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204)
204. 툭툭 때로는 탁탁 (1)
“저 새끼가?”
나우릴리아군의 함성과 별개로, 마르타이의 지휘관 몇몇은 화가 울컥 솟아올랐다.
“처맞을라고! 저 새끼 죽여!”
잘 싸우는 건 알겠는데, 시발 도망가면서 저런 여유를 부리네?
이건 뭐랄까, 작정한 도발처럼 보였다. 놀리기 위해 영웅 서사시를 흉내 내는 것만 같았다.
이러니 어찌 화가 안 치솟나.
“쫓아!”
“들여보내지 마!”
“조져!”
“서! 서라고! 개자식아!”
흥분한 마르타이의 보병대가 달려들었다.
엔크리드와 일행이 부지런히 뛰어, 성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였다.
투두두두둥!
망루 위 나우릴리아 궁병대의 손이 무척 바빠졌다.
“끄악!”
“화살이다! 방패! 방패 들어!”
달려들던 마르타이의 보병대는 화살을 장식 삼아 물러났다.
“쏴! 쏴! 다 맞춰!”
벤젠스의 외침이 높게 울렸다. 일부 궁병대의 지휘를 맡게 된 덕이었다.
마르타이 보병대가 물러나고.
“와아아아!”
첫 전투, 예상치도 못한 전력 교환에서 승리 비슷한 걸 한 듯해 성벽 위 보더 가드 상비군은 환호를 내질렀다.
“덤벼!”
“살고 싶으면 도망가라!”
“내 이름은 리안이다!”
숫제 적을 조롱하는 말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제 이름을 밝히는 놈도 있었다.
값진 승리라고 할 순 없으나, 제대로 붙기도 전에 이기고 시작하는 싸움 같았다.
여전히 적의 병력이 더 많았고 차이는 명확했으나, 그래도 뭔가 질 것 같지 않았다.
병사 대부분이 그런 걸 느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건 당연히 엔크리드였다.
그러니 무심한 듯 들어오는 엔크리드에게 시선이 오롯이 꽂히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 * *
망고넬의 파괴, 소수 적병의 활약.
이 소식은 문장 없는 병력의 지휘관에게도 닿았다.
실상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니, 이제 자세한 보고를 받은 참이라 할 수 있었다.
대강 눌러 쓴 투구다. 바이저 사이로 콧수염을 비틀어 뽑던 지휘관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재밌는 새끼가 있구나.”
그의 말투에 시리도록 차가운 살기가 어렸다.
그의 별명은 정예 잡는 칼.
본래는 흥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싸움이라 생각했는데,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놈들이 보였다.
‘최소 셋 이상.’
손수 죽일 가치가 있는 놈들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죽일 방법과 수단이 떠올랐다.
‘난전이 일어나면 좋고.’
수성한다고 숨는다면? 그럼 오히려 포위해서 상대를 압박하는 게 더 유리하겠지?
더없이 흥미로운 상황이었다.
망고넬? 습격? 매복으로 인한 피해?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정예 잡는 칼이란 콧수염은 그랬으나, 실제 문장 없는 병력을 이끄는 지휘관은 생각이 좀 다르긴 했다.
“저 빌어먹을 놈이.”
밴트라 자작군의 지휘관은 멍청하지 않았다. 편협할지언정 생각할 머리는 있었다.
‘튀다 말고 갑자기 멈춰서 제 이름을 밝혀?’
보통 담력이 아니었다.
망고넬 여덟 대를 부수며 시작부터 밀리는 느낌이 들게 했고, 이후 제 이름을 밝히며 물러났다.
그는 사실에만 주시했다.
왜? 왜 그랬을까?
지휘관은 곧 결론을 내렸다. 경험과 이론에 근거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이 새끼가?’
같잖은 수였다. 전략이었다. 수세에 몰린 이들이 택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중 하나였다.
제 몸 부풀리기다. 추잡한 짓거리였다. 본인의 실력을 부풀려 적군의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전략이었다.
소수 정예가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일이 있기에 쓰는 전법 중 하나였다.
소수의 강자가 있으니, 덤빌 때 각오하라는 경고다.
실제로 그만한 실력일까?
망고넬을 부순 건 인상적이지만.
‘그게 전부.’
아마도 무리했을 터, 아니, 무리다. 확실히 목숨을 걸고 행한 작전일 것이다.
