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Doctor RAW novel - Chapter 942
940화 미친놈들인가? (1)
빈손이라니.
억울했다.
발렌타인 30년산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허나 얼굴을 보아하니 이게 딱히 칠성 출신이라 트집 잡는 느낌도 아니었다.
“죄, 죄송합니다.”
게다가 실제로 와서 보니, 환자가 진짜로 많았다.
사실 이런 건 칠성도 마찬가지라 별반 특이할 것도 없긴 했지만.
뭔가 달랐다.
환자들의 모습들이 각양각색인 것도 그렇지만, 표정이 좋았다.
‘차고 있는 것들 보면…… 많이 아픈 사람들인데 말이지?’
환자복이 아니라, 그 비슷한 것만 입혀 놔도 표정이 좋아 보이긴 쉽지 않은 법이었다.
당장 건강검진센터만 가도 그렇지 않나.
병은 없어도, 대장 내시경 때문에 관장한 것만으로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심지어 여긴 건강검진센터도 아니고, 수액이 아니라 중심 정맥관마저 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말은 곧…… 실력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지. 소문이 괜히 난 게 아니야.’
유민관은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입수한 정보를 떠올렸다.
말만 들으면 이게 말이 되나 싶을 때가 많았다.
현대 의학에서 혼자 다 할 수 있는 슈퍼맨이 있다는 게 이상한 일 아닌가.
하지만 직접 겪기도 했거니와 와서 보기까지 한 마당에, 의심을 품는다는 건 모두 사업가의 자질 문제였다.
“그, 그!”
해서 유민관은 납작 엎드렸다.
“골프 좋아하신다고…….”
“골프? 너 지금 우리 수혁이한테 시비 터냐?”
“그런 게 아닙니다. 이건 진짜…….”
“뭔데, 일단 줘 봐.”
동시에 뭔가를 내밀었다.
초청장이었다.
PGA 대회.
장소는 당연하게도, 국내 유일의 PGA 투어 대회가 열리는 나인브릿지였다.
“어…….”
이현종의 흔들리는 동공을 보면서, 유민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골프에 미쳐 살았다더니, 역시.’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솔깃할 만한 이야기를 들고 왔더랬다.
사실 수혁을 만나고부터는 골프고 뭐고 센터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사람이 이현종이지 않은가.
두 부자의 취미와 특기가 진료에서 딱 겹쳐 버려서 그랬다.
하지만 이건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주말에 호텔이랑 비행기, 차 등 제가 다 모시겠습니다.”
“으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태화 사람이었으면 염치 불고하고 공항으로 내달리고픈 조건이었다.
허나 칠성 놈이잖아?
이현종은 눈을 샐쭉하게 뜬 채 유민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유민관은 알 수 있었다.
아까랑 다르다는 걸.
호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악의는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
“감사해서 그렇죠. 그 환자가 중요한 환자거든요. 제가 말씀드렸나요? 아프리카 내에 다이아몬드 광산을 가진 사업가의 딸인데…… 물려받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합니다.”
“환자가 부자인 게 중요한가?”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아픈 걸 고치는 게 아니라…… 미용 목적의 병원을 하고 있으니까요.”
“뭐…… 그건 그렇겠네.”
K-뷰티라는 말도 있지 않나.
이게 괜한 소리가 아닌 게,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비한 비버리힐즈의 미용센터들도 강남에 있는 피부과를 보면 깜짝 놀란다는 말까지 돌고 있을 지경이었다.
이현종도 그러한 일은 알고 있었다.
통합진료센터가 국제적으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관심이 생겨서 그랬다.
“뭐 아무튼…… 이게 다 그냥 하는 거라는 건가?”
“네. 저도 이거 정말 어렵게 구한 표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단순 초청장이 아니라, 최원준 선수 바로 뒤에 따라붙을 수 있는 표예요.”
“최원준…… 한국이 낳은 위대한 선수긴 하지…….”
“네. 제가 진짜 좋아하는 선수인데…… 어렵게 구했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런 표는 단순히 어디 회원권이 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나인브릿지 골프장 회원권은 10억을 훌쩍 넘어가는 가격이었다.
심지어 돈이 있다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얻었냐?
