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223)
223. 저쪽의 레이디에게 처맞은 신사분이 내는 거요.
시작이란 말은 필요 없었다.
엔크리드도, 상대도 자세를 잡았고, 그거면 충분했다.
여자가 방패를 앞으로 들었다.
엔크리드는 상대가 방어를 토대로 싸움을 풀어 갈 거라 생각했다.
그게 검과 방패의 효용성을 살리는 전법이니까.
이제껏 저런 무장을 갖춘 이들이 그러했으니까.
경험이 엔크리드를 움직이게 했다.
앞으로 한 걸음이다.
싸움에서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그리 검을 들고 나아가는 순간, 방패가 확대됐다. 커졌다. 순식간에 시야를 덮었다.
‘지랄.’
속으로 절로 욕이 나왔다. 입 밖으로 말이 되어 흘러나올 틈은 없었다.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온 회색의 철벽이 보였다. 그 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짧디짧은 순간, 엔크리드가 검을 쥔 채로 양팔을 가슴과 얼굴 앞으로 교차하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꽝!
회색의 철벽이 팔뚝을 후렸다.
부유감과 함께 충격으로 시야가 흔들리고, 곧 등으로 두 번째 충격이 뒤따랐다. 반사적으로 왼손으로 땅을 치며 낙법 비슷한 걸 했다.
그동안 미치도록 발라프식 무투술을 단련한 덕이었다.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으나, 그렇다고 뭘 게워 내진 않았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이요, 일격이다.
뒤로 날아가 바닥에 등부터 떨어진 탓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넘어진 채였다.
“후!”
엔크리드는 날숨을 뱉고 다시 숨을 들이켜 충격을 해소한 뒤 단숨에 일어나려 했으나, 그럴 틈이 없었다.
머리 위로 무언가가 부왕 하고 날아왔다. 미처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당연히 호흡을 제대로 돌림 틈도 없었다.
심장이 옥좨는 걸 느끼며 엔크리드는 반쯤 뒤로 누운 자세로 검을 위로 휘둘렀다.
깡!
때리며 오른 발바닥을 땅을 차고 옆으로 굴렀다.
중검식으로 후려칠 순 없었다. 자세도 위치도 타이밍도 전부 뺏겼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유검식의 흘리기 비슷한 거로 검을 비껴내려는 시도는 반만 성공했다.
검은 흘렸으나, 이후 후속 공격을 막을 순 없었으니까.
상대는 검이 흐르는 대로 놔두고 발을 썼다.
눈앞으로 무슨 철퇴가 날아오는 것 같았다.
‘강철 부츠.’
쇠로 만들어진 부츠라는 게 눈에 박혔다.
뻑!
발끝이 가슴팍을 찍었다.
맞은 그대로 엔크리드는 뒤로 굴렀고 굴러간 거리는 방패로 맞고 물러나는 것의 두 배가 넘었다.
충격과 비교해 멀리 갔다는 거다.
“후.”
구르던 엔크리드가 왼손으로 바닥을 짚고 허리를 튕겼다. 그 후, 그대로 공중제비를 돌 듯 바로 섰다.
“재주가 좋구나.”
여자 전사가 말했다. 어느새 자세를 추스르고 방패를 당겨 제 몸을 가린, 아까와 같은, 그러니까 시작할 때와 같은 자세다.
그게 거슬렸다. 쉬이 빈틈을 찾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상대의 전투 방식이 만만치 않으니.
‘능숙해.’
자신의 가진 장비와 자세를 통해 상대의 허점을 후빌 줄 알았다.
고로 전투와 싸움 양쪽 다 경험이 농후하다는 말이었다.
주륵.
발에 맞고 날아갈 때 뾰족한 돌이 이마를 스쳤는지 핏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늘어지게 흐르는 핏방울은 얼굴 옆면을 타고 턱 끝에 맺혀 뚝 하고 떨어졌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듯, 거인 혼혈로 추정되는 여자 전사가 다시금 땅을 찼다.
펑!
소음과 동시에 눈앞으로 예의 회색 철벽이 나타났다.
제 몸의 반은 가리는 크기의 원형 방패이자 통짜 쇳덩이요, 그대로 휘두르면 둔기라 할 수 있는 물건이다.
어지간히 단련된 사람이라고 해도 무거울 테고, 거인이나 프록이 아니고서야 다루기 힘든 물건이다.
똑같은 전술이나 필승의 한 수였다. 이토록 빠르고 힘 있게 후려치는 넓은 면적의 무기를 어찌 막을까.
‘못 막으면.’
피하면 된다.
야수의 심장이 눈을 뜨게 하고.
한 점의 집중이 몰입을 만든다.
몰입한 상태로 눈을 떠, 감각을 북돋워 움직였다.
