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Doctor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이제 또 다른 곳 (1)
“환자 혈압 어때!”
“계속 떨어집니다!”
“수액……. 수액 얼마나 들어가고 있지?”
“이미 가득 들어가고 있습니다!”
“승압제……. 승압제 쓰자.”
조태진 교수의 말에 간호사 하나가 부리나케 재어 둔 승압제를 환자에게 연결된 라인에 찔러 넣었다.
하지만 환자의 심전도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거 한계에 다다랐다는 듯, 심박출량은 조금 치고 올랐다가 다시 주저앉고야 말았다.
“에에이! 맥박 없잖아! 인턴들 뭐 해! 빨리 흉부 압박해!”
급기야 심장은 완전히 멎어 버렸고, 심전도상 그래프 또한 평형을 그리고 있었다.
혹시 몰라 제세동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조태진 교수는 기기를 내팽개치고는 일단 환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곤 인턴들이 몰려올 때까지 환자의 가슴을 쿡쿡 눌러 댔다.
어찌나 세게 눌러 댔던지, 갈비뼈 일부가 부러져 나가고 있었다.
순간 환자의 손목 쪽에서 동맥혈 채취를 하고 있던 수혁의 머릿속으로 부러진 갈비뼈에 의한 폐 손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건 이미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오직 환자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것만이 중요했다.
“인턴 샘! 이거 가지고 가서 분석 돌려요!”
해서 수혁은 일단 뽑아 낸 동맥혈을 인턴 손에 들려 보낸 후,
“교수님! 이제 제가 하겠습니다!”
숨을 헐떡대고 있는 조태진 교수를 대신하여 환자의 몸 위로 올라탔다.
아무래도 왼쪽 다리가 불편해서 좀 느리긴 했지만.
그나마 환자 침대를 내려놓은 상태인지라 불가능하진 않았다.
“하나, 둘, 셋, 넷.”
수혁은 배웠던 대로, 그리고 몸이 기억하는 대로 환자의 양 젖꼭지 사이에 손바닥을 댄 후 팔을 곧게 펴서 체중을 완전히 실은 채 꾹꾹 가슴을 눌러 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거 고문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이렇게 세게 눌러 봐야 실제 심장이 뛰는 수준을 재현하기엔 부족했다.
[이미 다발성 장기 부전이 심각하게 진행한 상황입니다. 더 이상의 처치는 의미 없습니다.]한창 땀을 뻘뻘 흘려 가며 환자의 가슴을 누르고 있으려니 바루다가 영 힘 빠지는 소리를 해 댔다.
‘닥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사실 수혁도 바루다의 말에 십분 동의하는 바였지만.
욕설이 절로 튀어나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환자가 너무 어리잖아!’
지금 수혁의 밑에 깔린 환자의 나이는 이제 겨우 18살이었다.
수혁이 맡은 환자는 아니었다.
혈액암 환자로, 다른 2년 차의 환자였다.
조태진, 이수혁, 김인수가 제일 먼저 와서 이 난리 바가지를 피워 대고 있는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그냥 회진 돌다가 환자가 넘어가는 걸 봤을 따름이었다.
수혁은 아니고, 바루다가.
[저쪽 구석에 있는 환자, 심장박동이 이상하군요.]처음에는 으레 그러하듯 진단 병이 도졌다고만 생각을 했더랬다.
원래 바루다는 처음 보는 사람이나 환자가 있으면 병명 맞추기를 하며 추론 능력을 키워 나갔으니까.
[혈압이 떨어지면서 심장박동 수가 올라갑니다.]하지만 두 번째 말까지 들었을 땐, 무시할 수가 없었다.
진단명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어떤 상황을 묘사하고 있었으니.
해서 고개를 돌려 보니 웬 어린 환자 하나가 누워 있었다.
혈액종양내과 환자라고 하기엔 정말이지 너무 어린아이가.
‘살려야 해!’
그 이후 혈압을 보존하기 위해 치솟았던 환자의 심장박동 수는 그만큼 빠르게 주저앉았고, 지금과 같은 심폐 소생술 상황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이미 늦었습니다.]‘같은 말만 하지 말고! 방법을 찾아 봐!’
