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191)
191. 백사자
아우딘은 만티코어를 말 그대로 가지고 놀았다.
숫제 뺨을 후리는 거로 그렇게 보이게 했다.
처맞던 만티코어가 꼬리를 말았다. 뒤로 슬그머니 물러났다.
크르릉.
바닥에는 놈의 날카로운 이빨과 빠진 털, 검푸른 피 등이 흩뿌려졌다.
만티코어가 꼬리를 말자, 아우딘은 여전히 자애로운 미소로 손을 까닥였다.
“갈 시간입니다. 마물 형제님.”
말투는 여전하나, 내용은 아니었다. 일종의 사형선고였다.
만티코어가 한쪽 발을 뒤로 뺐다. 누가 봐도 겁먹은 모습이었다.
그대로 냅다 도망갈 것만 같았다. 지켜보는 병사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했으나, 아우딘은 아니었다.
만티코어는 상급 마물, 매우 영악한 놈이니.
그리 뒤로 빼다가 갑자기 앞으로 달려든다. 그야말로 기척도 소리도 없는 불의의 일격이었다.
쑥 솟은 발톱을 세워 찌르고, 꼬리가 위에서 밑으로 세차게 꽂혔다.
아우딘은 예상했기에 차례로, 앞발은 쳐 낸 뒤에 꼬리를 잡아채서 달려오는 힘과 더해 엎어치기 하듯 바닥에 메다꽂았다.
꽝!
폭음과 함께.
크르응!
만티코어의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상급 마물, 그것도 홀로 중대 병력을 상대할 괴물이었으나, 상대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바닥에 메다꽂자, 사방으로 돌 파편이 튀었다. 놀랐던 병사들은 이제는 숫제 응원단으로 변했다.
“잘한다!”
“오!”
“미치광이!”
그중에 미치광이란 말은 왜 붙는지.
아우딘은 만티코어에게 다가가서 뺨을 몇 번 더 후렸다.
그렇게 몇 번이나 이 괴물을 패대기치다가 어느새 성큼 놈의 등에 올라타 목을 잡더니 뒤로 뿌득, 하고 꺾었다. 그 만티코어가 뱀을 닮을 혀를 쭉 내밀었다.
눈깔이 돌아간 놈은 가느다란 숨을 내뱉는 걸 마지막으로 허물어졌다. 쿵- 하고 이마가 바닥에 떨어지며 소음이 일었다.
뺨을 세차게 얻어맞던 상급 마물은 그대로 고가의 사체가 되었다.
이빨부터 가죽, 내장까지 전부 꽤 비싼 놈이었다.
“너 뭐냐.”
한쪽에서 황당함을 가득 담은 물음이 들렸다. 병사들이 모인 반대편이다. 아우딘을 기준으로 우측에 병사 무리가 있었고, 목소리는 좌측에서 들렸다.
“이런 마물이 혼자 올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에서 오신 형제님이십니까?”
아우딘은 달빛을 등지고, 만티코어의 등에서 일어났다.
그의 말이 향하는 곳, 성벽 끝 갤러리 위에는 어느새 올라온 사교도가 있었다.
아우딘은 예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급 마물은 영리하고 영특하다.
인간이 만든 성을 보고 덤비는 멍청함과 만티코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나 이리 두들겨 맞고도 끝까지 덤벼? 이건 어울리지 않는 짓이다.
굶주림이 심해서 덤비는 거면 모를까.
아니 그렇다고 해도, 슬그머니 도망가도 무방하게끔 틈을 보여 줬음에도 마지막까지 계속 덤볐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걸 조종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우딘은 그 상대가 나오길 기다렸다.
싸움이 길어진 이유였다. 그 상대의 기척을 느끼자마자 만티코어를 죽인 거였고.
이제 쓸모가 다 했으니까.
“감히!”
숫제 그리 외치던 놈의 눈에 푸르스름한 빛이 어렸다. 아우딘은 그걸 알아봤다.
사교의 흔적.
그는 신을 모시는 종임에.
“사교를 모시는 형제님이시군요.”
나지막한 읊조림이다.
이단 심문관으로 보낸 나날 중 이런 것들도 있었다. 사교도를 때려잡던 나날들 말이다.
눈이 파랗게 빛나는 사교도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 동작이 이어지는 와중이었다.
