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143)
143. 힘으로 함정을 (1)
엔크리드도 정찰분대를 이끄는 소규모 작전은 익숙한 편이었다.
거기에 그동안의 경험이 더해졌다.
경험, 그런 날들이 있었다.
키다리 풀밭을 가로지른 날이 있었고.
소대원과 함께 길핀 길드를 공격한 날과.
늑대인간과 마법사, 매복 부대와 싸운 밤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지휘관이라면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인지.’
아는 것부터다. 자신이 하는 일이 뭔지, 지금 하는 일로 파생되는 게 무엇인지.
전부는 알 수 없다.
모든 걸 말로 할 수도 없다.
다만, 감은 있었다. 본능이라기보다는 경험으로 체화된 그런 감이었다.
“더 안쪽으로 가자.”
엔크리드가 말했다. 그 말에 핀이 방향을 바꿨다. 그녀는 대장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크라이스가 곁에서 눈을 깜빡이며 제 소대장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인지 영 궁금했다. 표정은 평소와 같다. 당최 속을 알 수 없는 덤덤함.
다들 걸음이 급해졌다.
이대로 적에게 뒷덜미를 잡힐 순 없는 노릇이니.
“그냥 싸우면 안 되나. 적당히 죽이면 안 쫓아올 것 같은데?”
렘이 투덜거리는 건 엔크리드가 막았다.
“가지 마.”
숫제 명령조다. 그게 또 새삼 놀라운 일이긴 했다.
그 말에 렘이 순순히 따르니, 이걸 보고 어찌 놀라지 않을까.
“라그나, 앞사람 등만 봐라. 다른 데로 고개 돌리지 말고.”
라그나도 엔크리드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아우딘과 작센이야 따로 뭐라 할 필요도 없었고.
그저.
“허허, 이제 정말 대장 같군요. 형제님.”
아우딘이 이리 말했을 뿐.
실력이 달라져서 태도가 변한 걸까?
“그래?”
엔크리드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 태도, 그 행동, 그 말투.
변한 건 없다.
그러니까 따르는 거다.
크라이스 자신도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판이니.
앞뒤 따질 거 다 따지고, 크로나가 낀 판인지 아닌지도 다 확인하는 자신조차도 이런다는 건.
다른 소대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는 거다.
가끔 보면 표정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걸 장기로 삼는 작센조차도 표정을 숨기지 못할 정도였다.
낭패하면서도 안타깝고, 안쓰러워하는 게 다 보이지 않나.
그걸 생각하니 또 웃음이 나오긴 했다.
지금이 웃을 상황이 아님에도.
‘뭐가 이렇게 안정적이냐.’
크라이스는 따질 거 다 따지고 이걸 실행하자고 했음에도, 실제 느끼는 바는 또 달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이 소대가 더 대단하다는 거다.
상대에게 매의 발톱인지, 손톱인지 하는 게 있다면.
이쪽에는 미치광이 소대가 있었다.
기동력이 탁월하며, 전투력은 기사급이 아니면 막을 엄두도 못 내는 실력의 미치광이들.
그게 크라이스가 내린 평가다.
그럼 이들을 유격부대로 써먹으면 어떤가?
이런 의견을 낸 부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말을 듣긴 할까?”
잘 싸워 줘서 좋긴 한데, 어지간한 사고뭉치여야지.
쓸 수 있다면 좋은 칼이나, 쓰는 과정이 어렵다.
필요한 건 무엇인가.
구심점, 이들을 통제할 하나다.
그게 누구겠나.
가까이에서, 바로 곁에서 봤기에 알 수 있었다.
최근 크라이스의 머릿속에 소대장의 위력을 여실히 남겨 준 일도 있었다.
‘그 대련.’
아마 엔크리드가, 소대장이 전장에 나타나 이들과 검을 나누고 대련이란 명목하에 구르지 않았다면 그때 미치광이 소대는 끝장났을 터다.
