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198)
198. 교본은 둘
주먹을 쥔 놈이 땅을 지르밟으며 내달렸다. 발목이 탄력적으로 휘어지며 몸을 밀어낸다. 무릎과 허벅지에 이어 상체까지 이어진 완벽한 힘의 전달.
고로 무섭게 빨랐다. 그렇지만 반응하는 게 어려울 수준은 아니다.
당연히도 렘의 상대는 아닐 터였다.
렘이 왼손에 든 도끼를 비스듬히 들어 내리치는 시늉을 했다. 놈의 주먹이 닿기 직전, 머리통이 두 개로 변할 순간에 달려들던 놈의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
흐릿한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순간 가속으로 상대의 눈을 흐리는 수법이었다.
붕!
렘의 왼손 도끼가 허공을 긋고.
거리를 좁힌 격투사가 오른발을 축으로 왼발을 쾅 찍으며 너클 낀 주먹을 뻗었다.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배운 놈이었다.
그리고 퍽!
“거, 왜 도끼에 목을 들이대고 그러나.”
소음 이후 렘의 평온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엔크리드는 조금 전 자신이 봤던 장면을 되새겼다.
일정한 속도로 달려들다가 템포를 바꾼 돌격.
아마도 저 일격을 쉬이 받아 내는 작자가 없었을 거다.
잘해야 피하는 게 전부였을 것이고, 상대가 피한 뒤에는 거듭 제 거리에서 공격을 이어 가는 게 상대의 싸움 방식이었을 거다.
아우딘도 말하지 않았나.
“주먹을 쓰는 격투사는 그 누구보다 거리 조절에 힘쓰지요, 형제님.”
그 거리를 선점하려는 돌격에 렘의 대응은 무심할 정도였다.
왼손 도끼로 얼추 맞장구쳐 주는 척하다가 오른손에 든 도끼를 왼손보다 몇 배는 빠르게 휘둘렀다.
상대와 비슷한 전법이었으나, 결과는 달랐다.
빛살처럼 날아간 도끼날이 목을 쳐서 잘랐다.
머리를 잃은 주먹이 그대로 렘의 배를 툭 쳤다.
당연히 위력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잘려서 날아간 머리가 허공에 둥실 떴다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주먹을 뻗은 놈의 몸은 렘이 도끼를 쥔 채 손등으로 밀어내자 그대로 허물어졌다.
“만만한 놈이 아니다. 전부 방심하지 마!”
미늘창을 든 상대가 외쳤다.
그러곤 렘을 향해 다섯 놈이 붙었다.
남자만 다섯이다. 삼지창과 검을 든 놈이 셋, 거기에 단검을 만지작거리는 놈까지 해서 다섯.
“신나는구만.”
렘은 그 다섯을 두고도 평온했다. 아니, 평온함을 넘어서 즐겁다는 듯 어깨춤까지 췄다.
라그나는 검 그립에 손을 올린 채로 앞으로 척척 걸어갔다. 미늘창을 든 놈을 향해서다.
“죽여!”
미늘창이 외쳤다. 그 순간, 나뭇가지 위에 있던 여자 도적이 뭔가를 쐈다.
핑!
짧은 화살이 라그나의 어깨를 노렸다. 라그나는 몸을 틀어서 화살을 피하고, 그 동작 그대로 연이어 검을 뽑았다.
마치 준비된 것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칭, 뽑은 검을 그대로 크게 긋자, 미늘창을 든 남자가 제 무기를 앞으로 가져다 댔다.
탕!
“음!”
그리 힘이 실리지 않은 참격이라 생각했을까?
검을 막은 미늘창의 몸이 잠깐이지만 옆으로 기울었다.
그때, 다시 핑- 하고 두 번째 화살이 날아왔다.
라그나는 당연히도 피했다. 짧은 화살이 바닥에 꽂힌 돌덩이에 맞곤 땅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저 위.’
엔크리드의 눈에도 화살의 시작점이 보였다. 나무 위다. 작은 덩치 하나가 손목 위에 있는 장치로 화살을 쏘는 거였다.
엔크리드도 움직였다.
휘슬 대거는 없지만, 제대로 배운 탄검식은 있다.
한순간 시간을 늘린다. 한 점의 집중을 발동, 상대와의 거리를 가늠한 뒤에 손을 털었다.