병사들은 놀라서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다.
틈이었다.
꽝!
아우딘이 사라졌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땅을 박찬 몸이 만티코어보다도 빠르게 공간을 좁혔다.
펑!
땅을 박찬 소음과 별개의 굉음이 터지고.
병사들의 눈에는 한쪽으로 날아가 벽에 처박힌 덩어리만 보였다.
허공에 손가락을 까닥이며 경련하는, 이제는 시체가 된 덩어리였다.
“신께서 굽어살피시니.”
홀로 기도문을 읊는 아우딘의 목소리가 아련히 울리니.
병사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오른 주먹을 뻗은 자세로 멈춘, 곰과 같은 덩치의 괴물이 있었다.
미치광이 소대의 아우딘.
이제는 독립 중대가 된다는 소문이 파다한 부대의 일원.
아우딘의 일격은 병사들의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일이 벌어졌고, 결과만 남았으니.
아우딘은 주먹을 뻗은 자세에서 손을 모아 평소의 그로 돌아왔다.
병사들은 날아간 덩어리를 살폈다. 갤러리 벽에 부딪혀 부서진 몸뚱이가 보였다.
반쯤 우그러진 몸뚱이에 있어야 할 게 없었다. 목 위가 허전했다.
“머리가 어디 갔지?”
모르겠다. 정확한 건 저 미친 종교쟁이가 주먹 한 방으로 사람 하나를 그냥 슥삭 이 땅에서 지워 버렸다는 것뿐.
갤러리 한쪽에 방사형으로 뿌려진 피가 그 증거다.
“……나 진짜 쌌다.”
한 병사의 가랑이 사이로 지린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더 두렵다. 어떻게 저런 인간이 있을 수는 있는 건가.
죽은 만티코어와 사교도.
병사 대부분은 제대로 된 상황 파악도 못 했다.
그나마 뒤늦게 갤러리 위로 올라온 소대장 하나가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습격, 어, 제거했네? 지금 밖에 소란이 있는 걸 보니, 또 다른 놈들도 온 것 같으니까 전부 밑으로 내려가서 지원을…….”
“그럴 필요 없습니다. 형제님.”
기도 이후에 멀뚱히 성벽 밑을 바라보던 아우딘이 말했다.
“에?”
“끝나갑니다.”
아우딘의 눈에 싸우는 제 중대장이 보였다.
그동안의 대련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전에서 보는 중대장은 또 달랐다.
‘더 늘었군요, 형제님.’
몸을 쓰는 법과 검을 휘두르는 모습에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자신감과 더불어 믿음, 그런 것들.
처음의 그를 안다면 정말 비약적인 발전이라 할 수 있을 터였다.
그게 못내 기껍다. 어쩌겠는가, 저치가 잘되는 걸 그저 바라게 되어 버렸으니.
‘당신의 종이 묻나이다. 이건 당신의 뜻입니까? 당신이 그를 인도하였나이까?’
여전히 그의 주는 답을 하지 않으나.
다만, 이제는 꼭 답이 필요하진 않았다. 아우딘 또한 이곳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 시작은 엔크리드를 통해서였고.
‘답이 필요하다는 건 나의 나약함의 증거일지니, 방증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은 채 나아가리.’
저기 그리 사는 사람이 있다. 성전의 말씀에 따라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고난을 헤쳐 나가는 그런 인간.
그런 사람을 지켜보는 게 어찌 기껍지 않을까.
아우딘은 제 삶을 태워 가는 엔크리드에게 축복이 있길 바랐으나.
그는 스스로 축복을 쟁취해 나아갔다.
그러므로 이제 그를 위해 기도는 해도, 신께 무언가를 조르진 않아도 되리니.
“좋습니다.”
뭐가 좋다는 건지, 곰탱이를 보며 소대장은 눈을 깜빡였다.
근데 진짜 안 내려가도 되는 건가?
밖의 소란이 못내 신경 쓰인 그는 그래도 발을 놀렸다. 밑으로 내려가자, 배에 구멍 난 병사와 허벅지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병사가 보였다.
“저놈 첩자입니다.”
배를 감싸 쥔 병사가 말했다. 지혈 때문인지 제 옷으로 배를 꾹 누른 채다.