그러면 이번 전장도 개판이 났겠지.
크라이스가 보기에는 그랬다.
이 모든 건 엔크리드가 바꿨다.
대련 한 번으로.
전장의 바람까지 역풍으로 불게 했으니.
‘구심점만 있다면.’
기동력을 십분 살린 미친 타격 임무? 미치광이 소대는 소화할 수 있단 거다.
크라이스는 이들의 실력을 보는 눈은 없었다.
애초에 자신은 검이나 무기를 다루는 일에 젬병이니까 그게 당연했다.
다만, 주어진 사실과 현실에 기반해 미치광이 소대가 할 수 있는 일을 가늠할 순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을 잘 알기에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그리하여 내린 결론, 첫 번째 수작이 이거다.
적이 화살로 지랄하면.
우리는 발로 지랄하자.
크라이스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엔크리드에게는 일부의 사실만 전했을 뿐인데도.
그가 지금 더 안으로 가자고 말했다.
소대장은 그럼, 제 의도를 아는 건가. 새삼 그게 궁금해져 물어보려는 순간이었다.
“흔들고 치고 빠진다. 아군 본대의 움직임에 눈과 귀가 팔릴 것이고, 그러다 보면 우리는 적이 부리던 유격대를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엔크리드가 먼저 말했다.
소규모 작전에 익숙하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그동안의 경험은 엔크리드에게 어떤 시각을 줬는가.
‘의도가 보인다.’
크라이스의 의도.
적군의 의도.
그사이에 해야 할 일.
아군, 더 정확히 말하면 미치광이 소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하면 되는 거였다.
이게 결국, 전쟁 국면에 영향을 줄까? 본대의 싸움에도?
‘그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또 모른다. 크라이스가 보는 시각은 다를지도.
눈 크고, 크로나를 밝히며, 미래의 꿈이 귀부인 살롱을 차려서 늙어 죽을 때까지 여자들과 노는 게 꿈인, 이 친구는 뭔가 생각하는 궤가 다른 듯했으니.
“아직도 살롱 차리는 게 꿈이냐?”
왜 이게 궁금한 건지는 엔크리드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그저 묻고 싶었다.
비웃을 의도는 당연히 아니었고.
자신이 누구 꿈을 비웃겠나.
“네, 물어 뭐 해요. 당연한 말을.”
그런 놈이 이런 전략을 짜? 하여간 모를 놈이다.
어쨌든 엔크리드의 부대는 기동력을 끌어올렸다.
산을 타고 또 탔다.
나중에는 핀조차 혀를 내두르고.
앤드류와 맥의 호흡이 거칠어졌고.
크라이스는 아우딘이 부축해서 반쯤 들고 다니는 수준이 될 정도로.
엔크리드도 꽤 힘들다고 느꼈다.
핀이 레인져로서 말하길, 이 정도면 엄청난 강행군이라 했다.
그렇게 산등성이를 타고 또 타고 움직이며 완만한 길을 내려와, 이번에는 평지를 걸었다.
아예 적의 후방으로 내려선 거다.
소수 정예, 지형의 이점을 활용한 행동이었다.
물론, 이건 적의 유격대가 먼저 써먹은 수법이었고.
“갑시다.”
지치지도 않는지, 신난 렘이 움직였다.
어째 다들 거친 일정에 오히려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그건 뭐, 엔크리드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가혹한 행군 뒤에 따라오는 건 무엇인가.
전투다.
피를 뿜어내고 살을 갈라, 뼈를 봐야 하는 그런 전투.
“조져.”
엔크리드가 말하며 내달렸다.
적의 후방, 틈이 많았다.
경계병이 셋으로 늘었으나, 문제는 없었다.
삑!
엔크리드와 일행을 발견하자마자 울리는 호루라기.
그와 동시에 작센이 옆으로 툭- 하고 몸을 날렸다.
티링.
검을 뽑고 찌르는 동작까지가 걸음 하나를 옮기며 이어졌다.
