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17)
17. 뒤에 눈을 달면
재주가 좋다면 이 안쪽에서도 창부를 만날 수도 있었다.
창부들도 도시나 시골 마을보다 부대 내에 들어오는 걸 선호한다고 들었다.
일단 평소보다 화대를 많이 받을 수 있으며.
알음알음한다곤 해도 이게 군법과 규율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
여기서 만나는 남자는, 병사든 지휘관이든 소란을 피우는 걸 극도로 피했다.
괜히 여자를 불렀다는 걸 들켜서 골치 아픈 일을 만드는 걸 즐기는 놈은 없을 것이다.
고로 여기는 돈 많이 주는 호구 천지라는 거다.
‘그렇다고 해도.’
재주도 좋네.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왕눈이가 주선했을 거고.’
“거, 음, 부럽다. 재주 좋네?”
“굳이 욕구 불만인 채로 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할 수 있다면 하고 사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작센은 셔츠 단추를 채우며 걸었다.
막사에 남은 여자와는 정말 화폐로 엮인 사이였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단추를 여미는 셔츠 사이로 빨갛게 부어오른 키스 마크가 보였다.
아주 뜨거운 한때를 보낸 듯했다.
작센의 붉은색이 섞인 갈색의 머리칼이 바람에 살짝 흩날렸다.
외모가 묘하게 매력적이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잘생겼다.
그래, 이 정도면 여자가 꼬일 만도 하지.
“무슨 일입니까?”
엔크리드를 슬쩍 보며 작센이 묻는다.
평소와 같다. 수더분하고 수수한 태도.
분대원 작센.
렘이 평가하기를, 빈틈을 후비는 걸 선호하는 변태.
엔크리드는 아주 잠깐, 전장에서의 작센을 떠올렸다.
렘이 질주하는 맹수를 닮았다면 이쪽은.
‘딱히.’
작센이 싸우는 걸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렘이 말해서 아는 것과.
창으로 적군의 등을 쿡 하고 찌르는 걸 한번 본 것.
그게 전부였다.
다만, 실력을 유추할 수는 있다.
그 렘조차 자잘하게 상처를 입곤 하는데.
이쪽은 그런 상처가 없다.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경미하다.
“너, 제대로 안 싸울 거냐?”
다만, 가끔 렘이 이리 말하며 으르렁거릴 때가 있었지.
그럴 때면 작센은 렘을 대놓고 비웃곤 했다.
“피를 보는 걸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서.”
“피를 보는 걸 안 즐기면 그냥 뒈지시든가. 아니면 여기에 있지를 마, 음흉한 새끼야.”
“그건 네 알 바가 아니고.”
“오냐, 머리를 쪼개 줄까, 몸통을 쪼개 줄까?”
“그 전에 네 심장에 엄지손톱만 한 구멍을 두 개만 내주지.”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팔뚝에서 피를 흘리며 도끼를 드는 렘과.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작센을 보며 엔크리드가 둘 사이에 섰으니까.
“서로 죽이고 싶다면 한 명이 적군 쪽으로 가는 게 더 편할 것 같은데, 굳이 여기서?”
이후에도 둘은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긴 했지만, 싸우진 않았다.
말로만 하면 안 되지만, 둘 사이로 몸을 밀어 넣으면 귀신같이 진정되곤 했다.
그렇게 말린 분대원이 어디 한둘인가.
렘은 작센을 음흉한 들고양이라고 불렀고.
작센은 렘을 미친 야만인이라고 불렀다.
엔크리드는 작센이 어디선가 주워 온 창으로 적군의 등을 찌르는 것도 봤다.
상대는 찔리고 나서도 작센의 위치를 찾지 못했다.
두리번거리다가 쭈그려 앉은 작센에게 발목이 차였다.
등에 창을 박은 채 바닥에 버둥거리던 적군의 모습이 선연하게 기억에 남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궁금했기에, 한가한 시간에 물었었다.