오기 전부터 며칠을 매복한 채 대기했을 것이고, 이번 한 번을 위해 많은 자원을 소모했을 것이다.
아마도 마르타이가 진격할 때부터 심어 둔 작전일 터.
“깃털 부풀리기라고 봅니다.”
생각을 정리한 밴트라 자작군 소속 지휘관이 말했다. 마르타이 총사령관은 생각에 잠겼다. 잠시 뒤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결론이다.
“공성 병기를 더 가져오라고 해.”
장군이 말했다. 안 그래도 도시에서 몇 개를 더 만들고 있을 터.
급조한 병기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고칠 수 있는 건 고치고.”
수리까지 하면 한두 개 정도는 건질 것이다.
중심축이 어긋나고 부서진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괴물 새끼.’
주먹으로 공성 병기를 부순 놈, 그놈이 눈에 밟히고 신경 쓰이긴 했다.
‘약이라도 처먹었겠지.’
거인과 프록을 잡겠다고 비약술사 놈들이 만든 약을 먹으면, 그런 짓도 가능하리라.
짧은 순간 한계 이상의 근력을 내도록 해 주는 약.
물론 부작용이 극심했다. 잘못 쓰면 효과가 끝나자마자 죽을 정도로.
편협함, 편견, 선입견 이런 것들은 한 번 머릿속에 꽂히면 쉬이 빠져나가지 않는 마귀와 같았다.
이들이 그러했다.
정예 잡는 칼도 상대의 실력을 높게 사긴 했지만, 딱 자신이 죽이기 좋은 정도로 파악했다.
착각은 다 각자의 몫이었다.
“포위해서 말려 죽이면 됩니다.”
밴트라 자작군 지휘관이 주먹을 쥐며 말했다. 몸을 부풀려 과장했으니, 이제 수성에 힘을 쏟겠지.
그런데도 나온다면?
그는 기병대의 지휘관이기도 했다.
괴롭힘에 상대가 성문을 열고 나선다면 기병대로 쓸어버리면 된다.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작전이었다.
상대가 몸을 부풀리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러지.”
마르타이의 장군도 같은 생각이었다.
* * *
크라이스는 성벽 위에서 적군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화났네.’
웅성거리고, 고함을 내지르고.
공성 병기 여덟 대가 부서지고, 죽은 사람 숫자가 수두룩한 데도 공포가 아니라 분노를 보인다. 투기와 기세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엔크리드와 일행을 보고도 화를 뿜어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전투 시간이 짧았고.’
격전의 순간이 무척 짧았다. 인상적인 전투력이 있다곤 해도, 정작 그걸 본 이들은 몇 안 된다는 거다.
‘마지막 대장의 말투가 참.’
거기에 도망가다 말고 제 이름을 밝힌 뒤 꺼지라고 한 게 주효했다.
그런다고 꺼질 거면 여기까지 쟤들이 왔겠나.
노린 거라면 너무도 적절한 도발이었다.
적들이 착각하기 딱 좋을 정도의 그런 도발.
‘나라면.’
크라이스는 잠시 상대 지휘관에게 빙의했다.
몇 번이고 ‘나라면’을 읊조리며 적군의 움직임을 살폈다.
성벽 위에서 적군 무리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당황했으나, 물러설 생각은 없다. 당황했으나, 저 안에 두려움은 없다.
다시 정돈되는 병력이다. 마지막에 쫓아 오다가 물러가던 모습도 기억에 남았다. 질서정연했다. 훈련이 잘된 정병이란 소리다.
적군의 투기는 여전했다.
‘얕보네.’
아군을 얕봤기에 생기는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있는 이유? 많다.
저들은 숫자도 많았으며, 훈련도 잘됐고, 필요 이상의 지원군도 얻었다.
여기에 마커스 대대장이 일부러 감추었지만 그럼에도 퍼져 나간 이야기, 엔크리드의 실력.
‘허세라고 보려나? 겁먹어서 깃털을 부풀린 것처럼 그렇게 보이려나?’
그럴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럴 것 같았다.
길핀 길드가 좀 커서 상대 지휘관의 이름이나 성향도 알았으면 좋을 테지만.
아니, 그 정도면 아예 정보 길드로 발돋움하는 수준이 되어야 하는 거니.
‘일이 배는 많아지겠네.’