엔크리드의 몸이 야밤에 램프 불빛을 따라 늘어지고 흐려지는 그림자처럼 옆으로 휘었다. 급격한 가속 덕에 그리 보인 거다.
동시에 상대의 검을 든 팔을 노리고 검을 내리그었다. 중검식 내려베기였다.
그러자 상대의 방패 또한 옆으로 휘어지듯 움직였다.
방패로 막고 그대로 밀친다. 검과 방패가 만나 부딪혔다.
둘의 힘이 검과 방패를 통해 만났다.
꽝!
폭음이 터졌다. 한쪽은 괴력의 심장을 일깨웠고, 다른 한쪽은 일부지만 거인의 피를 이었으니.
무슨 폭발 주문이라도 터진 듯한 소음에 구경하던 이들이 전부 귀를 부여잡았다.
“억!”
“악!”
절로 이런저런 비명이 터졌다.
엔크리드는 자신의 검이 상대의 방패를 후리는 사이, 제 옆구리를 스친 칼날을 봤다.
몸을 틀어 피했으나, 스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으나 피는 흘렀다. 옆구리가 금세 축축해졌다.
얇은 가죽 갑옷을 입었는데, 상대의 칼날이 날카로웠다. 보통 무기는 아니었다.
최소 자신의 검만큼이나 절삭력이 뛰어나지 않나.
겉보기에는 참으로 둔탁해 보이는 검인데도 이렇다.
일반 검보다 배는 두꺼운 칼날이다.
개조 롱소드였으나, 상대의 몸집이 커서 그 칼이 보통의 아밍소드처럼 보였다.
“날래군.”
상대가 말했다.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이요, 태도다. 어떤 즐거움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강하다.’
잘 싸우고 잘 베며 반응 속도 또한 뛰어나다.
렘과 아우딘, 라그나, 작센 외의 상대를 만나고 싶었는데, 그런 상대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가뭄의 단비 같았기에.
“아, 다시 해 보자.”
엔크리드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보였다. 드물지만, 정말 너무도 즐거울 때 나오는 그 표정이었다.
* * *
“봐, 저 표정.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쉽지 않은 상대다. 렘을 비롯한 모두는 한눈에 알아봤다.
그 와중에 머리가 고장 나서 처웃는 제 대장을 보던 렘이 입을 연 거였고.
“음, 처음 보면 당황스럽긴 하지.”
라그나가 그 말을 받았다.
“본래 저런 인간이란 걸 모를 테니.”
드물게도 작센도 입을 열었고.
“허허, 상대 자매님이 불쾌하신 듯하군요.”
아우딘도 거들었다. 렘은 그 말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그러니까 야수의 심장조차 없을 때도 저랬다.
자신이 보기에는 발전이라고 보기도 힘든 무언가,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썩은 나무줄기 같은 걸 잡고 기어오르면서도 저리 웃었다.
그게 언제 끊어질 줄 알고?
그게 뭐가 즐겁다고?
‘그때는 금방 뒈질 줄 알았더니.’
어느새 제 뒤로 따라붙었다. 저 멀리서 보이지도 않던 인간이 지금은 소리치면 닿을 거리에 있다.
‘아, 따라잡히기 싫다.’
렘은 생각하며 싸움을 관찰했다.
아무리 봐도 여자 전사는 제 대장을 죽이러 왔다.
그럼, 말려야 하나?
예전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이곳이 전장이었다면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꿈을 향해 달리는 길을 제 손으로 꾸린 인간이다.
‘지금 나서면 엄청나게 원망하겠지?’
물론 그렇다고 해도 뒈지기 직전이라면 나서긴 할 거다.
자기만 그런 생각은 아닌 듯했다.
옆에서 라그나가 슬그머니 반걸음을 좁히고, 음흉한 들고양이는 기척이 흐려졌으며, 아우딘은 허허 웃으면서도 미세하게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하여간 미친 새끼들.’
자신만 정상이다. 대장이란 작자는 뒈지든 말든, 싸움에 환장했고.
나머지도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다.
‘내가 정신 차려야지. 내가.’
그러기 위해 둔바켈이란 수인을 반쯤 죽이고 온 거 아닌가.
‘수인은 튼튼하니까.’
두들겨 패는 맛도 있고.
뭐, 금세 회복할 것이다. 그걸 알기에 과도하게 밀어붙이는 거고.
렘은 이후의 싸움을 구경했다.
옆구리를 베였으나, 엔크리드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방패 돌진이다.
‘쪼개면 될 것 같은데.’
그건 쉽진 않긴 할 터.
이전에는 피해서 빈틈을 노렸으나 막혔다.
그런데 이번에도 같았다.
