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220)
220. 음, 좋네
몰센 백작은 부인만 셋에, 첩이 여섯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귀족으로서 그건 흠이 아니었다.
그는 휘하 자손을 많이 봤다.
아들과 딸을 합쳐 왕가보다 더 많은 아이를 낳았다.
그럼에도 딱히 마음에 드는 아이가 없었다. 세상사 뜻대로 되는 일이 이렇게도 없다.
“처리하겠습니다.”
제 아들 중 하나가 말했다. 백작은 마부의 자리에서 안쪽에 들어온 아들의 눈을 봤다.
그 눈에서 질시와 분노 따위가 엿보였다.
한 대 맞아서? 아니면, 지금 펜-하닐 대륙에 이름을 알려진 놈이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그렇다면 그게 아니꼬워서 그런 건가?
엔크리드란 이름은 지금 왕국 수도까지 알려진 판이다.
그러니 질시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내다니.
‘싸움질은 잘하는 편인데.’
다른 쪽이 영 탐탁지 않은 아들이다. 가슴을 죽이고 머리를 써야 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를 구분하질 못하지 않나.
잘해야 호위로 써먹는 게 전부이리라.
이러니 자식 농사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지.
대를 잇기 위해 다른 방책도 마련해 뒀으니, 이제는 미련이 없긴 했다.
그게 백작이 더는 자식을 갖지 않는 이유였다.
‘나였다면.’
그놈을 질시하고 미워하는 대신 아군으로 삼을 생각을 했으리라.
지금도 그러고 있었다.
다만, 마음에 틱 하고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그 친구 눈을 못 봤지. 넌.”
아들에게 말하자, 아들이 제 눈을 끔뻑였다.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은 그런 눈이다. 어떻게 보면 소를 닮았다. 그러니 우직하게 잘 싸우는 건가.
눈은 마음의 창이요,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라더니.
“그놈.”
백작은 말을 뱉고서 잠시 생각했다. 제가 본 게 맞던가? 맞다. 의심하거나 돌려 생각할 게 없는 태도요, 기세였으니까.
“싸우고 싶어 하더구나.”
“네?”
“나랑 싸우고 싶어 하는 듯했다.”
황당한 표정을 짓던 아들은 그 말에도 분을 터트렸다.
“감히!”
“왜? 그러면 안 될 것 같으냐?”
백작이 아들의 말을 끊었다.
그 자신도 호승심 비슷한 게 올라오긴 했다. 그 눈, 곧고 바르고 직선적으로 가진 걸 겨루고 싶다 말하는 그 눈이 그의 마음에도 닿았으니.
그걸 보고 있자니,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고 싶어지지 않나.
그렇다고 직접 싸울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걸 받아 줄 수야 없지.
사람이 바라는 걸 쉽게 주면 안 되는 법이다.
이제껏 살면서 배운 바가 그러했다.
어쨌든 얼굴을 보러 들른 게 헛된 일은 아니었으리라.
‘재밌는 놈이로다.’
재밌다고 놔둘 수도 없는 놈이고.
자. 그러면, 그놈을 곁에 두려면 어찌해야 할까.
사람은 마음의 빚이 생기면 조종하기 쉽다. 그러면 그 빚을 어찌 생기게 할까.
“남쪽 마수 무리는 어떻게 할까요? 아버지.”
‘아버지’란 세 글자가 틱 하고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그걸 나무라진 않는다. 때로는 혈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만으로 충성 서약이 필요 없는 이들도 있다.
지금 눈앞의 아들이 그러했다.
‘이 아이의 어미가 누구였더라?’
그레타? 헬렌?
어쨌든 이리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아이를 낳았으니, 아이의 어미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주면 좋으리라.
그 행위 하나로 제 가문 내에서 일어나는 부인끼리의 권력 다툼에 파문이 일겠지만, 그러라고 주는 것이다. 싸우고 다투라고.
어차피 자신의 밑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모든 건 자신의 통제하에 있으니.
“놔둬라.”
본래 출정의 이유가 남쪽에서 올라오는 마수 무리의 처리였다. 일부는 처리하고 일부는 놔뒀다.
후일 보더 가드에서 마수 무리를 처리하느라 골치가 썩겠지.
‘그러면 도움을 청하겠지.’
짧으면 몇 달, 길면 1년 이내에 일어날 일이다.
“밤을 틈타 움직인다는 종자들은?”
백작의 물음에 아들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게오르의 비수’, 대륙 전체에 위명이 쟁쟁한 암살자 집단을 말한 거다.
그중 손이 닿는 이들이 보더 가드에 있다는 소식에 아들이 수소문하여 연락이 닿은 참이었고.
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에서 마부가 말했다.