검을 쥐지 않은, 이제는 오른손만큼 능숙하게 쓰게 된 왼손이다.
집중력과 예민한 감각을 더해 던진 단검이 허공을 갈랐다.
나무 위에 있던 놈은 원숭이처럼 나뭇가지에 다리를 걸곤 휘릭 거꾸로 돌아 피했다.
퍽!
단검이 놈이 있던 곳을 지나 두꺼운 나무 몸통에 꽂혔다.
“죽여라! 룸트!”
그걸 본 미늘창이 외쳤다. 곧 엔크리드 앞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단검 두 자루를 든 놈이었다.
룸트라는 놈의 눈이 엔크리드의 허리춤을 훑었다.
거기에는 이전에 호위를 죽이고 건진 단검이 걸려 있었다.
“너, 그 단검…….”
“선물 받았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숨도 안 쉬고 답하니, 룸트가 미간을 찌푸렸다.
눈썹 숱이 적고 눈의 검은자위가 유난히 작아 살벌한 인상이었다.
뭐, 인상의 살벌함과 실력은 별개니 상관없는 일이었다.
‘용병 쪽에서야 흔한 얼굴이지.’
용병 중에는 흉터로 얼굴을 장식해, 보기만 해도 살벌한 놈이 깔리고 깔렸다.
“내가 가르치던 놈이다.”
상대의 나이는 마흔 줄, 저 나이에 일선에서 싸울 정도면 꽤 대단한 실력일 것이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가르치던 놈보다는 나을 테고.
어디 놀의 리더보다도 나을까?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거기에 바라는 게 있다면.
“혼자서 할 거냐?”
렘에게 다섯, 라그나에게 셋.
자신은 왜 한 명인가.
나머지 하나는 연신 나무 위를 오가는 원숭이 놈이고.
렘은 다섯을 상대로 실실 웃으며 도끼를 흔드는 중이었다.
다섯 명의 상대는 신중함을 보였다.
일격에 제 동료를 죽인 걸 봤으니.
미늘창도 신중했다.
숫자가 우위에 있다면 무작정 돌격하는 것보다 천천히 포위하는 게 유리한 법이었다.
미늘창과 동료 둘은 라그나를 두고 둥글게 섰다.
그건 렘을 상대하는 놈들도 마찬가지고.
“널 죽이고 저 수인년도 가랑이를 찢어 죽일 것이다.”
검은 옷의 호위와 무슨 관계였는지는 몰라도 단단히 화가 난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쉬이 덤비진 않는다. 신중해서? 아니, 경험이 많아서 일 것이다.
엔크리드는 굳이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툭, 땅을 차고 나아간다. 라그나에게 들은 몇 마디로 새로이 검술에 어떤 깨달음을 얻은바.
한 점의 집중을 유지한 채, 감각의 날을 세운다.
상대가 뿜어내는 찌릿한 살기가 피부를 찔렀다.
엔크리드가 달려들자, 룸트의 두 손이 움직였다. 빨랐다. 정말 무섭게 빨랐다.
휙휙 하고 두 손이 움직이자, 칼날이 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로 보일 정도로.
엔크리드는 정검식을 기본으로 삼아 검을 내밀었다. 내밀어 막으면 쳐내고 안으로 감아 찌를 생각이었다.
상대는 두 개의 단검을 휘둘러 엔크리드의 검을 쳐 냈다.
땅!
힘이 아닌 기술이 가미된 쳐 내기다.
칼날의 중심을 때림으로 균형을 흐트러뜨리는 그런 기술이었다.
엔크리드는 본래 노린 곳을 찌를 수 없었다. 검 끝이 흘렀다. 검이 흐르는 사이, 놈이 다가와서 단검을 쑤셨다.
순간적으로 시야를 벗어나는 궤도였다.
아래에서 위로.
오롯이 육감의 영역에서 칼날이 다가오는 걸 느낀 엔크리드는 왼발 엄지에 힘을 주고 몸을 멈췄다.
덜컥하고 순간 몸의 움직임을 제한.
그대로 팔꿈치를 당기며 다가오는 단검 끝을 팔뚝 보호대로 막으려 하자, 단검이 뱀처럼 휘어지며 턱을 노렸다.
변칙적이며 빠르고 과감하다.
엔크리드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픽 하고 칼끝이 턱을 스쳤다.