잔상 비슷한 걸 남기며 옆으로 발을 뗀다. 처음에는 같다고 생각했으나 같지 않았다.
방패가 따라오자, 엔크리드는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평소 괴력의 심장을 반 정도만 쓰라 하는데, 지금은 전력을 다한 거로 보였다.
엔크리드의 몸이 더 빨라졌다.
곧 혼혈 거인의 등 뒤를 잡았고, 그리 움직이며 휘두른 검은 상대를 따라 원을 그리듯 움직였다.
까가가가가가가강!
회색 쇳덩이 방패 면을 검이 스치듯 지나가자 부딪치고 튕기는 걸 반복하며 불똥이 튀었다.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눈으로 보기도 힘든 속도로 이뤄진 합이다.
이후 엔크리드의 칼날이 상대의 옆구리 어림에 스쳤다.
상대도 당하지만은 않았다.
시야에서 엔크리드를 놓치자, 보지도 않고 제 뒤쪽을 향해 검을 수직으로 내리꽂았다.
후앙!
다른 검보다 칼날이 더 두껍게 개조한 롱소드가 허공을 갈랐다.
옆구리 어림에 슬쩍 칼날을 댔던 엔크리드는 어느새 뒤로 멀어졌다.
그대로 칼날을 피한 엔크리드는 멀어지기 무섭게 다시 달려들었다.
아까 방패로 당한 일에 복수라도 하는 것 같았다.
달려든 엔크리드는 제 몸을 시위로 삼고 검이라는 화살을 날리는 것 같았다.
‘저거.’
일전에 마르타이에서 마지막으로 나선 상대의 기술이었다.
‘나한테 무지하게 써먹더니!’
여기서 다시 꺼냈다. 보검이 칼집에서 나와 날아가는 듯했다.
꽝!
상대는 그 또한 막았다.
다만 이번에는 확실히 제대로 막진 못했다.
엔크리드의 검이 방패 옆을 긁으며 견갑을 찍었으니, 퉁 하고 맞은 견갑이 날아갔다.
당연히도 견갑만 때린 건 아니었다.
후두둑.
혼혈 거인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다.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대로 다음 동작을 이어 갈 뿐, 방패로 전면을 막는 대신 왼쪽 몸 앞을 가리듯 앞세우고, 오른손에 든 검을 엉거주춤하게 든 채다.
검과 방패의 교본 같은 자세였다.
혼혈 거인은 기합조차 뱉지 않았다.
대신 어금니를 꽉 깨물었는지, 턱 근육이 조여졌다.
그대로 달려든다. 엔크리드는 찌른 검을 회수하고 몸을 반 바퀴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중검식 회전 베기다. 찌르기만큼 빠른 속도에 실린 묵직한 힘은, 거인 못지않았다.
꽝!
혼혈 거인은 방패로 막아 내며 버텼다.
상대의 무기를 제 방패로 막으며 손에 든 검을 휘두른다. 검과 방패를 든 이유다.
그녀의 검이 다시금 위에서 밑으로 떨어졌다.
절묘한 박자를 탄 덕에 엔크리드의 호흡을 뺏는 일격이었다.
렘이 자기도 모르게 오른 검지를 움찔했다.
도끼를 던질 뻔했다.
그 하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라그나도 아우딘도 작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멈췄다. 아직 나설 필요가 없었다.
위기라고 생각한 순간, 엔크리드는 두 번째 검을 뽑았다.
땅!
한 번의 방어에 검 중간이 쩌적 하고 금이 갔지만, 그대로 제 할 일은 한 셈이다.
다른 손으로 뽑아 든 검이 상대의 검을 막았으니.
“……왼손?”
거인 혼혈이 검을 맞댄 채 입을 열었다. 엔크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특기 중 하나지.”
“다른 특기도 있나?”
“많아.”
“다 보이기 전에 끝날 수도 있다.”
할 수 있는 걸 다 보이라는 종용이다.
무뚝뚝함의 극치로 보이기에, 짧게 제 할 말만 하던 혼혈 거인이 처음으로 긴 대화를 이어 간 셈이었다.
엔크리드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다 보여 줄 수도 없다. 여자 꼬드기는 재주도 포함이라.”
대화를 들은 렘이 피식 웃었다.
‘입 터는 재주도 있지.’
엔크리드의 혀야말로 그가 지닌 보검 중의 보검이라.
“미친 새끼였나.”
혼혈은 잠깐이지만 엔크리드의 정체성을 제대로 말해 주곤,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검과 방패의 정공법.
굳이 따지자면 정검식에 방패를 다루는 기술을 덧붙였다.
엔크리드는 반쯤 부러진 검을 던져버리고는 한 자루의 검만 내세웠다.
‘쌍검은 필요한 순간에만.’
