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202)
202. 뭘 믿고 이러지 (2)
“다 죽여 버립시다!”
호랑이가 우는 것처럼 외치는 건 1중대장.
군에 종군할 때부터 함께했던 전우가 마르타이 항쟁전에서 죽었다고 들었다.
“그럴 거다.”
대대장은 그리 답해 놓곤 극단적인 수비 형태의 대형을 지시했다.
아군의 숫자는 보병 6개 중대.
본래 1개 대대였으나 그린 펄 평야에 주둔한 대대 쪽에서 2개 중대를 지원 병력으로 보냈다.
그쪽도 꽤 무리한 거였다.
그린 펄에서 병력을 전부 빼면 아즈펜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남문으로 오게 되면 수성은 가능하나, 평원 결전을 피할 수 없습니다.”
2중대장이 말했다.
“기마가 몇이라고?”
“오십 기입니다.”
기마 오십이라, 엔크리드는 그게 적은 숫자로 들리지 않았다.
전마(戰馬)는 키울 때는 물론이고 관리할 때도 금화를 씹어 먹는 생물이다.
쇳덩이로 된 마갑을 씌워야 하고, 그 위에 탈 기병도 별도로 훈련해야 하고.
크로나를 쏟아부은 만큼 평야에서의 기병은 무서운 전력이었다.
내달려 랜스 차징만 해도 오십 기로 보병 수백을 씹어먹을 터.
6개 중대 총 전력은 대략 1천 2백 명 어림.
‘기병 오십은 큰 변수다.’
엔크리드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럼에도 마커스는 담담했다.
“뒷구멍으로 그만한 병력을 잘도 키웠구나.”
담담함을 넘어 도리어 감탄했다.
“궁병 숫자도 적지 않습니다.”
이것도 불온한 소식이다.
엔크리드는 그게 적군의 준비가 철저하다는 소리로 들렸다.
“급보입니다!”
대미의 장식은 뛰어 들어온 정찰병이 했다.
왼쪽 팔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회의실로 들이닥친 정찰병이다.
적진 깊숙한 곳으로 정찰을 나섰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병사였다.
병사가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
“문장을 가린 병력이 적군에 합류했습니다.”
본래 마르타이의 병력도 그리 적지 않았다.
보병 1개 대대에 기병대 일부.
거기에 궁병대도 중대 전력으로 보유했다.
보더 가드에 비하면 전력의 질이 조금 떨어지는 편이긴 해도, 숫자 차이는 명확했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보더 가드와 마르타이의 싸움에서 보더 가드는 몇 번이고 이겼다. 승리를 쟁취했다.
“안 좋군요.”
지금 입을 연 작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전원 특급 병사로 이뤄진 특급 부대, 변방수비대다.
그들의 무력은 확실히 특출났다.
다만,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절로 들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주춤할 법한 소식이 연이어 들렸으니.
“독립 중대장.”
상황을 모두 정리한 마커스의 입이 열렸다.
엔크리드는 그게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라는 걸 조금 늦게 깨달았다.
“……네?”
“독립 중대의 권한에 대해 아나?”
그런 게 있었나.
마커스가 마저 말했다.
“중대장은 원하면 다른 중대의 병력을 차출해도 된다. 분대 단위 병력이든, 소대 단위 병력이든.”
‘정상인가?’
엔크리드는 겉으로는 태연했고, 속으로는 마커스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저 말은 곧 독립 중대가 다른 중대의 상위 부대처럼 굴 수 있다는 의미다.
말 그대로.
‘야, 너희 소대 넘겨 봐. 쓰고 줄게, 아, 쓰다가 반쯤 죽었다.’
이러면 어쩌게?
하물며 저딴 명령을 누가 받아들일까.
엔크리드의 시선에 다른 중대장의 면면이 보였다.
다들 성격이 그리 부드럽지 못한 이들이다. 전장을 코앞에 두고 살아가며 지휘관 견장을 단 위인들.
만만하거나, 말랑한 태도로는 앉을 수 없는 자리란 거다.
고로 아무리 대대장이라고 해도 저런 의견 따위는…….
“너한테라면 그보다 더한 것도 줄 수 있다.”
