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283)
283. 다행히 멍청했다.
‘어, 음, 좋은데?’
엔크리드는 단상에 서서 암살자를 보낸다고 공언했다.
당연히도 그럴 일ㅇ른 없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아니다. 지금 보내는 건 하수다.
크라이스는 그걸 너무도 잘 알았다.
그렇기에 엔크리드의 한마디를 활용했다.
당장 적 지휘관의 멱을 딴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이게 적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나라면?’
먼저 나서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호위도 늘리고 경계병도 늘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더욱 총공격을 지시할 일은 없어질 테고.
‘더 눈치를 보며 움직이겠지.’
몰래 밤에 부대를 움직이는 시늉도 했다. 첩자 새끼들이 보고하라고 은근히 흘리기도 했다.
크라이스는 엔크리드의 말을 십분 활용했다.
‘더 좋아.’
애초에 서로 눈치만 보느라 덤비지 않는 걸 전제로 깐 전략이다.
본래도 잘 먹힐 판이지만, 엔크리드의 한마디로 더 잘 먹히게 됐다.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간다니까.’
본인은 머리 쓰는 걸 퍽 귀찮아하는 것 같지만, 대장은 생각이 깊다.
기지도 좋다.
지금도 영락없이 잘 먹혔다.
안 그래도 서로 눈치만 보던 놈들이 덤지지 않고 방비만 철저히 했다.
밤을 밝히는 횃대 개수가 많아졌다.
사방으로 달리는 아군 정찰병은 말도 기수도 혀를 내두를 만큼 열심히 뛰었다.
크라이스는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감을 버리진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나, 눈으로 보면 불안이 조금 가시는 법이다.
이제 필요한 건 눈이었다.
전장의 눈은 당연히도 정찰이었고.
“정찰대가 승패를 가를 겁니다.”
크라이스는 말했고, 벤젠스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라고.”
이후 그는 제 휘하 정찰대를 미친 듯이 갈궜다.
“다들 뛰어라. 너희가 게으르면 다른 병사가 다 죽는다! 고통은!”
“나를 죽인다!”
중간중간 구호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긴 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그들은 움직였따.
아군 부대는 전부 모여 다시금 정비하고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동이 틀 무렵, 어둑어둑한 하늘을 배경으로 성문을 나섰다.
“전군 앞으로!”
부대 사이사이에 핵심이 되는 베테랑 병사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크라이스는 그걸 보면서도 여전히 불길했다.
언제나 그랬다. 항상 불길하고 불안했다.
‘괜찮아.’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수틀리면 튀면 된다. 그게 작은 안도감을 주며 머리가 제 역할을 하도록 닻이 되어 주었다.
닻을 내린 배는 파도에 쉬이 떠밀리 않는 법이었다.
보더 가드 서쪽, 농지로 쓸 수 없는 황무지 위로 병력이 나섰다.
그보다 조금 남쪽에 작은 언덕 위에서 두 개 분대의 호위를 받으며 크라이스가 전장을 지켜봤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대로 될까?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날까.
그것도 아니면 적군에서 자신의 의도를 읽고 반격할까.
‘만약 이대로 양쪽에서 조이듯 총공세를 펼친다면?’
그럼, 최악이다. 그건 어떻게 막을 수 없다.
엔크리드가 열 명이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심심하다. 왕눈아.”
호위로 따라온 렘이 투덜거렸다.
한쪽 어깨에 도끼를 올린 채로 슬그머니 내리깐 눈에 살기가 어렸다.
당장 나가서 싸우고 싶다는 말을 태도와 눈빛으로 했다.
크라이스는 평소와 같지 않았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기다려요. 싸우기 싫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싸워야 할 테니.”
지금 당장은 머리통을 굴리기 바빴다.
적의 의도, 적 지휘관의 생각, 그들의 성격, 판단하는 경향성, 모든 걸 머릿속에 쑤셔 넣고 굴리고 있었다.
까칠하다고 말해도 무방할 답이었으나, 렘은 답지 않게 입을 다물었다.
그가 보기에도 크라이스가 평소와 달리 보였다.
‘이 새끼도 쓸모가 있긴 하네.’
렘도 겉만 바보다. 그도 머리를 굴릴 줄 알았다.
다만, 모든 걸 자신의 방식대로 꿰맞춰서 볼 뿐이지만.
크라이스는 렘이 얌전하게 군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했다.
여전히 머릿속이 세차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어쨌든 핵심은 소수 정예다.
이들을 어찌 쓰는지가 전장의 승패를 가를 것이다.
불길함과 불안함 속에서 크라이스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생각대로 된다면.’
