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257)
257. 머저리를 다루는 법에 관하여 (2)
크라이스는 엔크리드가 시키는 대로 했다.
‘검은 칼을 상대할 방법.’
그런 걸 찾으라고 하지 않았나.
크라이스는 궁리했고, 머리를 굴렸다.
검은 칼이 수작을 부리는 건 기정사실이다.
그럼, 그들은 무엇을 하게 될까?
아니 그전에, 자신은 어떻게 그들에게 그런 의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는가?
쉽다. 상대가 알려 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친절했다.
‘아님 병신들이거나.’
병신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잖아요?”
“뭐가?”
“이 새끼들. 친절하게 대장한테 가만히 안 놔둔다고 말하고, 그렇게 말한 놈 멱을 땄는데, 응? 사람을 또 보내고.”
크라이스는 그렇게 말하며 햇살이 비추는 곳으로 걸었다.
외투를 끌어당겨 오전의 찬 공기를 막으며 크라이스가 마저 말했다.
엔크리드는 그사이 검을 들고 이리저리 휘젓고 있었다.
크라이스의 눈에는 스튜에 국자를 넣고 휘젓는 것처럼 보였다. 말 그대로 휘적대는 수준이었다.
“이번에는 죽이지 말라고 친절하게 제 소속도 아닌 애를 보내고, 사실 얘들 되게 순한 애들 아닌가 싶은데요?”
“도적질하는 놈들이?”
“아니면 병신이거나요.”
상대는 병신이요, 그것도 친절한 병신이다.
그럼에도 크라이스는 불길한 상상을 거듭했다.
자라 온 환경과 그 사람 본연이 가진 특질 때문이다.
‘그러다가 기사라도 보내면?’
혹 기사급이 오면 버틸 수 있나?
단련하는 엔크리드가 보였다. 그 뒤로 닫힌 숙소 문도 보였다.
자갈에 회반죽을 부어 만든 돌담과 그사이에 있는 칙칙한 고동색 문짝.
저 안에는 춥다고 온열석과 모피를 두르고 잠든 야만인과 바로 어제 마음에 안 든다고 사제를 쥐어패 버린 곰탱이와 길치 주제에 멋대로 돌아다니는 골치 아픈 인간, 툭하면 사라지는 분위기 깡패, 전직 사교도인 혼혈 거인과 전직 도적인 수인도 있었다.
‘기사랑도 할 만할까?’
불길한 상상 안으로 잠시 희망이란 잡것이 끼어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기사는 기사다. 그들은 괴물이요, 재앙이다.
크라이스는 고개를 털었다.
“그래서 대책은?”
엔크리드가 검을 들고 좌우로 흔들곤 발을 떼었다가 붙이며, 어떤 움직임을 시도하고 있었다.
크라이스의 눈에는 그게 춤처럼 보였다.
스튜를 저으며 추는 춤.
물끄러미 제 대장을 보며 다시금 불길한 상상이 멋대로 뇌를 헤집는 걸 반복하던 크라이스가 말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죠.”
말 그대로였다.
상대가 친절히 습격하리라는 걸 알려 줬다.
‘내가 도적이라면.’
내가 검은 칼이란 집단의 수장이요, 이들을 죽이려고 한다면?
‘대장은 윌을 깨달은 준기사.’
거기에 그 휘하 중대원도 하나같이 괴물이다.
난쟁이는 통찰력을 통해 사람을 금속에 비유하고.
요정은 특유의 예민함으로 상대를 동식물로 비유하곤 한다.
그리고 크라이스는 제 중대원을 금화로 봤다.
‘몇 닢인가.’
측정 불가, 아직 제 깜냥으로는 저들의 가치를 추산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손해만 끼치는 꼴통이나, 달리 보면.
‘비할 수 없는 전력.’
대외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분명 비대한 전력으로 판단해야 할 터.
이후 팽팽 돌아가는 크라이스의 머리가 상대, 검은 칼 놈들이 할 수 있는 것, 할 만한 것, 또는 높은 확률로 시도할 것들을 가늠했고, 그게 그의 입에서 나왔다.
