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262)
262. 그대는 양파인가
“뱀처럼 걸을 때 필요한 건 관절의 가동 범위를 넓히는 거지요.”
엔크리드는 아우딘에게 뱀걸음이란 걸 배웠고, 그 위에 제비칼의 검술을 덧붙였으며, 라그나에게 배운 유검식과 더불어 이제까지 보고 배우고 익히고 느끼고 경험한 걸 섞었다.
개념은 단순했다.
‘유검식은 막고 흘리고 흩어 낸다.’
상대가 제풀에 지쳐 만드는 걸 우선순위로 삼는 검술이다.
최초로 다섯 개의 검술을 집대성한 리오네시스 오니악은 그렇게 정의했고, 이후 유검식에 통달한 이들도 같은 방식을 고수했다.
‘꼭 그래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한 게 자신이 처음은 아닐 것이나, 형태를 만들고 그 안에 뜻을 넣어 검술로 만든 건 엔크리드가 처음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만든 거였다.
흘리는 거로 빈틈을 만드는 것과 때리는 걸 동시에 하자.
상대의 공격을 흩어 내며 제 검을 앞으로 밀어 넣는 거다.
발상은 단순하지만, 실제로 이행하기 위해선 예민한 감각과 다년간의 대련 경험 등이 받쳐 줘야 했다.
엔크리드에게 있는 거였다.
하지만 이리 흘리고 검을 휘두르면 상대를 베고 찌르는 행위에 온전한 힘이 실릴 수 없다.
정확히는 절반의 힘을 싣기도 힘들다.
그래서 문제가 될까? 힘이 부족하면 다른 걸로 채우면 된다.
무기가 좀 날카로우면 될 일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베이게 하면 되는 거다.
엔크리드는 제 검에 숫돌을 댔다. 날을 갈았다.
튜터란 마검에서 명검으로 거듭난 검은 부족한 힘을 채워 줄 만큼 예리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무기를 이용했다.
상대의 검을 옆으로 흘리며 타고 들어가 톡 때리고 돌아왔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애꾸가 됐군.”
엔크리드가 우두커니 선 채로 말하자 제 한쪽 눈을 손바닥으로 막은 메엘룬이 남은 눈을 깜빡였다.
검을 피하려다가 넘어져 바닥에 궁둥이가 닿은 채였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이 새끼는 대체 뭐지?
아니, 근데 조금 전의 그건 뭐였지?
복잡한 생각이 연이어 생겨났다.
메엘룬은 머리를 굴리는 대신 그대로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궁둥이로 땅을 차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무릎의 탄력을 이용해 넘어진 자세에서 그대로 앞으로 날아오듯 달려든 거였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것 따위는 아무 상관 없었다.
다년간 쌓인 전투 감각이 프록의 손을 이끌었다. 상대의 위치를 가늠하게 했다.
‘흘렸다.’
그 와중에 상대의 검이 무슨 묘기를 부렸는지도 안다. 그렇다면 흘리지도 못하게 내리치면 될 일.
달려드는 데 필요한 건 한 걸음이었고, 그사이에 메엘룬의 팔뚝은 두 배로 부푼 것처럼 보였다.
동시에 팔뚝이 휘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 팔에 들린 두꺼운 루프 소드 또한 신기루처럼 흐려지며 내리꽂혔다.
엔크리드는 날아오는 검을 느꼈다. 오감을 열었다. 새로이 얻은 육감의 눈이 검격의 궤적을 읽었다.
그대로 제 검을 갖다 댔다.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빠른 공방이었지만, 엔크리드에겐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느껴지는 검격일 뿐이었다.
루프 소드에서 느껴지는 힘이 이전만 못 했다.
속임수였다.
무식하게 근육을 부풀리는 수작을 왜 부리나 싶더니.
엔크리드가 검면을 붙여 흘리려는 찰나, 루프 소드의 궤적이 변했다.
그리고 엔크리드는 그 궤적에 맞춰 발목을 중심으로 허리를 틀었고, 발라프식 무투에서 배운 걸 검에 적용했다.
순간적인 기지였다.
회전에 힘을 보태는 것으로 프록의 검면을 후렸다.
땅!
