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27)
27. 이게 왜 최하급 병사야?
정찰 분대장의 이름은 앤드류였다.
풀 네임은 앤드류 가드너.
한때 남작의 위를 지녔으나, 지금은 몰락한 가문의 유일한 승계자다.
그의 바람은 하나였다. 자신의 대에서 가드너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앤드류, 네가 희망이다.”
병으로 죽어 가던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뇌리에 남아 여전히 생생했다.
어머니는 삯바느질과 남의 집 하녀 노릇을 하며 돈을 모았다.
그리고 그 돈은 전부 앤드류를 위해서 썼다.
검술 교습소부터 시작해서 입고 먹는 것까지.
풍족한 성장기를 보냈다고 할 순 없으나, 그렇다고 부족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일에 치이던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어머니의 바람 또한 한 가지였다.
“가문을 이어, 훌륭한 사람이 되어 주렴.”
그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앤드류가 제 가문을 부흥시키는 수단으로 택할 만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전쟁의 시대가 아닌가.
싸우고 또 싸워, 제 능력을 증명하면 될 일이었다.
훈련과 인맥이 필요한 시점에 적절한 도움이 있었다.
어머니는 죽기 전, 한때 남편의 의형제와 다름없는 남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재능은 있군요.”
아버지의 의형제라던 남자의 말이었다.
이후 앤드류는 고된 훈련을 받았고 종군했다.
직업 군인으로 시작했고, 어린 나이에 분대장의 지위를 받았다.
‘공적이 필요해.’
앤드류의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만 가득했다.
실력에 자신이 있기도 했다.
전장에 나서서 어지간한 병사 서넛을 죽인 뒤 생긴 자신감이다.
“매사에 조심해야 합니다.”
조언자이자, 조력자가 툭하면 잔소리했다.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앤드류가 그 말을 허투루 듣진 않았다.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다.’
일단 자신이 살아야 가문의 부흥도 있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도전적인 삶을 포기할 수도 없다.
도전을 포기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가문의 위세를 잃은 아버지가 좋은 본보기였다.
어릴 때부터 재능이 없던 아버지는 매일 검을 휘둘렀으나, 그 재능이 보잘것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가문의 부흥 따윈 꿈꾸지 못했다. 금세 포기했으니까.
남은 자산을 탕진하는 게 그가 가진 삶의 전부였다.
그러다 시비가 붙은 도박꾼의 칼에 찔려 죽었다.
‘미래가 없는 삶은 암울한 법.’
그렇기에 그는 가문의 부흥을 꿈꾸면서도 제 목숨도 소중하게 생각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아니꼬운 일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중 사고뭉치 분대장이 앤드류의 눈에 걸렸다.
자신은 실력으로 이 자리에 있다.
가문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위대한 위업을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그런데 저 작자는 뭔가.
실력은 최하급 병사에.
운 좋게 분대장의 위치에 선 봉급 도둑이 아닌가?
직업 군인으로 살 가치가 있는 인간인가.
그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흔적이 엿보이기도 했다.
‘어찌어찌 봉급이나 타며 오늘에 안주하다가 죽겠지.’
훈련한답시고 검을 휘두르는 척이나 하고 살 것이다.
일개 병사가 검을 단련한다며 검대와 검을 차고 온 것도 우스웠다.
엔크리드를 안다면 할 수 없는 생각이지만, 앤드류는 그를 몰랐다.
그리고 지금, 아침부터 사고뭉치 분대장이란 놈이 빤히 자신을 쳐다봤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불쾌한 감각이 서로의 눈을 타고 흐른다. 그 감각의 끝, 앤드류의 미간이 좁혀졌다.
‘눈알이 거슬려.’
막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사고뭉치 분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눈깔이 불쾌한데?”
음? 지금 누구보고 하는 말이지?
앤드류가 미간의 확 좁혀졌다. 찌푸려진 그의 인상이 심경을 대변했다.
그러자 그를 따라온 병사 중 하나가 먼저 나선다.
“지금 뭐라고 한 거요?”
이마에 칼자국이 난 병사다. 본래 싸움판을 떠돌던 친구라고 했던가.
앤드류는 그를 향해 말했었다.
“나를 따라와라. 깡패보다 나은 삶을 주겠다.”
그는 이후 앤드류의 심복이 됐다.
아직 실력은 형편없고 깡패일 때 버릇을 다 버리지도 못했지만, 싸움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데려온 친구다.
그런 병사가 셋이었다.
그 셋이 슬며시 일어나서 사고뭉치 분대장을 감쌌다.
* * *
엔크리드는 몇 번의 오늘을 반복하며 결론을 내렸다.