푹.
그렇게 하나.
찌른 검을 뽑아서 다시 푹.
그렇게 둘.
둘을 죽인 뒤, 검을 제 몸 앞에 수직으로 세워 방어 한 번.
땅!
작센의 싸움을 보고 있으면 사람을 참 쉽게도 죽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에 구멍이 난 적병 둘이 쓰러지고.
대여섯의 적병을 죽인 엔크리드 부대는 다시 뒤로 빠졌다.
그 뒤에는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 척하다가 쇠뇌 부대를 확인한 뒤에 도로 빠졌고.
뒤를 쫓는 정찰 부대 몇을 잡으며 역으로 전멸시켰다.
밤이 깊어지자, 산 깊은 곳에 숨어 야영지를 만들어 쉬었다.
충분한 휴식은 필수였다.
“냇가가 가까워서 좋긴 한데, 불을 못 피우니 좀 아쉽네.”
핀이 부츠를 벗어 흙을 털어 내며 말했다.
때는 봄이다.
마력의 계절이라 불리는 온난한 날씨다.
먹는 게 좀 허술해지긴 해도 추위에 몸을 발발 떨 일은 없었다.
이런 와중에도.
“보슈, 내 이럴 줄 알고 준비했지.”
추운 걸 질색하는 야만인 렘이 온열 가죽을 챙겨 오긴 했지만.
라그나는 아무 데나 드러누워서 잤고.
작센은 재주 좋게 나무 위에 올라 두꺼운 나뭇가지 위에서 잤다.
불침번은 돌아가면서 서되, 크라이스는 제외했다.
“제가 서겠습니다.”
다들 싸우느라 바쁜데 크라이스의 호위 역할만 하던 앤드류다.
그는 생각이 많은 눈으로 불침번을 자처했다.
그러라 했다.
마음의 짐이 있으면 평소에 나오던 솜씨도 나오지 않는 법이다.
아직 이 타격 작전에는 위험이 도사렸고.
그걸 무시할 순 없다.
마음의 짐은 덜어 버림이 좋으리라.
맥도 반대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이 됐을 때.
크라이스는 엔크리드가 자신의 의도를 확실히 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이지?”
몇 번의 산 고개를 넘었을 때, 재차 적군의 위치를 확인하며 하는 말이다.
함정, 크라이스는 적이 파 둔 무언가를 확인했다.
매복하기 좋은 지형이자, 습격하고 빠지기 좋은 지형.
그런 곳에서 적의 보급부대가 주둔한 걸 발견했다.
굴곡이 있는 둔덕 사이에 낀 평지다. 거기에 보급마차 몇 대가 보였다.
안으로 들어서서 뒤를 막으면 도망갈 구석이 마땅치 않다.
그 외에 함정이라 판단할 요소가 더 있기도 했다.
쇠뇌 부대를 배치하지 않았으니.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만든 거다.
그걸 보며 엔크리드가 물었고.
크라이스는 답했다.
“네.”
미치광이 소대의 저력이 기동력만 있는가?
아니다. 적의 뒤통수를 거하게 칠 수 있는 전투력에 있다.
이 한 번의 싸움으로 적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수놓을 수 있으리라.
크라이스의 눈에는 적의 반응이 보였다. 예측이고 예지다.
‘그러면.’
본대의 움직임 또한 유의미해지리라.
“가자.”
엔크리드도 각오를 다잡았다.
아무리 이런저런 예측을 한다지만, 전장은 본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덩이 같은 것.
수틀리면 제 몸을 태우기도 하는 게 불꽃 아닌가.
그럼, 지금이 짚을 짊어지고 불에 뛰어 들어가는 것과 같은가?
‘아닐 것 같은데.’
적군은 모르나, 엔크리드는 아는 것.
적들은 자신을 너무 얕본다는 거다.