[데이터를 보십시오, 수혁. 환자의 경과 기록 읽은 적이 있습니다.]‘뭐?’
바루다의 말에 수혁은 최선을 다해 환자의 흉부를 압박하면서 바루다가 조금 전에 언급한 기록을 돌아보았다.
‘CML, multiple meta(brain, liver, lung).’
이게 환자의 진단명이었다.
뇌, 간, 폐에 전이된 만성 백혈병.
‘Wating for BM transplantation.’
이건 환자의 앞으로의 계획이었다.
골수 이식을 기다리는 것.
이거 말고는 아무 희망도, 치료 방법도 없었다.
달리 말하면 기증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였다는 말이었다.
‘이런 망할!’
[그만하시죠. 수혁.]‘닥쳐!’
[그만하고……. 주변을 좀 보십시오.]‘응? 아…….’
그제야 수혁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의료진이 손을 멈추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자가 심폐 소생술 상황에 빠진 지 무려 30분이 지났다는 것 또한 깨달았고.
그 시간 동안 그야말로 쉬지 않고 흉부를 압박하고, 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까지 깨달았다.
“야, 수혁이 내려 줘라.”
“아, 네. 교수님.”
수혁이 손을 멈추자마자 조태진 교수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김인수를 향해 턱짓했다.
김인수는 즉시 달려서 환자 위에 올라탄 채 반쯤 탈진해 버린 수혁을 아래로 끌어 주었다.
“아, 아이고…….”
그제야 아이의 곁을 늘 지키고 있던 중년 여성이 울음을 터뜨렸다.
수혁 때문에 잘 보이지 않던 아들의 얼굴이 비로소 잘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얼굴에 이제 더는 생명이 깃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이었다.
“일단 자리 비키자. 담당 교수님이랑……. 주치의도 왔어.”
김인수는 그런 어머니와 이제 고인이 된 아들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 수혁을 가만히 잡아끌었다.
수혁은 잠시 황망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이내 김인수를 따라 병실을 빠져나왔다.
타닥.
타닥.
그 와중에 지팡이 짚는 것은 잊지 않았는데, 그만큼 지팡이가 익숙해졌다는 뜻이었다.
“수혁아, 괜찮냐?”
복도에 미리 나와 있던 조태진 교수가 수혁을 향해 물었다.
어찌나 다정한지 다른 레지던트들은 질투보다도 황당함을 느낄 지경이었다.
하지만 수혁이 어떤 1년 차인지 잘 알고 있는 김인수로서는 별다른 감정이 들진 않았다.
다만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 따름이었다.
“아…….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조 교수는 수혁의 입에서 괜찮다는 말이 나오자 비로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른 이의 죽음을 목도한 후에 이런 표정이 온당한가 싶겠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것이 대학 병원의 내과였다.
그중에서도 혈액종양내과는 거의 죽음을 벗하고 있는 수준이었고.
“그래. 인마, 네 환자도 아닌데……. 그렇게 열을 올리면 어떡해.”
조태진 교수의 말은 남의 죽음에 냉담해지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 나이쯤 되다 보면, 또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대학 병원 내과 교수로 있다 보면 의학 외에도 몇 가지 알게 되는 게 있는 법이었다.
‘사람의 감정 주머니에는 한계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제아무리 강한 사람도 마구 퍼주다 보면 언젠가는 나동그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정작 자신의 환자를 돌보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단지 그 환자가 운이 없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될 터였다.
그건 프로의 자세도 아니고, 의사의 자세는 더더욱 아니었으니.
“죄송합니다. 교수님.”
수혁 또한 조태진 교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기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조태진 교수는 가만히 수혁의 뒷덜미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됐어. 환자 열심히 본 게 무슨 잘못이겠냐. 가자. 할아버지 환자분 기다리시겠다.”
“아, 네!”
그의 말에 수혁은 지팡이를 타닥거리며 부지런히 달려 조태진을 앞질렀다.
그리곤 무균실로 통하는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
유리창 너머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아 있는 할아버지 환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투석을 돌리고 있긴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가히 건강하다는 말까지 붙여 볼 만한 모습이었다.
