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161)
161. 마수를 상대함에 부족함은 없는 전력이었다.
중검식의 기본은 무게와 힘이다.
“힘으로 찍어 누르면 됩니다.”
“힘으로 부수면 됩니다.”
“거리를 좁히고 힘 있게.”
“무게를 실어서.”
“상대가 피할 엄두도 못 내게.”
라그나가 자주 하던 말이다.
창을 상대할 때도, 방패를 마주했을 때도.
갖가지 상황에 관한 답 중 대다수가 이렇게 나오곤 했다.
정검식은 조금 달랐다.
“형태를 가다듬어, 자신의 의도로 상대를 몰아넣으면 된다.”
루아가르네는 핵심부터 가르쳤다. 핵심 이후에 자잘한 것을 덧붙이는 방식인데, 그게 무척 효율적이었다.
프록은 때로는 가장 훌륭한 검술 스승이 된다는 말, 정말 수없이 들었는데.
‘비교되네.’
자신을 가르치는 소대원과 격차가 있다. 그렇다고 소대원 쪽이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엔크리드에게는 그쪽이 더 잘 맞는 편이기도 했다. 몸으로 구르는 쪽이 고통스럽다곤 해도 더 쉽다.
‘거칠지만, 직선적으로.’
거칠고 험하게, 그리 배우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어쨌든 루아가르네는 제대로 가르치는 법을 아는 프록이었다.
그리고 엔크리드는 배울 줄 알았고.
최선을 다해 들었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따라갈 수 있다.’
듣고 발악해도 어찌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시절이 그저 과거가 됐다.
고립의 기법은 결국 제 몸을 마음대로 다루는 기예다.
근육의 한 줄까지 뜻대로 하라는 의미가 깃든 기술이다.
여기에 칼날의 감각과 한 점의 집중이 더해지고.
야수의 심장이 대담함과 평정심을 준다.
새삼 깨닫게 됐다.
‘네 가지가 내 재능의 중심.’
노력으로 얻어 낸 자신의 무언가.
제 곁에 있는 이들이 준 양분이다.
그 양분을 씹고 맛보고 뜯고 즐기며 파헤쳤기에.
지금의 오늘이 있었다.
반복한 오늘이 있었기에 지금 프록의 가르침을 얼추 따라갈 수 있는 거였다.
그렇다고 해서 천재가 됐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저 전보다 나아졌다는 거지.
루아가르네는 엔크리드의 저조한 재능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질리지도 않았고 더 놀라지도 않았다.
담담했고 묵묵했다. 그저 가르쳤다.
와중에 검에 관한 상식과 이야기도 많이 흘러나왔다.
루아가르네는 아는 게 많았다.
“초심자가 배우기 좋은 건 쾌검, 초심자를 상대하기 가장 좋은 건 정검이란 말이 있다.”
빠름에 중점을 두는 건 배우기 좋고.
자신보다 약한 상대라면 정검은 백 중 아흔여덟은 이긴다는 말이었다.
그럼,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강한 건?
“중검과 유검이 유리하지. 상대가 방심하는 멍청이라면 쾌검도 좋고, 간담이 작고 의심이 많은 놈이라면 정검도 좋지만, 가장 유리한 거라면 난 환검을 꼽겠다.”
상대의 눈을 속이고 홀리는 검.
루아가르네의 말에는 다섯 형태의 검이 전부 어느 정도 이득은 있으나, 정답은 없다는 말과 같았다.
세상에 있는 일 중 어찌 모든 게 딱 정해진 답이 있겠나.
기질과 사상, 본인이 겪어 낸 경험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검술보단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과 같았고.
결론만 말하자면.
“너보다 강한 놈을 만났을 때는 눈치 빠르고 발 빠른 놈이 제일 유리하단 소리다.”
꾸륵꾸륵!
말하며 루아가르네는 웃었다. 이제 프록의 웃음소리에도 슬슬 적응하는 중이었다.
