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125)
125. 오늘의 승리가 내일의 승리를 보장하진 않는다 (1)
“쏴! 죽여!”
아즈펜의 경갑 부대를 이끈 지휘관이 외치고.
앞서 달리던 부대원 셋이 장전된 쇠뇌를 겨눠 쐈다.
투두둥!
세 발의 쇠뇌, 이 정도 거리에서 날아간 볼트를 피하는 건 묘기 중의 묘기라 했다.
달인이 아니라면 시도도 못 해 볼 일인데도.
툭, 투둑.
렘은 볼트가 날아오는 타이밍에 앞으로 구르는 것만으로 쇠뇌를 피했다.
푸부북.
렘이 구르자마자 그 자리에 볼트가 박혔다. 아슬아슬해 보였으나, 렘이 하는 짓인지라,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구르면서도 렘의 달리는 속도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달리는 속도 그대로 구르고 도끼를 지지대 삼아 일어나더니, 마저 달렸다.
어떻게 몸을 다뤄야 저런 게 가능한 거지.
뒤에서 보는 엔크리드도 절로 감탄이 나올 판이었다.
“구경만 하고 있으십시오.”
옆에서 라그나가 자꾸 자신을 제지하지 않았다면 엔크리드도 한칼 거들고 싶었으나.
그런 기회는 없었다.
렘부터 시작해서 알아서 다 끝내 버렸으니.
쇠뇌를 쏜 세 명의 병사가 볼트를 재장전하기도 전에 렘은 손이 그들에게 닿을 듯했고.
적병은 반사적으로 숏소드를 뽑았다.
창병과 다른 무장이었다.
창병 서넛이 모여 창으로 대형을 이뤄도 렘이 끄덕이나 할까.
안 그럴 것이다.
그런데 숏소드 세 자루?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엔크리드가 예상한 그대로의 그림이 나왔다.
슈컥! 턱! 쩍!
도끼가 바람을 가르자 적병 하나의 목이 날아가고, 폭풍처럼 움직이는 렘의 주변으로 도끼가 빛살처럼 궤적을 그려 냈다.
그 궤적에 걸린 놈들이 전부 죽었다.
얼마나 빠르고 세찬 도끼질인지, 머리통을 쪼갠 도끼가 빠져나오자, 뒤늦게 피와 뇌수가 바닥에 흐를 정도였다.
머리가 쪼개진 적병 하나가 허공으로 숏소드를 휘적거리듯 찔렀다.
몸의 반응이 끝나기도 전에 죽은 적병이 곧 앞으로 고꾸라졌다.
바닥에 피가 콸콸 흘렀다.
쓰러진 놈들을 두고 렘이 날뛰기 시작했고.
어느새 보이지 않던 작센은 적 지휘관의 뒤를 잡았다.
렘을 보고 놀라 입이 떡 벌어진 지휘관 뒤에서 작센이 단검을 그었다.
스걱.
적 지휘관의 목이 잘리며 피가 퓨뷰븃 하고 뿌려졌다.
정확히 경동맥이 잘려서 뿌려지는 피다.
작센은 다시금 움직였다. 조용히 소리 없이, 우선순위는 명확했다.
엔크리드를 노리는 쇠뇌병부터.
그는 생각한 대로 행동했다. 뒤를 잡고 단검으로 멱을 따거나, 폐부를 쑤셨다.
“꺽!”
쇠뇌를 들고 있던 병사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무심한 붉은 빛이 감도는 갈색의 동공이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건 단순노동일 뿐.
무감각의 극치였다. 적병은 그 끔찍한 눈을 보며 생을 마감했다.
아우딘은 달려드는 적만 쳐 냈다.
말 그대로 좌우로 손바닥을 휘둘러 쳐 내기만 했음에도 충분했다.
쩡! 쩍!
뺨 한 번에 좌우로 날아가는 적병이다. 숏소드를 들고 와아아 하고 돌격하던 놈의 입에서 노란 치아가 튀어나와 허공에 흩날렸다.
이건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뺨 한 방에 몸이 붕 떠서 날아가는데 어쩌겠나.
맥도 움직였다. 그도 제 몫은 하는 병사다. 앤드류와 등을 맞대고 중앙에는 엔리가 자리 잡아 숏보우의 시위를 연신 당겨 쐈다.
라그나야 말할 것도 없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걷는다. 휘두르는 검에 걸리는 이들에게는 죽음만이 기다릴 뿐.