거인을 죽인 병사? 겨우 그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선두는 엔크리드였다. 둔덕 사이에 있는 보급 마차 앞으로 뛰자, 어설프게 식량과 보급품 따위를 정리하는 병사들이 반응했다.
함정을 파려면 이렇게 파야 의미가 있을 터였다.
적병을 숨기는 게 아니라, 보여 주되 단단히 무장시키면 될 일.
적병이 보였다.
그사이 반가운 얼굴도 봤고.
“너.”
콧수염, 그레이 독 소속이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엔크리드는 눈으로 그를 보며 적을 맞이했다.
적병이 창이 찔러 들어오고.
엔크리드의 손이 움직인다.
칭! 칭!
두 번의 발검과.
챙, 푹!
두 개의 다른 소리.
왼손에 쥔 검으로 창을 튕겨 내고, 오른손에 쥔 검을 찔러 적병의 심장에 구멍을 냈다.
‘프록이 보면 기겁하려나.’
잡생각과 함께 검을 뽑자, 적의 갬비슨이 붉게 물들었다. 솜과 면을 뭉쳐 만든 천 갑옷을 뚫은 칼날이다.
칼날 위로 피와 실 조각 일부가 엉겨 붙었다.
칼날에 묻은 걸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후로도 연신 휘둘러 죽여야 할 테니.
치링.
엔크리드가 왼손에 든 검을 다시금 허리춤에 넣었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시기에 다시 뽑으면 되는 일이니.
그리한 채로 양손으로 검 하나를 쥐고 섰다.
그 모습에, 그 패기에, 그 기세에.
적병이 섣불리 다가오지 못했다.
“좋다! 좋아!”
옆에서 렘도 신이 나 도끼를 휘두르고.
아우딘도 웃으며 몽둥이를 꺼냈다.
작센은 굳이 나서지 않았다. 달려드는 적을 향해 무심히 검을 휘두를 뿐.
가장 주목을 받은 건 둘이었다.
엔크리드와 라그나다.
“음.”
그는 엔크리드 옆에 붙더니, 사정없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는데.
거추장스럽지도 않은지, 검 두 자루를 허리에 더 찼음에도 움직임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대로 라그나의 검이 허공에 섬뜩한 선을 남겼다.
훙.
중검식.
기본의 내려 베기에, 퍽 하고 적병의 머리통이 쪼개지고.
이후 뽑아낸 검을 수평으로 휘둘러 한발 물러난 적병의 목을 벴다.
라그나의 발이 연신 움직였다.
창과 검의 싸움에서 간격은 누구에게 유리한가.
당연히 창이다. 라그나의 발은 그 유리함을 없앴다. 지웠다.
날랜 발걸음 사이로, 적병의 목숨이 하나둘 사라지고.
함정을 판 적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건 뭘까.
이 정도 실력으로 고작 유격대로 나선다고?
아니, 뭔가 예상과는 다르지 않나?
이게 맞나?
적병의 숫자는 얼추 사십이 넘었다.
하물며 실력이 형편없는 이들도 아니었다.
“전원 대형 갖춰!”
그 가운데 콧수염의 외침이 터졌다.
엔크리드와 일행을 얕보던 이들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콧수염은 직접 엔크리드 앞에 섰다.
“너, 이 새끼.”
분노한 콧수염을 보며 엔크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척을 해 오니, 마주 인사를 해 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 음, 잘 지냈지?”
꽤 발랄하며 친숙한 말투였기에, 콧수염의 동공은 더 미친 듯이 요동쳤다.
화가 끓어오른 눈이었다.
곧바로 덤빌 것 같았다. 엔크리드도 대비했으나.
콧수염은 곧 숨을 크게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과연이라고 해야 할까.
어쭙잖은 상대가 아니다.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는다. 분노에 치우치는 대신 호흡을 고른다.
그러니.
‘더더욱 시험에 의미가 있겠지.’
두 개의 검으로 하는 싸움, 상대가 실력자라면 의미가 있을까.
지금 확인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