지금이 딱 좋다. 적당히 크로나 벌어들이는 수준이 최고다.
크라이스는 생각을 정리했다. 상대 지휘관은 아군의 전력을 파악하지 못했고, 아군에게는 무척 날카로운 칼이 있었다.
‘머저리들이면 좋겠는데.’
의심이 아니라 확증편향, 자기가 한 번 옳다고 믿는 걸 바꿀 생각이 없는 놈들.
그렇다면 대단한 전략은 필요 없을 터.
이게 전부 엔크리드의 변덕 한 번이 부린 마법이었다.
툭 나서서 망고넬을 깨부수고, 그대로 돌아온 덕이었다.
저기서 더 싸워 전력을 보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테니.
‘근데 대장은 이걸 전부 의도한 건가?’
그거야 뭐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뭐 하냐, 너?”
궁병대를 지휘하던 벤젠스가 물었다. 크라이스 새끼가 혼자서 뭐라고 계속 중얼대는 걸 보니 무슨 악령이라도 들린 것 같았다.
벤젠스는 귀신, 악령이 싫었다. 괜히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생각 좀 정리했습니다.”
“그러냐?”
벤젠스는 얘가 생각을 정리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었지만.
정작 크라이스의 머릿속에선 전장의 미래가 그려지는 중이었다.
이기기 위한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올올이 풀리는 중이다.
그런데도 딱히 말할 생각은 없긴 했다.
크라이스는 다들 알아서 하리라고 생각했다.
* * *
“괜찮수?”
보더 가드 안에 들어서는 길에 렘이 물었다.
엔크리드는 제 몸을 훑었다. 어디 다친 곳이 있나?
없었다. 다칠 만한 일도 아니었다.
가벼운 몸풀기였다.
왜 아니겠나. 급조한 작전임에도 괜찮을 것 같으니 한 일이다.
물론 마르타이 쪽에서는 이걸 자원을 투자해 며칠이고 준비한 매복이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그냥 될 것 같아서 반쯤 몸풀기로 나선 거였다.
“머리가 다친 것 같은데.”
렘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웃음기가 없었다.
옆에 있던 라그나의 시선도 엔크리드에게 향했고, 렘과 아우딘도 마찬가지였다.
“열이 있나?”
핀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엔크리드는 이들의 가슴에 낭만이 없음이 슬펐다.
왜 이런 반응인지 잘 알았다.
마지막에 이름을 밝힌 것 때문이다.
“호기가 치솟아서.”
숨길 것도 없어서 툭 말하니, 렘이 답지 않게 놀리는 대신 ‘호오’ 하고 입술을 모아 탄성을 뱉었다.
“우오오오!”
돌아오는 엔크리드 부대의 머리 위로 환성 비슷한 게 들렸다.
나가서 공성 병기를 작살내고 왔으니, 이런 반응은 당연할 터였다.
그 환성 사이로.
“호기라.”
라그나가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기는 게 보였다.
엔크리드는 말 그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한 것뿐이었다.
앞쪽에 어느새 갤러리 위에서 내려온 크라이스가 보였다.
“도발하고 상대 머릿속에 마귀 심은 건 의도…… 아니구나. 아, 아니에요. 그러면 이름은 왜 말한 거예요?”
이름 한 번 밝혔다고 묻는 사람이 많다. 엔크리드는 다시금 같은 말을 뱉었다.
“호기, 그래도 될 것 같아서.”
“그건 좀…… 음, 네. 그렇군요. 멋있네요.”
크라이스를 지나치니, 아군 지휘관 무리가 보였다.
“공성 병기를 다 부쉈네?”
마커스가 말했다. 그 얼굴에 실실거리는 미소가 어린 건 착각일까.
엔크리드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게 끝이었다.
“내 이름은 시나르다. 지금 다가오면 날 가질 수 있다.”
요정 중대장이 슬그머니 다가와선 읊조렸다.
요정식 농담, 정말 지겹지도 않은 걸까.
“머리 다치셨습니까?”
“아니, 난 건강 빼면 시체다. 혹시 병약한 미소녀가 취향인가?”
더 말을 섞는 게 의미가 있는가. 엔크리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물러났다.
“경계를 늦추지 마라!”
마커스가 앞에서 아군을 독려했다.
“우리는 이긴다!”
시기가 적절했다. 막 환호의 주인공인 엔크리드가 돌아온 뒤였으니.
