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Doctor RAW novel - Chapter 398
398화 국시 (3)
국시 위원장과 출제위원들이 정신을 차리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0분 안팎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면서 난이도 올리다가 여러 교수들에게 개같이 까이고 있지 않은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작해야 전문의 되는 시험에서 케이스 리포트 될 만큼 희귀한 케이스를 왜 낸단 말인가.
우창윤 교수는 한때 자기 펠로우였던 이를 조지고 있었다.
“내가 너 언제고 한번 사고 칠 거라고 생각했지.”
“아니, 근데 그거 놓쳤으면 그게 사고 아닙…….”
“미친놈아. 그래서 그거 네가 의심했어? 너도 몰랐잖아!”
“타산지석…….”
“타산지석은…… 미친놈이. 이제 어쩔 거야. 이러다가 합격률 50%…… 아니지. 지금 검토해 보니까 20% 가능성도 있는데.”
“20…….”
대충 한 해에 배출되는 내과 의사 인원은 500명.
그중 20%면 100명이라는 소린데, 이 말을 들은 보건복지부 공무원의 얼굴이 대번에 핼쑥해졌다.
각 대학 병원급 펠로우 부족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어……. 그럼 군의관은 어쩌죠? 그걸론 턱도 없을 텐데.”
사람들이 군의관이라고 하면 의사 맞나 하는 인식이 무척 강한데, 군의관들로서는 무척 억울한 소견이었다.
군대는 서울대 출신을 특히 좋아하는 집단이고 동시에 전문의를 선호하는 집단이었다.
군의관이면 어지간하면 전문의라는 얘기고 동시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 병원에서 날아다니던 수석 전공의들이었다는 얘기였다.
근데 왜 우리 부대 군의관은 그 모양일까?
여러 문제가 있는데, 우선은 기껏 전문의를 뽑아 놓고는 해당 전문과 진료가 아니라 그냥 다 맡긴다는 점이었다.
즉 내과가 정형외과 환자나 이비인후과 환자를 보게 된다는 건데, 잘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백업 시스템도 형편없었고, 약도 적었다.
그럼에도 각과 전문의가 필요하기는 했다.
군대에도 사단 의무대가 있고 또 병원은 있었으니까.
“후방 병원 티오가 어떻게 되죠? 사단 의무대랑.”
“100명은…… 훌쩍 넘죠……. 다 군대 가야 되는 것도 아니고……. 내과는 요새 특히 여자 늘어서 안 그래도 걱정이었는데.”
“공중보건의는 어떻죠?”
“와, 이거 큰일인데. 공중보건의 쪽으로 빠질 내과 의사는 없을 거 같은데. 그게 그렇게 되면…….”
이때다 싶어 우창윤이 직원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진짜 부족하지? 큰일 났지? 뭐 이런 뉘앙스였다.
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던 보건복지부 직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갔다.
군 의료 및 공중 보건의 공백은 생각보다 너무 큰 문제였기에 그랬다.
작은 과 전문의라면 뭐 그런갑다 하고 넘어갈 텐데 내과는 그래선 안 되는 과였다.
대학 병원의 기둥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의 기둥이었다.
괜히 의사들 사이에서 진짜 의사 소리를 듣는 게 아니란 얘기였다.
“위에 문의해 보시죠? 지금이라도 2교시 문제 교체 가능한지. 내가 보니까 1교시는 평균 점수…… 100점 만점으로 하면 10점, 20점이나 될까 싶은데. 그럼 2교시 다 맞게 내야 얼추 85% 될 거란 얘깁니다.”
“아……. 이게 절차가…….”
“절차 따지다가 다 조지게 생겼잖아요. 저도 문책을 받기는 하겠지만……. 저는 학술이사지, 국시 위원장도 아니지 않습니까? 제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러다가 군 의료 마비됩니다. 총진료 건수야 당연히 군 의료 특성상 정형외과가 메인이지만 협진 수는 내과가 압도적이에요. 알죠?”
“알죠……. 하.”
정형외과 진료도 사실 내과가 있어야 가능한 법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내과가 있으니까, 또는 손도 못 쓸 환자였지만 내과에서 상태를 호전시켜 준 덕에 진료가 되는 거 아니겠는가.