“암살, 기습, 독, 회유.”
크게 네 가지였다.
엔크리드도 머저리는 아니었다. 그는 잠시 검을 멈췄다. 당장 다음 동작이 딱 부러지게 이어지진 않는다.
뱀 걸음을 흉내 내려다가 실패한 참이었다.
“아마도 돌아가는 길부터가 문제일 것 같습니다.”
“대책은?”
여전히 같은 질문에, 크라이스는 한 가지만을 요청했다.
“토레스 중대장, 아니 이제는 대대장인가요? 토레스 대대장에게 지원 요청하면 병력을 빌려줄까요?”
“아마도.”
안 빌려줄 건 뭔가.
다만 기간이 문제겠지. 너무 긴 시간 영지를 비울 순 없을 테니.
크라이스도 아는 사실을 엔크리드가 짚어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르타이도 손이 부족한 판이다.
그래서 용병을 고용하고 사병화시키는 계획 역시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번에 아예 크게 일을 벌이는 중이었다.
버는 크로나를 쏟아부어 고마운 숲 일대의 마물과 마수를 싹 쓸어버리겠다는 거다.
엔크리드는 마르타이의 대응, 콜로니와의 싸움, 단련의 시간 속에서 생각했다.
교역로의 안전을 위해, 보더 가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근무 영역을 넓히면?’
당장 떠오르는 건 모호한 무언가였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난쟁이에게 무기 받으면 돌아갈 거죠?”
“받는 즉시.”
문제가 없다면 그렇게 할 일이다.
“알겠습니다.”
크라이스는 그렇게 아침나절부터 사라졌고.
엔크리드는 다시금 제시간을 가졌다. 그러니까 검과 자신의 시간.
새벽에는 아우딘과 고립의 기법을 같이 시행한바.
그의 말이 가슴에 남았다.
“무엇을 위해 몸을 단련하는가, 그 답을 찾으셨다면 다음은 ‘어떻게’겠지요? 그 방법 또한 제가 이미 알려 드린 것 같은데, 아닙니까?”
아우딘은 좋은 선생이었다.
그의 말은 곧 스스로 생각하란 거였다.
이미 자신이 그런 기초를 쌓아 줬다고 말했다.
엔크리드는 아둔하지도 멍청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몸이 문제였을 뿐이다.
그럼, 지금은?
‘나아가기에.’
내일을 맞이한다. 맞이할 수 있다.
그 마음가짐은 여전히 같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전보다 배는 즐겁다는 것.
엔크리드는 검을 휘둘렀다. 그게 의미가 없게 느껴질지라도 상관없었다.
그게 그가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그게 엔크리드의 명상법이었다.
그는 그렇게 했다.
자신의 세계 안으로 들어갔다. 침잠했다. 가라앉아 바라보고 관조하고 파악했다.
이전 깨달음에 생각을 얹었다.
‘그 누구도 나한테 어떤 검술을 익히라고 말하지 않는다.’
중검식을 가르친 라그나조차도 자신이 다른 검을 써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침 그 라그나가 나와선 옆에 서서 일전의 보더 가드 대장간에서 만든 무식하게 무거운 검을 휘둘렀다.
기발한 동작은 없다. 위에서 아래로 곧고 바르게 내리친다.
햇살이 그의 둔탁한 칼날에 베이는 것 같았다.
‘베고 또 벤다.’
그 무엇이 막아도 벤다. 그게 라그나의 검이요, 검술이다. 중검식의 묘미다.
엔크리드는 자신이 익힌 걸 복기했다.
발렌 식 용병검은 환검이다.
무명 검술은 정검이다.
라그나에게 배운 건 중검이다.
이후 라그나에게 유검의 기초를 배웠고, 홀로 어느 정도 익혔다.
적을 보며 깨우치며 흘리고 흔드는 법을 배웠다.
‘아니, 이건 아우딘한테서도 배웠다.’
발라프식 무투.
무투술이란 결국 손과 발, 몸뚱이를 무기로 삼는 것.
인간이 쓸 무기 중 가장 짧은 무기다.