잘 막을 수도 있으리라. 변수는 고려하지 않는다. 미시적인 변수는 병력이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다.
크라이스의 머리는 자연스레 다음을 그려 냈다.
더 쉽게 이기기 위해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필요할까?
‘여기에 병과를 통일시키고 장비도 통일시켰다면?’
생각이 이어지며 미래를 그린다. 통일된 장비, 그걸 토대로 같은 전술을 활용한 병사로 편제를 바꾸고.
지휘관의 손발처럼 움직이는 강병들,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통일된 규격의 군대.
제국병이 그렇게 싸운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보더 가드 상비군도 가능하지 않을까?
소수 특출난 이들의 집단은 별개로 둔다.
하지만 그 외 부대는 일률적인 힘을 지니게 한다. 병력의 통일성이다.
‘통일된 병과와 장비가 있다면.’
결투에서는 질 수 있는 병사도.
‘중대급 이상의 전투에서는 이긴다.’
소수 정예의 전투도 중요하나, 대규모 전투 또한 중요한 건 마찬가지 아닌가.
대규모 전투에서 이기려면 통일성이 중요했다.
일대일, 십 대 십은 져도 백 대 백을 이기면 된다.
아군이 집결하는 걸 보며 새로이 깨달은 점이다.
검병과 창병, 방패병 따위의 이름을 지으며 크라이스는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의 발상, 언제 언제 써먹거나 팔아먹을 구석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 * *
타르닌 자작은 막상 보더 가드 상비군이 나오자 덜컥 겁이 났다.
“나에게 고통은!”
“기쁨이다!”
“덤벼어어어어!”
딱 봐도 아군의 숫자보다 많고 장비도 더 좋아 보였다.
“겁먹지 마라. 그게 저들이 원하는 거다.”
검은 칼에서 나온 전사, 라이카노스가 말했다.
어깨 위로 삐죽하게 무기 손잡이가 솟은 채였는데, 등 뒤로 비스듬히 철퇴를 차고 있었다.
엉덩이 옆에서 삐죽 튀어나온 끝에 달린 둥근 원형 추에 뾰족한 바늘이 가득했다. 보기만 해도 묵직함이 느껴지는 무기였다.
라이카노스의 팔뚝은 어지간한 여자의 허벅지만큼 두꺼웠으며 가죽 위에 쇳조각을 붙인 장갑을 끼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사람 머리통 하나 부수는 거야 일도 아닌 게 생긴 위인이었다.
실제로 그는 타르닌이 상상하는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었다.
맨손으로 머리통을 부수는 것 같은 일 말이다.
즉, 검은 칼 내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란 거다.
단주를 제외하면 누구도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작자였다.
“아니, 사교도 놈들은 뭐 하고 있는 거란 말이요.”
“그 새끼들이야 눈치나 보겠지.”
라이카노스는 잘 싸우며 뛰어난 전사다. 하지만 머리가 좋진 않앗다.
타르닌은 더 그랬고.
눈치를 보던 귀족 하나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보더 가드 내에선 소문이 안 좋습니다. 당장이라도 도망갈 사람이 줄을 섰습니다.”
영지 내에서 도망 나온 귀족이다.
타르닌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내부가 썩고 망가졌다면 지금 저들의 모습은 무엇인가.
“고통을!”
“통증을!”
“아프고 싶다!”
“날 아프게 해 줘!”
그저 미친놈들인가?
어디서 단체로 약이라도 받아 처먹었단 말인가?
“……제가 나올 때는 군대도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는데.”
귀족은 슬그머니 말끝을 흐렸다.
라이카노스는 당장 놈의 머리통을 빠개고 싶었지만, 한 번 참았다.
어차피 상관없는 일이다.
“적당히 대응만 해!”
지금 총력전을 벌이면 사교도가 반응할까?
영지 너머의 아즈펜은?
안 할 것 같았다. 전부 추잡스러운 놈들이니.
여기서 아군 병력이 깎이면 다음 없을 수도 있단 거다.
사교도 놈들에게 역으로 뒤통수를 맞을 순 없었다.
“염병할 것들, 덤비는 놈들만 깨부순다!”
적정할 대응이라고 생각하고 한 말이다.
타르닌 자작의 부하 중 하나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지금 이대로 총력전을 펼치면 사교도 부대도 아즈펜도 합류 할 거고. 그럼 끝나는 건데.’
그는 잠시 고민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런 말을 꺼내면 당장 사교에 심취한 첩자로 몰릴 판이었다.
“너, 너 첩자지!”
당장 타르닌 돼지 자작이 보더 가드에서 넘어온 귀족의 뺨을 후려치고 있었다.