“어떤 놈이 앞에서 길을 막고 섰습니다. 어찌할까요?”
“세워라.”
펜-하닐 북부에서 백작의 문장을 못 알아보고 막아섰다면 능히 그 지능을 의심할 터요, 그게 아니라면 알고 막았다는 것이니, 상대에게 용무가 있다는 소리다.
후자가 맞았다.
죄다 검은 천으로 전신을 가린 놈이었다.
‘맹랑한 놈이로다.’
백작은 그리 생각하며 마차 안에서 문만 열어 물었다.
“누구냐?”
“게오르의 비수.”
짧은 답이 돌아오자.
“이놈!”
아들이 마차에서 내리며 소리쳤다. 감히 누구 앞이라고, 건방진 놈, 따위의 말이 이어지고.
게오르의 비수라는 놈은 덤덤히 듣기만 했다.
“찾은 이유는?”
그러곤 제 할 말만 한다. 작정하고 무시당한 아들이 검을 뽑았다.
챙!
“팔 하나를 자르고 다시 말씀을 나누시지요.”
아들이 말했다. 제 영지 내에서라면 알아주는 실력자이긴 하나, 상대는 그 ‘게오르의 비수’다.
홀로 저리 앞을 막은 걸 보니 자신감이 돋보이기도 했음에.
“그만.”
백작이 아들을 향해 말했다. 아들은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뒤로 물러났다.
“보더 가드에서 사람을 하나 처리해 줬으면 한다.”
상대는 암살질로 먹고 사는 이들, 그 일에 걸맞게 대하면 그만이었다.
이건 그러니까 시험해 보고 싶었다. 암살자를 보내도 능히 버텨 낼까? 상대가 그 게오르의 비수라도?
제 편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반, 눈에 거슬려 치우고 싶은 마음이 반, 이번 일은 후자를 위한 작업이었다.
“이름은?”
“엔크리드.”
“불가.”
‘……?’
거절? 아니, 숨도 안 쉬고 거절이다. 눈앞의 작자도 아는 이름이던가? 하긴, 최근 그 친구 위명이 쟁쟁하긴 했다.
“꼭 죽일 필요는 없는데?”
“불가.”
이번에도 고민 없이 거절이었다.
곧바로 죽이라는 것도 아니고 반만 죽이라는 말에도 거절이라니.
금화만 잔뜩 주면 무엇이든 해 준다는 게 이들이지 않은가.
“자신이 없는가?”
도발적인 언사에도 상대는 말이 없었다. 그저 불가라는 말만 다시 내뱉었을 뿐.
“그렇다면 주변 조사만 부탁하지. 가족은 있는지, 주변에 누가 있는지, 가진 건 뭔지, 어떻게 지금 저기에 있는지, 하고 싶은 건 뭔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검은 옷으로 전신을 가린 남자, 게오르의 비수에서 온 암살자는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매월 초이튿날에 사람을 보내겠다. 정보와 대가를 교환하면 될 것이다.”
“너무 비싸게 굴지는 마라. 핏방울로 연명하는 족속들아.”
백작이 한마디 했다. 겉으로 제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드문 사람이다. 아들은 그게 자신을 위해 그런 것처럼 보였다.
게오르의 비수에서 나온 남자가 보기에, 그건 위협이라기보단 일을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종용 같았고.
암살자는 말없이 물러났다.
백작은 다시금 마차에 올랐다.
“아버지.”
“참을 때는 참아라. 함부로 감정을 보이는 게 좋은 건 아니다.”
제왕학을 가르치듯 아들에게 훈계한 백작의 마차가 길을 떠났다.
그걸 끝까지 지켜보던 게오르의 비수 출신 남자가 복면을 벗었다.
오랜만에 전신을 가리고 있자니, 답답한 감이 있었다.
‘이 정도로 답답하다니.’
마음이 풀어진 생활이 길어진 탓이다. 전장에서 얼굴을 드러내 놓고 싸우면 정직하게 싸울 수밖에 없으니.
작센이 생각하기에 전장의 그것은 호쾌한 싸움이었다.
몰래 뒤를 쳐서 목을 베는 거지만, 그보다 쉽게 죽일 방법이 널렸음에도 왜 직접 손을 쓴단 말인가.
적이 눈치챌 수 있음에도 왜 발을 놀려 다가간단 말인가.
그러니, 그가 보기에는 정당한 싸움이다. 어찌 보면 호쾌함에 가깝고.
‘아니, 호쾌한 건 아닌가.’
제 대장과 야만인이나 종교쟁이가 싸우는 걸 봤다. 호쾌하다고 말하긴 어렵다는 거다. 자신의 전장은.