쇠붙이의 만남은 언제나 소음을 불러오는 법이었다.
굉음이 터졌다. 진동과 더불어 무형의 충격이 둘을 향해 밀려들었으나, 둘 모두에게 영향은 없었다.
단련된 육체로 버텨 냈다.
메엘룬은 당황하지 않았다. 상대를 얕잡아보지도 않았다.
그는 튕겨 나간 힘을 이용해 몸을 반 바퀴 돌리며 횡으로 검을 휘둘렀고, 엔크리드는 춤을 추듯 검으로 허공에 곡선을 그리며 다시금 상대의 검과 마주치도록 가져다 댔다.
치리리리리리리리리리링!
둘 사이로 마찰음과 함께 불똥이 흩날렸다.
푸각!
이후 마찰음 사이에 파육음이 섞였고.
엔크리드가 뒤로 물러나며 검을 아래로 흔들어 칼날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너.”
맞은편의 프록, 메엘룬이 제 눈을 깜빡였다.
이게 진짜 뭐지?
메엘룬은 이전에 엔크리드와 싸운 뒤로 실력을 키우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단련에 힘썼다.
그중에 사교도 서넛을 썰어 버린 탓에 정말 뒈질 뻔한 적도 있었다.
마물을 벴고 마수를 벴으며 마경 근처도 배회했다.
모든 건 오늘을 위해서였다.
감히 제 일에 훼방을 놓은 인간을 찍어 누르고 욕구를 이루기 위해서인데.
프록의 욕망은 때로는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니.
메엘룬은 욕망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상대를 이긴 뒤 성취감을 만끽하는 것.
눈앞의 인간은 딱 좋은 상대였다.
자신보다 약하나 발악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어떤 때보다 진득하고 진한 성취감을 얻으려 했던 노력이 제값을 못 했다.
아니, 제 노력은 값을 제대로 이뤘으나 상대가 달라졌다.
‘말도 안 돼.’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자를 상대하는 건 메엘룬의 욕망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기에 그는 이곳에 있었다.
그의 재능 판독안과 더불어 다양한 경험에 빗대어 볼 때 자신이 지는 건 말이 안 된다.
지금도 제 전투 감각이 그리 말한다.
그런데 이건 뭐지? 대체 뭐지?
지금 자신의 실력은 이전의 자신보다 월등히 성장했다.
그런데 이전에는 자신과 간신히 겨뤘던 놈이 한칼에 제 눈을 뺏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 팔 어디 갔냐?”
절로 이런 황당한 말이 흘러나왔다.
있었는데요, 이젠 없습니다.
딱 두 번 검을 겨뤘는데 첫 번째에는 외눈이 됐고, 두 번째에는 외팔이가 됐다.
그러니까 팔이 잘렸다. 검을 든 채 팔꿈치 밑으로 잘린 살덩이가 한쪽에 널브러졌다.
꿈틀거리며 피를 질질 흘리며 루프 소드를 쥔 손이 보였다.
프록의 재생력은 놀라워 잘린 단면에선 벌써 꾸물거리는 살이 차오르고 있지만, 지금 당장은 무기와 팔을 잃었다.
황당함과 동시에 욕망에 배신당한 프록은 이성을 잃었다.
눈깔이 뱅글뱅글 돌더니, 떡 벌어진 입에서 긴 혀가 나와 흐느적거렸다.
“더 할 거냐?”
엔크리드는 크라이스가 무사한 모습을 봤다. 묶어 두지도 않고 홀 구석에 웅크린 걸 이미 확인했다.
즉, 이 프록이 죽인 사람은 없다.
묻고 싶은 것도 있었다.
대체 수금은 어디의 누가 시킨 거냐는 그런 것 말이다.
앞으로도 또 너 같은 놈이 찾아올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끝나는 건지, 혹시 검은 칼의 수작인지, 아니면 백작이 예전부터 영지에 수작질을 부린 건지.
의심되는 일이 많기도 했다.
답은 간단했다. 저 프록에게 물어보면 될 터.
그리 지켜보는 사이다.
“엔키.”
뒤에서 요정 중대장이 자신을 애칭으로 불렀다. 약혼자보다는 저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왜 자신을 불렀는지는 프록을 보며 알았다.