함성이 울린다. 전쟁은 이제 시작이었는데, 사기는 더없이 높았다.
이게 전장의 첫날이었고.
다음 날이 시작된 직후.
“오늘도 나갈 거죠?”
크라이스가 다가와선 물었다. 엔크리드는 막 아침 훈련을 끝낸 뒤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훈련이다. 그걸 보는 이들 중 일부는 혀를 내둘렀다.
엔크리드를 잘 아는 이들이야, 그러려니 할 뿐이지만.
“어딜?”
“밖이요”
“왜?”
크라이스가 눈을 깜빡였다.
“오늘도 약은 올려야죠.”
이건 무슨 말인가 하고 쳐다보니.
“대대장이 무슨 말 없었습니까?”
크라이스가 되려 물었다.
엔크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쉬고 다시금 잘 싸우자는 말뿐이었다.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하라고 하긴 했다.
멋대로 나가서 멋대로 매복 작전을 펼친 것에 관해서는 말이 없었다.
급조한 작전의 결과가 좋은 것도 있지만, 애초에 이런 권한을 준다고도 했으니, 마커스로서는 할 말이 없는 게 맞았다.
“상대가 생각하고 의도한 바의 반대로 행동하라.”
크라이스가 목소리를 높여 낭랑하게 외쳤다.
엔크리드는 물끄러미 소리 높인 큰 눈의 부하를 바라봤다.
“전략과 병법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눈으로 물으니, 크라이스가 재차 말했다.
공성 병기가 부서졌다. 저들은 장기전을 염두에 둘 것이다. 병기를 수리하고 새로이 보급하고, 보더 가드를 감싸며 위협만 해도 유리한 건 마르타이다.
뒤쪽의 보급로를 탄탄하게 만들고 왔으니까.
그럼, 오늘의 할 일은 무엇인가.
크라이스로서는 너무 당연한데, 아무도 그 말을 안 한 것에 당황했다.
“보급로 괴롭혀야죠.”
전략과 병법의 기본.
배를 굶겨라.
실제 굶길 순 없겠지만, 배 채울 때 신경 쓰이게 할 수는 있으리라.
말은 쉽지만, 실행은 어려운 일이다. 상대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당연히 경계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엔크리드 포함 미치광이 중대가 있다.
“전력 외 병력이란 건 상대의 예상 밖에서 노는 거니까.”
열 명도 되지 않은 숫자다. 이대로 치고 나갈 수 있다는 거다.
“냐아.”
밤새 어딜 갔는지 안 보였던 에스터가 옆에서 울음을 뱉었고, 엔크리드를 빤히 봤다.
크라이스의 말을 다 들은 엔크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감이 좋으니, 해 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같이 갈래?”
괜히 에스터에게 말하니, 툭 하고 몸을 일으킨 에스터가 옆으로 붙었다.
그렇게 다음 작전이 정해졌다.
첫날은 병기를, 둘째 날은 보급로를 노리는 거로.
당연히 밤중에 가기로 했다.
“크라이스, 가서 윗선에 보고해. 밤중에 마실 다녀온다고.”
해가 떨어진 직후다. 엔크리드가 장비를 주섬주섬 챙겼다. 옆에서 렘과 라그나, 아우딘과 핀도 나섰으나.
“아우딘, 넌.”
“네, 형제님. 전 남지요.”
아우딘은 덩치가 너무 눈에 띈다. 핀도 놔뒀다. 라그나에게도 빠지라고 했다.
핀은 위험할 수 있었고, 라그나는 길을 잃을 수 있었다. 전장의 미아라는 별칭을 갖게 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렘, 작센.”
“좋수다. 좋아. 들고양이야 없어도 되겠지만, 뭐. 짐이라도 들라고 하면 되니까.”
“멍청한 야만인은 두고 가는 게 더 낫습니다.”
여전히 투덕대는 이들이지만, 함께 전장에 나서면 이들보다 든든한 이들이 없었다.
“갔다 올게.”
엔크리드는 어디 시장에 빵이라도 사러 가는 것처럼 나섰다.
그리고 엔크리드는 돌아올 때 정말로 빵을 가져왔다.
“이거 맛있더라.”
돌아온 엔크리드의 말에, 다들 빵의 맛에 감탄했다.
정말 맛있는 빵이었다. 당연히 적 보급지에서 가져온 물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