그렇다고 그게 싫다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에게는 자신의 전장이 있으니.
“어땠어요?”
도시 쪽으로 한참 걸어가자니, 중간에 일행이 합류했다. 사창가의 그녀다. 개인적으로는 연인 비슷한 사람이요, 단체 내에서는 정보력이 우수한 이들을 이끄는 여자다.
“뱀 같아.”
직감과 육감의 영역에서 보이는 상대의 형태를 말함이다. 백작은 간사하고 교활함을 품은 뱀이다. 그리 보였다.
“흠, 나쁘네요.”
여자가 답했다.
“알아봤나?”
작센의 물음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도시를 향해 걸으며 말을 나눴다.
“추정상 관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게오르의 비수라는 집단에 속했다고 해서 모든 의뢰를 받는 건 아니다.
하물며 지금 작센은 의뢰를 받을 형편도 아님에야.
하지만 제 목적, 그러니까 종군한 이유가 있긴 했다.
그 이유에 부합되는 단서였다. 본래는 단서가 끊겨 떠나려 했으나,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긴 했다.
복수를 위해 이곳에 들어왔다.
그걸 위한 단서였다.
“그 중대장을 죽여 달라고 할 것 같던데.”
“거절했다.”
“그래도 돼요?”
상대는 북부 대공이란 별명의 귀족이다. 실제 작위는 백작위에 그쳤으나, 그거야 왕가에서 경계하기 때문이요, 실제 힘은 대공이란 말에 적합한 그런 존재가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작정하고 들이치면 게오르의 비수도 쉬이 넘어갈 수 없는 상대다.
한 영토를 다스리는 대귀족이란 그런 것이니.
“알 바 아니야.”
작센이 답했다.
음. 여자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원래 이런 성격이었다.
그가 말하길 제 중대의 지휘관이 점점 미쳐 간다 했지만, 작센도 그리 정상이라 생각할 순 없는 사람 아니었던가.
“간다.”
도시 앞, 작센이 먼저 움직였다. 여자가 뒤에서 말했다.
“자주 좀 와요.”
답은 없었다.
게오르의 비수는 임무를 수행하기로 하긴 했다. 정보를 전해 줌으로써 역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도 많으리라.
작센은 그 일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대장에게 미리 말을 해 줄까?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럴 필요도 없으리라.
실상 전할 소식이라고 해 봤자.
‘가족 없고, 검에 미쳐 살고, 꿈이 기사고.’
음, 훌륭하다. 이리 전해 주면 상대가 농담하느냐 하겠지만, 세상에 정말 저런 놈이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고작 용병 나부랭이에서 병사가 되었고 중대장이 되었다고 해도, 외부에서 보는 엔크리드의 꿈은 여전히 헛된 망상이라 보일 법했으니.
하지만 실상 가까이에서 보는 이들의 시선은 어떠한가.
당장 마커스만 해도 이제는 그 말을 믿는 눈치다.
하여간 다들 미친 새끼들만 있는 도시였다.
작센은 그리 생각하며 그들 사이로 들어갈 준비를 끝냈다.
게오르의 비수가 아닌 음흉한 들고양이가, 전장을 지키는 병사가, 제 중대장을 보좌할 부하가 될 시간이었다.
그냥 놔두면 미친 야만인이 또 미친 짓을 할 테니, 그걸 통제하는 것도 자신의 몫이리라. 적어도 이곳에 있을 때까지는 할 일을 할 생각이었다.
* * *
“북부 대공의 입장은 이런 겁니다.
공작위를 달라.
하지만 왕가는 거절했거든요.
그 이유는 뭘까요?
백작이 주장하길, 왕가에서 자신을 밀어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왜? 왕위를 뺏길까 봐? 그러면 뺏겨야지, 힘이 없으면 뺏기고 토해 내고, 내어놓아야 하는 세상이 아니냐고 백작은 주장하죠.
하지만 왕가는 묵묵부답.
그저 법도에 맞게 대할 뿐이다. 이 모든 건 나우릴리아를 위한 일이다. 대공의 위를 원한다면 그에 걸맞은 일을 하라, 뭐 이런 말을 하는데.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이죠. 백작이 왕위 찬탈에 관심이 있다는 건 정쟁 좀 한다는 이들은 다 아는 거니까.”
크라이스의 길게 떠든 말의 끝에서 엔크리드는 궁금한 점을 물었다.
“보더 가드의 귀족이란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던데?”
“걔들은 반푼이잖아요.”
그렇군. 엔크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계승도 되지 않은 작위가 참으로 대단한 것처럼 여기는 이들.
그들이 보더 가드의 귀족이요, 귀족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운 놈들이라 이거다.