정찰병 중 하나가 양손에 숏소드 두 자루를 들고 덤볐는데, 그조차도 검을 두 번 휘두르는 거로 끝이었다.
챙.
첫 번째 검격을 막고서 그대로 튕겨 나가는 검이 제비처럼 공중을 유영, 적병의 목을 탁- 하고 때리며 지나쳤다.
부왁 하고 목에 두 번째 입이 생긴 적병이다.
라그나는 그리 몇 번 검을 휘두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검을 허공에 털어 냈다.
제가 든 검이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저러면서 제대로 된 검을 안 구하는 걸 보면 확실히 정상인은 아니었다.
엔크리드는 할 일이 없었다.
그가 나설 일도 없을뿐더러, 순식간에 끝난 싸움이니까.
맥과 앤드류, 엔리가 둘을 죽이는 동안.
나머지는 학살당했다.
“빠지자.”
엔크리드는 감탄하는 대신 입을 열었다. 양군이 달려드는 사이에 끼어들어서 뭘 하겠나.
일단은 옆으로 우회에 뒤로 물러나서 상황을 봐야 했다.
그리 옆으로 빠지자, 화살로 방패를 장식한 적군 보병과 아군 보병의 만남이 이뤄졌다.
오랜 시간 헤어진 연인이 만나 사랑을 나누며 정을 교환하듯, 양군도 그리했다.
사랑과 혀, 정 대신.
서로의 창으로 상대의 눈알을 후비며.
뻐버버벅!
창날이 서로의 몸을 헤집는다. 아군도 죽고 적군도 죽었으나.
싸움의 향방은 기운 상태였다.
첫 번째 대규모 전투였고.
변방 수비대의 기습과 신난 렘이 조금 날뛴 결과, 대승이었다.
승리는 어디에서 시작됐는가.
당연히 미치광이 소대였다.
입을 턴 소대장부터 시작해 실제 검을 휘두른 앤드류까지.
“우어어어! 꺼져라!”
“이겼다아!”
“미치광이!”
아니, 그런데 저렇게 대놓고 미쳤다는 소리를 할 필요는 없을 텐데.
보병, 그러니까 아군 병사들의 눈빛이 한쪽에 꽂혔다.
몸 여기저기 피를 묻힌 이들.
렘을 비롯한 독립 소대였다. 모두 어느 정도 전투의 흔적이 남았으나, 중앙에 있는 엔크리드는 멀쩡했다.
호흡도 안 올라왔다.
실제로 검 한 번 휘두르지 않았다.
단검 하나도 던질 수 없었다.
일단 몸부터 회복해라.
소대원 전부의 뜻은 명확했다.
“미치광이 소대다!”
“엔크리드! 엔키! 잘생겼어!”
“좋다! 좋다! 좋다!”
승리에 취한 이들의 환호가 엔크리드를 위시한 이들에게 쏟아졌다.
활약을 누가 했듯, 이 독립 소대는 엔크리드의 소대였으니.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도 있는 거다.
뭐라도 해야 하나. 손이라도 들어 줘야 하나 싶었지만.
검 한 번 안 휘둘렀는데? 정작 첫 번째 전투 말고는 뒤로 빠졌고, 실제 전투는 전장의 꽃이라는 보병대가 다 했다.
그런데 뭘 이렇게까지 반기나.
“독립 소대, 그것도 열 명도 안 되는 소대원인데 이 정도 인상을 남겼으면 일 다 한 거죠. 뭐.”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크라이스가 슬쩍 나타나 합류하며 말했다.
“그건 그렇수다. 근데 왜 날 찾는 사람은 없는 것 같지?”
업보 때문이겠지.
엔크리드는 생각만 하고 답하지 않았다. 굳이 지금 기분을 망칠 필요는 없다. 그 대신 렘의 어깨를 쳐 줬다.
“수고했다.”
렘은 피식 웃었다. 라그나는 이가 빠진 제 검을 회수하더니.
“검 하나 구해야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제 감상을 말했다. 주변에서 환호하든 말든 제 알 바 아니라는 태도다.
짧은 환호, 승리의 기쁨, 뭐 그런 것에 취한 보병대를 물린 참이었다.
아군 지휘관은 무리해서 적을 추격하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사기가 이쪽이 더 우위에 있으니.