‘역시 분대원의 위치로는 안 돼.’
이들이 자신의 말을 충실히 따르고 명령에 움직여 줘야 한다. 그게 최소 조건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기사는 어떻게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가.
그들은 어찌하여 전장에 나서자마자 사람들을 열광케 하는가.
간단한 이유다.
실력이다.
능력을 보여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지금 자신을 포함한 열 명을 한 몸처럼 움직이게 하는 데 필요한 건 무엇인가.
신뢰를 얻는 데 필요한 건 무엇일까.
하루 만에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며 친분을 쌓을 순 없으므로.
남은 건 강압을 기반으로 한 폭력뿐이었다.
“그 입이 문제 같은데? 예쁘장한 문신이라도 하나 새겨 드릴까?”
이마에 흉터가 있는 병사가 말했다. 눈빛이 번들거렸다. 사람 몇은 담가 본 낯짝이었다.
어째 이 새끼는 대사가 한결같네.
엔크리드는 생각하며 셋이 선 위치를 봤다.
그들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지만, 이미 수차례 반복한 오늘이다.
반복한 이유? 하나뿐이었다.
폭력과 강압은 압도적일수록 좋으니까.
그러려면 경험이 필요했다.
실력과 별개로 이들의 반응과 패턴을 알아야 했다.
그런 이유로 발렌 식 용병검은 배제.
순수한 실력으로 제압해야 했다.
반복된 오늘을 넘기기 위한 첫 번째 관문, 깡패 병사 셋을 제압하는 거였다.
“말문이 막히셨나?”
깡패 출신 병사가 건들거렸다.
엔크리드는 말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말없이 한 걸음.
상대가 반응한다. 움찔하며 주먹을 들으려고 한다. 싸울 자세를 취한다.
셋 중 하나는 아예 숏소드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엔크리드는 왼발을 먼저 바닥에서 뗐고, 그 한 걸음은 무척 느렸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이게 뭔가 싶어 바라보다가도 뭐라 따지기에는 모호한 그런 타이밍.
엔크리드의 오른발이 빠르게 땅을 찼다.
느린 동작에 빠른 동작을 섞으며 배는 빨라 보이기 마련이었다.
간단한 속임수이자, 선공을 위한 수작이었다.
그리고 그건 꽤, 아니 엄청나게 유용했다.
“씁!”
이마에 흉터를 가진 병사가 호흡을 삼키며 주먹을 뻗으려 했다.
물론 그보다 빨리 엔크리드는 상대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떡!
정강이를 옆으로 밀듯이 차자 상대의 자세가 흐트러진다. 곧바로 손등 보호대를 앞세워 옆으로 기울어진 상대의 관자놀이 부근을 때렸다.
호쾌한 스윙의 타격이었다.
뻑!
“끅!”
상대가 짧은 비명과 함께 비틀거리며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엔크리드의 이후 움직임도 물 흐르듯 유려했다.
옆으로 몸을 돌리자, 빈틈을 노리고 날아오는 숏소드가 허공을 긋는다. 약속된 동작이라도 되는 듯 숏소드를 쥔 병사의 손목을 잡아 꺾는다.
다치지 않게 적당히 힘을 주는 게 핵심이었다.
우득. 딱.
그렇게 손목을 비틀고 턱 부근을 비스듬한 각도로 때리자, 두 번째 병사도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 쓰러지는 병사의 가슴을 마주 안아서 바닥에 얌전히 내려놓고.
일어나며 떨어진 숏소드를 주워든다. 엔크리드는 숨소리 하나 변하지 않고 물었다.
“더 할 건가?”
나섰던 병사 중 홀로 남은 친구가 식은땀을 흘렸다.
먼저 칼을 뽑은 건 상대 쪽이었다.
이대로 찔러도 할 말이 없으리라.
“뭐 하자는 거지?”
거기까지 지켜보던 정찰 분대장이 나섰다.
“첫날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걸음마나 간신히 뗀 애송이 친구.”
엔크리드가 겁을 집어먹은 놈 대신 정찰 분대장을 향해 돌아섰다.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다면 어지간한 건 다 참고 넘어가도 된다. 딱히 상대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큰 의미를 두지도 않는다. 이제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얼굴을 붉힐 필요가 있다면?
할 말을 다 하면 되는 거다.
“너 같은 놈 지휘를 받으면 시답잖은 정찰 임무에도 몰살당할 것 같아서, 실력으로 가르자고.”
항명은 큰 죄다.
다만, 지금은 상황이 묘했다.
엔크리드는 본래 분대장의 지위다.
상대가 그걸 존중했다면 모를까.