“상대 신경이 온통 전면에 쏠려 있었으니까 된 겁니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렘이야, 제가 알고 가진 걸 쉬이 알려 주는 편이지만.
작센에게도 같은 걸 바랄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엔크리드가 쉬이 포기하진 않았지만.
“분대장?”
작센이 발을 멈췄다. 어느새 엔크리드가 있는 의무 막사 앞이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을 듣고 생각에 잠겨 버렸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고민할 것도 없었다.
엔크리드가 4중대 4소대 사고뭉치 분대의 분대장이 된 건 노려서 한 게 아니다.
그 누가 계획해서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그러니, 고민할 필요가 없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묻고.
필요한 게 있으면 요구한다.
엔크리드는 분대원을 그렇게 대했다.
“만약 너 같은 놈이 내 등을 찌르면 어떻게 피하지?”
작센은 엔크리드의 말을 한 번에 이해했다.
몇 번이고 등 뒤로 몰래 다가가는 수법을 얼마나 알려 달라고 졸라 대는지.
지독할 정도였다.
며칠에 한 번씩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차라리 징징거렸다면 대하기 더 편했을 것이다.
적당히 겁줘서 쫓아내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분대장은 그러지 않았다.
알고 싶다, 배우고 싶다, 그런 열망만 보인다.
그 열정에 감복하진 않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그대로 두면 아마 이 분대에 있는 내내 저렇게 며칠에 한 번은 말할 것이다.
이 작자를 평생 알고 지내면 아마 평생 물어볼 것이다.
작센은 지독하다는 말을 쉬이 하지 않는다. 사람의 한계를 너무 잘 아니까.
정신력, 신념, 의지라는 말이 가진 허황함을 안다.
그런데도.
그에게 엔크리드는 지독한 인간이었다.
검과 무예에 관한 열정만큼은 어떤 누구보다 뜨겁다.
그 열정이 그를 이렇게 움직이는 걸까.
“왜 그렇게 배우려고 합니까?”
“그걸 알면 조금 더 살아남을 확률이 높겠지.”
버는 돈을 어디 교습소에 다 갖다 바친다면서 오래 살아남아서 뭐 하려고?
작센은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알아서 뭐 하겠나.
어차피 지나갈 인연이 아닌가.
이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작센은 성심껏 설명했다.
그렇다고 분대장이 그걸 익힐 순 없었다.
당연했다.
그건 이쪽 ‘계열’이 쓸 만한 게 아니니까.
그런데 오늘 질문은 조금 더 신선했다.
“늑골이 나간 게 눈먼 칼, 아니 눈먼 발길질에 당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작센으로서는 당연한 질문이다.
이전 전투에서 프록에게 차인 게 기척을 못 느껴서 그랬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큰 오산이니까.
“아니, 그건 상대가 무지막지한 거고.”
“그럼?”
드물게 물음이 이어졌다.
“궁금해?”
그 물음에 엔크리드는 오히려 되물었다.
그는 작센이 평소에 보이는 태도를 잘 안다.
그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모두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가까이 오지도 멀어지지도 않는다.
작센을 아주 친밀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만.
444분대를 제하면 그를 딱히 싫어하는 사람도 없다.
적당한 거리.
그게 작센의 평소 모습이다.
그러니 이리 묻는 게 어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엔크리드는 이렇게 물으면 작센이 더 묻지 않고 답을 줄 것을 알았다.
의도해서 이런 관계가 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지내다 보니 이들이 평소 보이는 반응과 스탠스는 잘 알았다.
“아니요. 아닙니다. 뒤에서 창을 찌르는 놈이 있으면 먼저 알아채면 됩니다.”
역시나 설명은 최악이다.
렘이 말하길 자신이 설명은 못 한다고 하지만, 작센이 비하면 그는 명가의 검술 선생도 해먹을 수 있을 것이다.
참 다행인 건 엔크리드는 이런저런 선생을 만나 봤고 경험해 봤다는 거다.
그중에는 실력보다 더 잘 가르치는 사람도 있었고.