그럼 무투의 기초는 무엇인가.
흘리고 빠르고 무겁고 가볍고.
모든 게 섞였다.
‘정중환쾌유’로 나눌 수 없음이다.
발라프식 무투는 아우르는 기술이다. 완성된 이상향이다.
하지만 검술은 아니다. 그러나 또 그 일부를 제 검에 붙일 수도 있었다.
몰입해서 휘두르면서, 엔크리드는 자신이 가진 걸 되돌아보며 유검에 집중했다.
실제 몸을 단련할 때도 유연성에 무게를 뒀다.
무거운 돌덩이나 쇳덩이를 들고 훈련하는 건 같으나, 그만큼 다시 몸의 근육 하나하나를 올올이 풀고 늘리는 시간 또한 가졌다.
유연성을 기르기 위한 것들이다.
왜 유검인가.
그 이유는 육감을 제대로 열었기 때문이었다.
‘유검은 방어요, 수비식이다.’
그걸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눈.
달리 말하면 감각이다.
제대로 보고 파악해야 힘의 접점을 비틀어 흘릴 수 있다.
보고 듣고 맛보고 맡고 느끼는 모든 것.
오감이 뭉개지며 하나의 감각으로 치환된다.
이전의 육감이 고작 새로운 감각의 한 갈래요, 오감의 연장선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감각에 가까웠다.
괜히 이걸 세 번째 눈을 떴다고 표현하는 게 아니었다.
언제 나왔는지 작센이 한쪽에 둥그렇게 놓인 바위 의자에 앉았다.
땅에 박힌 커다란 바위를 대충 깎아 만든 돌덩이 의자였다.
겨울에 앉기에는 몹시 차가울 테지만, 작센은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왜 아니겠나.
작센 자신의 훈련은 이보다 더 험하고 괴로웠다. 이런 추위 정도는 추위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작센의 눈에 엔크리드의 모습이 들어왔다.
‘무엇이.’
저자를 저리 움직이게 할까.
여전한 의문이다. 다만 그 의문만큼이나 이제 여기에 남을 이유 또한 남았다.
‘엉킨다.’
저 대장이 이제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거다.
“끄어어, 들고양이야.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냐?”
늘어지게 입을 쩍 버리고 하품하는 야만인 렘도 밖으로 나왔다.
시답잖은 시비다. 작센은 평소와 같이 무시했다.
렘의 눈길이 제 대장에게로 향했다.
“……이것 봐라?”
야만인이 드물게 놀람을 표했다.
그건 라그나도, 아우딘도 마찬가지였다.
제 세계에 몰입해 검을 휘두른다. 그런 경험을 다 한 번씩은 해 본 사람들이다.
그러하기에 지금 엔크리드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빠져들어 제 세계에 갇혔다.
그렇다면 위험한가?
아니, 저건 그러니까 기회였다. 일생에 몇 없는 단련의 기회.
제 한계를 깨닫고 나아가며 몇 발짝은 금세 나아갈 그런 기회.
“야, 고양이야, 주변 통제해야겠다. 길치야, 너도. 어이 곰탱이?”
“압니다, 형제님. 테레사 자매님과 둔바켈 자매님도 함께해 주셔야겠습니다.”
아우딘이 말하고 그들은 조용히 움직였다.
뜬금없는 겨울 아침부터 엔크리드 일행은 숙소를 중심으로 원을 그렸다.
그들이 한 일은 간단했다.
“다가오지 마쇼. 큰 소리 내지도 말고.”
통제다. 다가오는 모든 사람을 튕겨 내는 일이었다.
“야, 사제 두들겨 팼다며. 그거 얘기 좀 하려고 왔는데.”
성주가 찾아왔음에도.
“그 작자는 사제라 부르기 부끄러운 사람이었지요. 성주 형제님. 어쨌든 지금은 안 됩니다.”
일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병사 중 몇은 왜들 저러냐고 눈살을 찌푸렸고.
엔크리드의 상태를 아는 사람들은 그저 조용히 물러나 줬다.
마르타이의 병영은 동부인이 반 이상이었다.
