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274)
274. 겉으로 드러내 보여 줄 게 그것뿐이었나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핀이 답햇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꼬이긴 했으나, 그게 문제가 될까? 안 그럴 것 같은데.
여기에 같이 온 게 누구인가.
그 엔크리드와 작센인데?
엔크리드의 무식한 칼질이면 여기 도적 중 반쯤은 그냥 썰어 버릴 것 같은데?
도적 무리가 무슨 의리가 있어서 그걸 지켜보고 있겠나.
구경하다 보면 도망갈 놈이 또 반은 될 것이다.
위험할까?
아닐 것이다. 핀은 인간 군중, 그것도 도적 무리가 취할 태도가 눈에 보였다. 예측 가능했다.
최악의 경우, 그들 하나하나가 전부 덤빈다고 해도 그 엔크리드다.
얌전히 당할 리가 없엇다.
“주문 냄새가 나.”
요정 시나르가 말했다. 그녀의 감각은 명징했다.
핀은 눈살을 찌푸렸다.
마법사라니, 그건 좀 골치가 아프긴 했다.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당할 것 같진 않은데.’
엔크리드가 혼자 있는 것도 아님에야.
핀은 미치광이 중대 내에서 생활한 경력이 있었다. 그녀는 작센 또한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온 말이었다.
“그건 그거고 이쪽에 시선이 좀 덜 끌리는 것 같은데요.”
걔들은 알아서 하라고 놔두고 우린 우리 일이나 하자는 의도다.
그녀의 눈이 마을 중앙 어림을 훑었다. 엔크리드가 한창 난리를 피운 곳이다. 사방에 횃불을 밝혀 어두운 밤에도 빛을 토하는 장소가 보였다. 마을 중앙 광장이다.
사람들이, 정확히는 도적 무리가 속속 모여드는 게 보였다.
“그렇지.”
“알아볼 것부터 먼저 알아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핀은 생각했다. 아무리 위험해도 엔크리드다. 그도 제 한몸을 빼낼 줄은 알 것이다.
시나르도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하나 있으나, 그녀는 우선해야 할 일을 명확히 인지했다.
마을 중앙, 도적놈들이 굴을 파 뒀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시나르와 핀은 이제껏 그 흔적을 찾아서 쫓아왔으니.
* * *
이 마을에 합류한 지 겨우 한 달이다. 그의 이름은 본드였다.
그는 적당히 용병질을 하다가 덜컥 욕심이 나서 동료의 등에 칼빵을 놓았다.
뭐, 흔한 일이었다.
보수를 혼자 꿀꺽하고 싶다는 그런 욕심.
여기서 실수가 있었다면 칼빵 맞은 새끼가 곱게 안 뒈졌다는 거고.
그의 형제 같은 놈이 무슨 귀족의 경비대원이었고.
곧바로 그는 경비대에게 쫓겨 냅다 튀었다는 것 뿐이다.
‘재수는 더럽게 없지.’
창녀를 어미로 뒀고.
“차라리 나가 죽어라, 죽어!”
어미 등쌀에 못 이겨 뛰쳐나와 영지 뒷골목을 전전할 때 부터 꼬인 인생이긴 했다.
뒤통수 때리는 본드로 이름이 알려지며 용병으로 전향한건데, 여기서도 제 버릇 개 못 준 거였다.
동료의 등에 칼빵을 놓았고, 상황은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갔다. 그런 자신에게 갈 곳이 얼마나 있겠나.
용케 검은 칼에 몸을 의탁해서 이제 슬슬 적응하던 시점이라 이거다.
그리고 그가 이곳에서 한 달 내내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마을의 지배자에게 개겼다간 손쓸 새도 없이 타 죽는다는 거였고.
두 번째는 말끝을 흐리는 경비병과 클로를 쓰는 여자에게도 덤비면 안 된다는 거였다.