소대장은 제 뒤를 따라온 병사에게 말했다.
“잡아 둬라.”
소대장은 엔크리드가 버리고 간 첩자를 줍고서, 열린 쪽문 밖을 살폈다.
성벽 위에서 볼 때는 제대로 보이지 않던 싸움이다.
그곳에서 홀로 검은 옷을 입은 무리를 썰고 찔러 죽이는 사람이 보였다.
잘 아는 얼굴이었다. 지금 보더 가드에게 가장 유명한 작자, 바로 미치광이 소대장이었으니.
* * *
검은 칼 도적단은 환장할 노릇이었다. 특히나 둔바켈은 뭐랄까,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기사? 아니, 기사단원인가?”
둔바켈이 입을 열었다. 손은 시미터에 올린 채다. 이거 상대가 너무 나쁜 건가?
아니면 자신들이 뭘 모르고 온 건가.
자신과 함께 온 이들 중 다섯이 시체가 됐고.
둘은 한쪽 다리가 잘렸다.
고위 사제가 와서 당장 신성력을 쏟아부어도 이제는 절름발이가 될 신세다.
당연히 그런 사제가 올 일도 없을뿐더러, 온다고 해도 신성력을 쏟아부어 줄 리도 없으니, 불구가 될 것이다.
그것도 운이 좋아야 그리되겠지. 출혈량을 보니 조금 있으면 뒈지게 생겼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상대가 제 검을 앞뒤로 뒤집어 보며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이는 게 보였다.
제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여유가 엿보였다.
“너 진짜 뭐냐.”
둔바켈이 황당함을 담아 묻고, 엔크리드는 다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살의를 가진 작자에게 제 꿈이 기사고, 아직은 기사가 아니라고 줄줄이 설명할 게 아니라면 할 말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그것보다 엔크리드는 검, 정확히는 칼날을 살폈다.
‘기가 막히게 잘 드는데.’
허벅지 부근을 벨 생각으로 칼을 휘둘렀는데, 두툼한 가죽 바지를 그대로 깔끔하게 갈랐다.
절삭력이 남다르다. 이건 대장장이가 검을 잘 갈아 둔 덕인가, 아니면 검 자체가 훌륭한 건가.
둘 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폼멜로 잡아 둔 무게 중심도 좋고, 감아 둔 가죽끈도 손에 감긴다. 절삭력과 더불어 검 자체의 강도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딱 봐도 단단함이 절로 느껴졌다.
발레리산 강철은 아닌 것 같은데도, 상당히 품질이 좋은 상급의 검이었다.
엔크리드로서는 처음 가져 보는 고급품이라고 해야 하나.
이 정도 검은 정말 처음이었다.
“안 오나?”
엔크리드가 바람을 담아 말했다.
검을 더 사용해 보고 싶었다. 물론 이제 몸에 익은 기술도.
렘을 욕구불만으로 치부했는데.
‘나도 마찬가지인가.’
어째, 더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나다니.
둔바켈은 상대의 말에 인상을 썼다.
‘어디서 이런 놈이?’
냄새부터 다르다. 수인의 예민한 코는 상대의 수준을 알아보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정확히는 제 목숨을 보전하는 본능의 영역이지만.
둔바켈은 슬슬 감이 왔다.
‘여기가 내 무덤인가 본데.’
그래서, 그러면 도망가야 하나?
그러고 싶진 않았다.
뭐, 반쯤은 죽으려고 살아온 삶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이쯤에서 삶이란 책을 덮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다.
싸우다 죽길 원했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것, 둔바켈은 각오했다.
무엇보다 마지막 상대로 나선 놈이 나쁘지 않았다. 생긴 것도 실력도 둘 다 마음에 드는 상대라니.
‘차고 넘치지.’
둔바켈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자기도 모르게 킥 웃었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은 웃음이다.
그 소리에 검은 칼 도적단 중 유일하게 홀로 남은 놈이 흘겨봤다.
놈에게서 겁먹은 자 특유의 냄새가 났다.
지린내와 비슷한 냄새다.
“혹시 너, 살고 싶냐?”
둔바켈은 남은 동료에게 물었다. 이름도 모르는 도적놈이다.
“뭐?”
미친년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이건가?