시작은 요정 중대장이다. 저 요정이야 그럴 수도 있다.
“변방수비대가 필요하다면야.”
그 뒤에는 변방수비대장도 나섰다.
이쪽은 뭐, 이번 일로 빚을 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1중대는 한 몸이지만, 나뉘어도 제 몫은 한다.”
1중대장은 왜? 저 사람은 차기 대대장급으로 평가받는 인물 아닌가?
변방수비대장이 실세라곤 하지만, 이쪽도 만만찮은 영향력의 인물이라는 거다.
“뭐, 미치광이 중대 곁으로 가는 건가? 난 중대째로 들어가도 되는데.”
2중대장이 본래 이렇게 줏대가 없는 새끼였나, 엔크리드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제 부대에 사람을 빼갈 때마다 거품을 물고 지랄해서 ‘거품 무는 팔토’라고 불렸던 몸 아닌가.
본래 3중대장이었던 레이온이 죽은 후 그 자리를 채운 3중대장과 지원을 온 중대장도 반응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음, 독립 중대라면 믿을 수 있지.”
하물며 처음 보는 그린 펄 지원군 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엔크리드를 바라보는데, 그 눈빛에 믿음, 소망, 신뢰 따위가 보였다.
“언제부터 그런 권한이 있었습니까?”
엔크리드가 말했다. 원체 감정을 드러내는 편이 아니다. 덤덤한 말투였다. 중대장은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지금부터지!”
‘이 새끼는 무슨 저주라도 받았나?’
아니면 뭘 잘못 처먹었는지도 모른다. 더위를 드셨나, 한창 더워지는 중이긴 했다.
엔크리드는 다시금 표정을 잘 감췄다. 연기는 몰라도 표정 감추기만큼은 달인 수준이었다.
“난 상상력이 뛰어난 편이 아닐세.”
마커스가 이어 말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싶어 빤히 바라보자, 엔크리드와 눈을 마주친 마커스가 다시금 말했다.
“전략과 전술 밖에서 원하는 대로 날뛰어도 좋다면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적의 기병대를 제압할 수 있나? 아니면 들어오는 적을 보는 족족 쳐 낼 수 있나?”
말하는 마커스의 목소리에 열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 전 연기를 봐서 그런 걸까.
지금 하는 말에 연기 따윈 조금도 섞이지 않은 게 보였다. 그렇게 느꼈다.
진정 어린 말투에서 나오는 진심.
예전에 본 크랑의 연설이 떠올랐다. 그의 연설에는 좌중을 휘어잡는 힘이 있었다.
손짓과 목소리, 태도에서 환상을 보게 만드는 그런 위엄이 있었다.
마커스에게는 위엄 대신 열기가 보였다.
뜨거운 열정, 나이를 떠나 한 인간이 가진 무언가가 보인다.
열기에 휩싸인 자의 목소리가 엔크리드에게 닿았다.
“작게는 정찰, 나아가서는 적의 도시에 타격을 줬으며, 크게는 전장에서의 활약으로 아군에 승리를 가져왔다. 어디 그것뿐인가!”
탕!
마커스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후려치자, 다시 와르르 핀이 쓰러졌다.
다만, 누구도 마커스에게서 시선을 떼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그의 입을 바라봤다. 그가 말하는 바를 들었으며, 그가 풍기는 분위기에 휩싸였다.
“홀로 천 마리의 놀 사이에서 살아남아 자신을 증명했으며, 통제 불가능한 전력의 대장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그 무엇보다 중대장의 뛰어난 실력과 능력에 탄복하는 바다. 그래서 묻는다. 이 전장에서 무제한의 권한을 준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마커스가 믿는 바가 무엇인가.
대대장이 위협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왜 검은 칼이었던 수인을 받아들이는 데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멋대로 휘하 전력을 가져간다는데도 중대장이란 이들은 왜 덤덤한가.
눈빛에서 믿음, 소망, 신뢰 따위를 보이는 이유는 또 뭔가.
‘내가 이뤄 낸 것들.’
기사는 실력과 공적으로 이뤄진 존재다.
엔크리드는 자신이 해 왔던 일이 새삼 틀리지 않았다고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뿌듯함? 그런 말로는 표현할 수 없으리라.