좋은 전법이다.
둘의 전투는 해가 질 때쯤 끝났다.
승패를 가늠하자면.
‘졌네.’
엔크리드의 패배였다.
눈으로 봐도 알 수 있었다.
한쪽 볼이 베였고.
볼이 베일 때, -아니 정확히는 베이고 나서다. 이곳에 있는 사람 중 태반은 공방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으니까.- 그걸 본 여성 주민 몇이 꺄아악 하는 소리 따위를 내뱉었다.
엔크리드의 도시 내 명성은 그야말로 정점.
최고의 배우자감이요, 애인으로 삼을 수 있다면 제가 가진 걸 다 팔아도 된다는 여자가 있을 정도였다.
그 엔크리드가 볼이 베였으며 갈비뼈도 몇 대가 나갔다.
전신에 자잘한 상처가 가득했다.
근접전을 시도한 뒤, 여덟 대를 때리고 한 대를 허용한 덕에 갈비뼈가 나간 거고.
상대는 턱과 명치를 연이어 맞았지만, 견뎠다.
거인의 맷집이었다.
엔크리드가 상대를 얕보진 않았다.
하지만 단련된 육체라 해도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 모든 걸 막아 낼 순 없는 노릇이라.
‘판정으로 패배.’
다들 비슷한 결론을 내렸으리라.
엔크리드는 거친 숨을 흘렸다. 호흡이 불규칙하게 변했다는 것 지쳤다는 소리요, 한계에 다다랐다는 말이다.
혼혈 거인은 상대를 끝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참이었다.
임무는 실패였다. 아무리 상대가 날뛴다고 해도 진짜 준기사도 아닌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판단했으나.
‘강하다.’
눈앞의 남자, 강했다.
실력도, 강단도, 특히나 그 정신머리도.
‘미쳐서 강한 건가?’
전사의 마음에 의문이라는 파문이 퍼지는 사이, 엔크리드는 제 몸 상태를 냉정히 판단했다.
제 몸을 한 번 보고 고개를 들어 상대의 몸도 봤다.
상태가 안 좋은 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내일 다시 하자.”
“……뭐?”
엔크리드의 말에 처음으로 상대가 황당함을 표했다.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적절하게 둘 사이로 도끼 한 자루가 끼어들었다.
“말 못 들었수? 더 하고 싶으면 내일이나 모레라 이거요. 몸 좀 추스르슈, 아, 여관은 공짜요, 식사도 공짜고. 저쪽의 레이디에게 처맞은 신사분이 내는 거요.”
렘이 중상을 입은 엔크리드를 엄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대로 덤벼도 죽일 수 없다. 기회는 싸울 때뿐.
지금은 위험한 놈들이 여럿이 주변에 있었다.
눈앞의 도끼를 든 놈도 그렇고.
그리 전사가 생각에 잠기자, 렘이 재차 말했다.
“혹시 그냥 가고 싶으면 가도 되고.”
숫제 관심도 없다는 투다. 제 대장을 반쯤 피떡으로 만들었는데도 이렇다.
물론 그 피떡이 아직도 멀쩡히 서 있긴 했다.
가공할 맷집이다. 거인과 버금간다고 할 순 없지만, 타고난 게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는 고립의 기법과 아우딘이라는 악마 덕분이었으나, 그건 혼혈 거인이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싸움에 끼어들 셈이군.”
전사가 물었다.
“아니, 오늘 보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더라고.”
그 말의 의미를 전사는 쉬이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에게 다음 기회가 왔다는 건 알았다.
당장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임무에 실패해 놓고 팔다리 멀쩡하게 돌아간다?
배신과 배반이라 말이 나오리라.
모든 행동과 행위를 의심받으리라.
“그럼.”
전사가 묵묵히 뒤로 물러났다.
“자, 그럼 됐수?”
렘이 몸을 돌려 제 대장을 바라봤다.
“그래, 됐다.”
엔크리드가 만족을 표했다. 하루 만에 상처투성이 몸이 나을 수 있으려나?
아우딘이 말하길 재생신, 부서진 뒤 나을수록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했으니, 그저 지금은 쉴 수밖에.
“배울 게 많았다.”
“그게 그렇게 좋수?”
다리가 풀린 엔크리드를 렘이 부축했다. 어깨에 팔을 두른 채로 엔크리드가 답했다.
“적당히.”
적당히는 무슨, 침까지 흘릴 기세더만.
렘은 속으로 씨불이곤 부축해 걸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을 때.
여자 전사는 제가 원하는 걸 쉬이 이루지 못할 상황이 된 걸 알았고.
엔크리드는 어제보다 두 배는 더 밝은 미소를 보였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쉬이 볼 수 없는 그런 밝은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