볼을 부풀리는 소리로 감정 표현을 한다는 걸 아는 것과 실제 이리 긴 시간 붙어 있으며 경험하는 건 다른 얘기였다.
이후에도.
“중검식은 본래 마물과 마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검이라는 이야기도 있지, 얼추 맞는 것 같지 않나?”
“정검은 유검과 어울리고 중검은 쾌검과 어울리지, 환검만 홀로 노니는 법.”
“검을 잡고 익히다 보면 다른 검술도 손에 붙기 마련이나, 가장 좋은 건 둥글게 전부 다 익히는 거다. 특출난 부분은 알아서 더 실력이 붙는다. 근데 넌 아닌 것 같으니, 더 부지런히 단련해야겠다.”
주관적 시선으로 보며 조언도 아끼지 않았으며.
“조금 전 늑대 마수를 벨 때는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때려야 했다. 그러면 지금 왼팔 어림에 찍힌 자국은 없었을 거다. 오른발에 무게 중심을 주고 유검식으로 흘려내란 말이었다. 더 자세히 하자면 이런 거고.”
전투 이후의 조언과 시범도 거듭 보여 줬다.
“자, 이렇게, 다시 해 봐라. 이거 막으면서.”
반복 수련이 이어졌다. 루아가르네가 직접 검을 들고 휘둘러 똑같은 상황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걸음을 늦추지도 않았다.
가르침은 식사 시간, 새벽, 불침번을 설 때, 자기 전, 다양한 시간을 쪼갰다.
매 순간, 엔크리드는 집중했고, 파고들어 배웠다.
“반응이 느리다. 눈으로 봤잖나. 그럼 피했어야지. 아니면 검으로 먼저 막았어도 됐다.”
파가각.
하이에나 마수 세 마리를 상대했을 때다.
무리를 이루면 누구보다 위험한 놈들이나, 세 마리 정도야 문제도 아니기에 나섰다.
옆구리를 긁힌 정도로 싸움이 끝났으나.
루아가르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엔크리드는 받아들였다.
받아들이면서 드는 생각, 정확히는 그녀의 말에서 시작된 생각이다.
같은 걸 수없이 지적당하면 당연히 문제를 직시하기 마련이니.
‘회피의 감.’
작센이 알려 줬으나, 아직 채 몸에 붙이지 못한 것.
‘협응력이라고 했던가?’
배울수록 할 것도, 익힐 것도, 단련할 것도 많았다.
그중 하나, 아직 채 몸에 익히지 못한 거다.
회피의 감.
동체시력의 단련으로 전보다 몇 배는 적의 움직임이 눈에 익었다.
가령.
붕- 하고 구울이 휘두르는 팔뚝의 궤적과 타점이 어디인지, 미리 알 수 있음에.
“정검은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함으로써 빛을 본다.”
보이기에 예측 가능했다.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생각한 대로, 우측 밑으로 내렸던 검을 끌어올리며 긴 호를 그렸다.
칼날이 걸린 구울의 팔뚝이 쩍하고 갈라지고.
휘두른 검을 그대로 정수리 위로 들어 손목을 돌린 뒤, 당겨 앞으로 휘두르는 수직 내려 베기.
구울의 머리가 비스듬히 세로로 쪼개졌다.
엔크리드의 검은 구울의 머리를 쪼개고 빗장뼈를 갈랐다.
딱 거기까지 가른 검이 멈췄다.
엔크리드는 일부러 힘을 줘 멈췄다.
프록 앞에서 심장 어림까지 가르는 건 예의가 아니니.
퍽.
발로 구울을 걷어차 검을 뽑아냈다. 두 번의 칼질로 끝난 싸움이었다.
“나쁘지 않군.”
루아가르네의 평가였다. 그때부터 쭉 엔크리드는 회피의 감과 정검식 기본에 몰두했다.
회피의 감은.