보건복지부 직원은 비록 의료인은 아니었지만, 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이니만큼 이해도가 있었다.
해서 즉시 전화를 돌렸다.
“합격률 20% 미만 예상된다고? 내과 학회가 개기는 거야?”
합격률 얘기를 하자 대번에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사나워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일을 대체 어찌 감당해야 된단 말인가.
“그래서 2교시 문제 지금 교체 가능하냐고 합니다.”
“1교시 끝나기 1시간 전인데 그게 되겠어?”
“된다고 합니다. 여기 교수님들……. 마흔 명도 넘어요. 문제 보자마자 각 병원에서 한두 명씩은 오시고 계셔서……. 좀 있으면 100명도 넘게 생겼습니다.”
“그 정도야?”
“네. 저야 옆에서 얘기만 들었지만. 말도 안 되는 난이도 같습니다.”
“국시 위원장…… 정신이 나갔나.”
국장급이 분명해 보이는 사람이 욕설을 내뱉더니,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럼 일단 문제 내 보시라고 해. 절차는 내가 해결할 테니까. 합격률 85%로 하랬더니, 뭐? 20% 미만? 아이고……. 국가 의료 체계 마비시키려고 작정을 했나.”
“아, 그럼……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빨리하라고 해. 나도 여기서 해 볼라니까.”
“네. 감사합니다.”
우창윤은 이미 통화 내용을 다 듣고 있던 터라, 전화가 끊어지는 즉시 교수들을 불렀다.
다들 자기 새끼들 관련한 일이라 일사분란했다.
“자, 그럼 각 분과 선생님들……. 쉬운 문제 내는 건 잘하실 수 있죠?”
“그럼요. 쉬운 문제 내는 거야 뭐. 근데 이거 100% 맞히게 내야 합니까?”
“그렇다니까요? 1교시 문제 안 보셨어요? 이게…… 이게 애들 풀라고 만든 겁니까? 싹 다 틀릴걸요? 그럼 우리가 다 맞게 내도 떨어져요.”
“아, 하긴.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아닙니다. 그럴 수 있죠. 원래 문제 낸 놈들이 문제지……. 아무튼, 각자 할당량 드릴 테니까 팍팍 냅시다. 괜히 지문 길게도 하지 마시고. 이 미친 인간들은 이거 읽는 데만 시간 다 가겠어.”
“네. 그렇게 하죠.”
바깥이 소란스럽기 그지없이 지나가는 사이, 정작 시험실 안에 있던 수혁은 평안했다.
이미 문제를 다 풀고 마킹까지 한 상황이었다.
감독관은 포기했나 하는 얼굴로 그런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전문의 시험 감독 들어온 게 올해로 8년인데…….’
보통 이런 알바는 학교 선생님들이 하기 마련이었다.
애초에 감독에 익숙하기도 하지 않은가.
해서 하는 사람이 계속하는데, 이런 건 또 처음이었다.
그래도 의대 나와서 그 혹독하다는 수련 과정을 거친 사람들인데 이렇게 털린 표정을 지을 줄이야.
어디 마이너과도 아니고 대학 병원에서도 사람이 제일 많이 죽어 나간다는 내과인 걸 감안하면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었다.
“저기, 문제를 좀 푸시는 게…….”
보다 못한 감독관이 맨 앞줄에 있던 이를 불렀다.
그러자 상상도 못 했던 답이 돌아왔다.
“이걸 어떻게 풀어요……. 뭔 문제가 이래.”
“난이도 문제가 있는 거 같습니다.”
“오류 아닐까요?”
“이미 떨어졌습니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떠들어 대고 있었다.
“음…….”
“이거 장난 아닙니다.”
“다른 방은 어떤지 알아볼게요.”
해서 감독관도 톡방을 들여다보았다.
이미 난리였다.
다행히 좋은 소식이 있었다.
감독관은 함박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일단…… 최선을 다해 주세요. 2교시 문제 바뀐답니다. 쉽게 바뀐다니까…… 일단 희망을…….”
그럼에도 표정이 딱히 밝아지지는 않았다.
다 맞는다고 해도 떨어질 게 확실시되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였다.