실력은 괜찮지만, 가르치는 건 젬병인 사람도 있었다.
그 모든 선생, 모든 순간에 엔크리드는 돈값을 받아 냈다.
고로 잘 배우는 방법이야 차고도 넘쳤다.
“어떻게 먼저 알아채는데?”
엔크리드가 물었다.
“주변을 항상 둘러보면 됩니다.”
“둘러봐도 당하면?”
“더 자주 둘러보십시오.”
“종일 고개를 돌리고 다닐 순 없잖아?”
“분대장이라면 가능합니다.”
“아니, 안 돼.”
작센 자식은 가끔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렘처럼 농담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진지하다.
몇 번의 경험으로 엔크리드는 대응법을 알았다.
단호하게 못 한다고 하는 거다.
과연 그 단호함에 작센은 생각이 바뀌었는지, 주위를 둘러보더니 슬쩍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의무 막사 옆에 이런저런 짐을 쌓아 둔 곳이었다.
그 위에 대강 궁둥이를 걸치고 앉은 그가 옆 천막에 슬쩍 몸을 기대며 말했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오늘 하루는 길어.”
적어도 자기 전까지는 시간이 팽팽 남아돈다.
“끼니는 챙겨야죠?”
“한 끼 굶는다고 죽어? 내가 앞으로 너 대신 식사 당번을 평생 해 주지. 아, 물론 같은 분대에 속해 있는 내내.”
어차피 오늘 하루가 지나면 없어질 약속.
엔크리드는 약속을 남발했다.
“그 말 농담이면 재미없을 건데요?”
우스운 게, 444분대원 모두가 가장 싫어하는 게 설거지 식사 당번 따위다.
그것보다 전투가 낫다는 이들이다.
이유? 다른 분대원이 처먹는 걸 챙기는 게 싫고 이 새끼들이 먹은 걸 닦아 주는 게 싫단다.
한결같이 미친놈들이지만.
배울 건 많다.
적어도 전장과 전투에서만큼은 엔크리드에게 더없이 훌륭한 스승이었다.
만약 작센이 이걸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따위 걱정할 시간에 집중이나 하고.
그래도 안 된다면 다른 오늘에서 렘이나 다른 분대원을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전장에서 잔상처가 남지 않는 병사.
작센이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갖췄는지는 모른다.
직접 눈으로 본 건 없다.
다만, 결론이 그를 대단한 병사라고 말한다.
렘의 태도가 작센의 실력을 방증한다.
그럼 배울 게 있을 것이다.
그게 딱히 지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분명 나중에는 쓸 만할 것이다.
야수의 심장은 뭐, 배울 때부터 쓸 만했던가.
“빈말할 만큼 한가하진 않아.”
“아까는 오늘 내내 시간이 있다면서?”
“그건 다른 얘기고.”
“좋습니다. 약속은 지키겠죠.”
엔크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아예 작센 앞에 주저앉았다.
오가는 병사 몇이 둘을 봤지만, 딱히 말을 거는 이들은 없었다.
오가는 병사와 물자 수레 사이에서 둘은 마주 앉았다.
한쪽은 짐에 앉아서 눈높이가 높았지만.
그게 딱히 신경 쓰일 수준은 아니었다.
작센은 묘한 기분이었다.
엔크리드는 철퍼덕 주저앉더니 자신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자갈이나 박힌 돌 따위가 있으니, 불편할 법도 할 텐데.
무엇보다 수레가 오가며 흙먼지가 일어나는데도 그런 환경 따윈 잊은 눈이다.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자신의 얘기에 집중한다.
그 눈빛의 진지함에 작센이 입을 열었다.
“사람에겐 오감이란 게 있습니다.”
“눈, 코, 귀 그런 거 말하는 거야?”
“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죠.”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올까?
그런 의문이 들 법도 하지 않나?
엔크리드에게 그런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저 경청한다.
좋은 태도였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올 만큼.
본래는 오감만 단련하면 된다고 말하려고 했던 작센은 설명을 시작했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 소리였다.
