”
그런 속내를 모르는 놈들은 그저 씩씩하게 답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수혁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또 따르는 놈들이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현종은 말을 이어 나갔다.
이현종을 많이 겪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쌔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이나 노골적인 얼굴을 하고서였다.
“그럼 이게 당장 오늘만의 얘기는 아니지? 그렇지?”
“아……. 네, 그렇습니다!”
“자,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열심히…… 환자를 봐야 합니다!”
“그래, 그것도 있지. 실제로 어제 다들 활약을 해 주었지. 하지만…… 수혁이가 없는 오늘부터 주말까지가 기회야, 어떻게 보면.”
“네?”
“없어도 한 주 정도는 돌아간다는 믿음을 심어 줘야 해. 생각해 봐라, 이놈들아. 니들은 다 돌아가면서 휴가도 하고 그랬지? 근데 수혁이가 학회 말고 휴가 간 적이 있어?”
있긴 했다.
안대훈과 같은 최측근이라면 기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수혁의 발자취는 진료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노는 휴가는 항상 짧게 끝났더랬다.
거기에 더해 지금 묻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지 않나?
수혁의 아버지다.
괜히 토 달아서 좋을 게 없다는 얘기였다.
해서 안대훈도 그저 머릿속만 뒤적일 뿐, 딱히 입을 열거나 하진 않았다.
“없지? 없잖아. 이제 슬슬 걔도 휴가 가야지. 어? 연애도…… 하고 말야.”
이현종의 말에 하윤이 잠시 얼굴을 붉혔다.
그뿐만 아니라 알 거 아는 사람들의 시선이 다들 하윤에게로 향했다.
공공연한 비밀이다 보니, 뭐 상관도 없었다.
애초에 같이 출근하거나 퇴근하거나 심지어 병원 로비나 지하에 있는 편의점 앞에서 둘만 있는 것이 자주 목격되고 있는 상황이니 어쩌겠나?
“그러니까…… 우리가 이번 예행연습을 하고, 더 정진해서 어? 수혁이가 안심할 수 있는 센터를 만들어야 한다, 이 말이야!”
“목숨을 걸고 정진하겠습니다!”
게다가 연애 따위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치고 센터의 주요 인물로 자리 잡은 사람은 없었다.
방금 한목소리로 말한 것처럼, 의학에 목숨을 건 놈들뿐이었다.
이현종이나 수혁이나 귀신같이 자기 닮은 놈들만 모아 놨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요즘 하는 짓 보면 연애하는 이수혁이나 결혼까지 한 이현종이 의학에 대한 진심이 제일 바랬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특히 안대훈.
‘모두 이놈만큼 노력하게 만드는 게 목표다…….’
이현종마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놈 아닌가.
처음 봤을 때를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랬다.
재능……?
미안한 말인데, 그런 건 못 느꼈다.
뭐 태화 의과 대학씩이나 왔고, 의사씩이나 되었으니 기본 머리야 있었겠지만…….
이현종이 기본 머리에 감탄할 만한 사람은 아니지 않나?
그것도 못 하면 빡치기야 하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허허…….’
포스트 이수혁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마저 있다.
예전에는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진짜 어이가 없었다.
미친놈인가 싶었다.
어떻게 감히 수혁의 이름을 올린단 말인가.
허나 지금은…… 뭐 여전히 수혁의 뒤를 이을 인재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수혁을 제외한 나머지 인재 중에서는 최고라 확신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죄 희생해 가면서 공부하는 놈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늘부터 주말까지 일정을 내가 짰어. 자…….”
“허어…….”
“이거…….”
이현종은 안대훈의 일정을 참고해서 만든 엑셀 표를 보여 주었다.
일단 오전, 오후에는 환자를 본다.
저녁에는 공부하고, 열 시쯤 응급실을 포함해서 정규 시간에 보지 못한 환자를 본다.
그게 2시간 이내로 끝나면 12시까지 공부하고 자고, 그렇지 않았다면 환자를 다 보고 잔다.
다음 날 일과는 6시에 시작하는데, 일단 환자 파악을 하고 파악한 환자의 배경이 되는 의학 지식을 공부한 후 회진을 돈다.
‘미쳤나…….’
‘미쳤다, 진짜…….’
레지던트들은 서로 말없이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내과 레지던트라고 해서 어찌 다 최고의 내과 의사를 꿈꾸겠는가.
그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또 모를 일이겠지만…….
지금은 워라밸에 영앤리치 뭐니 하면서 세상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당장 나가서 개원해서 돈 벌고 떵떵거리면서 살아야지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당연한 거 아닌가.
오히려…….
‘좋다.’
‘오랜만에 피가 끓는군그래.’
‘이현종 교수님이 이렇게까지 한다면…… 불살라 봐야지.’
‘그래……. 타고난 하드웨어가 차이가 나는데 고작해야 이수혁 교수님 정도로 노력해서 되겠나? 적어도 앞뒤 한 시간씩은 더 내야 해.’
통합진료센터에 뼈를 묻기로 한 놈들 쪽이 또라이였다.
“자자. 그럼 내가 준비한 음료수부터 쭉 들이켜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리 잘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그래, 그래. 야, 니들도 와서 먹어. 아직 젊어도 알게 모르게 피곤하다, 이 일?”
“그…… 네.”
“가, 감사합니다…….”
그러나 어쩌겠나.
미친놈들만 가득한 세상에서는 정상인이 미친놈 취급받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이곳, 통합진료센터가 딱 그 짝이었다.
레지던트들은 펠로우, 임상 강사들이 무슨 꿀물이라도 되는 양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검정 쓴 물을 영 떨떠름한 얼굴로 받아 들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성질 급한 한국인들, 커피를 커피가 아닌 에너지 드링크처럼 쓰기 위해 개발한 물건이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사람들보다는 짧겠지만 그래도 커피 브레이크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니, 세상에 커피를 지금처럼 2, 3분도 안 되어서 다 먹는 새끼들이 어딨나?
“뭐 해? 안 먹고.”
“그…… 먹겠습니다…….”
여깄다.
통합진료센터에.
하필 이번 달 통합진료센터 레지던트들 중에서 통합진료센터를 꿈꾸는 사람은 이민정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다들 똥 씹은 얼굴이었다.
딱 봐도 말이 안 되는 스케줄이라서 그랬다.
‘88시간 위반인데……. 찌를까……?’
‘교육은 제외야, 인마. 그리고…… 그래도 좋은 분인데 찌르겠다고?’
‘그건 그렇지……. 시발……. 자기 일 내리는 것도 아니고 환자 보고 공부시키는 거라 뭐라 할 수도 없고.’
‘좋게 생각하…… 할 수는 없을 거 같고. 빨리 이수혁 교수님 쾌차하시길 기도하자…….’
그 때문일까?
병원 기도실에 때아닌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물론 문의만 있었을 뿐, 실제로 와서 기도하는 사람은 평소와 같았다.
왜?
다들 갈려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빨리빨리 따라와서 배우지 못할까!”
“네네. 갑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