두툼한 손바닥이 적당히 마른 남자의 뺨과 만나 상큼한 하모니를 터뜨렸다.
짝!
“악! 어이구! 아닙니다!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제가 나올 때만 해도 군대 사기가 개판이었습니다!”
맞은 귀족이 바닥에 철퍼덕 쓰러지더니 울상을 짓고는 말했다.
“개소리하지 마!”
타르닌의 화풀이가 귀족에게 작렬했다.
귀족은 나중에 살려달라며 싹싹 빌었다.
그리 사람 하나가 자근자근 밟히는 걸 보니, 말이 쏙 들어갔다.
위에서 알아서 하겠지.
그는 마음을 접었다.
라이카노스는 제 말대로 했다. 적당히 받아 주기만 하는 전투 양상이다.
“쟤들끼리 싸우다가 피 좀 흘리면 그 때 간다.”
늑대 주교는 라이카노스의 생각대로 했다.
‘신도의 피가 먼저 흐를 필요는 없지.’
사교의 부대는 숨을 죽였다.
당장 암살 부대가 어제는 안 왔지만, 오늘은 올지도 모르지 않나.
검은 칼에서 전령이 와서 당장 도우라는 둥, 개소리를 했다.
“마르타이 주둔군도 견제해야 하고 암살도 대비해야 한다.”
단칼에 거절, 이 소식을 들은 라이카노스는 이마에 핏대를 세웠으나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타르닌의 멱 따는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이러다가 당하면 끝장이란 말이다!”
라이카노스는 당장 시끄러운 돼지 멱부터 따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으나, 그가 이 전쟁의 빌미이자 핑계였다.
죽이면 안 되는 돼지였다.
* * *
아즈펜은 영지 너머의 상황까지 알아보기 위해 자원을 투자했다.
첩자부터 시작해서 정찰대와 주술과 마법까지 활용했다.
“움직입니까?”
부하의 물음에 남자 하나가 제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이마를 덮은 녹색 머리칼이 쓸렸다가 내려왔다.
사라락 내려오는 머리칼의 감촉을 느끼며 남자가 말했다.
“아직 우리 차례가 아니야.”
그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아즈펜의 천재 전략가, 이전 전쟁의 패배로 인해 한동안 좌천되었던 남자의 이름은 아브나이어였다.
그는 이번 전투의 목표를 명확하게 정했다.
한 명의 목이 최우선이었다.
영토를 넓히는 건 차후의 문제였다.
그것 때문에 준비한 것들이 산더미다.
가슴이 뛰기도 했다. 과연 얼마나 버텨 낼까?
사람을 괴롭히며 쾌감을 느끼는 종류의 인간은 아니지만, 전략가로서 자신의 준비가 얼마나 통할지 지켜보는 건 더 없는 즐거움일 따름이었다.
* * *
“미친 새끼들아! 내가 뭐라고 했지? 내 말이 곧 신의 말씀이요! 빛이라고 했다! 앙? 쳐들어! 들으라고!”
분대장의 외침에 휘하 분대원이 입을 모아 외쳤다.
“악!”
전부 악에 받쳤다. 그럴 만도 했다. 이들은 짧은 순간,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법을 배웠다.
신병일수록 더 괴롭혔다.
악의가 있어서 한 건 아니었다.
베테랑급 분대장과 소대장은 부름을 받았다. 그들은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전장의 열기에 휩싸이지 않게 뜨겁지만 차갑게 싸우게 할겁니다.”
크라이스가 와서 멍멍 짖었고 당연히 귓등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엔크리드가 나섰다.
검은 머리칼의 푸른 눈, 전장의 미치광이가 말했다.
“반쯤 죽여도 좋으니까, 지휘관의 말을 듣게 해. 그리고 너희는 상급 지휘관의 말을 듣는다. 안 들으면 뒈진다. 렘이랑 내가 번갈아 가며 훈련을 지도하고 팬다.”
이전에 지위가 무엇이었든, 영리하고 말고를 떠나 군인이자 병사로 종군했다면 단순한 게 좋은 법이었다.
그들은 엔크리드의 말을 따랐다.
그중에는 벨도 있었다.
이제는 소대장이 된 벨이 악을 내질렀다.
“다 뒈질래애애애애!”
“으악!”
“나가지 마! 나가지 말라고!”
전투의 첨단이다. 가장 앞에 선 벨의 외침이 터졌다.
크라이스가 그레이엄에게 말해서 일부러 그렇게 한 거지만,
지금 나온 전력은 이번 전투가 처음인 신병이 태반이었다.