신소리 한 번 잘못했다가 혀가 잘린 놈을 본 뒤론 정말, 저 여자의 허벅지도 쳐다보지 않았다.
되도록 얼굴 마주치지는 걸 피했다.
그래도 얼굴은 알았다. 알아야 피할 것 아닌가.
본드가 생각하기에 저 둘은 그러니까, 이쪽 마을을 지키는 무력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지금그 상징 둘이 정말 상징이 되었다. 움직일 수 없는 동상 비슷한 취급을 받아도 무방한 그런 상징 말이다.
물론 보기 좋은 형태로 남은 건 아니었다.
“끄르르륵.”
실상 본드의 눈에 보인 건 뭔가 휙휙 움직이고 날아가는 것 같았을 뿐이다.
그중 자신처럼 멍하게 녹슨 숏소드나 망치, 슬링샷, 모래를 채워 쓰는 둔기인 블랙잭, 못 박은 몽둥이 따위를 들고 구경하는 놈도 있었으나.
대충 눈치 보고 단검이나 다트를 던지거나, 쇠뇌를 든 궁수도 열 명이 넘게 있었다.
어쩄든 그들 모두가 뭐라 반응할 틈은 없었다.
“끅, 끅.”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걸 쏟아 내는 두 명의 상징에게 시선이 쏠렸으니.
말끝을 흐리는 경비병은 짧은 팔뚝 길이의 단창을 썼다.
이전에 무슨 용병 출신이라고 했는데, 그 때도 꽤 날렸다고 들었으나 검과 창날 끝이 맞닿는가 싶더니 목이 베였다.
진짜다. 닿는 순간, 어? 하고 보니까 목이 썩둑 잘렸다.
본드의 눈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검이 마주치자마자 검은 머리를 가진 놈의 칼날이 상대의 목을 친 것만 보였으니.
‘아니, 검이 맞닿으면 챙 소리라도 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었다. 유검식, 엔크리드가 만든 검술이 상대를 유린했다.
부드럽게 친다고 해서 솜뭉치가 되지 않은 예리한 칼날이 적을 때렸기에 생긴 일이었다.
그뒤에 클로를 든 여자가 등 뒤를 할퀴었으나, 뭔가 아래에서 위로 훙 지나가더니, 여자는 두 쪽이 났다.
그렇게 두 번째 상징은 두 개의 몸으로 나뉘었다.
그게 끝이었다.
무슨 짓을 한 걸까?
귀신같은 솜씨의 칼잡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긴 했지만, 이건 정말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실력 차는 검술이 주문으로 보이게 끔 하는 법이다.
본드는 몸이 굳었다.
덤벼도 되나? 그럼 곧바로 뒈질 텐데?
본능이 부르짖었다. 튀라고, 당장 도망가라고.
“어?”
쇠뇌를 든 궁수가 멍청한 외마디 말을 뱉을 때다.
“비켜라.”
도적 무리 사이로 진짜 이 마을의 지배자가 나섰다.
본드는 뒤로 주춤 물러서려다가 멈췄다.
나선 여자가 눈에 보인 순간이다. 저 여자의 이름은 카이셀라, 꼬불꼬불한 갈색 머리칼과 부드럽게 휘어진 눈꼬리와 두꺼운 입술과 풍만한 가슴과 둔부가 돋보이는 여자였다.
가슴과 둔부 덕에 잘록해 보이는 허리에 한쪽 손을 얹은 카이셀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두 구의 시신을 본 뒤였다.
그녀를 보자마자 무력 상징 둘을 쪼갠 괴물이 손을 휘저었다.
상대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손을 뽑아 나이프를 던졌다.
물론 본드는 동작을 하나하나 볼 수 없었다. 너무 빨랐다.
결과, 과정을 뛰어넘은 장면을 보고, 연상하고 판단했을 뿐이다.
그가 날린 칼날은 그대로 퉁하고 투명한 막에 막혔다.
카이셀라의 미간의 골이 깊어졌다.