이후 뻗어 나간 검을 회수하며 안으로 당기자, 상대가 옆으로 굴러 피했다.
그러곤 단검 두 개를 교차하며 자신을 노려봤다.
그 눈이 묻는 듯했다.
‘그걸 피해?’
엔크리드는 대수롭지 않게 다시 검을 내밀었다.
못 피할 이유는 또 뭔가.
솔직히 회피의 감을 익히기 전이였다면 그대로 골로 갔을 것도 같지만.
인지만 하면 몸이 반응했다.
꽤 흡족한 상대다. 하지만 뭐랄까. 빈틈도 보였다.
확실히 둔바켈이란 수인과 함께 온 놈들과는 실력 차이가 확연하지만.
‘특급 이상, 준기사 이하.’
상대의 실력을 가늠해 보면 그렇다.
생각과 함께 엔크리드는 검을 다시 밀어 넣었다.
단검이 다시금 날아든다.
한 번 본 수법이었다.
두근!
놀의 밭에서 놈들의 머리를 캐며 익힌 게 회피의 감만은 아니었다.
검술 또한 늘었으며, 괴력의 심장도 있다.
심장을 깨우니, 전신에 힘이 몰아친다.
그대로 왼발에 체중을 더 싣는다. 앞으로 내리누르듯, 나아간다. 힘을 싣는다. 상대가 가늠하거나 예상할 수 없는 괴력이 담긴다.
집중력과 날이 선 감각이 날아오는 단검을 잔상이 아닌 끊어진 장면처럼 보이게 했다.
따-앙.
불똥이 튀며 단검이 검면을 때렸다. 거기서 끝이었다. 기술이 성립되려면 최소한 상대할 힘이 필요한 법.
단검은 엔크리드의 검을 밀지도 비껴내지도 못했다.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눌렀다.
느려진 시간 속 상대의 눈이 보였다. 당황한 그 눈을 보며 엔크리드는 그대로 검을 쑤셨다.
푸컥.
가슴팍을 감싼 가죽 갑옷이 찢기며 칼날이 통과했다. 상대는 마지막까지 몸을 틀어 검을 비껴내려 했지만, 엔크리드가 든 검은 좋아도 너무 좋았다.
칼날 끝이 가죽을 사정없이 후볐으니.
그 뒤에 남은 살과 근육을 가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빗장뼈 밑에서 시작해 비스듬히 찌르고 그대로 뽑아내자, 푸왁 하고 피가 솟았다.
핑!
그러자 엔크리드를 노리고 짧은 화살이 날아왔다.
라그나는 이걸 이어지는 동작의 일부로 삼아 피했다.
엔크리드도 그걸 흉내 냈다.
화살을 피하며 왼발을 축으로 몸을 회전, 순간적으로 등을 보임으로써 제 손의 시작과 끝을 보이지 않게 감추고 단검을 던졌다.
훙!
원숭이를 닮은 여자 도적도 여기까진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대로 허벅지에 나이프를 맞았다.
“끅!”
원숭이를 닮은 여자 도적은 나뭇가지 위에서 그대로 고착.
엔크리드의 싸움은 일찍 끝난 편이었다.
왜 아니겠나. 두 번의 공격과 수비를 교환하는 것으로 끝났으니.
엔크리드의 시선이 자연스레 렘과 라그나에게 향했다.
뭐랄까, 저 둘은 당연히도 압도 중이었다.
‘준기사 발치 어림’은 물론이고, 상황이 도와준다면 준기사까지 죽일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
실력 차는 명백했다.
패인은 당연히 무지에서 온 거였다.
저들은 엔크리드와 미치광이 중대를 몰랐다.
몰랐기에 당해야 했다.
엔크리드의 시선이 라그나에게 향했다.
후앙.
미늘창이 찌르는 시늉을 하다가 횡으로 날아왔다. 라그나는 그에 맞춰 검을 휘둘렀다.
방어? 아니다.
따앙, 카가각.
‘바인드.’
칼날로 막으면 칼날이 상하니 검면으로 막고, 그대로 힘 조절을 해 미늘창을 검으로 감았다.
이후 라그나의 좌우로 창과 세검이 날아들었다.
둘 다 속도를 무기로 삼는 듯했다.
여자 도적 둘의 손에서 뻗어 나오는 무기의 기세가 살벌했다.