신병 하나는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가오는 악마 같은 적군만 보일 뿐.
창과 칼, 방패, 망치, 철퇴, 프레일 따위가 눈에 가득 찬다.
‘아.’
난 준비가 되어 있을까? 내 판단은 날카로울까? 이대로 창을 찌르면 될까? 방패를 들어서막아야 하나?
고민이 이어지며 머리가 하얗게 탈색될 때 쯤이다.
빡!
누군가가 뒤통수를 후렸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별이 보였다. 하얗게 탈색된 머리통에 색깔도 들어왔다.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발 새끼야, 복명복창 안 해?”
욕설이 귀를 파고들었다. 소대장의 외침이었다.
“네!”
“일 열 찔러!”
“일 열 찔러!”
그들은 그렇게 시키는 대로 했다. 신병 태반이 창을 앞으로 찌르고.
“뒤로! 뒤로! 빠지라고 시발, 빠져! 너 들어가서 보자! 죽여버린다!”
베테랑 병사이자 분대장이 된 병사들의 외침이 사방을 울렸다.
그렇게 첫 번째 소규모 전투가 지나갔다.
해가 떠서 시작해서 느릿느릿한 행군 덕에 정오가 되어 적군과 조우, 이후 전투 시작.
총원 팔십 명, 두 개 소대 규모의 보병대와 교전.
아군 부상 여섯.
사망자 없음.
치열하게 창을 찌르고 방패를 들어 버티되, 적당히 거리를 조절해 빠졌다.
실제로 이건 적군 덕이 아니라 아군의 지휘 덕이었다.
“왜 덤비다마냐?”
검은 칼 소속의 용병 하나가 뻘쭘해 말했다.
막 피가 끓어 넘치고 한바탕 날뛰려는데 적이 물러났다.
당연히 혼자서 쫓을 순 없었다.
그러자 검은 칼 부대도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다음 날도 비슷한 전투가 벌어졌다.
대신 얼굴만 달라졌다. 병사들의 면면만 변했다.
두 번째 전투에서는 검은 칼 부대의 운 나쁜 병사가 하나가 공격을 막지 못하고 창날에 목 언저리가 스쳐서 죽었다.
그는 타르닌 자작령의 농노였다.
급조한 부대란 소리였다.
그레이엄도 일선 지휘관도 적군의 상태를 한눈에 알아봤다.
타르닌 자작군 자체는 얼기설기 어설프다는 걸.
그래도 냅다 들이쳐서 싸우진 않았다.
세 번째 전투는 오히려 남문을 열고 나와선 사교에 시비를 걸었다.
“좀 모자란 아들이가? 덤비라, 구경하러 왔나.”
북부 지방 사투리로 적을 도발하는 병상의 외침이 시작이었다.
또 비슷한 전투였다.
많으면 세 개 중대, 적으면 두 개 중대가 돌아가며 싸우고 적당히 발을 뺐다.
그렇게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총 열두 번의 소규모 전투가 있었다.
죽은 숫자는 총 여섯 명.
그리고 남은 병사 중 태반은 이제 전투가 무엇인지 대충은 아는 이들이 됐다.
무엇보다 이들은 엔크리드의 훈련을 이겨 낸 이들이었다.
실전 경험은 이들에게 부족한 부분을 순식간에 채워 줬다.
그리고 크라이스가 원하는 대로, 보더 가드 상비군의 몸집이 크게 보이는 효과도 있었따.
적이 보기에 이들의 전투는 정상이 아니었다.
당연했다.
누가 이런 위기 속에서 실전 훈련을 하려고 하겠나.
“다행이 멍청이만 모인 것 같습니다.”
크라이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시나르와 엔크리드를 보며 말했다.
“이제 정말 할 일 해 주시면 됩니다.”
시나르는 고요한 눈으로 엔크리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식전 행사치고는 과할 것 같은데?”
“무슨 식이요?”
“당연히 우리 약혼식이지.”
평소와 같은 시답잖은 요정의 농담이었다.
엔크리드는 숙소 중앙의 횃대를 잡았다.
시나르가 반응했다. 왼발의 방향을 바꿨다. 막사 바깥쪽이다.
이 요정은 어째 불길에 민감했다.
“괜찮으십니까?”
“장난이 심하군. 짓궂어.”
요정은 무표정으로 말하곤 막사 밖으로 나섰다.
엔크리드는 피식 웃으며 막사로 돌아왔고 장비를 점검했다.
“어, 음, 임무다.”
그리고 말했다. 다들 몸을 일으켰다.
지난 열 며칠 동안 싸우지 못해 안달 난 짐승 무리가 거기에 있었다.