저럴 때마다 마을 주민이 사라지거나, 우연히 마을에 들어선 무리가 통째로 없어지곤 했다.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가 죽거나.
“주저함이 없군.”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영롱했다.
그 옆에서 표범의 눈이 시퍼렇게 빛나기 시작했으나, 그 또한 본드에겐 보이지 않았다.
본드는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지만, 무언가 일이 터질 거 라는 건 알았다.
이제는 도망갈 생각도 들지 않았다.
누가 다리를 붙든 것처럼 꼼짝도 못 했다.
카이셀라의 손가락 끝이 엔크리드를 가리켰다.
상대는 꼼짝도 하지 않았따. 적어도 본드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저 오른손에 검을 든 채로 카이셀라의 손가락을 마주할 따름이었다.
“후려치리라.”
동시에 카이셀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꽈르르르릉!
어떤 전조나, 아무런 징조도 없었다.
하늘을 찢어발기는 굉음과 함께 푸른 벼락이 내리쳤다.
정확히 남자의 머리 위다.
본드는 번쩍하고 눈앞을 가득 채우는 빛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이어 그 빛이 자신을 뒤로 훅 하고 밀어냈다.
충격파로 인해 몸이 뒤로 날았으나, 부유감을 느낄 새도 없었다.
아니, 기억에 남지 않았다.
본드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저 눈앞에 흙바닥이 있을 뿐이었다.
“끄으으으으.”
신음 따위가 귀에 들렸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으나, 곧 자신도 저와 비슷한 신음을 흘리는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며 본드는 몸을 반쯤 비틀었다. 일어나려는 버둥거림이었다.
그의 눈에 몸의 반이 타 버린 것들이 보였다.
새카만 덩어리가 된 동료도 있었다.
‘뭐지? 뭐였지?’
아직 통증이 제대로 몸에 인지되지 않는다. 그만한 충격이었다. 맞는 순간의 기억이 소실됐다.
본드는 꾸역꾸역 몸을 움직였다. 그나마 그는 형편이 나았다.
전신이 타 버리진 않았다. 제 몸을 인지한 순간 오른팔부터 통증이 치달았을 뿐.
으득.
자기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시선을 오른 밑으로 돌렸다.
오른팔부터 허벅지 어림까지가 새카맣다. 피부 겉면이 익고 탄 듯 했다.
화끈거리는 통증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벼락이었어, 벼락.’
어릴 때 꽤 가까운 곳에서 벼락이 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하얀 불, 보이지 않는 어떤 빛의 강타.
그 때 그 벼락의 불빛이 떠올랐다.
아직도 정신이 멍했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아니라면 통증 때문에 비명이라도 내질렀을 테니.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 머리털 태반이 탔고, 누군가가 목구멍으로 불덩이를 쑤셔 넣은 것 같았으니까.
본드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눈은 멀쩡했다.
조금 정신이 돌아오자, 통증이 더 선명하게 몸을 휘돌았다.
‘꺽.’
속으로 비명을 지른 본드가 어쩌지도 못하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비틀거렸다.
쥐새끼가 달려들어 몸을 뜯어 먹는 것 같았다.
자신은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뒤로 물러났다. 엉덩이를 댄 채로 기었다.
등 뒤로 벽이 닿았다.
차가운 벽의 감촉이 그나마 통증을 감쇄해 주는 것 같았다. 그제야 시선을 앞으로 던질 수 있었다.
검은 머리칼의 습격자와 자신과의 거리는 대강 봐도 열 다섯 걸음이 넘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다.
그 중앙에 이 주문의 주체가 된 놈은 어떻게 됐겠나.
죽었으리라. 끔찍하게도 선 채로 타서 재가 되었다고 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자신이 이 정도다.
조금 더 가까이 있던 이들은 새카맣게 탄 채 죽었다.
그런 본드의 눈에 멀쩡한 놈이 보였다.
‘어떻게?’
그리고 그 옆에 선 새로운 인간도 보였다.