“아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왁 하고, 부푼 근육으로 이뤄진 주먹이 놈의 안면에 꽂혔다.
꽝!
묵직한 소음과 함께다.
“뜨그윽!”
짧고 묘한 단말마를 흘린 놈의 발이 허공에 붕 떴다.
주먹 한 방에 우직- 하고 안으로 쑤셔 박혔던 오른쪽 눈알이 튕겨 나오고 피가 흩뿌려지며, 부서진 얼굴 뼈가 옆으로 삐죽 솟았다.
아니, 일부는 부서지며 후두둑 사방으로 튀었다.
긴장한 채로 엔크리드만 주시하던 놈은 그대로 얼굴 한쪽이 함몰되었고, 당연히도 죽었다.
“좋은 묫자리다.”
둔바켈은 주먹을 뻗은 채로 말했다. 그녀는 제 행동을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제 진면목을 보였다.
“야, 제대로 붙어 보자.”
둔바켈이 말한 순간, 그녀의 눈이 달라졌다. 동공이 세로로 쭉 찢어지며 짐승의 그것처럼 변한다.
크르르르르.
늑대인간 따위와 수인이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
외형부터 달랐다.
본래 수인은 인간 형태에 짐승의 특징이 가미되는 수준이다.
때문에 그들은 이런 변신 따위를 하지 않는다.
야생의 무언가가 깃들어 약간의 형태 변환을 한다곤 해도, 늑대 대가리를 갖거나 하진 않는다는 거다.
송곳니가 솟고 눈이 변하고 털이 조금 길어질 때도 있으나, 그렇다고 인간의 형태를 크게 벗어나진 않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보통의 수인은 그랬다.
하지만 둔바켈은 달랐다.
인간의 무언가가 남은 채로 짐승의 피가 전신을 치달림에, 둔바켈은 변하기 시작했다.
부수수수.
전신에 길고 흰 털이 솟기 시작했고.
얼굴 골격이 꾸드득 소리와 함께 사자의 그것처럼 변했다.
엔크리드도 살면서 수인을 몇 명 봤지만, 이런 건 처음이었다.
얘, 왜 변신하냐.
설명은 길었으나, 순식간에 뚝딱 변했다.
“마물?”
엔크리드가 물었다. 저 자식 말은 할 줄 아는 건가?
그 형태가 마치 라이칸스로프의 그것과 닮지 않았나.
물론 상대의 외모가 사자, 그것도 흰 털을 휘날리는 사자와 같았고 풍기는 기세도 엄청 다르긴 했다.
솔직히 마물보다는 어떤 전설이나 신화에서 천상의 신전을 지키는 파수꾼 같은 모습이었다.
적어도 엔크리드는 그렇게 느꼈으나, 처음 떠오른 단어는 역시나 마물이긴 했다.
“크르릉,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
둔바켈은 울음을 토하며 말했다. 변신하면 생기는 입버릇이었다.
엔크리드는 상대의 기세나 태도, 말투에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묫자리라는 게 자신의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마치 자신이 죽고 싶어 하는 듯해서.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올 거냐?”
“당연하지! 크릉!”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펑 하고 땅을 찬 백사자가 달려들었다.
왼손에서 쑥 하고 솟은 손톱을 크게 긋고서, 반대쪽 손으로는 어느새 뽑은 시미터를 휘두른다.
손톱과 칼날이 교차하며 엔크리드의 가슴팍과 허리춤을 노렸다.
그걸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본 엔크리드는 검을 바로 세우고 흔들듯 앞으로 두 번 내리쳤다.
두 번 다 끊어치기, 충격을 담은 일격이다.
순간 괴력의 심장을 발동, 바인드할 여지도 주지 않는 방어 기법이었다.
힘으로 쳐 내기다.
쩡!
땅!
손톱을 쳐 내고 시미터를 쳐 냈다.
그럼에도 수인은 멀어지지 않았다.
불굴의 돌진, 죽음을 각오한 돌격이다.
엔크리드는 순간 당황할 법도 했다.
그만큼 둘 사이가 가까웠고, 백사자는 제 공격이 막히는 건 당연히 예상했다는 듯 목을 젖히더니 이마를 들이밀었으니까.
‘발렌 식 용병검?’
돌격 이후 박치기, 익숙한 공격기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