하물며 최근엔 렘의 도끼에 천국인지 지옥인지로 가 버린 귀족도 있는 마당이다.
도적에게 죽었다고, 검은 칼의 소행이라곤 했지만, 눈치 빠른 귀족 몇은 그게 혹 마커스가 손을 쓴 건 아닐까 의심했다.
엔크리드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저 그는 몰센 백작이 궁금했을 따름이다.
그동안 단련을 거듭해 오고 무수한 경험이 쌓였고, 고립의 기법으로 몸을 만들고 상대 실력을 보는 눈도 생겼으며, 작센 덕에 육감의 눈도 뜨였음에.
‘아들이란 놈은.’
상대할 마음이 불쑥 솟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백작은?
보는 순간 호승심 비슷한 게 타올랐다.
그 육신은 단련된 강철과 같았고.
그 눈깔은.
‘마법사.’
이제껏 마법사를 한두 번 봤을까.
하물며 가장 가까이에 인간으로 변하는 표범도 있는 법이다.
렘이 알고 있으니, 엔크리드도 아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에스터는 그게 딱히 비밀이라 생각지도 않는 듯했다.
뭐, 엔크리드는 렘보다 먼저 눈치채긴 했다.
그걸 들은 에스터가.
“목욕할 때도?”
이리 묻긴 했지만.
마법사는 비의를 탐구하고 신비 위를 걷는 자들 아닌가.
남녀 사이의 어떤 물리적 접촉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엔크리드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에스터가 품에서 잠드는 일이 드물어지긴 했다.
그 이유가 ‘이제는 전만큼 필요치 않다’라고 하는 거였다.
굳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뭐 하슈?”
옆에서 렘이 물었다. 할 일이 없어 잡생각에 빠진 참이었다.
한창 부대 훈련에 전념하는 중이었다. 엔크리드도 단상 위에서 고립의 기법을 수행 중이었고.
그 와중에 ‘달려라’ 시켰던 이들이 돌아왔다.
“다 왔냐?”
“왔수다.”
말하며 렘이 실실 웃었다. 이 새끼는 사람을 괴롭히면 힘이 나는 인간이다. 성격이 참 드물게 나쁜 종자였다.
“다들 다 뛰었나?”
엔크리드는 아군 병력을 보며 생각하길.
‘체력이 형편없다.’
모든 일은 잘 뛰는 심장부터 아닌가.
그래서였다.
이레 동안 이들은 무장한 채로 뛰기만 했다. 별거 없는 훈련이라 할 수 있으나, 정작 하는 쪽에서는 혀를 내두를 말이었다.
왜 아니겠나.
아침부터 점심까지, 점심 이후에는 저녁까지.
뛰기만 했다.
연병장을 돌고 도시 밖으로 나가서 뛰고, 도시 옆으로 언덕이 즐비한 곳을 오르기도 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는 건 물론이요.
전신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건 당연했다.
그중 제일 괴로운 건 1중대였다.
“우리 중대 훈련은 너희랑 다르다.”
이상한 우월감을 표하는 이들이 몇 있었으나, 그들은 사색이 되어 다른 병사와 금세 동일한 안색이 되었다.
“우리도 경갑 입고 뛰어야지, 불공평합니다!”
각자 무장을 든 채로 뛰라 했으니, 중갑 중대는 당연히도 중갑 무장이었다.
그걸 들은 렘이 신나서 뛰어나갔다.
그 앞에 서고 보니, 처음 훈련을 시작할 때부터 예의 우월감을 표하던 병사이지 않은가.
엔크리드가 당부했었다. 아무나 때리지 말라고. 정당한 사유 없이는 훈련이 아니라 고문이 될 것이라고.
이들을 두들겨 단단하게 만들 생각이지, 그대로 모든 걸 포기하게 할 생각이 아니라고.
그러면서 이런 훈련을 시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거야 대장이 알아서 할 일.
렘은 조교로서 나설 순간이 온 게 너무 즐거울 따름이었다.
“불공평 나왔다. 이 새끼야! 그럼, 2중대로 소속을 바꾸든가! 언제는 훈련이 다르다며! 1중대 부심 어디 갔냐?”
렘이 나서서 직접 눈을 부라린다. 여기서 한 번 더 개기면 곧바로 실력 행사였다.
병사는 금세 눈을 깔았다.
이 미치광이랑은 말이 통하지 않았으므로.
‘음, 좋네.’
엔크리드는 그걸 보며 나름대로 훈련이 잘 돌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너무 강도가 약하지 않나 하는 걱정도 좀 있었고.
과연 미치광이 중대장이라 할 만한 착각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엔크리드 그 본인이야, 이보다 더 험하게 굴러온 몸 아닌가.
그러니 이 정도면 적절한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