툭.
환자는 조태진 교수의 말대로 종일 수혁을 기다렸는지 곧장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었다.
아직 면역 기능도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주제에 몸놀림 하나는 예사롭지 않았다.
“에헤이! 가만히 계세요! 그러다 넘어지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수혁은 그런 할아버지를 향해 책망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아까 이름 모를 환자를 떠나보내면서 새겨졌던 슬픈 표정은 어느새 떠나가 있었다.
포기하려다 기적을 바라고 치료를 시도했던 환자가 되살아나는 모습엔 그만한 힘이 있었다.
“환자분, 검사 결과……. 이식된 골수 생착은 아주 순조롭습니다. 열이 좀 나기는 하시는데……. 그건 암을 죽이면서 발생하는 염증 반응이라고 생각됩니다.”
몸이 불편한 수혁이 미처 다 덧가운을 입기도 전에 조태진 교수가 안으로 들어갔다.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그도 자신이 포기했던 환자가 살아난 모습이 아주 기뻤기 때문이었다.
“염증……?”
그래서 환자는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신나는 얼굴로 떠들어 댔다.
해서 뒤늦게 들어간 수혁이 부연 설명을 해야만 했다.
“할아버지. 지금 할아버지 골수에는 다른 사람의 골수가 있잖아요. 그 골수한테는 원래 할아버지 골수에서 생긴 암은 아예 다른 놈으로 인식이 된다니까요? 그래서 맞서 싸우는 거예요.”
물론 이 설명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면역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있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할아버지는 헤벌쭉 웃어 주었다.
뭐가 어찌 되었건 의사들이 자기 앞에서 이렇게까지 신나게 떠들어 댄다는 건 좋은 뜻일 테니까.
“아, 참. 맞아.”
그렇게 한참 웃고 있으려니 조태진 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혁을 가리키면서였다.
“환자분. 오늘로 이수혁 선생 내분비내과로 갑니다. 수혁아,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해라.”
“아, 네. 환자분. 저는 이제 다른 곳으로 갑니다. 치료 꼭 잘 받으셔서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했습니다.”
이에 수혁은 자신이 무균실 창에 새겨 둔, 지금은 보이지 않는 문구 ‘꼭 살아나십쇼.’에 눈길을 주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아이…… 섭섭해서 어떡해…….”
할아버지는 정말로 섭섭한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것을 본 조태진 교수가 일부러 큰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환자분. 제가 지정의인데 제가 중요하죠! 이러면 제가 섭섭합니다.”
“아, 아.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아무튼, 내일부터는 다른 선생님이 봐 주실 겁니다. 제가 인사시켜 드릴게요. 좀 쉬세요.”
그리고 그 웃음으로 능숙하게 상항을 넘긴 후, 병실을 빠져나왔다.
“에이. 섭섭해서 어떡하지.”
그다음엔 환자에게 했던 말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이나 섭섭하다는 얼굴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김인수도 그런 조태진을 딱히 탓할 생각을 하진 못했다.
이번 한 달간 수혁은 정말로 잘 돌았으니까.
다른 주치의랑 어떻게 도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교수가 이러고 있으니 수혁으로서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게 되는 것이 당연했다.
조태진 교수는 그런 수혁을 바라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의 웃음이 환자를 위로하기 위함이었다면, 이번 웃음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나중에 혈종 교수 하면 되지!”
“시켜만 주시면 하죠!”
“하하하. 뭐……. 그거야 천천히 생각해 보고. 다음에 내분비지?”
“네.”
“거기…… 음.”
조태진은 수혁의 지정의가 될 교수와 치프 김진용을 떠올렸다.
둘 다 그리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교수가 하는 건 좀 모양 빠지는 일 아니겠는가.
해서 그저 수혁의 어깨를 두드려 주기로 했다.
어차피 이놈은 어딜 가도 잘할 테니까.
“여기랑 좀 달라도 당황하지 말고 잘해라.”
물론 응원의 말을 보태 주기는 했고.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수혁은 여느 때처럼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그 응원을 받았다.
– 30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