메엘룬이란 프록이 호심갑 안으로 손을 넣더니 뭔가를 꺼냈다.
작은 가죽 주머니였다. 납작한 것이 호심갑 안에 넣어 두기 딱 좋은 모양새다.
그걸 들어 입 위에서 한 손으로 턴다. 주머니 끈이 풀리며 가루약 같은 게 그의 입으로 들어갔다.
“조심해라.”
요정이 경고했고 곧 프록은 눈깔이 시뻘게졌다.
승리의 성취감, 오롯이 하나의 욕망에 정신이 팔린 프록은 깨어나면 후회할 선택을 했다.
그는 약을 먹었고, 곧 그 약의 효과가 몸에 나타났다.
“끄으으으으으아아아아!”
프록이 괴성을 지르며 내달렸다. 조금 전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다.
엔크리드는 프록이 가루약을 털 때부터 오른발을 뒤로 빼며 자세를 잡은 채였다.
달려드는 프록을 보며 크라이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요정 중대장이 뒤에서 발을 뗐다.
길 안내 후 문밖에 있던 길핀은 놀랐는지 엉덩방아를 찧었다.
엔크리드의 육감은 전에 없이 예민해져 주변 모든 걸 인지했다.
컨센트레이트 원, 한 점의 집중 또한 발동함에 주변의 모든 게 느려진 것처럼 보였다.
묵직하고 단단한 공기가 몸을 감싼 듯한 착각이 들었다.
메엘룬이 흘린 가루가 허공에 흩어지며 빛을 반사했다.
그 앞으로 프록이 어느새 확대됐다. 코앞까지 다가왔다.
엔크리드는 검을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든 채였다.
거리를 좁힌 프록은 발을 앞으로 내질렀다.
‘베어도.’
이후 다가온 육신이 그대로 돌덩이처럼 몸을 덮칠 터였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프록 특유의 전술이었다.
꽝! 푹!
폭음이 터지며 부딪친 둘 중 하나가 벽으로 날아갔다.
“대장!”
그제야 크라이스가 외쳤다. 싸움의 과정 따위는 제 눈에 보이지도 않았으나 갑자기 프록이 약 처먹고 날뛴 건 그의 눈에도 보였다.
둘이 부딪치며 저택 바닥의 나무가 깨지고 먼지가 인 탓에 크라이스는 잠깐 앞이 보이질 않았다.
먼지 너머, 흐릿한 인영이 손을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왜 부르냐?”
‘아, 시발. 당한 줄 알았네.’
크라이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요정 중대장은 너무 놀라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어설프게 발을 뗀 자세였다. 검에도 손을 올려 뒀고.
“조금 전의 그건?”
그녀는 자신이 본 걸 되새겼다.
발이 날아온다. 엔크리드는 검면을 상대의 정강이에 대고 흘렸다.
프록의 피부는 미끄럽다.
그 특성을 이용한 흘리기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이라 할 순 없었다.
조금만 엇나가도 발길질에 머리통이 걸려 부서지거나 어깨쯤이라도 맞으면 그대로 뼈가 부서질 힘이 있었으니.
그러니 흘리는 것조차도 묘기라고 할 법한데 거기서 끝나지도 않았다.
엔크리드는 이후 왼손에 짧은 검을 뽑아 검면을 둔기 삼아 프록의 호심갑을 후렸다.
정확히 심장 부위를 타격함으로 갑옷을 깨부수고 그 안에 충격을 선사했다.
이 과정이 놀라운가? 놀랍다. 반응 속도도 대처 방식도.
“엄청나게 늘었군.”
시나르는 이제 자신도 쉽사리 승부를 장담할 수 없으리라 판단했다.
물론 모든 걸 다 까고 싸운다면 모르겠으나, 단순 대련으로는 쉬이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인 거다.
‘야만인보다 까다로울 것 같은데?’
놀란 요정을 보며 엔크리드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뭘 아는 눈치던데?”
그러곤 물었다. 엔크리드는 가루약을 본 중대장의 외침을 들었다. 뭔가 아는 말투였다.
“최근에 구경한 물건이라.”
“일단 주변 정리부터 하죠.”
정신을 차린 크라이스가 다가오며 말했다.