오랫동안 잊고 지낸 꿈이 현실의 일부가 되어 닿았다.
동시에 엔크리드는 자신이 할 일을 찾았다.
질문을 받았으니 답해야 할 거 아닌가.
크랑의 연설은 스스로 위엄을 보이고 주변을 빨아들인 뒤 끝냈으나, 마커스는 자신에게 답을 달라고 했다.
‘소수 정예.’
현 대륙에서 전장의 판도는 기사 또는 기사급 전력의 유무로 갈린다.
기사가 전장에 나섰을 때, 맞상대로 기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학살극이 일어나니까.
학살극 대신 대결하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때로는 머리를 굴려 기사 대 부대의 싸움을 만들 때도 있다.
역으로 도리어 그걸 함정으로 삼기도 한다. 부대 전력을 갉아서 기사를 죽이는 데 쓰는 거다.
‘상대는 나를 모르고.’
미치광이 중대도 모른다. 마커스가 그렇게 만들어 놨다.
소수 정예의, 상대가 예측할 수 없는 무력을 지닌 부대.
최소 준기사 급 전력을 지닌 다섯.
전과 달라진 자신을 직시하며, 엔크리드는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죠.”
사실 엔크리도 또한 이런 권한을 가진 게 처음이요, 마커스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전략은 처음일 것이다.
기사단 대신 열 명도 안 되는 독립 중대를 창설한 뒤, 전장에서의 권한을 몰아 준다.
말 그대로 엔크리드 하나에게 전장의 명운을 거는 것처럼 들렸다.
대답이 미흡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커스는 흡족했는지 미소를 보였다.
“그럼.”
권한을 줬다면 써 보겠다. 두근대는 심장이 엔크리드를 움직였다. 그렇게 그대로 밖으로 나설 때다.
뿌우우우우!
때마침이라고 해야 할까, 성벽 바깥에서 아련히 나팔을 부는 소리와 둥둥 하는 북소리도 어렴풋이 귀를 스쳤다.
적군이 다가온 것일 터다.
“전군 집결!”
뒤이어 회의실에서 나온 마커스가 외치고, 엔크리드는 반쯤 뛰다시피 움직였다.
아군, 그러니까 제 중대의 핵심 인력과 함께 싸울 전장이 있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그들을 데려가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본래 사고뭉치 분대일 때부터 그랬으니.
그렇게 숙소 쪽으로 향하던 엔크리드의 눈에 이미 무장을 마치고 나오는 중대원이 보였다.
“출전이죠? 마커스가 작정하고 대장한테 힘 실어 줬을 테고, 기병대라도 쓸어버려 달래요?”
가죽 투구를 삐뚤게 쓴 크라이스가 말했다.
‘예측했네.’
그러리라 생각하긴 했다.
“아니.”
“그럼요? 적장의 목이라도 따다 달래요? 그건 좀 심한데.”
“아니.”
“음? 뭐 안 시켰어요?”
“묻더라고.”
자연스레 합류한 엔크리드가 선두에 섰다.
크라이스와 말하는 사이, 렘이 끼어들었다.
“왕눈이 자식이 이제 싸우러 가야 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거요?”
맞다. 근데 렘이 본래 이렇게 군말 없이 나섰던가?
나설 때마다 아군 지휘관 머리통을 먼저 부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내뱉던 잡소리가 빠졌다.
하긴, 이제는 그 부서질 머리통의 아군 지휘관이 자신이긴 했다.
기실 렘에게 놀랄 일은 없다. 전장이라면 숫제 잘 나서는 편이긴 하니까.
놀라는 건 여기부터였다.
“마르타이와 문장 없는 병력이 왔다고 들었습니다.”
라그나다.
통 주변에 관심 없던 놈이 적군의 병력을 파악했다.
엔크리드는 하늘이 두 쪽이 난 게 아닌가 하고, 잠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멀쩡하게 맑은 하늘이 보였다.
구름이 거의 없었다.
“맞다.”
고개를 내리며 대답하자, 뒤에서 아우딘이 웃으며 말했다.
“형제님, 가시지요. 주께 보낼 이들이 저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제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듯하지만, 본래 전신(戰神)을 모시는 이들은 저 모양이긴 하니.