짧은 순간, 라그나는 몇 가지 동작을 하나로 합쳤다.
가장 처음은 두 손으로 검 그립을 잡고 왼쪽 위로 창을 밀어내듯 들어서 감아올렸다. 검면은 그대로 붙인 채니, 여전히 바인드 상태였다.
그렇게 창의 궤도를 틀고 앞으로 쭉 찌른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였다.
그렇게 검을 감으며 한 걸음 나아가니, 라그나가 있던 자리로 창과 세검이 교차하며 지나갔다.
미늘창을 든 남자 도적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미늘창을 안으로 당기며 찌르는 칼날을 밀어냈다.
라그나는 굳이 힘을 쓰지 않고 다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렇게 검 끝으로 상대의 머리통 왼쪽 어림을 노렸다. 미늘창 도적이 뒤로 허리를 젖혔으나,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스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놈의 귀가 반쯤 잘렸다.
피가 왼쪽 얼굴 반을 적시며 밑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주변에서 대기하던 여자 둘의 손이 더 빨라졌다.
세검이 춤을 추듯 날아오고, 창을 든 여자 도적은 창을 크게 휘둘러 발밑을 쓸었다.
라그나는 귀를 자른 직후 검을 회수해 날아오는 세검은 검으로 진로를 막아 튕겨 내고, 발밑을 노리는 창날은 옆으로 크게 뜀으로 간격에서 아예 벗어났다.
놀라울 정도의 간격 조절과 정교한 칼솜씨의 조화였다.
‘왜?’
그리고 그걸 본 엔크리드는 의문을 가졌다.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며 싸우는 느낌이다. 보고 의문을 느낀 직후 해답도 깨달았다.
‘보여 주는 거구나.’
검술이란 무엇인가.
모든 동작에는 의미가 있는 법.
라그나의 회피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가 움직인 자리는 미늘창 도적의 우측이었고, 그 탓에 세검을 든 여자 도적은 미늘창 도적을 사이에 두고 라그나를 봐야 했다.
그대로 숨도 안 쉬고 한 손 찌르기.
뒤로 물러났던 만큼 다시금 짓쳐들어 미늘창 도적의 목을 노렸다.
이번에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검격이었다.
더 명확하게 표현하자면.
‘딱 상대가 막을 정도.’
엔크리드의 눈이 바빠졌다. 머리는 더 바빠졌다.
라그나의 동작 하나하나가 가르침이다. 배움의 장이요, 놓치면 안 되는 교본 같은 거였다.
그렇다고 라그나만 볼 수도 없는 것이, 렘도 비슷한 짓을 하고 있었다.
“츠아!”
이상한 기합과 함께 도끼를 크게 종으로 휘두른다. 그에 다가오던 도적 하나가 장검을 도끼를 막았다.
땅!
일격에 검이 부러졌다.
“새끼야, 내 도끼 좋은 거야!”
그렇지, 그 도끼 좋은 거긴 하지.
일전에 용병이 쓰던 걸 주워서 준 거다.
렘도 적당히 힘을 빼고 싸우는 중이었다. 고로 그도 보여 주는 일에 중점을 뒀다.
라그나가 평소와 다른 정교함과 검술이란 형식이 가진 의미에 무게를 둔다면.
렘은 상대적으로 우월한 힘을 활용하며 검술에 치중하는 게 아니라 싸우는 법을 보여 줬다.
상대보다 우위에 있는 걸 이용하지 않으면 뭘 이용하겠나.
렘의 말이 들리는 듯했다.
거기에 싸우는 법이다. 상대를 이기는 데 도끼만 쓰지도 않았다.
입을 쉬지 않음으로 상대의 속을 박박 긁어 대고 있으니.
“넌 어머니가 구울이더냐?”
거기에 자신에게서 배운 것을 쓰는 것도 보았고.
그러면서도 도끼는 섬세하게 무기를 쳐 내고 때리고 후렸으며.
주저 없이 움직이는 발걸음은 교묘하게 상대보다 좋은 위치를 선점했다.
그리고 그 둘을 보며 엔크리드는 새삼 깨달은바.
‘저 둘은 말보다 몸으로 보여 주는 게 낫구나.’
짧은 순간이지만, 벌써 저 둘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 같으니.
실로 그리 느껴지는 바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