“계속 고개를 돌릴 수 없다면 뒤에다 눈을 달면 됩니다.”
마음에서 나왔다고 입에서 나온 말이 친절하란 법은 없다.
작센은 자신이 말하고도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설명이 잘못됐다.
“그렇군.”
그런데 엔크리드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거 참.’
작센은 말을 골랐다.
이런 걸 가르칠 줄은 몰랐지만.
안 될 건 없으니.
수련한 것의 일부만 가르치면 될 것이다.
그동안 봐와서 안다.
분대장은 평범하다. 그의 감각 또한 그렇다.
타고난 게 없다는 거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 하는 훈련은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효율이 나온다. 꾸준히 서너 달쯤 하다 보면 꽤 괜찮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본래는 동굴 같은 곳에 가둬 두고 하는 수련이다.
그보다 더 좋은 수련은 뭐, 분대장을 죽이기로 작정한 암살자에게 수십 번 목숨을 위협당하면서 하면 더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니.
“눈으로는 항상 사방을 둘러볼 순 없지만, 귀로는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마물 오줌 같은 설명이었지만.
“아, 그래, 소리는 앞과 뒤를 가리지 않으니까.”
경청하는 자세의 엔크리드는 금세 말을 알아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리도 앞과 뒤가 있습니다. 소리를 구별하다 보면 청각이 발달하게 될 겁니다. 가령 앉은 자리에서도 할 수 있는 훈련이죠. 자, 들어 보십시오.”
당연히도 이런저런 소리가 들렸다.
수레 구르는 소리, 투덜대는 병사의 말소리, 신음을 흘리는 병자의 소리, 참으라는 무감각한 의사의 목소리, 그 외에도 오늘따라 꽤 세게 부는 바람에 천막에 꽂은 깃이 파라락거리는 소리까지.
짧은 침묵 끝에 작센이 말했다.
“오늘은 서풍이고 의사는 여기서 앞쪽으로 세 번째 막사에 있군요. 그리고 저 수레는 왼쪽 바퀴 이음새가 헐거워져 있고요. 운이 좋다면 이틀 뒤에, 운이 나쁘다면 오늘 바퀴 이음새가 틀어지겠군요.”
그 말대로였다.
잘 구르던 수레바퀴가 우드득 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무너졌다.
“에이, 진짜!”
수레를 몰던 병사가 짜증을 버럭 냈다.
“소리를 구분하고 분간하면 항상 주변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엔크리드는 놀랐다.
이런 게 되는 건가? 된다는 거야 지금 작센이 보여 줬다.
“뒤에 눈을 다는 법, 청각 단련입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청각 수련은 환경이 중요하지, 수련 방법이 어렵진 않다.
그저 소리를 구분하는 게 전부니까.
물론 쉽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같은 소리를 계속 반복해서 듣고 구분하면 더 도움이 되겠네? 그게 익숙해지면 다른 방식으로 하고?”
분대장은 검술을 비롯한 무예 실력과 별개로 확실히 듣는 건 잘했다.
잘 듣는다는 건, 이해가 빠르다는 말과도 같았으니.
분대장은 금세 작센의 말을 이해했다.
“네, 맞습니다. 무음으로 움직이는 암살자의 걸음이나 기척을 읽는 법 중에는 주변에 흐르는 공기 소리로 구분하는 것도 있습니다. 잘 아는 암살자가 있다면, 몰래 목을 노리고 오라고 하면 좋을 겁니다. 그게 제일 좋은 훈련 수단이 되겠지요.”
이후에 한 얘기는 반은 농담이었다.
실제로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으니까.
농담이긴 했으나, 확실히 필요치 않은 말을 하긴 했다.
쓰레기 같은 설명을 척척 이해하기에 작센이 자기도 모르게 말한 거다.
분대장과는 영영 연이 없을 이야기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랬는데.
“그래?”
분대장은 오히려 눈을 더 빛낸다.
참 알 수 없는 인간.
작센은 엔크리드를 그리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