엔크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저택 벽을 부수고 벽돌 사이에 꽂힌 프록을 바라봤다.
심장이 터지진 않았으나, 충격으로 기절했다.
약 기운이 발악하든 말든, 프록의 약점은 심장이다. 엔크리드는 정확히 그걸 노렸다.
고로 실력 차이가 명확했다.
“근데 대장 진짜 세구나.”
알았음에도 놀랄 일이다. 크라이스가 말하고 이 모든 걸 지켜본 길핀은 입을 벌린 채로 아까부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엉덩방아를 찧은 자세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였다.
숫제 자신과 상관없는 괴물들 아닌가.
자신이 본, 아니 제대로 본 것도 얼마 없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주변에 전하면 믿긴 하려나?
‘잘도 믿겠네.’
이게 말이 되나?
저 작자가 무슨 기사라도 된단 말인가?
아닌데, 그냥 일개 중대장이지 않나?
근데 말이 안 될 정도로 잘 싸우는데?
“일단 돌아간다.”
엔크리드는 프록을 생포했다. 죽지 않으면 재생할 테니, 생포가 맞다.
몇 가지 의문과 호기심도 해결할 겸이다.
엔크리드가 어깨 위로 프록을 둘러메고, 옆에는 요정 중대장과 크라이스가 따라붙었다.
저택 밖으로 나가자 싸늘한 바람이 볼을 스쳤다.
그리 길지 않은 전투였으나, 땀은 흘렀다. 볼 위로 흐르는 바람이 무척 시원했다.
관자놀이를 따라 땀이 흐르자, 옆에서 요정 중대장이 손을 뻗어 땀을 훔쳤다.
그러며 하는 말이다.
“그대는 양파인가?”
엔크리드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건 무슨 말입니까?”
“매번 새로운 매력을 보여 주니, 까도 까도 새로운 속살이 나오는 양파가 아닌가 해서.”
엔크리드는 심히 궁금해졌다.
대체 요정의 세계에서 농담이란 무엇인가.
이게 정상적인 요정이란 걸까?
아니면 요정 중대장은 요정 세계에서도 배척받은 건가? 이따위 농담을 해서 쫓겨나 여기에 있는 걸까?
크라이스도 들었나 싶어 힐끗 봤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 가진 게 많네요.”
그는 프록이 가져온 가방을 뒤지며 걷는 중이었다.
“못 들었냐?”
엔크리드가 물었다. 크라이스는 가방 안에 들어갈 것처럼 수그렸던 고개를 들었다.
“네?”
안 들었군. 들었으되 듣지 않았다. 크라이스가 쓰는 기술임을 알기에 엔크리드도 그걸 흉내 냈다.
“가루약은 뭡니까?”
들었으되 듣지 않았다. 소재를 돌렸다.
“있다. 골치 아픈 거. 양파 약혼자여.”
요정 중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엔크리드에게 신선한 호칭을 붙였다.
욕을 해도 될까?
엔크리드는 잠시 고민하며 입을 다물었다.
약에 관한 건 나중에 크라이스 시켜서 알아보면 될 일이다.
“양파 약혼자여, 지금 눈으로 뭐라고 말한 것 같은데? 늪지에서 자란 사과를 보는 듯한 눈인데?”
“……늪지 사과?”
“늪지에서 자란 사과는 썩고 병든 사과뿐이라.”
욕이란 소리로 해석했다.
엔크리드는 요정 중대장이 조금 들뜬 것처럼 보였다.
왜 그러는 거냐 묻진 않았다.
그저 크라이스처럼 행동할 뿐.
들었으되 듣지 않았다.
“이봐, 약혼자. 지금 내 말에 대답하기 싫은 기색이 보인다.”
“에스터가 마중 나왔군요.”
엔크리드는 마침 병영 앞에 있는 표범을 보고 반가움을 표하며 말했다.
그의 말 그대로, 에스터가 마중이라도 나온 것처럼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엔크리드의 걸음은 가벼웠다.
일전에는 프록 메엘룬을 상대로 간신히 버텼으나,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가벼운 마실 정도로 끝난 일이었다.
그 정도로 변했다. 엔크리드는 에스터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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