검고 긴 생머리와 회색빛의 로브를 걸친 여자였다.
한쪽 손을 허공에 든 채로 그녀의 입이 열렸다.
“낙뢰 주문이라니, 쓸 만하다.”
그 말투에 어린 느낌은 뭐랄까.
어린아이의 재롱을 본 어른과 같았다.
얕보고 깔본다. 상대의 수준을 가차 없이 평한다. 그 말투에 어린 감정인지, 느낌인지를 벼락 맞고 꺽꺽거리면서도 느꼈다. 주문을 쓴 주체가 이걸 눈치 못 챌 리가 없었다.
“미친놈 하나와 미친년 하나.”
카이셀라가 다시금 입을 열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입에서는 알아듣지 못할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주문의 시작이었다.
그럼에도 본드는 순간 통증을 잊고 검은 머리칼의 여자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주변 모든 시선과 인식을 빨아들이는 독특한 매력의 미녀다.
검은 머리칼은 한 올 한 올 무슨 짓을 했는지 비단처럼 유려했고, 입술은 붉고 그 눈은 파랗다.
신비가 가득했다.
카이셀라가 욕정을 일깨우는 몸을 가졌다면 이쪽은 경외하는 마음이 드는 외모였다.
본드는 무심히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여자를 보고 눈이 돌아간 자신이 병신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만 그런 건 아니었다.
* * *
엔크리드는 마법사의 존재를 인지하자마자 허벅지에 힘을 줬다.
던지는 칼날이 막혔으니, 이제 직접 베어 버리며 ㄴ그만이라.
그 순간 인간의 육신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뭔가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인지하고 느낀 순간, 그 파괴적인 섬광에 몸이 반응했다.
시간을 쪼개고 방어를 준비했다. 두 팔로 머리를 막고 버티려 했다.
그와 동시다.
“내가.”
옆에서 들리는 속삭임과 읊조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 위에서 빛이 번쩍거리기 전에 먼저 말했으나, 엔크리드는 빛을 먼저 인식했고 목소리를 뒤늦게 인지했다.
어느새 에스터는 회색 로브를 걸친 채로 인간으로 변해 있었고.
그녀는 오른손바닥을 펼친 채로 앞을 향해 내밀었다.
그거로 끝이었다.
엔크리드의 오감을 넘어선 육감에 두 가지 마법이 부딪혔다.
자신의 단검을 막았던 무형의 막과 비슷한 것이 파괴적인 빛-벼락이 도달하기 전에 머리 위를 막았다.
꽈르르릉!
이후 벼락이 들이쳤다. 그 여파로 주변에 있던 도적 무리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엔크리드는 빛무리를 막아 낸 무혀의 막을 봤다.
파란빛이 은은히 흐르는 반투명한 막이다.
그게 벼락과 만나면 빛을 산란해서 뿌렸다. 그렇게 새로 태어난 빛들은 주변에 튕겨 나갔으며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집 나간 빛의 탕아들은 주변에 있던 이들의 몸을 태우고 관통했다.
에스터가 주문을 통해 반은 막고 반은 튕겨 낸 덕이라.
“반나의 거울?”
상대가 읊조렸다. 그녀의 눈이 조금은 놀람을 표했다.
에스터는 어깨도 으쓱하지 않았다.
네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든 하등 알 바 아니라는 태도다.
오만하며 도도하다.
하지만 그게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했다.
엔크리드는 새삼 에스터의 외모가 주는 어떤 신비로움이 눈에 들어왔으나, 그렇다고 뭔가 흔들리는 법은 없었다.
애초에 여자의 외모에 흔들리는 정도라면 이제껏 우직하게 제 길을 걸을 수도 없었을 테니.
다시금 상대가 무언가 주문을 외우고, 에스터 또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우물거렸다.
찌르르르르.
어디선가 풀벌레 우는 소리 따위가 들리더니, 카이셀라의 손에 파란빛이 어리고 곧바로 벼락으로 화했다.