물론 아까보다는 훨씬 나았다.
몇몇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히려 황당하다는 얼굴이 된 것은 수혁이었다.
‘뭐래. 더 쉬워진다고?’
[여기서 더 쉬우면 그게 문제일까요?]‘문제가 아니지. 음.’
[근데 분위기 보아하니 다들 난리군요. 어려웠나 봅니다.]‘그러게. 공부를 안 했나.’
[그렇다기엔 태화 측도 아주 표정이 밝지는 않았습니다.]그제야 고개를 둘러보니 확실히 동기들도 너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긴 몇 개 좀 드문 병이 있다 싶기는 했더랬다.
그래도 태화에서 수련 받고, 3년 치 테이터 다 뒤져서 공부했으면 알긴 알 텐데.
그것도 안 하고 전문의가 되려고 했나, 뭐 이런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
일단은 동기이지 않은가.
해서 가만히 있기로 했다.
“자, 이제 시간 다 되어서…… 걷겠습니다. 20분 후에 다시 시험이니, 반드시 착석해 주세요.”
이미 답안지 정리까지 다 한 마당인지라 멀뚱히 있던 수혁은 즉시 답안지를 냈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졌다.
시험 시간도 그리 조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이비인후과 눈치 보느라 참았던 것을 이제야 터트리는 모양이었다.
“좆 됐다.”
“2교시 다 맞어도…… 붙을 수 있을까 모르겠는데.”
“나도 그래. 와……. 뭔 문제가 시발…….”
“그러니까.”
“근데 그…… 이수혁이라는 애는 금방 풀더라.”
“푼 거야? 멍하니 있길래 난 걔도 못 푼 줄?”
“아냐. 난 이미 글러서 구경했는데…… 장난 아니더라고. 슥슥 다 풀었어…….”
“와…….”
수혁에 관한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정작 당사자인 수혁은 듣지 못했지만.
이유가 별거 아니었다.
동기들이 죄다 이쪽으로 몰려와서였다.
“수혁아……. 이거 답 뭐냐.”
“이건?”
“이거, 이거.”
다들 고민되는 문제들을 안고 왔는데,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고민이라도 할 수 있었단 얘기였으니까.
다른 병원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 같지 않은가.
“이건 1번이야.”
“1번? 왜? 대체 왜?”
“좀 드문 케이스이긴 한데……. 여기서 우리가 의심해야 할 질환은 국소성 췌도 세포 증식증이거든?”
“그게 대체…….”
“동맥혈 칼슘 자극 검사해 보면 진단이 돼. 그래서 1번.”
“하.”
해설도 어려웠다.
아예 처음 보는 단어들의 나열이었다.
“이건…… 이건 알지? 심전도 보면 딱 알잖아.”
“WPW 신드롬? 증상이 전형적이지는 않은데……. 그래도 심전도가 그래 보이더라.”
“오, 그래. 맞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혁이 강의했던 것은 곧잘 다들 맞혔단 점이었다.
“자, 2교시 시작합니다.”
그렇게 답 맞추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렀다.
2교시 시험지는 아까 예고했던 대로 정말 엉망이었다.
‘이런 걸 내네.’
[미쳤네요.]수혁은 10분 만에 60문제를 다 풀어 버리고 밖으로 나섰다.
검토할 필요도 없었다.
무조건 만점이었다.
“어어, 수혁이다!”
“잉? 이제 시작했는데 뭔…… 어, 진짜네. 쟤 망했나? 쟤도 어렵지, 이건.”
“지랄 마.”
“아니, 안 그러고서야 지금 나오는 게 말이 돼? 떨어지는 거 아냐? 그럼…….”
“웃기지 말라고. 우리 수혁이가 인마. 어떤 수혁인데.”
신현태의 말에 수혁을 발견한 각 병원 과장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혁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
‘설마 떨어지지는 않겠지?’
수혁교의 신자라고도 할 수 있는 신현태마저도 조금 불안해질 지경이었다.
신현태는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도도도 수혁을 향해 달려 나갔다.
“수, 수혁아. 잘 봤어?”
“네?”
“불안하게 왜 그래. 잘 봤냐고.”
“아…….”
“아……?”
“만점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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