그리고 동부인은 질기고 억세며 시끄럽기도 했으나.
“떠들면 머리 쪼갠다?”
“침묵은 금과 같다 하였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길, 전장에 나서서 함성을 내지르고 집으로 들어와서는 부드러이 대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주둥이를 잠시 꿰매어 조용히 있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조용. 벤다.”
“이 선, 넘지 마라.”
넷은 평소의 성격대로 했고.
둔바켈은 조용히 엔크리드를 보며 자신도 몸을 움직였다.
조바심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러하기에 그렇게라도 훈련해야 할 판이었다.
테레사는 새삼 저 남자가 신기했다.
‘나는 떠돌이 테레사.’
평소와 같은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은 뒤 보이는 모습은, 홀로 검을 휘두르며 미친놈처럼 웃는 얼굴이다.
‘전투가 아니라 단련도 즐거운가?’
사교의 품에서 태어나 자랐다. 테레사는 세상을 몰랐다.
그녀의 세상은 편협했다. 지금도 그녀 자신은 제 선택의 옳고 그름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싸우고 싶다.’
지금 숙소 앞 작은 연무장을 차지한 남자에게 검을 휘두르고 싶었다.
그 골통을 쪼갤 정도로 세차게.
또한 저 몸통을 향해 방패 돌격 또한 하고 싶었다.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걷어차고도 싶었다.
그녀는 싸우고 싶었다.
소름 끼칠 수준의 욕망이 끓어오름에, 이 일에서 옳고 그름은 중요치 않음이다.
“진정, 마음을 다스리시지요. 자매님.”
언제나 옆에 있는 아우딘의 말이었다. 테레사는 가면을 고쳐 쓰며 답했다.
“나는 떠돌이 테레사, 잘 참습니다.”
인내는 미덕이다.
그런 미덕과 상관없이 태어났으나 이제는 지키고 배우고자 했다.
그래야만 저자와 싸워 희열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으니.
* * *
엔크리드는 제 세계 안에서 가끔은 헤맸고 가끔은 달렸으며, 또 가끔은 기었다.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는 검술을 생각했다.
중간에 환영처럼 뱃사공이 나타나 말하기도 했다.
이제는 얼굴이 보이기에 없던 정도 생길 법했다.
자주 보다 보니 그렇다.
“미친놈, 이건 내가 만든 벽이 아니다.”
뭐라는 건가.
환영이요, 환각이었다.
그래서 무시했다. 지금 중요한 건 뱃사공이 아니요. 반복되는 오늘도 아니었다.
정중환쾌유.
다섯 개로 나뉜 검술 중 엔크리드가 제대로 익힌 건 정과 중이다.
다만, 익혔음에도 불편했다. 어려운 것과 별개로 딱 맞는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왜?
‘내 몸에 맞지 않는 옷.’
재능을 필두로, 재능을 토대로, 재능이란 토양 위에 쌓은 검.
둔재의 길이 아님이다.
이 모든 사실을 지금 당장 깨달은 건 아니었다.
다만, 육감과 직관의 영역에서 느낀 대로 다음으로 향할 뿐.
여전히 걷고, 기고, 달린다.
그저.
‘내 길은 어디로?’
짧은 의문을 통해 방향을 정할 뿐.
그렇게 엔크리드는 유검식의 기초를 넘어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건 검술을 새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모든 게 한 번에 되진 않는다. 몰입에서 깨어난 엔크리드는 자신이 한 일이 뭔지 알았을 뿐이었다.
또한, 앞으로 오늘 이룬 것을 갈고닦아 몸에 붙이고 이어서 만드는 과정이 남았음도.
‘검술.’
기사가 되고자 하는 거나, 검술을 새로 만드는 거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미친 짓이요, 상대에게 실속 없는 거짓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고?
언제는 누군가의 시선이 중요했던가.
그리 몰입에서 깨어나자, 아직도 해가 중천이었다.
‘잠깐이었구나.’
엔크리드는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 앞에 소녀의 모습을 한 난쟁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야, 나도 바쁜 몸이야.”
그리고 난쟁이가 말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