‘감도 안 잡히네.’
어떤 방식인지 알겠고 훈련 방식도 배웠다. 다만, 배웠다고 뭐든 몸에 붙는 건 아니다. 이미 몸으로 배워 익혀 아는 사실 아닌가.
야수의 심장을 처음 배울 때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한 점의 집중을 처음 배울 때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그때는 어떻게 배웠나.
하나는 죽음을 경험하며 깨달았고.
다른 하나는 천재의 방식이 아닌 둔재의 방식이 필요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환경이 필요한 걸까.
갈망이 끓어오르면 벽을 바랄 법도 했다.
뱃사공이 뭔가를 해 주길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엔크리드는 그런 걸 염두에 두지 않았다.
언제나 그러하듯 주어진 환경에서 그저 최선을 다했다.
그게 엔크리드였다.
번번이 튀어나오는 마물과 마수는 모두 훌륭한 시험관이었기에 엔크리드는 내심 반기며 검을 뽑곤 했는데.
“또?”
가시덤불로 가득한 언덕을 넘는 중에 핀이 성질을 담아 입을 열었다.
눈앞에 나타난 마수 무리를 본 직후였다.
“여기가 무슨 마경의 영향을 받는 땅도 아니고, 응? 이 씹, 괴물이 이렇게 자주 나온다고?”
분노다. 여실한 분노, 부정할 수 없는 분노.
마물과 마수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
그러므로 마물에게 저리 분노를 표출하는 건 타당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어떤 순간에 말도 통하지 않는 마물에게 저리 분노를 뿜어낼까.
결론만 말하자면 저건 마물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얘가 왜 이러나 싶었지만, 엔크리드는 금세 깨달았다.
수련에 몰두한다고 외면하던 것들.
검술 훈련에 좋은 대상이라 마물과 마수가 자주 나와 좋다고 했으나.
“슬슬 터질 것 같더니.”
옆에서 크라이스가 중얼거렸다.
꾸르륵.
프록도 수긍의 뜻으로 볼을 부풀리고.
“크릉!”
에스터는 재채기를 했다.
핀은 레인져다.
레인져란 뭐 하는 자들인가.
패스파인더가 길을 찾고.
맵 메이커가 지도를 만들고.
레인져는 안전한 길로 일행을 이끄는 이들이었다.
빙하를 보호한다는 글레이셔 레인져가 왜 대륙에 이름을 알렸는가.
그들을 왜 경이롭다고 할까.
깊은 숲, 마경과 버금가는 혹한과 마물이 노니는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니 그렇다.
그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일행의 안전을 보장하는 최고의 레인져다.
글레이셔 레인져를 고용해 빙하의 땅 안쪽에서 약초나 귀한 금속을 캐는 이들이 있는 판이니.
핀이 글레이셔 레인져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어느 정도 제 일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가는 족족 마물과 마수가 나왔다.
자신의 능력이 의심받는다고 생각할 법했다.
“우리 떠난 지 며칠이나 됐지?”
엔크리드가 화를 내는 핀을 일별하고는 입을 열었다.
“사흘이요.”
눈치 빠른 크라이스가 답했다.
개척마을까지 부지런히 걸으면 스무날, 마차에 올라 가도를 타면 엿새에서 이레다.
위험을 감수하는 길이 곳곳에 있지만, 레인져가 함께니 나름 빠르고 안전한 여행이 될 수도 있었다.
출발하기 전, 핀이 엔크리드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한 것도 있었고.
“마차라면 걸음이 느린 구울을 무시하고 가겠지만, 도보 여행은 그게 불가능하지. 하지만! 나 같은 레인져가 함께한다는 건 솔직히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냐?”
엔크리드의 눈에 웃으며 말을 건네던 핀과 지금 바짝 화가 난 핀이 겹쳐 보였다.
화가 날 만했다.
“네 탓이 아니다.”