CJ 사장단 가족 얼굴을 귀신같이 땡겨 주고 받았다.
나인브릿지가 CJ 계열이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나도 거기 가서 또 잘 보여야 하긴 한데…… 설마 의사들이 가서 이상한 짓 하지는 않겠지.’
유민관은 이현종이 좀 괴팍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직접 보니 실제로도 그렇지 않나?
하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이란 것을 수십 년 해 온 사람이었다.
어려운 자리에서 이상한 짓을 할 것 같진 않았다.
“아이…… 근데 우리 수혁이는…….”
“전 좋아요. 제주도도 못 가 봐서.”
“응? 진짜로?”
“네. 제주도 한 번도 못 가 봤어요.”
“아니, 그럼 가야지. 일단 호텔도 포도 호텔이면 여기 좋아. 우동도 맛있고…… 주변에 갈 데도 좀 있고.”
“좋죠, 그럼. 멀지도 않지 않아요?”
게다가 이어지는 대화를 들어 보니, 확실히 자기 사람에게는 따뜻한 부류지 않나?
물론 한국말은 아니, 이현종의 말은 늘 끝까지 들어 봐야만 했다.
어디서 어떻게 툭 튈지 알 수 없어서 그랬다.
“잠깐만. 근데 왜 표가 두 개야.”
“네?”
유민관은 됐다고 여기고 있다가 의외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여기 사람이 몇인데. 응?”
이현종은 센터 전체를 돌아보고 있었다.
안대훈, 김성진에 간호사들은 물론이거니와, 레지던트에 환자들까지 다 있었다.
‘범위가 어디……까지예요?’
황당해서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이현종이 말을 이었다.
“수간호사도 시간이 있을 거 같은데!”
“아, 아니에요, 교수님. 저는 괜찮아요.”
“표 없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나 그럼 너무 마음이 아파.”
“진짜 아닙니다…… 회식이나 해요.”
“그래, 그럼. 음.”
다행히 수간호사는 이현종, 이수혁이 이상한 정도를 보상하려고 뽑은 건가 싶을 정도로 심하게 정상이었다.
벌써 한참 전부터 유민관의 쩔쩔매는 얼굴을 보고 다 읽고 있었다.
덕분에 유민관도 간호사들까지 데리고 가야 하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그래도! 우리 성진이랑 대훈이는 가야지. 특히 성진이는 성진이가 환자 본 거 아니야? 이 배은망덕한 놈! 칠성 놈이라 이래. 너 지도 교수가 누구였어?”
“네? 아…… 그, 배성철 교수님입니다.”
“몰라. 근데 배 씨인 거 보니까 배은망덕할 거 같아!”
“네? 아니…….”
배성철 교수님이 그래도 우리나라 피부과의 신화이신데…….
심지어 화상 치료의 대가십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내진 못했다.
생각해 보니까 맞는 말도 조금 있어서 그랬다.
“대회 초청은 못 하겠지만 나머지는 제가 다 내겠습니다, 교수님.”
“그래, 그 정도는 해야지. 식당은 어디로 가지?”
“네?”
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점점 더 대화가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식당이요……?’
보통 비행기 표에 호텔까지 대주면 고맙단 얘기가 나와야 하지 않나……?
“요새 제주도에 미슐랭 받은 데도 많고, 오마카세도 많다던데.”
“저도 궁금하네요. 토속 음식도 궁금하고요.”
“2박 3일이니까 최대한 먹으면 8끼. 8개만 예약해 봐. 내가 알고 있는 맛집 리스트 줄게.”
허나 돌아온 건 리스트였다.
“그, 네.”
“하여간 우리 성진이 덕에 호강하네. 고마워, 김 선생.”
고맙다는 말은 김성진이 받았다.
나오면서 이게 맞나 싶었다.
“원장님? 괜찮으세요?”
잘나가는 사람의 상징이라는 기사분이 말을 걸어 올 때까지 얼이 빠져 있었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랄까…….
뭐랄까…….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벌써 주말이네.”
이현종은 골프복을 위아래로 싹 맞추고 공항에 나와 있었다.
수혁도 그랬다.
“저는 진짜 골프 칠 줄도 모르는데…….”
“괜찮아. 이게 예의야. 최원준 선수한테 사인 받아.”