입장이 완전히 바뀐 거다. 내일부터는 어느 쪽이 더 전장이 불편하겠나.
크라이스는 상황이 돌아가는 걸 보며 변수를 떠올려 봤다.
‘뭐가 있으려나?’
살아남고, 뭐 좀 주워 가려면 이런저런 계산이 필요했다. 크라이스는 그렇게 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님에야.
적군의 의도.
‘이전 전장에서 주술로 장난을 쳤으니.’
비슷한 장난질을 하지 않을까?
“쉬자고.”
막사로 돌아온 엔크리드의 말이었다. 말 그대로 쉬어야 할 순간이니.
“전원 경계 근무고 뭐고 전부 열외입니다.”
전령 중 하나가 와서 말을 전했다. 또 요정 중대장이 찾아오진 않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오늘의 승리가 내일의 승리가 될 것인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이기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 지금쯤 다시금 승리를 이어 가기 위해 열심히 전략회의나 하고 있겠지.
엔크리드의 예상이 정확했다.
마커스는 승리에 취해 있지 않았다.
* * *
“그냥 물러가는 거 보니까 이 새끼들 뭐 있는 것 같은데, 이전에 무슨 주술로 수작 부렸다고 했지? 그런 낌새는?”
“없습니다.”
넓은 테이블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선 이들이다.
마커스의 말에 부관이 답한 참이었고.
주술? 한 번 당한 걸 두 번 당할 순 없다. 이쪽에서도 주술사를 고용하긴 했다.
본국에서 온 노파였는데 실제 주술을 부릴 재주는 없어도 상대가 무슨 수작을 부리면 느낄 수는 있단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마커스로선 주술의 세계 따위는 제 알 바가 아니었다.
이 말이 진실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아즈펜에서 비대칭 전력을 데려오면 붉은 망토 기사단 일부가 곧바로 지원할 겁니다.”
상대가 만약 기사나 마법사를 동원한다면.
우리도 준비는 되어 있단 거다.
마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장의 공기를 피부로 느끼는 타입의 지휘관이었다.
머리도 쓰지만, 어쨌든 분위기를 타는 편이었는데도.
‘들어가기 싫었단 말이지.’
마치 쫓아오라는 것처럼 뒤로 물러난 적이다.
그 뒤를 따라가려니, 뭔가 뒷골이 싸했다. 밴시가 뒤에서 입김이라도 분 것 같았다.
울음으로 인간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마물이 떠오른 판이니.
감이 안 좋다는 거 아니겠나.
마커스는 거기서 전투를 마무리 지었다.
“변방 수비대 피해는?”
“둘이 죽었습니다.”
아무리 날고 기는 특급 병사라 해도 칼에 베이고 화살이 꽂히면 죽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둘만 죽었다는 건, 선방이라고 볼 수 있었다.
변방 수비대가 죽인 적병 숫자가 수십이었다.
특히나 장궁 부대에 준 타격은 궤멸적 피해였으니.
본래라면 이긴 전장이었다. 이제 상대가 할 수 있는 발악은 둘이었다.
하나는 퇴각.
다른 하나는 비대칭 전력 투입.
고로, 이제 마커스가 할 일은 정찰대를 줄기차게 돌려 적의 낌새만 확인하면 되는 거였다.
다음날은 전투가 없었고, 마커스는 정찰대를 평소의 두 배로 썼으나.
건진 건 없었다.
거북이는 나우릴리아 중갑부대의 별명일 텐데, 상대가 껍질 속에 숨은 거북이처럼 버텼다.
도통 안을 보여 주지도 않았고, 정찰대끼리 조우하는 일도 드물었다.
작정하고 물러나서 진지 안에서만 버티는 형국이었다.
들어오라는 소리일까?
여전히 싸한 느낌이 남아서 선뜻 말이 안 나오긴 했다.
“지금 치면 완승입니다. 진지에 뭘 준비했다고 하면 일단 화살부터 쏴서 조지면 되는 거 아닙니까?”
“화살도 필요 없습니다. 외부 포위해서 천막 몇 개에 불 놓고 창병으로 찔러 보면 됩니다.”
“변방 수비대를 움직여서 적의 뒤쪽 퇴로를 막아 두는 건 어떻습니까?”
부관이 각자 의견을 내놨지만.
‘찝찝해.’
“대기한다.”
마커스는 현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직감에 의한 판단이었다. 이제껏 숱한 전장에서 자신을 살린 감이 말했다.