다만, 아까처럼 위에서 내리꽂히는 게 아니라 손가락을 기점으로 지그재그로 뻗으며 달려들었다.
에스터가 그 앞에서 손을 들었다. 곧 벼락이 왔지만 투명한 막에 막히더니 그대로 되돌아갔다.
번쩍번쩍 빛이 망막에 잔산을 남겼다.
“사라졋!”
카이셀라가 급히 외쳤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입가로 피가 흘렀다.
“쯧쯧, 아이야. 기껏 끌어낸 주문을 되돌리면 어쩌니? 그 마나의 여파를 받아 낼 수도 없으면서?”
에스터의 가르침에 카이셀라의 안색이 굳었다.
그녀는 당황했다. 그럴 만도 했다.
상대가 칼잡이라면 그녀는 지지 않았다. 이 마을에는 그녀가 준비한 것들이 있었다.
준비된 마법사는 홀로 백 명을 죽이고 천 명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자신보다 높은 위계를 지닌 마법사에게는 어쩔 수 없었다.
이건 정설이었다.
카이셀라는 갑자기 나타난, 정확히는 표범이 변한 여자를 노려봤다.
“너는 누구냐?”
에스터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저 상대를 깔아보았다. 그녀는 그래도 됐다. 그럴만 했다.
제 주문 세계와 저 꼬불꼬불한 머리칼의 주인은 적어도 세 단계 이상의 차이가 존재했다.
“말도 안 돼.”
카이셀라가 읊조렸다. 이런 시골구석에서 어떻게 저런 마법사가 나타난단 말인가.
하물며 여기서 뭐 얻을 게 있다고?
오만하기에 마법사요. 이기적이고 편협하기에 또 마법사다.
카이셀라는 다시금 못 알아들을 말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주문 세계를 현실로 구현하는 주문이다.
에스터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발을 뗐다.
그녀 또한 주문을 외우며 나아갔다.
그 걸음걸음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누구도 그걸 보며 쇠뇌를 쏜다거나 덤빌 엄두를 내지 못했다.
벼락의 여파에 멀쩡한 쇠뇌수가 다섯이 넘었으나, 정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엔크리드 또한 구경꾼이 되었다.
‘좀 치는구나.’
그는 그저 멀뚱히 그리 생각했다.
에스터가 마법사라는 건 알았다. 다만 그 수준이 어떤지는 몰랐다.
지금 보니 눈앞에 있는 저 카이셀라라는 육감적인 여자보단 훨씬 나은 듯 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애초에 에스터에게 뭘 바란 적이 없지 않나.
실상 엔크리드는 주변 누구에게도 뭔가를 바란 적이 없었다.
자신의 길을 걷기에, 그게 몹시도 신기한 일이기에 그를 보고 알아서 따를 뿐이지.
“감히!”
카이셀라가 외쳤다.
엔크리드는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아무런 마법도 주문도 어떤 신비도 일어나지 않을 뿐이다.
그저 둘 사이에 공기가 떨렸고 무슨 일이 벌어졌으나, 그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 인지했다.
곧 에스터가 카이셀라의 앞에 섰다.
키는 카이셀라가 더 컸다. 육감적인 몸매 덕에 에스터의 몸은 호리호리해 보였다.
다만, 엔크리드는 그녀의 로브 안쪽이 알몸인 걸 이미 봤다.
손을 드는 사이 벌어지는 옷섶 사이로 전부 속속들이.
엔크리드의 시각과 감각은 이미 남다른 바가 있어, 일부를 봄으로 전부를 구현해 머릿속에 그려 냈다.
에스터도 가려져서 그렇지, 저 육감적인 몸매의 상대보다 못한 몸은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내 보여 줄 게 그것뿐이었나?”
에스터가 카이셀라의 앞에 선 채로 말했다.
명백히 상대의 몸매를 업신여기는 눈길과 말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