엔크리드의 말에 핀이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아, 진짜 이게 뭔가 싶은데, 진짜 할 말이 없다.”
핀도 억울하긴 했다. 지금도 그랬고.
가시덤불 언덕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마물과 마수는 기본적으로 불편한 경로를 피한다. 그러니 여기도 그렇다.
움직일 때 가시가 가득한 덤불이 눈앞을 가로막는 길이었다.
어지간히 길을 찾는 재주가 아니라면 쉬이 들어올 곳이 아니다.
손도끼로 적당히 자르며 나가지 않으면 헤쳐 나가기도 까다로운 곳인데.
지금 눈앞의 마수를 보라, 아무리 가죽이 두꺼운 놈들이라 해도.
가시에 긁히는 걸 각오하고 여기까지 와서 덤빈다고?
이쪽 부근에서 자주 보이는 점박이 하이에나 마수였다.
그중 한 놈은 뭘 어쩌다가 왔는지 다리도 절룩였다.
피를 점점이 떨어뜨리는 놈도 보였고.
“이건 심상치가 않은데.”
프록이 중얼거렸다. 핀은 그게 괜한 위로처럼 들렸다.
엔크리드는 상관하지 않았다.
대신 마수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마수는 발작하며 달려드는 대신 경계심을 먼저 보인다.
저들이 경계심을 드높여 싸움을 준비하니, 엔크리드도 싸움을 준비했다.
등 뒤에 맨 배낭을 내려놓고 검을 뽑는 일 말이다.
“혼자 한다. 뒤로 빠져 있어.”
엔크리드가 나섰다.
하이에나 마수가 총 여덟.
적은 숫자는 아니다. 절뚝이는 놈이 하나가 섞였다고 해도.
많다. 많은 편이다.
본래 다수의 마수는 위험한 법이나,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사흘, 그동안 엔크리드가 죽인 마수와 마물을 보았으니.
대수롭지 않은 전투였다.
이번에도 엔크리드는 어깨 부위를 긁혔고 허벅지를 물릴 뻔했으나,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며 정강이 보호대를 이용해 하이에나 하나의 머리통을 걷어차는 것으로 위기에서 쉽게 벗어났다.
여덟 중 두 마리가 일행 쪽으로 왔으나.
하나는 에스터의 발톱에 맞아 머리통이 세 개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루아가르네가 발로 몸통을 걷어차 하이에나에게 한순간 새와 비슷한 고도를 선물했다.
기가 막힌 기술이었다.
발로 걷어차 배를 터트리는 것도 아니고 하늘을 날게 하는 건, 교묘한 힘 조절과 요령이 필요한 일이었으니.
엔크리드는 하이에나를 처리했다.
그렇게 계속 길을 나섰고.
“아, 진짜!”
핀의 짜증은 더 늘었다.
이번에는 줄무늬하이에나 무리.
“미치도록 나오네. 진짜.”
크라이스가 혀를 찼다.
그만큼 많이 만났으니.
스릉.
엔크리드는 다시 검을 뽑았다.
도시를 떠난 지, 스무날.
씻으려고 냇가에 자리 잡은 일행 앞이다. 하이에나 마수 열서너 마리가량이 튀어나왔다.
위기는 아니었다.
늑대인간 무리에 둘러싸였을 때도 버텼다.
하이에나 마수와 늑대인간은 비교도 할 수 없는 개체니.
촤악.
거기에 프록의 지원도 있었다.
채찍이 시원하게 땅을 갈겼다.
“녹슬기 전에 나도 손은 풀어야지.”
루아가르네가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다. 이 정도면 손을 푸는 정도였다.
탁- 하고 에스터도 앞발로 땅을 때렸다.
자기도 있다고 시위하는 듯했다.
물론 잊진 않았다. 이쪽은 레이크 팬서이자, 사람 말도 알아듣는 요망한 표범임에.
마수를 상대함에 부족함은 없는 전력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