채도 매고 있었다.
이현종이 사 줘서 그랬다.
안 쳐도 골프 채에 사인은 받아야 한다는 이상한 말을 하면서였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이게 참.”
“저는 진짜…… 감사합니다.”
안대훈과 김성진은 그저 신나 있었다.
대체 어느 교수가 애들까지 챙겨서 놀러 가겠나.
심지어 김성진은 자기가 진료한 게 아니라, 수혁이 진료했기 때문에 더더욱 황송해하고 있었다.
물론 수혁은 환자만 볼 수 있으면 만사 오케이인 데다가 딱히 대단한 업적도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까먹고 있을 지경이었다.
“뭘 그렇게 감사해해요.”
“아니, 정말로…….”
“비행기 처음 타시는 줄 알겠네. 아, 제주도는 처음이신가?”
“아뇨. 그건 아닌데.”
“어, 저기 오시네. 좋은 분인가 봐요. 이렇게 화끈하게 은혜를 갚으시고.”
“네? 그…… 네, 뭐 그렇죠.”
심지어 한없이 긍정적인 사람이다 보니, 뭘 사 준다는 유민관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김다현 회장이나 두바이 왕자 또는 싱가폴 의원급이랄까?
‘여기서 원래는 순 개새끼라는 말을 하기도 그렇고……. 뭐……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신다고 딱히 잘해 주시는 분도 아니니까…….’
김성진은 정정하고 싶었지만, 일단 가만히 있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까 이현종과 이수혁 모두 뜻하지 않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 아닌가?
게다가 전에 들어 보니 그 초청받은 자리란 게, 유민관에게도 불편한 자리인 것 같았다.
‘넌…… 뒈졌다, 이제.’
김성진은 깨소금이다 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물론 그도 어떤 식으로 민폐를 끼칠지는 알지 못했다.
하여간, 일행은 유민관과 함께 일등석에 올라 제주도로 향했다.
유민관은 뜻하지 않게 훅 나간 돈 때문에 중간에 제산제를 먹었지만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수혁은 알아봤지만 그냥 있었다.
[기껏해야 속 쓰린 정도입니다.]‘현대인의 숙명 같은 거지.’
[그렇죠. 원장이라니까 스트레스가 많겠죠.]‘하긴. 그렇지. 원장은 원래 힘들지.’
신현태가 얼마나 고생을 하던가.
하여간 이현종만 보면 머리를 짚거나 명치를 짚어 댔다.
일이 진짜 힘든 모양이었다.
이현종이 진상이라서 그런 건데, 수혁의 짧은 사회성은 거기까지 따라붙지 못했다.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으려니 어느덧 제주도였다.
“휴…….”
일행은 개판이었어도, 제주도는 좋았다.
유민관은 속이 좀 풀리는 걸 느끼며 숨을 들이켰다.
‘잘 보일 만한 상대다…….’
한번 이렇게 세게 관계를 맺어 두면 뭐라도 오지 않겠나.
게다가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이 센터가 진국이긴 했다.
싱가폴, 뉴욕, 두바이 등 벌써 관련 센터가 몇 개인가.
심지어 다 돈깨나 있는 곳이라 미용이 비집고 들어가면 대박 날 게 뻔했다.
“가시죠. 아마 도착하면 연습 샷 날리고 계실 겁니다.”
“사인 되나?”
“네? 아, 아뇨. 시합 전에는 좀…….”
“하긴 그렇지.”
그리고 이런 상식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니 더더욱 안심이 되었다.
“잠깐만.”
그렇게 도착한 나인브릿지.
국내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 명문 골프 클럽에서, 돌연 수혁이 입을 열었다.
최원준을 향해서인가 했는데 다행히 아니었다.
그 옆에 있는 사람…….
“저기, 교수님.”
다행은 아니었다.
최원준의 코치에게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었으니까.
골프를 쳐 본 적은커녕 본 적도 없다더니 진짜 개념이 없었다.
“교수님!”
드라이버 연습하고 있는데 가까이 가?
“어디 아프시죠?”
“?”
그러더니 저딴 소리를 해……?
“흠흠.”
고개를 돌려 보니 CJ 사장님이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유민관을 보면서였다.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