작센은 말없이 고개만 까딱.
크라이스가 부른다고 움직일 이들이 아니다.
그럼 이들은 왜 움직였나.
엔크리드는 다시금 이들과 자신의 관계가 묘하게 변했다는 걸 알았다.
그저 욕받이 분대장.
보고 있으면 신기한 분대장.
귀찮은 일 안 만드는 분대장.
거기에서 나아가 이제 뭘 좀 아는 소대장.
가르치니 조금 나아진 소대장.
다시금 더 나아가.
‘이들을 이끈다면.’
인정을 받는 한 인간이자, 지휘관.
심장이 뛴다. 꿈을 갈구할 때만큼이나.
“그래서 뭘 물었다고요?”
크라이스가 다시금 물었다.
“뭘 할 수 있냐고 묻더라.”
“……와, 양심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크라이스는 엔크리드의 한마디에서 그 뒤에 엉킨 이야기를 추측해 냈다.
가진 바 능력을 최대한 보여 달란 말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겠다고 했다.”
“작정한 겁니까?”
크라이스의 말에, 엔크리드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모른다. 자신감을 가질 때인가, 아닌가.
이건 오만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가.
지금 가슴 속에 들끓는 무언가는 그저 싸우고 싶어 하는 욕구인가.
아니면 이들과 함께 전장에 서며 이전과 다른 위치에 섰다는 걸 인지했기에 느껴지는 감격인가.
모른다.
엔크리드는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검을 휘두르고 싶었다. 할 수 있는 걸 함으로 적에게 알리고 싶었다.
가슴 속에서 욕구와 욕망이 뒤섞였다.
엔크리드는 제 존재감을 적군에게 알리고 적절한 인상을 심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다.
전에 없는 적극적인 기세라 할 수 있었다.
그리 척척 걷던 엔크리드가 뒤로 슬쩍 빠져 걷던 둔바켈의 눈을 보고 물었다.
“너 눈은 왜?”
“괜찮다. 나도 내 몫은 할 수 있다.”
그녀의 눈가가 파랬다. 황금색 눈동자와 파란 눈두덩이에서 빛나긴 했다.
누구의 작품인지 묻지 않아도 되리라.
물감 없이도 사람의 몸으로 파란 물감을 구현하는 자.
렘 새끼의 특기 아닌가.
“애들 그만 때려라.”
“간단한 대련 시범이었수, 나보고 싸워 보고 싶다고 했수다.”
뭐, 애들은 맞으면서 크기도 하니까.
엔크리드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저 정도로 얻어맞고 도망가거나 뒤에서 수작을 부릴 거였으면 애초에 밑에 있겠다는 둥의 소리를 뱉지도 않았겠지.
데엥!
종루에서 터진 종소리다.
적군이 슬슬 보인다는 소리일 터.
열린 성문으로 성벽 밖에서 터전을 일구던 이들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농업에 종사하던 주민들이다.
적군의 숫자가 얼마가 됐든 일단 성벽부터 공격할 것이다.
공성 병기는 필수란 소리다.
“있겠지? 망고넬.”
엔크리드의 물음에 크라이스가 답했다.
“말이라고요.”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옷 몇 벌만 가져와. 우리 체구에 맞는 거로. 지금 당장.”
“……기가 막힌 작전이긴 하네요.”
설명도 없는 크라이스가 곧바로 답했다.
엔크리드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서 좋았다. 크라이스가 답하고 발을 재게 놀렸고, 엔크리드는 성벽 위 지휘관이 모이는 곳 대신, 성문으로 향했다.
곧 크라이스가 옷을 구해 왔다.
“아우딘 덩치는 무리입니다.”
그래, 그건 인정이지.
“형제님, 이 몸은 거적 하나면 됩니다.”
아우딘은 손사래를 치곤 옆에 있던 노점 천막을 뜯더니, 망토 삼아 걸쳤다.
그게 퍽 잘 어울렸다.
“그래서 뭘 할 생각이우?”
렘이 물었다. 엔크리드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와서 봐.”
엔크리드와 미치광이 중대는 그렇게 성문 밖으로 나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