아직 적이 뭔가 가진 게 있다고.
* * *
아즈펜의 지휘관은 적의 전력을 여실히 봤다.
나우릴리아의 수법은 여전했다.
‘변방 수비대로 휘젓고.’
마커스란 놈의 전법도 뻔했다. 가진 힘을 응축해서 한 방에 전장을 뒤집는 것.
그게 먹히긴 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당하며 분위기가 역전됐으니까.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가.
적이 준비한 건 다 봤다.
그럼, 이제 내가 보내는 건 뭐로 막을래?
치맛자락에 숨어 사는 병신들.
지휘관은 나우릴리아를 속으로 욕하고 승리를 예감했다.
그의 전장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시작은 그때 그 건방진 놈부터 죽이면 될 것이다.
미치광이인지 뭔지 하는 놈.
구울 대가리라는 신선한 욕으로 입을 턴 놈.
도끼를 든 놈.
소수의 전력이 전장의 판도를 바꾼다는 건 기사라는 종이 이미 증명한바.
그렇다면 그 소수가 꼭 기사여야 할까?
아즈펜의 지휘관에 거기에 착안해 비수를 준비했다.
아니, 비수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자신의 비수는 전장 전체를 때려 부숴 버릴 철퇴가 되어 줄 터였다.
* * *
부상이 완벽히 회복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다.
근무도 없고 양질의 식사로 배를 채우며 푹 쉰 하루.
엔크리드는 밤 중에 짧은 꿈을 꿨으나, 금세 잊었다.
과거의 망령이 튀어나왔다. 실력과 인성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 줬던 용병.
그리 즐거운 기억이 아닌데 되새길 건 없었다.
어쨌든, 아우딘의 신성과 요정이 만든 약의 조합이라니.
또 이런 호사를 누려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내가 보낸 약 덕분인 것 같군.”
아침나절부터 요정 중대장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었다.
엔크리드는 땀을 흠뻑 흘린 채로 훈련 중이었다.
고립의 기법.
그중에서도 아우딘이 말하길, 이제는 관절을 단련하는 시기라 한다.
별짓을 다 시킨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언제나 결과론적으로는 이득이 되고 몸을 더 강하게 해 주는 담금질이 되는 건 확실했다.
그건 자기 몸으로 이미 증명하고 있지 않나.
엎드려 발끝과 손바닥을 땅에 대고 몸을 밀어내며 손목을 폈다가 접는다.
처음에야 쉽다고 생각했으나, 몇 번 해 보니 보통 곤욕이 아니었다.
손목이 묵직한 무게감이 실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팔짱을 낀 채로 바라보는 요정의 시선이 하나.
이제는 체력을 회복했는지, 금세 생기가 돌아온 표범의 시선이 하나.
그 뒤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덩치 큰 가학 변태의 시선이 하나.
막사 바로 앞에서는 쭈그려 앉아 바라보는 미친 야만인의 시선이 하나.
그 외 음습한 적갈색의 눈깔과.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자 땅에 뭘 끄적거리며 지우길 반복하는 왕눈이도 있었고.
마지막으로는 툭 하면 길을 잃는 게으름뱅이 천재 검사가 옆에서 검을 쥔 채로 기다리는 중이었다.
“볼일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오전 단련을 끝내며 엔크리드가 중대장에게 물었다. 요정은 녹색 눈으로 엔크리드를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없는데.”
그러면 왜 안 가고 거기 있는 건데.
눈으로 말해 봤자, 씨알도 안 먹혔다.
“이제 합니까?”
옆에서 라그나가 묻는다. 내기로 순서를 정해서 이긴 라그나다.
그러니까.
엔크리드는 대련에 임하기로 했다.
이제 싸울 만했다. 몸을 움직여도 큰 무리가 가지 않았다.
엔크리드의 시선이 라그나에게 향했다.
라그나는 애가 탄 아이 같았다.
왜 이렇게 대련을 원하는가.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뭐, 이제까지는 뭘 알고 이들을 상대했나.
엔크리드는 검을 쥐었다.
일단은 하나, 양손으로 그립을 쥔 채다. 검 끝이 비스듬히 하늘을 찔렀다.
허리춤에 매달린 검이 한 자루 더 있었다.
다들 그걸 봤으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엔크리드는 이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고 싶었다.
그런 욕구가 들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