철저하게 무시하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참지 못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윗선에서도 둘 중 누가 정찰 분대를 이끌어도 상관없다고 할 터였다.
정찰 소대장이 떠날 때 고생하라며 어린 분대장의 뒤를 잘 봐주란 말도 하지 않았던가.
지금이 그때였다.
뒤를 봐주다 못해 앞에 나서야 할 때.
“……싸워서 이기는 쪽이 분대 지휘권을 갖자고?”
정찰 분대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럼 되겠군. 나보다 약한 놈 밑에서 구를 마음은 없어서.”
정작 사고뭉치 분대에서는 크라이스를 제외하면 엔크리드보다 잘 싸우는 괴물들밖에 없지만.
핑계는 핑계일 뿐이다.
되도록 상대가 발끈해서 덤비는 게 좋았다.
“덤벼라. 젖비린내 나는 꼬맹이. 여자랑 잠은 자 봤나? 아, 아직 고추가 덜 자랐나?”
앤드류의 안색이 굳었다.
그는 아직 첫 경험을 하지 않았다.
그 시간을 아껴 몸을 단련했다.
그 시간을, 자신의 노력을, 여기까지 오기 위해 했던 모든 것을 상대가 모욕하는 것처럼 느꼈다.
퉁.
분대장이 숏소드를 뽑았다.
“넌 검을 뽑아도 좋다. 칼날 길이가 실력을 대변하진 않을 테니까.”
“거, 음.”
앤드류의 말에 옆에 있던 인상 험악한 병사가 말리려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한숨을 쉬며 물러섰다.
그는 용병으로 꽤 오래 일했다. 이런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봤다.
처음부터 불협화음이 있었다. 차라리 지금 풀고 가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감정이 골이 깊어지는 게 더 골치 아픈 일이다.
사내자식들이란 한바탕 싸우고 나면 오히려 감정을 털곤 했으니까.
더욱이 그는 앤드류를 잘 알았다. 자신이 검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천둥벌거숭이 애송이 같지만.
칼도 다룰 줄 알고 소탈한 면도 있다.
무엇보다 옳고 그름을 가를 줄도 안다.
‘쉽진 않겠지만.’
수틀리면 자신이 끼어들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사고뭉치 분대장의 자세, 발의 위치 따위를 보니 보통내기로 보이진 않았다.
손바닥에 인이 박이다 못해 굳어 버린 두툼하고 딱딱한 굳은살이 보였다.
하루 이틀로 만들어진 훈장이 아니었다.
“됐다. 난 맨손으로 하지.”
“이 새끼가?”
앤드류가 흥분했다. 저건 단점이다.
쉽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
나중에 지적할 게 생겼다.
남자는 그리 생각하며 마음 편히 감상하기로 했다.
빨리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둘 다 실력이 특출나진 않지만, 그렇다고 엉망진창으로 보이지도 않았으므로.
그러면서도 내심 앤드류가 이기지 않을까 했다.
흥분했다고 해서 기본기가 어디 가지는 않으니까.
그는 재능이 있었다.
사고뭉치 분대장이 손짓했다. 덤비라는 손짓에 앤드류가 달려들었다.
그리고.
뻑!
“……한 방에?”
아니, 이건 뭔데.
인상 험악한 병사의 눈이 절로 휘둥그레졌다.
앤드류가 달려든 순간, 사고뭉치 분대장이 왼손을 뻗는 시늉을 했다.
그걸 감지한 앤드류는 숏소드를 그었다.
그러곤 검의 궤적을 완벽하게 읽은 상대가 왼손등에 있는 가죽 건틀렛으로 날아오는 숏소드의 검면을 때렸다.
그 결과 한순간 앤드류의 가슴이 열렸다.
활짝 열린 앤드류의 품 안으로 사고뭉치 분대장이 파고든다. 이후 좁은 공간에서 그의 몸이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딱!
바닥을 차며 안에서 몸을 뒤틀며 팔꿈치를 뻗어, 정확히 앤드류의 명치를 찍었다.
그 한 방으로 끝이었다.
“끄으으읍.”
앤드류가 신음을 흘렸다. 그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순간 호흡이 턱 막히고 사지에 힘이 쭉 빠질 것이다.
급소란 그런 곳이니까.
앤드류가 꺼걱 하는 신음을 마저 토해내며 등을 새우처럼 구부렸다.
실전이었다면 그대로 죽은 목숨이었다.
‘무슨, 힘이.’
두꺼운 천 갑옷을 뚫고 충격을 전해 주나.
실력이 어지간한 용병보다 나은 수준이었다.
연이어 절로 드는 의문이 있었다.
이게 왜 최하급 병사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